‘내 가슴 가까이서 파닥거리는 이 가슴은 내 희망, 나의 모든 부(富)예요,
우리 서로 떨어지면 불행하고 키스와 키스 사이에는 행복해요.
내 희망, 나의 모든 부-그래요!- 그리고 내 행복의 전부예요.’
- 제임스 조이스 詩『20(ⅩⅩⅢ)』
- 시집〈사랑은 사랑이 멀리 있어 슬퍼라〉공진호 역 | 아티초크| 2023
‘판도라의 항아리’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생 시절일 것이다. 삶을 좌우하는 고난들이 빠져나가고 달랑 남은 것은 희망뿐이더라 하는 이야기를 읽고, ‘다행이다’ 생각했었다. 남은 것이 희망이어서가 아니라 무엇이든 하나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거였다. 판도라가, 적어도 빈털터리는 아니게 된 셈이었으니까.
무구한 시절을 떠올리며 웃음 짓곤 한다. 틀린 감상은 아니다. 무엇이든 하나 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이다. 한편, 이제 와 궁금한 것은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모여 있던 항아리에 희망은 대체 왜 들어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신의 장난이려나. 선물일 수도 있다. 희망이 희망에 그칠 때의 괴로움을 생각하자면 어울린다 싶기도 하다. 희망이란 고난들의 작용과 작동 중 태어나기 때문이다. 물 없이는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희망이란 반대급부적 상황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테니까. 고난이 모여 있는 그 항아리는 희망의 고향이며, 희망이란 항아리 속 고난들이 빠져나간 결과다. 그렇게 여기자니 좀 씁쓸하다. 달콤한 기분을 거저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 야박하달까.
세밑이다. 이맘때쯤이면 남은 한 해의 며칠은 의미 없이 흘려보내게 된다. 마음은 내년 다이어리, 새로 걸어둔 달력에 쏠려 있다. 갖은 부정적 예측이 난무한 가운데 한가득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그 크기는 당연하게도 올해 고단한 정도에 비례한다. 꽤 힘든 한 해였다. 내년엔 좋은 일이 많았으면. 희망을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