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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경기가 끝나고 보도된 기사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백승호 거품.’ 한국에서는 내가 저돌적으로 드리블해
들어가서 직접 마무리까지 하는 기대주였는데, 스페인에 가더니 쉬운 패스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 평범한 선
수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선생님들이 뛰라는 대로 뛰었을 뿐인데, 내가 왜 거품이지? 나는 지금 막 축구를 배
우는 학생인데? 거품이란 두 글자는 어린 마음에 정말 큰 상처를 줬다.
프로선수 백승호가 부진하다면 비판을 받는다. 계속 그러면 ‘거품’이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중학생
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없으니까 잘했다, 못했다는 평가는 어울리지 않는
나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세상은 내가 스페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공한 선수’, ‘뭔가를 이룬 선
수’라고 인식했던 것 같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 시작하기 전에 이미 망한
스페인에서 나는 매년 한 단계씩 올라갔다. 연령대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그럴수록 기사들이 많아졌다.
내 경기를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가 없는데도 신기하게 내 플레이에 관한 기사가 간간이 나왔다. 그게 인터
넷상에서 여러 가지 버전으로 퍼졌다. 이적 루머도 나왔다. 실제와 전혀 다른 내용이 기사로 나올 때마다 엄청
속상했다.
나와 관련된 기사가 많아질수록 내 마음은 미디어와 점점 멀어졌다. 말을 아예 하지 않으면 기사가 나오지 않
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인터뷰를 꺼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점점 늘어났다. 우리 가족은 최
대한 조용히 지내자고 했다. 하지만 사정에 따라 꼭 응해야 하는 인터뷰도 있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불편했
고, 많은 요청을 고사하는 것도 불편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축구만 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나는 여
전히 축구를 배우는 10대 청소년이었을 뿐이다.
바르셀로나에 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꼭 성공해야 하는 아이처럼 되어버렸다. 세상이 생각하는 성공 기준
은 나중에 내가 깜프노우에서 뛰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망한 거라는 식이었다. 거품이란 소리를 듣고, 인
터넷에서 계속 욕을 먹었다. 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내가 거의 망한 선수처럼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