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이 모자라 남겨진 이야기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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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경배
연령에 관계없이 각자의 몫을 끈끈한 정으로 화목과 화합을 이룬 모범적인 산행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정상공격을 포기하고
베이스캠프의 잔일을 도맡으며 자리를 지켜 준 배윤근 선배, 왕년의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귀감을 보여준 홍종만 대원,
죽을 것 같은 몸을 아끼지 않은 막내 박승찬 대원 등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값진 원정 산행이었다고 자부한다..
(2)신승모
레이니어 등반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4000미터대의 독립 봉 등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44년 등반세월 속에 인왕산에서
에베레스트까지 등반해 왔던 긴 세월에 이번처럼 험난한 등반은 없었다. 울산 암의 암벽에서 여러 차례 비박, 에베레스트와 마칼루
원정 시 세파니 콜라에서 조난한 이스라엘 트래커 구조 활동, 모두 견딜만한 상태였다. 에베레스트 동계 엄청난 폭풍설에서 대원과
셀파 구조 활동을 제외하곤 대부분 고산등반은 날씨가 호전될 때까지 대기하는 형태의 등반이었다. 한편 안경을 쓴 대원은 방향 분간이
안 되는 블리자드로 인해 안경표면에 붙은 성애를 매번 맨손으로 또는 장갑을 벗고 제거해 주어야 했다. 이내 성애가 낀데다 플래시 빛에
의존하여 급사면을 오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급반전되기도 하였다. 야음에 거의 맹인수준의 악조건 하에서 등반할 수밖에 없었다.
등반 팀 구성 면에서는 비교적 잘 고려하였다는 평가다. 선발 조는 운행속도가 비교적 빠른 대원으로 구성하여 여기에 40여 차례 이 산을
등반경험이 있는 대원을 선두로 한 점이다. 일단 정상등정을 손쉽게 한 파티라도 넣자는 구상인 것이다. 후속 팀은 다양한 기량과 연령차가
있는 대원구성으로 여성 두 명이 포함되어 아무래도 속도 면에서 선발조와는 차이가 예상되어 만일의 경우 상당한 경험자들을 배치하여
중도하산까지도 예상한 등반 조 구성이었다.
(3)한상근
첫 경험인 만년설 등반 기대감에 의기 충만. 베이스캠프도착 동시 고소증세 로 구토와 두통 시달림. 체력 조절 중요성 실감함. 둘째 날
컨디션 양호, 정상 오름에 문제없음. 진눈깨비 시작으로 점차 강풍 과 안개에 휩싸임 천신만고 끝에 정상 분화구까지 도달함. 정상 코앞에
두고 설동파고 두 명의 대원 대피시킴 김대원 탈출 요청. 사방 천지가 흰색 유동혁 선배 길 찾는대 신 내린 사람과 같음. 겨우 겨우 하산
B조와 C조 조난 소식에 가슴 철렁 B조에 아내가 있고 친구 선배 얼굴들이 교차함.2시간 후 레인저로부터 모두 안전하게 하산소식 접함.
이번산행에 잘못했으면 머리깍고 입산 하는 줄 알았다.
(4)김영일
내 몸이 말라서였는지, 얼마나 떨리는지, 이대로 조금 더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 탈출하자 했다. 가득이나 마른 몸인데 몸무게가 5파운드가 줄었다.
(5)최소영
저녁 9시. 헤드라이트 불빛이 이어주는 로프의 행진이다. 베이스캠프에 남아 랜턴을 들고 길 떠난 대원들에게 후광을 보내며 한사람씩
그들의 이름을 암송하고 손과 마음을 모아 기원하는데 50분이 후 파피씨 낱알만 하게 멀어진다. 텐트를 난타하는 이 광풍에 무한 도전을
넘어선 그들이 떠난 6시간까지도 이 복림과 한 혜진은 무사히 포기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2잔의 생강차를 다시 데우곤 했다. 5월 26일
오전 9시 30분. 시야 끝에 5개의 점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김 경배 선배님, 우리 A조가 가물가물 보이는 것 같아요." 기진맥진 탈진해서
돌아와 준 A조 김 주천 단장님이 B와 C조의 안부를 찾는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답변에 A조5명이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무너진다.
"어이쿠, 일 났구나." 이 한마디에 다리가 후둘 거리며 손끝이 흔들린다. 김 경배 선배님의 혈색이 또다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발 빠른
박 승찬이 레인저 오피스로 달려가 조난 신고를 하자 레인저들의 조사가 시작되며 우리들 전원 모두에게 금족령이 내려졌다. 한 시간 지났을까?
"코리안 8명이 안전하게 내려오고 있다. 두 시간 후면 도착할 것이다."라는 레이저의 낭보다. 그제야, 내놓은 산꾼이지만 악천후에 3시간을
앞당긴 A조의 경로를 묻게 되었다. 드디어 B조 C조가 아스라한 시야 끝자락에서 흔들리는 8개의 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동상이라는 기념품을
얼굴에 가득 담고 돌아온 킨타쿤테 박 상윤,이 경식님의 일그러진 미소가 내 가슴에 싶은 추억으로 남기어간다.
(6)이복님
다음에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워 다시 도전하고 싶다.
(7)한혜진
출발 9시 어둠이 깔린다. 두렵다. 머리까지 멍해온다. 얼마쯤 올라왔을까?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귀찮다. 조금 전에 건너뛴 크레파스의
공포가 지워지기도 전에 설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새벽 3시부터 시작한 눈보라는 점점 심해져 우리 팀 모두를 화이트아웃으로 고립
시켜버렸다. 새벽 4시경 체력은 거의 바닥상태다. 겨우 앉을 곳을 발견하고 눈구덩이를 파고 휴식. 그리고 짧은 침묵 그것은 마치 죽음의
침묵과도 같았다. A조에 있는 내 남편은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나 하여 선배님들이 갈라 논 우리부부. A조만이라도 무사했으면 좋겠다.
뿌옇게 밝아오는 아침 6시경 그치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한발의 실수도 할 수 없는 급경사. 그래도 침착하게 김호영 씨와 강인선 선배님의
노력에 원디(표시 깃발)를 찾았다. 대장님의 현명한 하산명령. 베이스캠프가 눈에 가물가물 보인다. 얼굴엔 땀인지 눈물인지 자꾸 흘러
내린다. 나의 무한도전은 많은 경험을 남기고 무사히 끝이 났다.
첫댓글 잘읽었읍니다. 그날에 악몽이 되살아나는군요. 좋은경험.멋진 추억으로 간직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