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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세값이 오르네,
집값이 떨어지네,
하우스푸어 어쩌고 저쩌고...
엄청 심각한 것 같은데 솔직히 다른 세상 이야기 처럼 들린다.
불편 없이 살기위해 더 큰 집, 더 좋은 집을 찾는다면 그 것은 취향이기 때문에
자유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집을 신분을 나타내는 큰 주민등록증 쯤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난 서울의 아파트가 살기 불편해 시골 오막사리를 택했다.
경북 봉화 물야면의 첫 거처
경북 봉화에 첫발디뎌 살던집-. 연간 사용료(도지)는 쌀 한가마였다.
사랑방 그리고 나의 아뜰리에
경북 봉화군 물야면 은봉마을에 거처를 정한 것이 벌써 2002년도의 일이다
그 해 8월 엄청 덥던 때
서울에서 반농으로 귀농을 했다.
반농이란 부부가 모두 오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 귀농하는 것을 지역주민들은 그렇게 말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같이 귀농을 하기
때문에 현지민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말일 것이 라고 생각을 한다.
삼천리 강산이 모두 내 정원
처음 이곳에 이주했을 때 도심을 떠난 해방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침이면 반겨주는 새들의 노래, 햇살 속에 펼쳐지는 산골의 정경 등-.
그런데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부부동반으로 친척이 다니러 왔을 때 옥신각신 일이 벌어졌다.
부부는 공기좋다, 경관 좋다를 연신 떠들어 대며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나타났을 때는 커다란 보자기에 야생화며 작은 소나무를 잔뜩 싸서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정말 곱지않았다. 그래서 "왜 그랬냐?"고 한 번 물어 보았다.
당연한 대답처럼 "집에 심으려고"그런다. 물론 예상된 대답이지만 가시가 날아 오는 것 같았다.
참고 또 참고 또 참고 수없이 했지만 기어코 한마디가 튀어 나왔다.
"여기 온 봉화가 그리고 이 나라 삼천리 강산이 내 정원이고 내 땅이다 생각하면 되지,난 그래서 아파트 팽개치고 살러 왔는데 당신들도 살러 오면 되겠네."
그후 지금까지 그 친척은 전화 한번 준일 없다.
경운기 초보운전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중고 경운기를 한 대 마련했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힘든 운전이 경운기 운전일 것이다.
경운기를 처음 운전할 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 땀이 흐른다.
좁은 농로에서 자동차들이 빵빵대며 추월할 때는 핸들을 놓칠것만 같아 안절부절이었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초보운전"딱지를 붙였다.
그 후로는 빵빵대는 일도, 추월하는 일도 없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듣기 싫어진 새소리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너무 무리를 해서인가
제일 먼저 귀찮아진 것이 새 소리였다.
몸이 피곤해 늦잠을 자려고 하면
해도 뜨기 전에 요란한 새소리가 잠을 깨웠다.
"출근해!"
직장생활하던 시절 이른 아침이면 외쳐대던 마누라의
쇳소리를 방불케 하는 고함소리를 새들이 대신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2년쯤 -.
조금은 적응이 돼 여유가 생겼다.
박새가 화장실에 둥지를 틀어
박새들이 뒷간 블록 구멍에 둥지를 틀 정도로 친해졌다
그래서 그림을 그려 화장실 앞에 매달고 조심할 것을 경고 했다.
하지만 그 화장실은 외부 사람은 누구도 이용한 적이 없는 나 혼자만의
푸세식화장실이었다.
찾아 오는 사람이 없어 정말 심심했던 모양이다.
박새가 둥지를 틀고 날아 들었던 화장실 블럭 구멍-.
새들이 방귀소리에 놀랄까 붙여 놓았던 방귀금지 표지-.
점점 힘겨워지는 농사
그러나 농사는 점점 어려워졌다.
한마디로 본전 뽑기가 힘들었다.
농사를 지었으면 직접 내다 팔던가 아니면 농협을 통해 출하를 하든가 해야 하는데
모든 여건이 힘들었다.
수확한 농산물: 가지,감자, 쥬키니 호박 등
수확한 농산물을 포장을 마치면 농협에서 수거해서 농산유통도매시장으로
공동출하를 한다.
도매시장에 출하된 농산물은 경매를 통해 가격이 매겨지고 여기에서 희비가 엇갈린다.
전광판에는 생산농민의 이름과 낙찰가격이 쓰여진다.
농사는 로또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농사는 한마디로 로또 복권과도 같다.
농협에서 출하비를 보조해줘도 본전은 커녕 포장비도 뽑아내기가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러나 행운도 있었다.
가지 한상자에 4000원만 뽑아도 다행이라고 여기던 때 24,000원까지 뽑아 아사 직전에
동아줄을 잡고 겨우 다음해 농사를 준비한 적도 있다.
흔히 골프를 즐길 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고 농담을 했지만
농사를 짓고 부터는 그 말을 맑금히 씻어 버렸다.
내 몸 하드에서 청소를 해버렸다.
왜? 농사도 마찬가지니까!
농산물 가격 변동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테지만
경상도 지역에 태풍이나 강우가 몰아치면 농사는 망치고 만다.
하지만 태풍이나 강우를 맞지 않은 쪽 사람들은 농산물 가격이 보존돼 겨우 겨우 산다.
이럴때는 유통업자들이 호기를 만난다. 소비지에서 농산물 가격이 뛰면 생산농민도 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또 나는 무를 심었는데 무값이 폭락해 인건비도 안나와 그자리에서 갈아 엎는다.
그런데 옆집은 배추 값이 폭등해 희희 락락이다.
농사도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때려 치웠다.
산으로 간 알통
그래서 산으로 갔다.
엔진톱 현장실습사진
산일중 꿀맛같은 휴식
그리고 퇴근
엔진톱 사용법을 배웠다.
산림기능사-.
그 자격으로 벌목과 간벌, 숲가꾸기 현장을 누볐던 것이다.
어렸을 적 군대생활을 특전사에서 보내 산에는 익숙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인지 엄청 힘들었다.
맨날 책상머리에 앉아 기획일에만 종사했었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근로의 짜릿한 오르가즘을 맛보았으니 그 황홀한 맛을 세상 누군들 이해하겠는가 싶다.
정말 정말 즐거웠다.
세상은 오나가나 투기열풍
이 와중에 악재가겹쳤다.
집앞으로 도로가 날 예정인데 집주인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녀석이 보상문제가 따르니까
집을 비우라는 것이었다. 급하게 구하다보니 구할 수도 없었고 해서 컨테이너를 사서
밭에다 놓고 기거하기로 했다.
문제는 추운 겨울 컨테이너 하우스에서의 목욕이었다.
6KG에 육박하는 기계톱을 들고 온 산을 헤매는데 땀에 찌들고
극심한 피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하나는 퇴근하면 무조건 잠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몸이 그렇게 받아 들이는데 도리없지 않은가-.
두번째는 역시 샤워인데 샤워는?
한 방법을 생각해 무난히 지나갔다. 방법은 상상에 맡긴다.
몇십년만의 한파라던가,그래도 산일을 하며 따듯하게 보냈던 컨하우스
힘든 근로를 싫어하는 젊은이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정말 문제가 많다.
젊은 친구들이 근로를 싫어한다.
지방 농촌에서 품삯은 뻔하다.
그런데 엔진톱부분은 처음 일배울 때 8만원,
그리고 기술력에 따라 9만원, 10만원, 12만원, 13만원 최고 15만원까지올라간다.
자기 소유의 엔진톱이 있다면 1만원이 더 추기돼 받는다.
그런대로 높은임금에 처음에는 호기좋게 욕심을 낸다.
이 명목상의 소득만 이야기로 듣고 젊은 친구들이 달겨든다.
그러나 하루만에 출행랑을 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호기좋게 달려들다 퇴근무렵 나타나지를 않는다.
피곤해서 어딘가에서 쉬고 있겠지 싶어 사람들이 함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인지 이 때쯤 작업반장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저 피곤해서 집에 왔어요. 엔진톱은 어디어디에 두고 왔으니 찾아가세요."
물론 힘들다.그렇지만 너무 어이가 없다.
등에는 엔진톱 보충을 위한 휘발유와 윤활유, 그리고 간식과 점심이 든
닉샥을 짊어메고 손에는 6kg의 엔진 톱을 들고 온 산을 종횡무진 누벼야 하니 힘들 수 밖에-.
한마디로 실미도훈련, 특전사 훈련 저리가라지만 그러나 이 나라의 젊은이가
무직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피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해볼 때
앞날이 문제인 것이다.
봉화 서리의 집
서리마을로 또 집 옮겨
앞서 말했듯 산일을 하다보면 따듯한 샤워가 그리워진다.
규모가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에서는 엄두도 못낼일이지만-.
그래서 집을 옮겼다.
시골에는 빈집이 많다.
1년에 12만원 주고 빌린 경북 봉화 물야면 서리의 집이다.
한 겨울을 이 집에서 보냈다.
여기에서, 이 집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산림기사 자격을 취득했다.
국민생활체육지도자 자격이 있어 봉화 청소년 수련원에서 새벽시간에
트레이너로 자원 봉사도 했다.
산림경영기사 1급, 산림공학기사 1급-.
산림공학기사는 토목기사 4년의 경력이 있어야 기회가 주어지는 자격이다.
그 후 산일따라 경북 영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양 집 안방에서 부억으로 통하는 여닫이 문
경북 영양그리고 삼척에서의 생활
회사에서 제공하는 단독주택에서 1년을 보낸다.
그리고 삼척으로 직장을 옮겨 역시 회사에서 제공하는 원룸에서 보냈다
회사에서 제공한삼척의 원룸
동향이라 아침에는 따듯한 햇살이 기가막혔다.그러나 한낮에는 커튼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습작을 위한 글들을 모아 원룸 커튼을 대신했다.
오막사리, 외딴집, 원룸 등 주거는 변해도 한귀퉁이에는
늘 나의 소담한 아뜰리에가 함께 했다.
지금은 시내 중심가 빌라를 마련했다.
전세를 구하려다 몇푼 보태 아예 내집으로 마련한 것이다.
지금은 경북 봉화와 강원 삼척을 오가며 산다.
삼척 미로 도계 통리 태백 석포 봉화 그리고 역순으로의 드라이브 코스는 편도 2시간반,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의 절경 코스일 것이다.
비록 서울에서 34평에 살던 시절을 비교하면 보잘 것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때도 나에게는 집은 주거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은 주거일뿐 투기의대상, 혹은 신분의 상징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하우스푸어라는 말이 요즘 회자된다.
안타깝다.
나의 앞으로의 계획은 이렇다.
서해쪽 태안반도 그리고 군산-.
태안반도는 내가 자주 SCUBA여행을 하던 곳이다.그래서 기름유출 사고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자원봉사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해 쪽으로 완도, 통영,
그리고 동해 쪽으로 포항,
그리고 내륙(아직 미정)에 각각 6곳에 전세집을 한칸씩 마련할 계획이다.
시골은 빈집도 많고 전세도 싸니까-. 봉화의 경우 4식구가 살만한 집 독채의 도지(연간사용료)로
12만원을 지불했으니까 상상에 맡긴다.
보름씩 아님 한달, 아님 내키는대로, 가고 싶은대로 여행하듯 살 것이다.
내 생활에 동의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열쇠를 빌려주기도 하고-.
다만 기본적으로 식기들 잘 정돈 하고 깨끗하게 설거지 해놓을 것을 당부 할 것이다.
가끔 바다에서 집게를 보는데 죽은 보말 고동 속에서 산다.
그리고 성장과정에 따라 집을 바꾼다. 주거와 자기 보호를 위해서일뿐이라는 생각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내 앞마당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누가 돈보태주는 것도 아닌데 산불을 걱정하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 줏어모아 차안에 쌓아둬도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제 차안에 밀폐된 뚜껑이 있는 쓰레기 통을 하나 마련해서 싣고 다녀야 겠다.
왜? 냄새 때문에!
알통 : http://blog.daum.net/dumjik/
나무에 매달려 한겨울을 보내며 비박중인 팔마구리 고치-.
나 역시 이지구상에 잠시 들렸다가 이 팔마구리처럼 비박중이라는 생각이다.
첫댓글 알통아우야! 50대에 귀농의 용기, 5개 자격증 취득의 열정, 현장감 가득한 문장력등, 어찌 경탄치 않을소냐!
세계는 나의 정원이라며 천방지축 떠돌아다닌 소인 백두거사가 알통님의 조국애에 그저 고개 숙일뿐~~~.
형님 고맙습니다. 형님께 배운 것이 너무 많지요. 특히 조그맣게 사업을 할 때 일감도 몰아 주시고 많은 고마움을 표시도 못하고 살았으니...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셔서 내년에도 지구촌을 누비시길 바랍니다. 단 아쉬운 것은 뒷이야기를 올려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보지는 못해도 형님이 전해주시면 대리만족이라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부탁합니다.
형님 늘 고맙고 건강하세요~~~~~~~~~~~~~~!
86송진욱입니다. 형님 글들을 보면서 세상사는 일들을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6개의 전세집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 고마워 진욱아우! 열쇠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