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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Men Use Brokers to Find Brides in Vietnam
한국 남자들은 부로카를 통해서 베트남 신부를 찾아 나선다
Published: February 22, 2007
노리미츠 오니시
발행: 2007년 2월 22일
HANOI, Vietnam ? It was midnight here in Hanoi, or already 2 a.m. back in Seoul, South Korea.
베트남, 하노이? 이곳 하노이는 한밤중이고 한국 서울 시간으로는 새벽 2시 입니다
But after a five-hour flight on a recent Sunday, Kim Wan-su was driven straight from the airport to the Lucky Star karaoke bar here, where 23 young Vietnamese women seeking Korean
husbands sat waiting in two dimly lighted rooms.
그러나 최근 일요일 5시간이나 비행기를 타고온, 김완수씨는 공항에서 이곳 러키 스타 카라오케로 막바로 차를 타고 갔다, 그곳에는 23살의 젊은 베트남 여성이 두개의 희미한 전등이 켜져 있는 방에서 기다리고 앉아 한국 남편을 찾고 있다
“Do I have to look at them and decide now?” Mr. Kim asked, as the marriage brokers gave a brief description of each of the women sitting around a U-shaped sofa.
"내가 그녀들을 보고 지금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 인가요"? 김씨는 유자형의 의자 주변에 앉아 있는 여성들의 각자의 면면을 간략히 디스크립션(기술,묘사,약력)을 소개하고 있는 결혼 쁘로카에게 물어 보았다
Thus, Mr. Kim, a 39-year-old auto parts worker from a suburb of Seoul, began the mildly chaotic, two-hour process of choosing a spouse.
이렇게, 서울 교외에서 자동차 부속품 회사 직원인 39세의 김씨는 스파우스(배우자)를 선택하는 두시간의 과정을 약간 초조하게 생각하며 시작했다
In a day or two, if his five-day marriage tour went according to plan, he would be wed and enjoying his honeymoon at the famed Perfume Pagoda on the Huong Tich Mountain southwest of here.
5일의 신부를 찾는 여행 일정에 따르면, 하루 이틀사이에, 그는 결혼식을 올릴것이고 이쪽 서쪽지방에 있는 후앙 티흐 산에 있는 유명한 퍼퓸 파고다에서 신혼여행을 즐기게 될 것이다
More and more South Korean men are finding wives outside of South Korea, where a surplus of bachelors, a lack of marriageable Korean partners and the rising social status of women have combined to shrink the domestic market for the marriage-minded male.
총각들이 넘처나고, 결혼할만한 한국 여성들이 부족하고, (한국) 여성들의 신분상으로 독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이 증가해 한국내 결혼시장이 위축하는 것과 맞물려, 더욱더 많은 한국 남성들은 해외로 서 신부를 찾아 떠나고 있다
Bachelors in China, India and other Asian nations, where the traditional preference for sons has created a disproportionate number of men now fighting over a smaller pool of women, are facing the same problem.
전통적으로 아들 선호 사상으로 남자의 성비가 부적절하게 높아지면서 중국, 인도 그리고 다른 아시아 나라의 총각들은 신부가 모잘라 애가 타는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The rising status of women in the United States sent American men who were searching for more traditional wives to Russia in the 1990s. But the United States’ more balanced population has not led to the shortage of potential brides and the thriving international marriage industry found in South Korea.
미국에서도 여자들의 신분 상승으로 미국 남자들이 90년대에 러시아로 신부를 찾아 떠낮던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 인구의 성비가 균형을 찾으면서 미래 신부 기근현상은 사라졌고 성업중인 국제 결혼 산업이 한국에 출현 했다
Now, that industry is seizing on an increasingly globalized marriage market and sending comparatively affluent Korean bachelors searching for brides in the poorer corners of China and Southeast and Central Asia.
지금 (한국의) 국제결혼 산업은 글로벌화 하고 있는 결혼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비교적 부자나라인 한국의 총각들이 중국이나 동남아 중앙아시아의 비교적 가난한 나라로 신부를 찾아 떠나고 있다
The marriage tours are fueling an explosive growth in marriages to foreigners in South Korea, a country whose ethnic homogeneity lies at the core of its self-identity.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나라인 한국에서 신부를 찾아 떠나는 신부 찾기 여행 폭팔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In 2005, marriages to foreigners accounted for 14 percent of all marriages in South Korea, up from 4 percent in 2000.
2000년의 국제결혼이 4퍼센트 이던 것이 2005년에 국제결혼을 선택한 사람이 14퍼센트에 달했다
South Korean news organizations have reported that many of the foreign brides were initially lied to by their husbands, and suffered isolation and sometimes abuse in South Korea.
한국의 뉴스 매체에서는 많은 외국인 신부들이 한국 남자들의 사기에 떨어져 결혼하게 되고 한국에서 외국인 신부들이 외로움과 폭력에 시달린다고 보도하고 있다
Partly in response, the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is now moving to regulate the international marriage industry, which emerged so suddenly that the Consumer Protection Board can only estimate that there are 2,000 to 3,000 such agencies nationwide.
부분적으로 이런 문제 때문에, (한국의) 보건 복지부에서는 국제 결혼산업을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소비자보호원에서는 전국적으로 국제결혼 대행업체가 2,3천개로 추정할 정도로 갑자기 우후죽순격으로 나타났다
After an initial setback ? his first three choices found various reasons to decline his offer ? Mr. Kim narrowed his field to a 22-year-old college student and an 18-year-old high school graduate.
그에게 배당된 신부들을 여러가지 이유를 들며 초반에 셋백(퇴짜)을 한 후, 김씨는 대학을 졸업한 22세의 신부와 18세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부로 범위를 정했다
“What’s your personality like?” Mr. Kim asked the college student. “I’m an extrovert,” she said.
The 18-year-old asked why he wanted to marry a Vietnamese woman.
"아가씨의 성격은 어떤 스타일이세요"라고 김씨는 대학생 신부에게 물어 보았다. "나는 엑스트러버트(와이썅씽,외향성)의 성격 입니다"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18세의 베트남 신부는 그에게 왜 베트남 여자와 결혼할려고 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I have two colleagues who married Vietnamese women,” he said, adding, “The women seem devoted and family-oriented.”
"나 이외에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친구가 두명 더 있어요"라고 그는 대답하면서 "베트남 여자들이 살림을 잘 하고 가정적인 여자들로 보여서요"라고 대답 했다
One Korean broker said the 22-year-old, who seemed bright and assertive, would adapt well to South Korea. Another suggested flipping a coin.
어느 한국 뿌로카는 밝고 어서티브(자신감 있는)는 22세의 베트남 여성이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것 같다고 말 했다. 다른 사람은 제비뽑기로 신부를 고르자고 제안 했다(운명에 맏기자)
“Well, since I’m quiet, I’ll choose the extrovert,” Mr. Kim said finally, adding quickly, “Is it O.K. if I hold her hand now?”
"글씨요, 잘 생각해 보고 신부(배우자)를 고를게요"라고 말 한 김씨가 드디어 말 했다, 아이구 그게 좋겠내, 내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고를수 있을 런지 모르겠내"
She went over to sit next to him, though neither dared to hold hands. She spelled out her name in her left palm: Vien. Her name was To Thi Vien.
그녀는 남자의 손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일딴 그 남자 옆에 앉았다. 그녀는 그의 왼 존에 그녀의 이름을 삐엔 이라고 썼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투 뜨이 삐엔이라는 아가씨였다
In South Korea, billboards advertising marriages to foreigners dot the countryside, and fliers are scattered on the Seoul subway. Many rural governments, faced with declining populations, subsidize the marriage tours, which typically cost $10,000.
한국에서, 광고게시판들은 전국적으로 차라리 외국여성과 결혼 하라고 광고를 하고 플라이어(삐라)가 서울 교외에 외국 여성과 결혼하라고 뿌려지고 있다. 인구 감소에 시달리고 있는 농촌 지역 관공서에서는 대부분 약 1만달라(800만원)에 달하는 결혼 보조금을 지급하며 외국에서 신부를 대려 오라고 장려한다
The business began in the late 1990s by matching South Korean farmers or the physically disabled mostly to ethnic Koreans in China, according to brokers and the Consumer Protection Board.
뿌로카와 (한국의)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대부분 중국에 있는 조선족 여성들에게 남한의 장가 못가는 농촌 총각과 장애자를 연결해주는 (한국의) 국제 결혼 산업이 뜬 것이 1990년대 부터라고 한다
But by 2003, the majority of customers were urban bachelors, and the foreign brides came from a host of countries.
하지만 2003년경의 국제결혼을 원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도시 총각들로 바뀌었고 외국 신부들도 어 호스트 오브(무리,떼, 다수의) 국가로 부터 왔읍니다, 즉 다양한 나라에서 외국인 신부가 들어 옵니다
The widespread availability of sex-screening technology for pregnant women since the 1980s has resulted in the birth of a disproportionate number of South Korean males. What is more, South Korea’s growing wealth has increased women’s educational and employment opportunities, even as it has led to rising divorce rates and plummeting birthrates.
1980년대 부터 시작된 전국적인 성 감별법의 기술 발달은 남한의 불균형적인 남자 아이들의 출산을 초래 했다. 더 지랄 같은 것은, 한국의 급격한 국민소득 향상은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고 취업할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고, 심지어 이혼율의 증가와 출산율의 플러미트(폭락, 급격한 하락)를 초래 했다
“Nowadays, Korean women have higher standards,” said Lee Eun-tae, the owner of Interwedding, an agency that last year matched 400 Korean bachelors with brides from Vietnam, China, the Philippines, Mongolia, Thailand, Cambodia, Uzbekistan and Indonesia.
"요즘 한국 여성들이 눈이 너무 높아졌다"고 지난해 400명의 한국 총각과 베트남, 중국, 힐피핀, 몽골리아, 타일랜드(태국),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인도네시아 신부를 짝 지어 준 국제 결혼 중매 회사 사장 이은태씨가 말 했다
“If a man has only a high school degree, or lives with his mother, or works only at a small- or medium-size company, or is short or older, or lives in the countryside, he’ll find it very difficult to marry in Korea.”
"한국에서 남자가 고졸출신이거나, 엄마를 모시고 살거나, 별볼일 없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거나, 키가 작거나, 나이가 많거나 시골에 살면 한국에서 한국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Critics say the business demeans and takes advantage of poor women. But brokers say they are merely matching the needs of Korean men and foreign women seeking better lives.
비판론자들은 국제결혼사업을 하는 놈들이 궈거(국격)을 떨어뜨리고 한국 남자들을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에게 도매금으로 내어 주고 있다고 욕을 한다. 그러나 뿌로카들은 결혼을 할수 없는 한국남자들과 선진국에서 살고자 하는 외국여성들의 입장이 맞아 떨어져 단지 중매를 하고 있을 뿐 이라고 말 한다
“But this business will get more difficult as those countries get richer,” said Won Hyun-jae, the owner of i-Bombit, another agency.
"하지만 이 사업은 가난한 나라들의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이짖도 더 어렵울 것 이다"라고 아이 밤비트라는 결혼대행업체를 운영하는 원현재씨가 말 했다
“Now, even a disabled Korean man can find a Vietnamese bride. But eventually Vietnamese women will ask why they have to go marry a Korean man when life in Vietnam is good.”
"지금도, 한국의 장애자들이 베트남 신부와 결혼할수 있읍니다, 하지만 베트남이 잘 살게 되면 한국남자들과 지랄했다고 결혼 하느냐고" 반문 하겠지요
For now, Vietnam remains a popular source of brides, second only to China. Marriages with Vietnamese women are considered so successful that the local government of at least one city, Yeongcheon, in South Korea’s rural southeast, subsidizes marriage tours only to Vietnam.
지금도 베트남은 신부의 공급의 원천기지이고 다음이 중국 이다. 베트남 여자들과의 결혼은 너무나 성공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해 한국의 농촌 서동쪽에 있는 소도시 연천군은 베트남 여성을 찾아 떠나는 신부 찾아 3만리 여행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At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to the west of Seoul, an increasingly familiar scene unfolds in front of the arrival gates in the mornings.
서울 서쪽에 있는 인천국제공항은 아침에 동쪽 게이트 앞에 언폴드(펼처지다, 전개되다)하는 낮 익은 광경이 늘어나고 있읍니다
Korean men, holding telltale bouquets and often accompanied by relatives, greet their Vietnamese brides as they arrive on overnight flights from Hanoi or Ho Chi Minh City.
한국 남자들이 나도 드디어 장가간다는 증거인 부케를 들고, 친척들이 마중나와 하노이나 호치민에서 야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베트남 신부를 맞이 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읍니다
On the Marriage Tour
사랑 찾아 떠나는 결혼 여행
It was also at the airport that a tense-looking Mr. Kim and another client began their marriage tours. Three brokers for Interwedding and i-Bombit arrived.
긴장한 표정의 김씨와 또다른 고객이 신부를 찾아 떠나기 위해 공항에 있었읍니다. 국제결혼 중신애비이자 아이밤빗 회사 직원인 3명이 도착했읍니다
Mr. Kim, urged on by an older sister, decided to go to Vietnam after a last-ditch effort to meet a Korean woman in December failed.
김씨는 12월에 있었던 한국여성과의 마지막 만남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차라리 베트남에서 신부를 구해오라고 큰 누나가 강권을 했다
A high school graduate, he lives with his mother and his sister, and he works on the assembly line of a small manufacturer of car keys.
고졸 출신인 그는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으며, 그는 자동차 열쇄를 만드는 작은 공장 조립라인에서 일하고 있다
Though he lives in one of the world’s most wired societies, Mr. Kim does not use the Internet.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인터넷이 발달한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김씨는 인터넷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The other client was Kim Tae-goo, 51, who grows ginseng and apples on the 2.5 acres of land he owns in Yeongju, a town southeast of Seoul.
또 다른 신부찾아 떠나는 51살의 김태수씨는 서울의 남부 지방 도시인 영주에서 자신의 2.5에이커의 땅에다 인삼과 사과 농사를 짖고 있다
Mr. Kim had recently divorced a Chinese woman he married after the death of his first wife, a Korean woman. He lives with his 16-year-old daughter and his elderly mother. His 21-year-old has left home.
김씨는 첫 한국 부인과 사별한후 중국여성과 결혼했으나 최근 이혼을 했다. 그는 16세의 딸과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그의 21살 아들은 따로 살고 있다
Ahn Jae-won, a Korean broker who has long been based in Hanoi and is married to a Vietnamese woman, began: “The women have come out looking their best for you.
하노이에서 오랫동안 중매회사를 운영해 온 한국인 쁘로카 안재원씨는 베트남 여자와 결혼했다, "여자들이 당신에게 잘 보일려고 잘 빼입고 나왔어요"
But don’t expect them to look as pretty as Korean women. There is a big gap in our G.D.P.’s. Don’t be condescending. Don’t lie. If you lie, they’ll find out eventually and feel betrayed and run away.
그러나 한국 여자처럼 이쁜 여자들은 아예 생각하지 말아요. 한국과는 수준차이가 많이 나는 나라 이니까요. 컨데스센드(겸손하다,쫄다)하지도 말고, 거짓말 치지도 말아요. 만약 당신이 그지뿔을 한다면 언젠가는 들통나게 되고 베트남 아가씨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사요나라 하고 도망질 침니다
“The parents know that their daughters will marry a Korean man. The authorities know this is happening, but there’ll be trouble if we do it in front of them. So I seek your understanding.
베트남 부모들은 자기 딸들이 한국남자와 결혼할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당국에서는 이런 일이 해프닝이라고 알고 있지만 만약 우리가 그들앞에 서 있다고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괴롭겠지요. 그래서 나는 손님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지요
Once we land in Hanoi, even though it’ll be very late, we’ll go meet the women right away. It’s safer to do this at night.
일단 하노이에 도착하면, 매우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즉시 여자들과 맛선을 보러가게 될 것입니다. 밤에 맞선을 보아야 필이 꼬치거든요
“One last thing. Other companies allow you to sleep with the women on the first night. We don’t. Only on the bridal night. We must, after all, keep our decorum as Korean men. Is that O.K. with you?” The two nodded.
"또 한가지 말씀 드릴께요. 만나는 첫날에 막바로 드리 대라고(여자를 대리고 자라고 하는) 회사들도 있을 꺼에요. 우리는 그렇게는 않하고요. 정식 결혼을 하고 여자를 대리고 자라고 우리는 권해요. 우리는 무슨일이 있어도 동방예의 대국 남자로써 디커럼(펑꺼,품격)을 지켜야 합니다. 잘 알아 들으셨지요" 두 남자는 고개를 끄떡였다
Introductions and a Choice
신부 소개와 신부 고르기
And so, at the Lucky Star karaoke bar here, the older Mr. Kim addressed the Vietnamese women, most in their early 20s.
그리하여, 이곳 러키 스타 카라오케 빠에서, 나이 많은 김씨는 대부분 20대 초반인 베트남 여성들과 어드레스(수인사, 소개팅)를 하게 되었읍니다
“My 16-year-old daughter lives with me, and I’m a farmer,” he said, after informing the women through the brokers that he would also send $100 a month to their parents in Vietnam. “Is that O.K. with you?”
"만약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게 되면 베트남에 있는 처갓집에 한달에 100달라(한국돈 8만원)을 매달 송금 시켜 줘야 한다는 브로커의 상대 여성에 대한 고지를 들은 후, 저는 16살 먹은 딸과 함께 살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농사꾼 이래요"라고 아가씨에게 말 했다. "내 인생을 당신에게 바치겠어요"
“I know how to farm,” said Bui Thi Thuy, 22, one of the two women Mr. Kim eventually focused on.
"나는 농사를 우뚜케 짖는 지도 알아요"라고 김씨가 마지막으로 점찍어 두었던 두 여성중의 한 여성인 22세의 부이 뜨이 뚜이라는 아가씨가 말 했다
Asked whether she had any questions, Ms. Thuy said she had none. But the other woman, an earnest 28-year-old in a light-green jacket, asked, “If I marry you, will you love me and take care of me forever?”
그녀가 추가 주문사항이 있는지를 물어 보자, 뚜이양은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없다고 말 했다. 하지만 연녹색 재킷을 입고 있던 가장 진지했던 28세의 다른 아가씨는 "만약 내가 당신과 결혼한다면, 나 하나만을 사랑하며 영원이 자신을 챙겨주며 살수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Of course,” Mr. Kim answered, then quickly settled on Ms. ThuyAfter a few hours’ sleep, the new couples and the brokers squeezed into a small van for the four-hour ride to the women’s home province, Quang Ninh, about four hours east of Hanoi. There, the couples would be interviewed by the local authorities before registering for their marriages.
"모찌론(우런,물론)입니다"라고 김씨가 대답하자 뚜이양과의 결혼 사업이 일사 천리로 진행됐다. 겨우 몇시간을 잔 후에, 새 신부와 부로커는 떡 본 김에 재사 지내자고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약 4시간 거리에 있는 아가씨의 고향인 창닝으로 타고갈 4시간짜리 작은 밴을 빨리 구해야 한다고 날리 법석을 떨었다
. 여기 이 커플은 혼인신고에 앞서 지방당국(군청이나 법원이나)에서 정말 결혼하는지 인터뷰를 자지게 될 것 입니다
The road out of Hanoi, a wide highway flanked by new factories owned by multinationals like Canon, eventually narrowed to two lanes crisscrossed frequently by cows.
케논같은 다국적 기업이 새운 새로운 공장지대로 쫙쫙 뻣어있던 넓은 하노이 외곽 도로가 끝나고, 소때들이 자주 크리스크로스(드나드는,교차하는) 2차선의 좁은 도로로 접어 들었다
Farther out, farmers could be seen working the soil by hand, and signs of Vietnam’s booming economy grew fewer.
더 촌구석에서는 베트남의 경제성장의 혜택을 덜 받고 있다는 증거인 손에 흑을 무치고 일하고 있는 농부들을 볼수 있다
Most of the Vietnamese women marrying Korean men came from the rural areas around Hanoi and Ho Chi Minh City.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대부분의 베트남 여성들은 하노이와 호치민시 주위(주변)의 농촌 지역 출신들이다
Both Ms. Vien and Ms. Thuy had friends who had married Korean men and lived, happily it seemed, in South Korea.
한국 남성과 결혼한 비엔와 뚜이씨 친구들이 한국에서 살고 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Like many Vietnamese, they were also avid fans of Korean television shows and movies, the so-called Korean Wave of pop culture that has swept all of Asia since the late 1990s.
대부분의 베트남인들 처럼, 그들도 또한 1990년대 말 부터 아시아를 집어 삼킨 팝 문화인 소위 한류라 불리는 한국 티비 쇼와 음악에 미처버린 광팬 입니다
The Korean Wave
한류
The Korean Wave has transformed South Korea’s image in the region, presenting the country as having successfully balanced tradition and modernity, a place that produces coveted Samsung cellphones and cherishes family ties.
한국은 그들이 커비트(갈망, 몹시 갖고 싶어하는) 삼성 핸드폰을 생산하는 나라 가족과의 유대관계를 중시하는 전통과 현대이 아주 잘 조화를 이룬 나라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 나라에서 한류의 열풍이 한국의 이미지를 확 바꾸어 놓았읍니다
The week the two women met their future husbands, Vietnamese television was showing in prime time a South Korean television series called “Successful Story of a Bright Girl” ? the story of a simple country girl who goes to Seoul and captures the heart of a tycoon.
베트남 티비에서 서울로 가 타이쿤(도쿠가와 이예야스 같은)대물을 콱물어 버린 시골 소녀를 그린 단순한 스토리의 "명랑소녀 출세기"라고 불리는 남한의 티비물이 황금시간대에 방송되고 있는 그 주에 두 여성은 그들의 미래 남편을 만났읍니다
“To be honest, I don’t know much about Korea except what I’ve seen on television,” Ms. Vien said.
"솔직히요, 나는 티베에서 본 것 말고는 한국에 대하 아는 것이 없어요"라고 비엔양이 말 했다
“But the Korean landscape is beautiful. Korean men look sophisticated and affectionate. They seem responsible, and they live in harmony with their family members and their colleagues.”
"그러나 한국은 너무 아름다와요. 한국 남자들은 유식하고 다정다감하게 보여요. 한국 남자들은 책임강이 강한것 같고 한국 남자들은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잘 어울려 사는 것 같아요"
A soccer fan able to rattle off the jersey numbers of David Beckham and Zinedine Zidane, she had registered two years earlier with a broker for marriages with Koreans. Her father, a construction worker for a local firm, was able to send his two children ? Ms. Vien and her older brother ? to college.
데이비드 베컴과 지네디 지단의 영국 저시 축구선수를 놓고 레틀(개거품을 물고 싸우다)하는 축구팬인 그녀들은 한국 남자와 결혼하기 위하여 부로커를 통해 2년전에 가입을 했다. 지방회사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두자녀인 비엔양과 그녀의 오빠를 대학에 보낼만큼 잘 산다
By contrast, Ms. Thuy was one of five children of rice farmers. She had registered with the agency soon after graduating from high school.
반대로, 쯔이양은 쌀 농사를 짖는 농부의 5자녀중 하나이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후 잽싸게(졸업하자 마자) 혼정보 회사에 등록을 했다
“A friend of mine married a Korean man and now lives in Seoul,” Ms. Thuy said. “We talk on the phone sometimes. She’s very happy. She says there are so many people and tall buildings in Seoul.”
"내 친구가 한국 남자와 결혼해 서울에 살고 있어요"라고 쯔이양이 말 했다. 우리는 가끔 전화 통화를 해요. 내 친구는 한국 남자와의 결혼 생활이 너무 행복하대요. 내 친구는 서울에는 아주 사람이 많이 살고 큰 빌딩이 꽉 찾다고 말하던대요"
At age 22, she said, half of her peers had already married. As she waited to marry, she helped with household chores, forbidden by her parents to engage in the farm work that might blemish her looks.
22세의 그녀는 친구들이 반이나 벌써 결혼을 했다고 말 했다. 그녀 역시 결혼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녀는
"너 뙈약볕에 일하면 얼굴에 기미끼고 죽은깨 생기고 얼굴흉해지니 절대 들에나가 일 하지말고 집안에서 집안일이나 하라는 부모의 강권에 의해 집에서 초어(가사)를 돕고 있다
The couples registered for their marriages and underwent medical checkups, running into other Vietnamese-Korean couples along the way.
그 커플들은 다른 베트남-한국 커플들이 걸어 왔던 똑 같은 길인 혼인신고를 하고 건강검진을 받았읍니다
The younger Mr. Kim wrote a letter in Korean to his bride ? trying to allay the anxieties he saw on her face, promising to protect her and surmount the inevitable problems ? but found no way to relay its meaning. The couples bought Korean and Vietnamese dictionaries, pointing to words or using broken English.
나이가 더 젊은 김씨는 한국남자와의 결혼에 대해 불한해 하는 그녀의 걱정을 달래기 위해 한국에서 신부가 될 여자에게 나는 영원이 당신을 지켜 줄 것이며 부딪처야 할 문제도 있겠지만 우리의 인생은 되돌릴 길이 없듯이(의미가 퇴색되서는 않된다)당신과 나의 만남은 운명이다 식의 편지를 썼다
The In-Laws
사위
About 40 hours after landing here in Hanoi, the Korean men married their Vietnamese brides in a double ceremony. The brides’ relatives waited at a large restaurant here with expectant looks.
이곳 하노이에 도착한수 약 40시간 동안에 한국 남자들은 베트남 여성과 두번 결혼식을 올렸다. 처갓집 친척들이 부푼 가슴을 앉고 큰 식당에서 신랑이 우뚝케 생겼는지 보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Today is the union not only of two people, but of two countries,” said Ms. Vien’s father, To Minh Seu, 55. “Vietnam and Korea share many similarities. We are both Confucian societies.”
"오늘이 단순이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한베트남이 만나는 날 입니다"라고 비엔양의 아버지 투 민 수씨(55세)가 말 했다. 베트남과 한국은 많은 공통점이 있는 나라 입니다. 두나라가 모두 유교 국가 잖아요"
Standing next to her daughter and her new son-in-law, Ms. Thuy’s mother, Nguyen Thi Nguyet, 56, said: “This is a poor country, but conditions are much better in Korea. I hope my daughter will have a better life there.”
딸과 사위 곁에 서 있던 뚜이양의 엄마, 느구엔 티 느구엤씨(56세)는 " 베트남은 지지리도 가난한 나라 입니다만 조건이야 한국이 훨씬 좋은 나라 이지요" 나는 딸아가 한국에서 더 좋은 삶을 살가 가기를 바래요"
But Ms. Thuy’s father, Bui Van Vui, 52, was displeased that his daughter was marrying a man just one year younger than he was. The night before, he had telephoned Mr. Ahn to complain about the age gap between his daughter and Mr. Kim.
그러나 뜨이양의 아버지 뷔 반 부이씨(52세)는 사위와 장인이 단 한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결혼을 못 마땅해 했다. 그 전날 그는 딸과 사위의 나이 차에 대하여 불만을 터뜨리며 안씨와 통화를 했다
“I’m still very worried because of the age gap,” he said as his son-in-law listened to Mr. Ahn’s interpretation. “I’m slightly relieved now that I see my son-in-law for the first time. But I can’t stop worrying.”
"나는 아직도 나이 차이가 너무나 걱정이 많아요"라고 안씨의 통역을 통해 사위가 될 사람에게 말 했다. "나는 첫 만남에서 사위 될 사람을 보고 조금은 안심이 갔어요. 그러나 나는 마음이 여전이 불안해요"
“Don’t worry, don’t worry about a thing,” Mr. Kim said.
" 장인 어른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김씨가 말 했다
Still, the father looked grim throughout the ceremony.
결혼식 내내 그녀의 아버지는 울것만 같았다
“Let’s tell him about the compensation,” Mr. Kim told Mr. Ahn, referring to the $100 he would send every month.
"늙은 놈이 어린 베트남 신부를 대리고 가는 죄값으로 매월 100달라를 처갓집에 송금해 주겠노라고 통역을 해 달라고 안씨에게 부탁했다
“Later, later,” Mr. Ahn said.
"나중에, 나중에 말 해요. 미리 돈 부처 주겠다고 하면 않되요"라고 안씨가 말 했다
As he left the restaurant after the ceremony, the father turned around at the entrance to take a final look at his daughter. He pressed two fingers against his lips and kissed her goodbye.
결혼식이 모두 끝나고 식당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자, 신부의 아버지는 한국으로 떠나는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입구로 발길을 돌렸다. 아버지는 딸의 입술을 두 손까락으로 꾹 누르며 한국가서 잘 살으라는 이별의 키스를 했다
Later, Ms. Thuy said: “I was my father’s favorite. He really adores me and is worried.”
She, too, was worried.
나중에 쯔이씨는 "나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가장 존형해요" 아빠는 정말 나를 너무 사랑했으니 당연이 걱정이 되겠지요. 그녀 또한 걱정을 했다
“I know Korea only from television, but it must be very, very different from reality. I don’t know whether my new family will like me, and I don’t know how I’ll adapt. I’m overwhelmed with worries.”
"내가 아는 것은 탤레비젼에서 본 것 뿐이니 현실은 틀림없이 아우 아주 다르겠지요. 나는 한국의 가족들이 나를 좋아 할지 어떻게 어뎁프트(적응하다)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온통 걱정 뿐 이에요
A New Chapter Begins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Two days later, it was time for the Korean men to return home, with their wives staying behind to complete the paperwork to join them.
이틀 뒤, 결혼생활을 함께하는대 필요한 서류준비를 끝낼 신부를 베트남에 남겨두고 한국남자들은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At the airport here, Ms. Thuy announced that she had something to tell her husband and asked Mr. Ahn to interpret.
이곳 공항에서 뚜이씨는 남편에게 할 말이 있다고 안씨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Please extend my greetings to your mother and children,” she said.
Mr. Kim reached out for a handshake, but the brokers pressed him to give his wife a hug.
"당신의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할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그녀가 말 했다. 김씨가 악수를 하려고하자, 부로커가 신부를 확 안아주라고 한국남자를 잡아 당겼다
“Don’t worry about me,” she said. “I’ll study Korean very hard, and by the time you see me I’ll be good at it. We had only a short time together.
"여보 나에 대해서는 걱정 하지 마세요"라고 그녀가 말 했다. 나는 한국어 공부 열심이 할것이고, 언젠가 내가 한국어가 능통하다고 생각할 날이 오겠지요. 너무나 짧은 만남이 아쉬워요
But I felt affection between us and started to feel love for you. When you’re in Korea, please call me.”
하지만 나는 우리 사이에 애정을 느꼈고 당신에 대한 사랑이 싹 트기 시작 했어요. 당신 한국에 돌아 가면 꼭 나에게 전화 해 주세요"
“I’ll call you in two days,” he said.
"이틀뒤에 전화 할께"라고 그는 대답했다
The two women would leave Hanoi in three months, the same way half a dozen other Vietnamese brides, visas in hand, did on a recent night.
최근 밤에 결혼을 했던 수많은 베트남 여자들이 걸었던 길과 똑같이 손에 비자를 들고 이 여자들도 3달후 하노이를 떠나 한국으로 갈 것 입니다
he extended families of these brides had come from the countryside to bid them farewell, some still wearing car sickness patches behind their ears for the long drive here.
그는 오랫동안 차를 타고 오느라고 차 멀미 패치를 여전이 붙이고 있는 베트남 가족, 한국의 사위를 배웅하느라고 시골에서 올라온 처갓집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Many, it seemed, were visiting the airport for the first time. Some kept riding an escalator up and down, their faces showing the thrill of a new experience.
많은 사람들이 공항을 처음 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위 아래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그것 참 요상하다는 얼굴 표정이 력력했다
Then, with the boarding time approaching, they clustered in front of a window looking into the immigration office, noses pressed against the glass, and waved at the brides as they were stamped out of Vietnam and went off to catch the red-eye to South Korea.
그런 다음 신랑이 비행기를 타야 할 보딩 타임이 다가 오자, 그들은 유리에 코를 드리 밀고출국 수속을 볼려고 앞으로 몰려 나왔고 신랑이 베트남 출국 도장을 받고 한국행 레드-아이(야간비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신부에게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