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환 추기경의 근심, 백성의 걱정
(一) 오마이뉴스 [손석준 칼럼]
<2004년 2월 2일자 “추기경의 근심, 백성의 걱정” 과연 이 나라의 주된 흐름이
“반미, 친북”인가> 요약
(1) 추기경의 근심 백성의 걱정. <조선일보> 2004년 1월 31일자 사설의 제목이 다. 안타까운 일이다. 연로한 추기경이 “우리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 가 걱정” 하고 있어서다.
(2) 옳다. 김 추기경의 진단처럼 이 나라의 풍경은 기실 참담하다. 그런데 참으로 생게맹게한 일이다. 추기경의 근심은 엉뚱한데서 비롯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추기경은 ‘한 리서치’를 근거로 들며 “미국이 주적(主敵)이 됐다.”고 개탄했다. “군 장성에서부터 사병들 가운데도 반미, 친북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나라의 전체적 흐름이 반미, 친북으로 가는 것은 대단히 걱정스럽다.”고 강조 했다.
(3) 두루 알다시피 김 추기경은 원로가 드문 한국사회에서 노상 ‘원로’로 꼽혀왔 다.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김 추기경의 모습이 과대평가된 대목이 많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알면서도 침묵해왔다. 그 만큼 이 땅의 ‘영혼’이 가난해서였다. ‘낮은 데’로 임하는 종교인들이 적어서였다.
(4) 문제는 조선일보의 선동을 꾸짖어야 마땅할 ‘원로 종교인’이 되레 확대 재생산산하는 데 있다. 과연 이 나라의 주류가 ‘반미, 친북’인가. 아니다. 현실은 정 반대다. 여전히 이 땅의 주류는 ‘친미, 반북’이다.
(5) 명토 박아 두자. 김수환 추기경이 강조하는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라도 이 땅에서 미국의 불장난을 막아야한다. 반미운동 없이 ‘대등한 한미관계’나 ‘용미’ 는 한낱 말장난이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추기경의 말을 에멜무지로 넘길 수 없는 까닭이기도하다. 추기경에 대한 ‘거짓 예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겨레의 생존권이다.
(二) 2006년 7월 20일 혜화동 주교관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기자회견 내용 요약
이날 천주교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 ‘바르텔미 브뤼기에르’ 주교 추모 행사 차 내한한 프랑스 주교 및 신부들과 혜화동 어느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한 후, 이들을 배웅하고 주교관으로 돌아 온 김 추기경은 취재진과 특별회견을 했다.
(1) <강정구 교수의 발언 파문에 대해서>
강정구 교수가 말한 요지는 6,25 전쟁은 김일성이 일으킨 남침이었고, 6,25 당시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한 달 내에 통일이 됐을 것,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아쉽고, 이 때문에 미국이나, 맥아더가 원수다. 라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중 략) 강 교수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여과 없이 말한 것은 대한민국이 없어지기를 바랐고,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해 인민공화국을 세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기 때문일 겁니다.
대한민국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북한 인민공화국의 지배 하에 있었을 겁니다.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상상해 봅시다. 종교의 자유도 없고, 언론의 자유도 없고, 신체의 자유도 없을 겁니다. 많은 사람이 강제수용소에 갇혀서 숨도 쉬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정일의 지배 하에 살고 있을 겁니다. 대학 교수라는 지성인이 어떻게 자유가 없는 김정일의 독재체제하에 있지 못하는 것을 아쉬어하는지.
(2) <강 교수 논란에 대한 정부의 개입에 대해서>
강 교수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려고 할 때 대한민국의 헌법을 존중하고 지켜야하는 제대로 된 위정자라면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위정자가 이런 사람을 다스리는 검찰에 대해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인권을 보호 한다고, 견제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북한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인권이 무시되고, 짓밟히고, 감옥에 가고, 죽임까지도 당합니다. 이러한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하는 사람 들이 인민공화국이 안 된 것을 아쉬워하고, 대한민국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합니다. 청와대가 나서고, 장관이 나서는 현상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가.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현재 정말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 살고 있는지 간판 만 대한민국이고, 지배하는 사람들은 영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 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중략) 통일은 누구나 소중히 생각하고 누구나 염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남이나 북이나 모든 국민이 사람답 게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자유를 누리면서 살 수 있는 통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외치면서 한반도기를 흔들면 순간적으로 반짝 기뿔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뭐가 될지 모르는 자칫 잘못해서 모두가 김정일 체제하에서 살게 되는 그런 상태의 통일을 우리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이 통일이라면 우리는 모든 것을 다해서 막아야 합니다. (중략) 우리는 그동안 이른바 군사독재 아래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딛고 나름대로 인권과 정의 를 위해서 노력해왔습니다. 지금 현재 386세대로 불리는 지배세력만 민주화 에 기여한 것이 아님니다. 자화자찬 같지만 나 같은 늙은 사람도 나름대로 미력이나마 힘을 썼습니다. 지금 나서서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지난 시절 나름대로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것을 수구 보수로 몰고, 과거에 탄압했던 계층의 사람들로 분별없이 매도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정말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걱정 때문에 80이 넘은 노인 분들이 나서는 겁니다. 나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이런 말 오랫동안 참았습니다. 솔직히 그래서 다시 묻건대 어디로 나라를 끌고 갈 것인지.
(3) <현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 작업에 대한 의견>
과거사 청산이라는 것은 필요한데 그게 몇 사람 모여서 그냥 단순한 잣대로 그렇게 처리할 문제는 아님니다. 특히 친일 문제 같은 것은 우리가 36년간 일본통치하에 있던 그동안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속에서 살아온 그분들을 한 분 한 분 소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들이 친일이라고 말을 하지만 우리나라를 위해서 너무나 많은 일을 하셨던 분들입니다. 그 점도 참고하고, 전문가들이 깊이 연구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역사를 편찬해야 합니다. (중략) 저는 성경 말씀에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져야하지 않느냐는 바리새인에게 ‘너희들 중에서 죄 없는 사람이 돌을 던져라’고 하셨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들 가정의 아버지가 창씨개명을 안했거나, 학교 다니면서 신사참배 안한 사람이 있거든 이 분들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군대나 경찰의 계급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순경이라도 동포들을 정말로 괴롭힌 사람들 중 악질이었다면 밝혀야 할 것입니다.
(三) 김지하 시인의 추모 글
2009년 2월 20일자 조선일보 기사 “추기경님 가시 난 닷 다시 오소서”
에서 발취
그날 밤(1972년 봄) 마산교구청장 주교님 방에서 둘은 밤 새워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단된 이 나라에서 가톨릭까지 정부를 반대한다면 큰 혼란이 오지 않겠는가?”
*“현 정권은 역사상 최강입니다. 군, 재벌, 중산층, 미국과 일본의지지 등 막강합니다.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조국통일 역량을 구축해야 합니다. 북한의 소아병적 극좌정권 가지고 통일 논의가 가능하겠습니까? 역량구축의 방법은 정치훈련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니 현 정권은 우리의 스파링 파트너인 셈입니다.
쓰러질 염려는 없습니다.”
*“ 나는 촌사람일세. 그런데 자네는 분명 도시사람. 도시사람이 언제나 일을 저지르지. 하지만 뒷마무리는 꼭 우직한 촌사람이 하던군.”
이것이 첫 만남이다. 결혼 주례도 맡아 주셨다. 아들 원보가 커서 어느 날 원보가
추기경님께 물었다.
*“하느님은 어디 계세요?”
*“여기”
임이 손으로 가르킨 곳은 하늘이 아니라 가슴이었다.
(四) 추도문(追悼文)
장례 미사 당일 방송을 직접 듣고, 느낀 감상이다.
추도문은 고인의 생전의 업적을 추모하고, 기리고, 명복을 기원하는 글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위의 글에서도 알 수 있는 것 같이 겨레를 걱정하고 나라를 걱정해서 많은 일을 하시고, 그 업적이 엄존한다. 그런데 장례식 미사에서 여러 사람이 추도사를 했는데, 국무총리가 대독한 대통령의 추도사에 조차도 겨레 걱정, 나라 걱정에 관련된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오로지 약한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이웃을 위한 일, 성직자로서 한 일, 추기경의 가난한 삶, 조건 없이 베푼 사랑을 기리기 위해 그 많은 조문객이 모였다는 말과, 기나긴 조문객의 행열은 가진 자의 오만과 힘 있는 자의 교만을 꾸짖고 있다는 말 뿐이다.
추도사는 그 추도사를 쓴 사람의 품격을 알 수 있는 글이다. 글이란 눈높이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고인은 진심을 알아줄 때 명복을 받을 것이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중에는 전, 현직 대통령은 포함 되지 않을는지 궁금하다.
(五) 숫자로 본 장례식 모습
0; 화환, 조의금 전무, 영정과 국민훈장 뿐.
1; 관에 넣은 부장품은 나무 목주 1개.
2; 기증한 각막.
4.6; 묘지 면적.4.6㎡(가로, 164cm, 세로, 281cm)
19.2; 20일 10시, 지상파 3사 시청률, 19.2%
21; 서울 주재 외국 대사관 96개 중, 21개국 대사 조문.
217; 장례위원회가 발급한 취재용 프레스카드의 수.
501; 물 사용량, 501t, 하루 160t~170t.
800; 평신도 안내원 하루 평균 수. (신부, 신학생 1300명별도)
2000: 조문객 대기 행열의 길이, 2000m.
20만; 조문객에 나누어준 “근조”리봉의 수.
38만 7420; 조문객의 총 수.(한 줄로 세우면 300km)
<2월 21일, naver. com 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