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족한 탓일 게다. 친근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좀 어색하게 느껴지는 교회도 있다. 이것은 건물에 기인하기는 것이기도 하고, 또 사람이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재작년 한 교회 여전도회 헌신예배 설교를 갔을 때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단도 가파르고 강대상에 오르는 길도 장애인인 나에겐 한 없이 높게 보였다. 말씀을 전할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그날 설교는 시쳇말로 죽 쑤고 말았다. 환경이 내 약한 자아를 자극한 탓이다.
오늘 간 원호성결교회는 이와는 반대였다. 몇 번 가 본 적이 있었는데, 모든 게 나에게 맞았다. 2층으로 가는 길은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이용할 수 있었고, 강대상을 올라가는 계단도 너무나 친근할 정도로 낮았다. 나는 김시영 목사님으로부터 선교 헌신예배 설교 부탁을 받고 나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평소 한 번 서 봤으면 내심 바랐던 강단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신선한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었다. 말씀 전하는 자가 기분이 좋으면 듣는 사람도 은혜 받기 마련이다.
오후 2시 헌신 예배 설교, 김천에서 45분 전에 차를 그곳으로 몰았다. 정확하게 15분 전에 도착. 사모님이 넓은 마당까지 나와 맞아 주었다. 원호교회 카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에겐 탐나는 공간이다. 이곳을 그냥 지나친다면 싸전 앞을 지나는 참새 형상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카페 담당 집사님이 직접 내린 원두커피를 잠시나마 음미하며 마셔야 했다. 이방인의 마음이 현지에 적응하듯 안정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움이란 늘 이런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넓은 마당에 잘 가꿔진 정원, 거기에 그림 같은 부속 건물과 본당. 구미가 50만을 헤아리는 인구를 갖고 있는 도시니까 그 외곽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 원호교회를 전원 교회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으리라. 5분 전에 본당에 들어갔다. 청년들이 찬양을 연습하고 있었다. 아직 제대로 자리가 정돈되지 않았는데도 생동하는 교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숫자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원호교회에 실례가 되는 일이겠지만 할 수 없다. 대예배 참석자 중 점심 식사를 하지 않고 그냥 간 성도들이 많을 텐데도 100 여 명의 성도가 자리에 앉아 예배를 기다렸다. 그래도 내겐 교회가 꽉 찬 듯 보였다.
김 목사님이 강대상으로 나를 안내했다. 잠시 묵상 기도를 하고 나니 예배가 시작됨을 알렸다. 오늘의 사회는 선교부장 김 영 집사님이었다. 268장 찬송을 부르고 한 부원의 기도 뒤, 말씀 봉독이 있었다. 여호수아 14장 6절에서 15절까지. 우리가 잘 아는 본문이다. 가나안 땅을 분배함에 있어서 유다지파을 대표하는 갈렙이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하는 대목이다. 제목을 '영원한 조연'이라고 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 중 약속의 땅 가나안에 입성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인데, 이 두 사람을 놓고 볼 때 여호수아에 비해 갈렙은 조연으로 만족하며 겸손한 자세를 취해 여타 지파에 선한 영향을 끼쳤다.
원호교회 학생회의 찬양도 은혜로웠다. 10 여 명의 학생들이 앞에 나와 일렬로 서서 찬양을 할 때는 마치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것 같은, 아니 작은 조약돌이 돌돌돌 구르는 것 같은 청순함이 있었다. 교회에 주일학교 및 중고등부 학생들이 점점 감쇠(減衰)하고 있는 현실에서 찬양하고 있는 그들이 보석과도 같이 느껴졌다. 원호교회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한 뒤, 말에 자신이 없을 때 가끔 써 먹는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 얘기를 꺼냈다. 글은 수려하기 그지없는데, 공개 석상에서 말은 한 없이 어렵게 하는 작가 이문구, 그도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이다.
짧은 시간 말씀을 전한 것 같은데, 30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광고를 하는 김시영 목사님이 나에 대한 소개를 다소 길게 했다. 그 소개엔 부족한 사람을 찬사의 내용으로 채워 낯을 붉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까움의 표시, 애정의 또 다른 표현임을 아는 나는 눈을 지긋이 감고 받아들였다. 원호성결교회 선교 헌신예배가 끝났다. 강대상을 내려와 뒤쪽 입구로 나가면서 성도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마음이 황홀했다. 그 때 김 목사님이 나를 예배당 입구에 세웠다.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문을 나서는 성도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서로 감사한 마음을 나누었다. 나도 덩달아 악수를 나누는 복을 누렸다.
원호교회는 아름다운 전원 교회이다. 주위엔 아파트가 들어서서 상주인구의 밀집도도 높다. 이젠 300 여 석의 예배당을 채우는 일만 남았다.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예배당이 채워지는 것은 시간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목사님과 피스 메이커 사모님 그리고 든든한 장로님들이 버티고 있는 원호교회는 부흥의 필요충분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셈이 된다. 나는 설교 말미에 기도를 하면서 구미뿐 아니라 대구 등 먼 곳으로부터도 새 성도가 원호교회로 몰려와서 말씀에 은혜 받고 가기를 바랐다. 한 가정에 승용차 두 대가 일반화되어 가는 요즘 어느 정도의 거리는 출석에 그렇게 장애가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우린 사택으로 이동해서 차를 마시면서 짧지 않은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대화의 주제는 그리스도이고 교회이고 전도이고 목회이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목회에 경륜은 빼 놓을 수 없는 자산이다. 김시영 목사님의 과거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선물도 못 사 갔는데, 교회를 나설 때 사모님이 좋은 설 선물을 차에 실어 주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천으로 차를 쌩쌩 달렸다.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사랑을 깊이 음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