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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호 시집 , <금왕을 찾아가며>(가제), 푸른사상, 2018년 8월
무심천의 시학 맹문재 1. 전병호 시인의 시세계에서 ‘무심천’은 작품의 토대이자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이상향이다. 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적 존재로서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리하여 무심천은 “청원군 낭성면 추정리와 가덕면 한계리, 내암리 일대에서 물줄기가 시작되어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가덕면 서부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청주 시가지 중심부를 지나 청원군 강서면과 북일면의 경계를 이루면서 까치내에서 금강의 지류인 미호천과 합류하”는 하천이라는 영역을 넘어 시인의 근거지가 된다. 시인이 무심천에 동화하는 것은 실존의식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바람직한 삶의 가치를 인식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세계 인식에 의해 무심천은 단순한 공간(space)에서 친밀한 장소(place)로 전환된다.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이다. 무차별적인 공간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공간을 더 잘 알게 되고 공간에 가치를 부여하게 됨에 따라 공간은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의 무심천은 충북 음성군 금왕읍,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충북 음성군 대소면 태생리, 충북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 등으로 확대된다. 강원도 설악산의 대청봉이며 철원의 도피안사, 독도, 전남 장흥의 회령포, 제주도 애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적암리 등으로도 확대된다.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장소가 되는 것이다. 무심천 둑길 멀리 내 슬픈 젊은 날의 뒷모습이 보인다 바지 주머니에 두 손 찔러넣은 채 둑길을 따라 흘러가는 냇물은 정말 바다에 가 닿을 수 있을까 떠나가 길을 잃을 때마다 다시 돌아와 걸어보는 무심천 둑길 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본다 지친 내가 돌아와 남모르게 눈물 떨구고 간 자리마다 풀꽃 한 무더기씩 피어나고 그 풀꽃 사이로 멈춘 듯 흘러가는 무심천 마침내 제 스스로 깊어지면서 꽃물 곱게 드는 것을 하늘과 맞닿은 하류쯤 강을 만나 바다로 흐르는 것일까 갈대 흐드러진 모래톱 위로 날개 흰 새 몇 마리 날아오른다 ―「무심천」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무심천 둑길 멀리” 걸어가는 자신의 “슬픈 젊은 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바지 주머니에 두 손 찔러넣은 채/둑길을 따라 흘러가는 냇물”이 본인과 닮았음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정말 바다에 가 닿을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그 뜻을 이룰 수 없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화자가 이루고자 한 꿈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얻으려고 한 것들로 볼 수 있지만, 객지에 동화하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자신이 살아가는 터전에 뿌리 내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떠나가 길을 잃을 때”가 많았다는 토로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시 돌아와 걸어보는 무심천 둑길/오늘에야 비로소 나는 본다”라고 노래한다. “지친 내가 돌아와/남모르게 눈물 떨구고 간 자리마다/풀꽃 한 무더기씩 피어나”는 세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와 같이 “무심천”은 지치고 힘든 화자를 어머니의 품처럼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화자는 새로운 희망이 피어나는 기운을 느낀다. 그렇지만 “무심천”은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무심하게 흐른다. 삶의 역정을 품고 그저 “멈춘 듯 흘러”갈 뿐이다. “제 스스로 깊어지면서/꽃물 곱게” 들이면서 “강을 만나 바다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심천”은 화자와 고향 사람들에게 삶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 길이 34.5㎞이나 되고 유역 면적이 청주시 전체 면적의 절반에 이르기 때문에 삶의 터전을 형성하는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청주 사람은 무심천 물을 마시고 무심천 물로 농사를 지으며 삶을 영위하였다. (중략) 무심천은 예나 지금이나 무심한 듯 변함없이 흐르며 청주의 젖줄 역할을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화자는 그 “무심천”을 따라가며 자신의 가족이며 이웃이며 역사며 운명을 품는 것이다. 2. 내가 너만 할 때는 쌀 두 말 지고도 거뜬히 넘었단다. 쌀 한 말 등짐에도 숨이 차 주저앉은 고갯마루에서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들려주시던 말씀 아버지도 조용히 숨을 몰아쉬고 계셨다. 장리쌀 얻어오는 할아버지 고향 무성리를 바라보며 진한 시장기를 바람에 실려보냈다. 오늘 내 어린 것을 데리고 상봉고개에 올랐다. 나 어릴 때는 쌀 한 말 지고도 거뜬히 넘었단다. 숨을 몰아쉬는 어린 것의 손을 놓으면서 처음으로 강한 아버지가 되어 들려준 말 아들은 알게 될까 내가 애써 가르쳐주려는 배고픔의 의미를. 고갯마루 바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 굴참나무 가지 아래 고갯길로 그 옛날 아버지가 산을 지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내가 올라오고 내 뒤를 따라 내 어린 것이 숨을 몰아쉬며 산을 지고 오르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와 이마의 땀을 씻어주고 있다. ―「상봉고개에서」 전문 작품의 화자가 삶의 터전으로 노래하는 무심천은 “할아버지 고향 무성리”에 있는 “상봉고개”로 확대된다. 그 고개에서 “내가 너만 할 때는 쌀 두 말 지고도 거뜬히 넘었단다”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다. 그런데 당신의 반밖에 안 되는 “쌀 한 말 등짐에도 숨이 차 주저앉은” 아들에게 힘을 내라고 하시는 “아버지도 조용히 숨을 몰아쉬고 계”신다. 당신이라고 힘들지 않을 수 없기에 정신력으로 감당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장리쌀 얻어오는 할아버지 고향 무성리를 바라보며/진한 시장기를 바람에 실려보”낸다.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자신의 슬픔이며 안타까움이며 가난을 날려보내는 것이다. 화자는 “아버지”를 대신해 “오늘 내 어린 것을 데리고 상봉고개”에 오른다. “나 어릴 때는 쌀 한 말 지고도 거뜬히 넘었단다”라는 말을 “그 옛날 아버지”처럼 자식에게 전한다. “숨을 몰아쉬는 어린 것의 손을 놓으면서/처음으로 강한 아버지가 되어 들려”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들은 알게 될까/내가 애써 가르쳐주려는 배고픔의 의미를”이라고 토로하듯이 화자는 자신의 말의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만큼 살아가는 환경이 크게 변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국가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개개인의 삶은 풍요로워졌고, 노동시장이 1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바뀌면서 사회의 문화며 정신 가치가 크게 바뀐 것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가난했던 자신의 시간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배고픔”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간인 것은 물론 앞으로의 삶에서 나침반이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갯마루 바위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굴참나무 가지 아래 고갯길로/그 옛날 아버지가 산을 지고 올라오는 것”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내가 올라오고/내 뒤를 따라 내 어린 것이/숨을 몰아쉬며 산을 지고 오르는 것”도 바라본다. 결국 무심천에서 온몸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삶과 함께하려는 것이다. 1 막냇동생마저 입대하자 텅 비어 더 큰 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는 바닷가 고향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일 년이면 한두 번 명절 때라도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누구든지 하나는 집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끝내 무슨 생각 하셨을까 둘째는 수도원으로 간 뒤 소식 끊기고 나도 직장 때문에 객지로만 떠돈 지 어언 십여 년 문득 못 견디게 그리워져 달려가도 낯익은 얼굴 하나 만날 수 없는 고향에는 낯선 사람들이 몰려와서 길을 내고 새 집을 짓고 살고 있다. 2 교회 옆에 조그만 방 하나 얻어 당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는 어머니는 지금 어머니의 고향에 계시지만 아침저녁으로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허허하하호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행복을 은수저로 한 숟가락씩 떠넣고 떠넣어주던 우리의 고향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휴가를 나와도 머물 곳이 없어 어머니께 달려갔다가 다시 나에게 달려온 막내의 기진한 잠 속에도 우리의 고향은 남아 있지 않았다. ―「민들레 씨」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에게 “고향”은 존재하지만 낯설기만 하다. “어머니”가 “고향”을 지키고 있지만 가족이 해체된 상황이어서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막냇동생마저 입대하자 텅 비어 더 큰 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는 바닷가 고향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또한 “일 년이면 한두 번 명절 때라도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고”, “누구든지 하나는 집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어머니”는 남편이 세상을 뜨고 자식들이 곁을 떠난 집에서 사는 것을 외로워했다. “어머니는 끝내 무슨 생각하셨”는지 이사를 했다. “교회 옆에 조그만 방 하나 얻어 당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려는 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식구들이 없는 집에서 살아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지금 어머니의 고향에 계시지만 아침저녁으로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허허하하호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행복을 은수저로 한 숟가락씩 떠넣고 떠넣어주던” “고향은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둘째는 수도원으로 간 뒤 소식 끊기고 나도 직장 때문에 객지로만 떠돈 지 어언 십여 년 문득 못 견디게 그리워져 달려가도 낯익은 얼굴 하나 만날 수 없”다. “휴가를 나와도 머물 곳이 없어 어머니께 달려갔다가 다시 나에게 달려온 막내의 기진한 잠 속에도” “고향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이 비 그치면 봄이 성큼 다가오겠지만 차마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한다. 이층 창문에서 내려다보는 나무들은 차가운 비에도 연둣빛 잎을 꺼내고 있지만 나는 애써 외면해야 한다. 지난주보다 더 짙어진 네 눈가의 그림자. 어쩌면 네가 가고 난 뒤 나 혼자 맞게 될지도 모를 봄이 서럽게 피어나려고 한다. 너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할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창 밖에 내리는 봄비만 바라본다. 차라리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생동 요양원에서」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충청북도 음성군에 소재하는 “생동 요양원”에서 지내는 지인을 찾아가 “이 비 그치면 봄이 성큼 다가오겠지만/차마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지난주보다 더 짙어진 네 눈가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이층 창문에서 내려다보는 나무들은/차가운 비에도/연둣빛 잎을 꺼내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너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어떻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할지/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창 밖에 내리는 봄비만 바라본다”. “차라리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하고 희망한다. 위의 작품에서 “너”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가족이거나 친척이거나 친구 등 화자와 가까운 인연의 대상인 것은 확실하다. 객지에서 일시적으로 만나거나 이해관계로 만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해온 지인인 것이다. 따라서 “어쩌면 네가 가고 난 뒤/나 혼자 맞게 될지도 모를 봄이/서럽게 피어나려고 한다”는 화자의 슬픔은 깊기만 하다. 3. 잊지 말아라 쌍굴다리 콘크리트 벽에 파인 총알 자국을 흰 페인트로 그린 동그라미가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이를 악물고 빛난다 죄 없이 쓰러진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비명 잊지 말아라 세월이 제아무리 흐른다 해도 쌍굴다리 하늘에 그 누구도 지우지 못하게 흰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하느님도 눈물 닦는다 핼쑥한 초승달 ―「노근리의 달」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노근리” 사건을 “잊지 말아라”라고 다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쌍굴다리/콘크리트 벽에 파인/총알 자국”에 다가가 그날의 참사를 떠올린다. 또한 “죄 없이 쓰러진/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비명”을 회피하지 않고 듣는다. “세월이 제아무리 흐른다 해도” 비극적인 역사를 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동안 일어났다. 1950년 7월 23일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마을로 들어와 주민들에게 피난하라고 소개령을 내렸다. 대전이 북한군에 의해 함락되어 영동읍 부근에서 미군과의 전투가 임박한 때였다. 주곡리와 임계리 주민들은 7월 26일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까지 미군에 의해 강제로 인솔되어 갔다. 그곳에서 미군은 소지품 검사를 한 뒤 피난민들을 경부선 철로 위에 올려놓고 전투기로 폭탄을 투하하고 사격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살기 위해 도망치는 양민들을 쌍굴다리 안에 몰아넣고 7월 29일까지 총을 난사했다. 살해된 피난민은 300∼400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 중의 83%가 부녀자와 노약자였다. 미군은 교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인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것이다. 생존자의 증언, 참전 미군의 증언,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 결과 등으로 볼 때 노근리 사건은 미국 상부의 지시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학살로 규정할 수 있다. 미국은 노근리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제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며, 학살에 참여한 미군 역시 전쟁 범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노근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료를 더욱 발굴하는 것은 물론 미국 측 관련 생존자들을 찾아내어 사건의 실체를 보다 확실하게 규명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의 국가 책임 인정과 그 해제 방법을 국제법적인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쌍굴다리 하늘에/그 누구도 지우지 못하게 흰 동그라미를/그리다가/하느님도/눈물 닦는다”라는 화자의 눈물은 의미가 크다. 노근리 사건을 비롯해 한국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의 부당함을 환기시키면서 해결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수령 오백년이 넘는 감우리 느티나무 우듬지엔 6.25 때 인민군 총탄에 깨진 쇠종이 아직도 걸려 있다. 낙엽이 다 진 늦가을날 처음 쇠종을 보았을 때 바람결에 머언 따발총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 세월 녹슬고 삭았지만 쇠종의 깨진 틈으로는 원혼의 눈이 독기를 새파랗게 내뿜고 있었다. ―「감우리 마을의 종」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수령 오백년이 넘는 감우리 느티나무 우듬지엔 6.25 때 인민군 총탄에 깨진 쇠종이 아직도 걸려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머언 따발총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는다. “오랜 세월 녹슬고 삭았지만 쇠종의 깨진 틈으로는 원혼의 눈이 독기를 새파랗게 내뿜고 있”는 것도 바라본다. 노근리 양민의 학살 사건과 마찬가지로 “감우리 마을”의 상흔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감우리”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에 있는 마을인데, 대한민국 전체가 그러했듯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군경은 보도연맹원들이 북한군을 도와 정부를 공격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최소 5,000명 이상 처형했다. 또한 군경은 청주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800여 명의 정치범을 처형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인권 유린의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군은 부역 혐의자를 비롯한 일반 민간인들을 아무런 재판 절차나 심문 없이 처형했다. 북한군과 좌익에 의한 민간인들 처형도 이루어졌다. “감우리”를 비롯해 청원군 오창면,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 분터골, 화당리 화당다리, 남성면 도장골, 가덕면 피반령, 영동군 매곡면과 추풍령면, 영동군 노근리, 양강면 지촌리와 구강리, 옥천군 청산면 인정리, 단양군 단양읍 노동리와 마조리, 영춘면 상2리 곡계굴, 청원군 부용면, 청주 동공원과 무심천 서문다리, 청주형무소 등에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노근리 사건 유족들의 피해 배상 청원 운동만 있을 뿐 다른 사건들은 함몰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전쟁 이후 이념 대립이나 감정 대립이 심해 연대가 쉽지 않겠지만 역사의식을 가지고 피해 사실의 규명에 나서야 한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화자가 “감우리”를 찾아간 것은 주목된다. 자신의 고향을 역사적인 장소로, 즉 장소의 혼(genius loci)으로 살려낸 것이다. “창조적인 참여는 항상 새로운 역사적인 상황들 아래에서 근원적인 의미들을 구체화하는 것”인데, 화자는 고향의 정체성을 단순히 복사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의식으로 회복한 것이다. 4. 1 다가서면 산은 물러앉으며 숨겼던 길을 내준다 십일월의 마지막 날 버스에 몸을 싣고 흔들리면서 삶은 갈수록 막막했다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길 떠난 나는 왜 지금 금왕을 가고 있는가 쓰러지면 스스로 일으켜 세우던 말 “내일은 행복할 거야” 이젠 믿을 수 없고 실의에 차 찾아가는 폐광 마을 길은 몹시 흔들렸다. 2 일확천금을 꿈꾸며 구름 끓듯 모여든 사내들 삼삼오오 산야를 헤매다가 끝내는 마지막으로 혼자 찾아드는 폐광 막장 거듭 내려찍는 곡괭이 날 끝으로 단단한 절망만 확인할 뿐이어도 사내들은 떠나지 못한다 떠나간 사내에게도 꿈은 언제까지나 꿈으로 남아서 불면의 밤마다 손짓하고 있다. 3 금왕이여 빛나라 십일월의 마지막 날 다 저녁 실의에 차 찾아가는 사내의 꿈은 폐광인가 휴광인가 다시 한 번 막장의 두터운 절망을 깨어내면 한 맥을 찾을 수 있는가 찾을 수 있다면 더 큰 맥을 쫓아 다시 막장을 열다가 결국은 빈 손되어 돌아서는 금왕이여 금왕이여 애시당초 행복이란 안일의 다른 이름이었다 갈수록 삶은 회한만 깊어져서 옛 생활이 차라리 안빈했노라고 돌이키고 싶어할 때에야 비수로도 끊지 못했던 욕망에서 스스로 풀려날 것인가 금왕이여 금왕이여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사내의 꿈 저 거친 산야에 또다시 홀로 서게 하는가. ―「금왕(金旺)을 찾아가며」 전문 “일확천금을 꿈꾸며/구름 끓듯 모여든 사내들/삼삼오오 산야를 헤매다가 끝내는/마지막으로 혼자 찾아드는 폐광 막장”의 모습은 쓸쓸하고도 슬프다.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은 “거듭 내려찍는 곡괭이 날 끝으로 단단한/절망만 확인할 뿐이어도” “떠나지 못”한다. “떠나간 사내에게도/꿈은 언제까지나 꿈으로 남아서/불면의 밤마다 손짓하고 있”을 만큼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은 힘이 세다. 한때는 용계리에 있는 무극광산에서 금 채굴이 성행했으나 현재는 중단되어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의 화자 역시 “십일월의 마지막 날” “폐광 마을”인 “금왕”을 찾아가고 있다.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길 떠난 나는/왜 지금 금왕을 가고 있는가”라고 자조하며 간다. “쓰러지면 스스로 일으켜 세우던 말/“내일은 행복할 거야”/이젠 믿을 수 없”을 만큼 “실의에 차” 있다. 따라서 “길은 몹시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산은 물러앉으며/숨겼던 길을 내준다”. 그리하여 화자는 “금왕이여 빛나라”라고 기원한다. 비록 “십일월의 마지막 날 다 저녁/실의에 차 찾아가는 사내의 꿈”이 “폐광인가 휴광인가”라고 절망하고 있지만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막장의 두터운 절망을 깨어내면/한 맥을 찾을 수 있는가”라고 의심하고 있지만 기대해보는 것이다. “찾을 수 있다면/더 큰 맥을 쫓아 다시 막장을 열다가/결국은 빈 손 되어 돌아서”겠고, “애시당초 행복이란 안일의 다른 이름이었다”고 말하면서도, “비수로도 끊지 못했던 욕망에서/스스로 풀려”나지 않는 것이다.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사내의 꿈/저 거친 산야에 또다시 홀로 서”는 화자의 귀향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기에 이루어졌다. “갈수록 삶은 회한만 깊어”지기에 배수진을 친 것이다. 따라서 “금왕”은 절박한 삶의 조건에 놓인 화자에게 마지막 출구이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새로운 출발지인 것이다. 동으로 흘러내리면 낙강 서로 흘러내리면 금강 한날한시에 이곳에 왔다가 등 돌리고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로 헤어져 떠나간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우리 만날까. 만나고 헤어짐의 의미를 이곳에 와서 다시 깨달으니 개울은 쉬임없이 흘러내리고 눈물은 기어이 강을 만드는 것을. 미움도 그리움도 산이 되어 쌓여오면 바다에서 다시 만나리. 그때 그리움만 가지고 하늘에 올라 구름 속에 머물다가 이른 어느 봄날 우리 어떤 몸짓으로 내려올까. ―「빗방울의 노래」 전문 “동으로 흘러내리면 낙강/서로 흘러내리면 금강/한날한시에 이곳에 왔다가/등 돌리고/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로 헤어져 떠나”가는 것이 “빗방울”의 운명이다. “빗방울”이 내리는 장소는 작품 화자의 생애와 관련이 깊은 곳으로, 즉 무심천을 중심으로 한 고향이다. 화자의 분신인 “빗방울”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우리 만날까” 하고 미래의 운명을 묻는다. 불안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그날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만나고 헤어짐의 의미를/이곳에 와서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개울은 쉬임없이 흘러내리고/눈물은 기어이 강을 만드는 것을” 발견하고, “미움도 그리움도 산이 되어 쌓여오면/바다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화자의 이와 같은 태도는 그동안 무장소(placeless)에서 주체성을 상실하고 소외당해온 자신을 추스르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요구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먹잇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느라 뿌리가 잘리고 그림자의 신세로 추락한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인간의 탐욕을 이용한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이기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화자는 무심천에서 그 근본적인 성찰과 극복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화자에게 무심천은 가난과 슬픔과 외로움과 역사의 상흔이 배인 장소이다. 그렇지만 화자는 그곳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자기 존재와 세계 인식의 토대로 삼는다. 장소애와 장소혼을 부여해 고통과 절망과 아픔을 그리움과 기다림과 애정으로 껴안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무심천에서 원초적인 충만감과 안전지대로 삼을 수 있는 주체성을 획득한다. 이원화된 세계에 기울었던 질서를 회복하고 연대의 가치를 자각하며 역사적 존재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꽃이 피었다가 지는/그 시간의 한 점”(「배꽃 마을」)이 되고자 하는 화자의 이상향은 성숙하면서도 숭고하다. 孟文在|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