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10)
예배란 무엇인가?① : 바른 예배란 무엇인가?
이번 강의에서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공부하고자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예배가 개혁되어야 한다. 개혁자들은 교회를 성경 말씀에 따라서 개혁하려고 할 때 무엇보다 먼저 교회 예배의 개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예배 개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잘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예배를 행할 것인가 하는 것에 깊은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교회 개혁은 예배의 개혁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배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중심의 성격이 회복하도록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구속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삼위 하나님께 그 영혼이 무릎을 꿇어 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예배는 상당히 인간 중심적인 특성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는 이들이나, 예배를 여흥거리로 바꾸어 그런 예배를 즐기려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예배를 제대로 드린다고 하는 이들도 그 예배를 정성껏 최선을 다해 드려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는가 하는 것에 많은 신경을 쓴다. 그래서 예배 후 많은 분들이 설교를 통해 은혜 받았다, 못 받았다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인사도 은혜 많이 받았느냐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예배는 우리네 인간 중심적이다. 물론 예배에서 인간들이, 즉 구속받은 사람들이 경배하는 것이므로 인간적인 요소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따라서 비인간적 예배와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인 것이다. 따라서 예배를 통해서 내가 어떤 은혜를 받는가, 내가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따라서 예배를 통해서 변화하는 모습이 강조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는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그 경배를 받으시는가 하는 것이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들의 일차적 관심은 주께서 과연 우리가 드리는 경배를 받으시는가 하는 것이다. 주께서 받지 아니하시면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드린다고 해도 그것은 무의미한 일일 뿐이다. 또한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고 감동을 주는 예배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의미 없는 일일뿐인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의 경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예배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미가선지자와 같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미 6:6)라고 물어봐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어떤 이들은 우리의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지고(至高)한 것을 다 주께 드리면 주께서 받으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지고한 것을 정성을 다해 드리면 주께서 가납(加納)해 주시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최선의 것을 마련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이 주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따져 보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이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이 주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선(善)은 다 떨어진 누더기와 같다고 한다. 이사야 64:6절을 보면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고 했다. 여기서 동양 사상과 기독교의 본질적 차이가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동양 사상에서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최고의 것도 하나님께서 가납하실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배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가납되는 것일까? 성경의 가르침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그 공로만이 우리를 하나님께 가납적(加納的)이게 하며, 따라서 우리의 경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하게 만든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할 때나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에 철저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가납하시는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에 기초해서 드리는 예배이다. 십자가 공로에 의존해서 주께 드리는 것이 아니면 우리의 최선의 예배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공로에 의존해서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예배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온전히 성령 하나님께 의존하여 항상 성자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적용 받아야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구속과 관련되게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1) 성령 하나님 안에서 (2)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에 근거하여 (3)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이 경배를 드리게 하시는 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런 경배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합당한 것만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에서의 구속의 공로에 의해서 죄 속함을 받아 새롭게 된 사람들만이 성령 하나님께 의존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 하는 경배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높이며, 하나님만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이 온 세상에 극명하게 선언되도록 한다.
또한 예배에서 사람이 높임을 받거나 영예를 받도록 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예배에서는 하나님께서만이 높임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 어떤 사람의 영광과 뛰어남과 아름다움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바른 예배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기념하는 예배도 있을 수 없다. 예배 중에서 사람에게 박수를 치거나 영예를 돌려 드리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예배는 오직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거나 사람이 받는 은혜가 중심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즐기는 것 중심의 예배가 되어서도 안 된다. 예배는 여흥(entertainment)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는 음악회나 연극을 구경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님의 구속의 사랑에 근거해서 오직 삼위 하나님께만 경배하며, 삼위 하나님께만 헌신하며, 삼위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참으로 예배하는 이들을 주께서 찾으시며, 주께서 만나주시고, 주께서 이끌어 주신다. 요한복음 4:23-24절을 보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했다. 참으로 성령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존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들은 예배할 때마다 자신들이 주께 예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대한 벅찬 감격을 느끼게 되고 감사하며 예배할 것이다. (*)
*강의자 : 손재호 교수
*본글은 2024년 8월 16-17일에 부천개혁성경신학교 2024년 봄학기 집중강의 겸 부천개혁교회 제직교육을 '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란 주제로 실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