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바뀐 구조개혁평가, 대학기본역량진단 중단하라!
교육부가 12월 13일‘2018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추진계획(확정안)’을 발표했다. 대학과 교육의 황폐화로 비판 받던 기존의 대학구조개혁평가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어 구성원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초의 계획대로 강행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시점에서 역량진단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되짚고 사업 중단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1. 대학기본역량진단은 말 그대로 현 시점에서의 대학의 역량에 대한 기초 진단으로 그쳐야 한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진단 결과를 대학의 구조조정을 위한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 방식을 그대로 승계한 무늬만 바뀐 2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대학의 기초역량진단에 충실하고 사업기간 교육의 주체들과 함께 고등교육 혁신에 대한 계획과 전망을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대학기본역량진단 2단계 대상이 되는 1단계 탈락 40%의 대학에 대해서는 재정과 회계의 안정성 등을 기초로 대학의 지속가능에 대해 평가하겠다고 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대학은 곧 퇴출 및 폐교하겠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의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2단계에서 일부대학이 구제된다 하더라도 전체 대학의 1/3 이상(일반․전문대 기준 100개 이상)의 대학을 폐교의 위험으로 내몰겠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3. 대학기본역량 진단은 최대 40%를 부실대학, 구조조정 대상 대학으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가 고등교육의 황폐화와 대학의 등급화 등 여러 부작용을 양산하는 것으로 규탄을 받았지만, 그래도 대학 구조조정의 총량을 앞서 정하지는 않았다. 현재의 역량진단은 이 보다 한발 더 나아가 진단도 하기 전에 구조조정 할 대학의‘쿼터’를 미리 정하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 부실대학 40% 의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는 전형적으로 교육부 관료들의 안이한 탁상 행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1주기 대학구조개혁 사업에 비해 훨씬 더 강압성과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4. 평가 하위 대학에 대한 학자금대출과 국가장학금 제한 등의 조치를 통해 대학을 고사시키는 억압적 방식 역시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학자금대출 제한대학, 국가장학금 제한대학에 대해서는 고등학교에서 진학지도를 꺼리고 있는 것이 일반적 상황이다. 결국 정부의 ‘낙인찍기’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대학이 입학생 수의 급감과 그로 인한 등록금 수입 감소, 재정운영의 어려움으로 수 년 만에 폐교의 위험으로 내몰리게 된다. 강제적, 폭력적 구조조정 방식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는 것으로 비난을 사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5. 교육부는 학생 충원율이 저조한 대학 등의 한계대학에 대한 퇴출을 명시하고 있지만, 교육부의 책임과 정책실패에 대한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1995년부터 대학설립준칙주의에 따라 일정 요건을 갖추고 신고만 하면 대학설립을 가능하게 한 정부가 현 대학구조조정 사태에 대한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준칙주의 시행으로 대학의 숫자는 급격히 증가했고 불과 10년도 가지 못해 대규모 미충원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지금까지 정책실패에 대한 정부차원의 평가나 사과조차 없다.
6. 역량진단사업 기간 내 2만 명 학생정원의 축소방식도 문제다. 학생 충원율이 저조할 경우 우선 퇴출대상 대학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전국적으로 7만에 이르고 있는 정원 외 입학인원의 조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교육부는 강제 정원 조정에 앞서 정원 외 입학인원을 줄이는 조치방안부터 우선적으로 강구하기 바란다.
7. 대학에 대한 퇴출과 폐교를 단행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된 대한 교․직원 보호대책은 전무하다. 정부 주도하에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이지만 노동자 보호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과정에서 교직원이나 교수는 대학 폐교나 정리해고로 인해 직장을 잃으면서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정부주도의 대학구조조정이니만큼 적어도 제대로 된 교․직원 보호 대책부터 마련하고 진행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렇듯 대학기본역량 진단은 명칭만 바뀐 또 다른 형태의 박근혜식 대학구조개혁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고등교육정책의 방향을 대학의 공공성 강화와 자율성 확대, 교육의 질 제고를 통해 대학다운 대학으로 성장․발전시키겠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잘못된 사업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하기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학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가의 책무성 강화와 고등교육재정의 뒷받침이 필연적이다. 하지만 이번 기본역량진단 계획에서도 고등교육재정 확대방안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교육부는 무늬만 바꾼 대학기본역량진단 사업을 지금이라도 즉각 중단하고,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 등 고등교육재정 확충을 전제로 고등교육의 올바른 개혁을 위한 제대로 된 계획을 수립하기 바란다.
2017년 12월 20일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