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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연구과정 중 일본, 중국, 대만의 도자 미술관 답사가 있었다. 일본답사를 못가고 대신 동양 도자 박물관의 도록 한 부를 부탁해서 위안을 삼았다.2차 답사지 중국의 경덕진은 고령토가 나오는 고령산이 있고 세기 초 부터 도자가 있었다는 중국의 자존심 같은 도자의 고향이다.
7월에 더위를 안고 가는 여행을 무탈하게 다녀 오라는 가족들의 인사를 듣고 인천 공항에 도착. 낯 익은 5기 동문들과 아직은 조심스러운 연구과정 동문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윤용이 교수님의 둥그런 웃음이 호박처럼 다가온다.
서둘러 짐을 부치고 면세점에 들어 가 깜박 잊고 온 썬글라스를 구입 했다. 알록달록 화장품 쪽을 들러 보다가 냉장고에 켜켜로 쌓인 영양 크림과 아이 크림을 생각하고 발길을 돌린다.
8시 10분 출발 동방항공 좌석을 찾아 앉으니 중앙석 일렬이 모두 우리 일행들이다. S회장님과 윤용이 교수님,S. R 선배님들 나란히 황금조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출발후 곧 아침식사가 제공되고 비빔밥 비슷한 쇠고기 덮밥으로 식사를 했다.
젊잖은 선배님들 곁에서 숨도 못쉬고 얌전히 있는데 갑자기 비행가 안이 수런거린다.
"개기일식입니다! 창밖을 보세요."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과 세상이 온통 까맣게 보인다. 끝 없는 우주에 한마리 벌레 같은 왜소함이 느껴지며 한 줄기 불빛도 없는 공항을 향하여 쉬임 없이 달리는 물체, 항로를 잃지 않는 비행기가 대견해 보일 뿐이다.
반듯한 조선족 가이드와 운전수 소개를 받고서야 중국이구나 싶은데 공항 밖에는 1970년대 식 버스 한대가 대기 하고 있었다. 서둘러 버스에 오르니 차는 어느새 빗속의 도로를 달린다. 비는 억수같이 퍼붓고 가도 가도 끝없는 고속도로, 언젠가 북 아프리카 튀니지 여행 길에서 운전수가 밤중에 내려 놓았던 고속도로가 생각 나고 이렇게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찾아 헤메는 인간의 근원적인 호기심은 어디서 올까? 싶었다.
한 여름 장마철이라 곳곳에 흐르는 강물과 푸른 농장들. 너와집 비슷한 2층집 꼭대기에 또 작은 집이 한 채 씩. 그 위에 세운 뽀족탑. 바로 앞 자리에 윤교수님이
" 저게 뭘가요?"
전혀 감이 잡히지않는다. 텔레비젼 안테나? 햄 마니아들의 특수 송신기?. 모두 아니었다 그 것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신위를 모신 일종의 사당이고 가늘고 긴 뽀족탑은 영혼이 드나드는 통로라고...
효를 숭상하는 중국인들의 성정이 유교과 연결되고 살아서 신선이 되어 오른다는 도교와 윤회의 고리를 끊고자 하는 불교와 더불어 생과 사의 경계를 일직선에 놓고 보는 중국인들의 시선과 또한 죽은자와 산자의 동시 공간이 집안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2시간 쯤을 달리던 버스는 어느 휴계소 앞에 섰는데 약간의 관광 상품과 간식들이 즐비하다 .만두와 잡채 등 비교적 익숙한 음식들을 주문해서 먹는데 아무래도 튀긴 오리고기에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솥아지는 폭우를 보면서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연구가 고미숙씨가 생각나고 건륭황제의 생일날자에 닿기 위해 강행군을 하면서 간장 종지 만 한 우박이 떨어지던 여름 날씨와 무서워 떨던 말들. 건륭황제의 여름궁과 뜨거운 물이 쏫아 났다던 승덕의 온천 연못을 기억한다.
5시간 이상을 달린 후에 도착한 항주에서 남송 관요 박물관을 찾으니 입구에 천연 비색의 옥덩어리 한 채가 통째로 앉아 있다.
중국의 청자 시효가 옥 자체의 비색을 향한 도전이었다니. 마치 보석을 만드는 마음으로 도자를 구웠다는게 아닌가? 따라서 사람이 추구하는 미색과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며 인간의 의지와 오만은 또 어디까지인가 싶기도 했다. 여기저기 진회색에 가까운 도자기 사진들을 찍다가 깜짝 놀랐다. 진한 갈색의 엮음무늬 도자판에서 유명한 박서보 화백의 작품 원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 봄 북경에서 열린 현대작가 초대전에서 유난히 박서보 화백의 그림이 중국부호들의 관심을 끌었다는데. 그 분의 손가락 눌림자국의 엮음 원형이 이곳에 있었다니 그렇다면 박 화백의 그림은 중국인들의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선험적 무의식을 건드린 작품이 아닌가?
누에처럼 긴 용머리 가마터와 영상을 담은 셋트를 사고 이 박물관의 전시품 대부분을 발견한 발굴 팀과 고고 학자들의 기념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인간의 의지와 고미술의 역사를 생각해 보았다.
서둘러 박물관 앞에서 회장님 일행 몇분들과 사진을 찍고 어느분은 도록을 사는데 나는 항주의 비단옷 한 벌을 샀다. 역시 중국의 어느 도시 보다는 고급스러운 비단천이다. 꽃 자주색 차이나 원피스를 포장하는 아가씨가 중국의 미인도에 나오는 그림 같아서 내내 처다 보았다.
해질 무렵 수양버들이 늘어진 서호를 바라 보며 소동파를 생각 한다. 관절염을 앓던 노처와 함께 양자강 쪽배에서 죽은 두보를 생각하며 이백의 "아미산 월가"를 떠올려 본다.
아미산에 반쪽 된 달님은
그림자만 평강강 물따라 흐르네
밤에 청계를 출발해 삼협을 향하여
임 그리며 못 본 채 유주로 가네
달빛에 어린 서호를 못 보고 가는 걸음이 아쉽기 그지 없었다. 멀리 보이는 유람선이 석양의 물 빛에 어리는데 여기저기 다정한 연인들의 뒷 모습과 단란한 가족들의 그림이 여기가 정말 공산주의 전제국가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버들가지 아래로 낭만적인 사랑의 꿈이 연상되고 여러가지 형태의 사랑의 방법들이 떠오른다. 최근에 영화 씨나리오를 쓰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나쁜 남자" "질 나쁜 연애" 같은 제목에 공감이 가고 나 역시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 항주에서 몇달 쯤 남고 싶은 마음이라 인솔자이신 손회장님께 떼를 써 보았다.
내일 오전 일정을 미루더라도 항주에서 하루를 묵어 가자고...
거꾸로 윤교수남께 여쭤 보라는 손회장님의 미소와 앞자리에 J 교수님의 의미 있는 농담에 모두 웃는다.
"그래서 항주나 소주는 사랑 하는 사람과 함께 오는 곳이라니까요."
앞 자리에 J교수님은 이미 여러차례 학회가 있어 항주를 다녀 가신듯 익숙한 중국대학의 분위기를 설명 하시고 중국의 최고 비단 도시인 항주 대학의 부총장에게 한국의 비단천을 선물했던 이유를 밝힌다.
답례로 용이 새겨진 옥 도장을 받았는데 그 새김의 출충함이 명품 중에 명품이라 중국인들의 깊은 신의와 우정을 느꼈다고 한다,
J 교수님은 젊은 시절에 동남아 어느 부호의 집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그 집 주인이 내 놓은 중국 도자기 중 접시 끝을 금으로 마무리한 것을 보았는데 과연 그런 접시가 중국의 진품이 맞는지 또한 그런 것이 만들어진 연대를 윤교수님께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던 윤교수님은 그런 접시가 만들어진 시기가 있으며 남쪽으로 흘러간 연유도 있었다면서 앞으로 만나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아쉬운 걸음을 버스에 싣고 다시 밤길을 달리는데 장장 5시간을 가야 할 거리라고 한다.
밤이 되자 기온은 다소 서늘해지고 엉성한 개발 도상국의 고속도로처럼 인적도 없는 밤길을 달리는데 여기저기 피곤에 물든 일행들의 졸음이 몰려 오고 가끔씩 엇비껴 가는 화물 자동차의 헤트라이트가 오히려 반가웠다. 계속해서 창밖에 야경을 바라 보며 꿈꾸듯 흔들리는데 갑자기 손바닥 같은 작은 마을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참 아름다운 불빛이지요"
윤교수님의 감탄과 함께 미국민요 "산꼴작에 등불"을 연상하면서 저 불빛 아래 오손도손 저녁을 먹고 있을 중국인 가족들을 상상해 본다. 갑자기 조금 전에 먹은 저녁 식사 메뉴가 생각 나고 낯선 밤 낯선 음식을 마다않고 따라 나선 지금 이 여행 동문들의 안전을 간절히 기원해 본다.
거의 11시가 다 되어서야 경덕진의 **호텔에 도착한 일행들은 각각의 룸으로 들어가 솜뭉치 처럼 쓰러져버렸다.
이튿날 아침 가벼운 산책을 하며 아직도 덜 다듬어진 식물원과 인공호수를 둘러 보았다. 엉성한 야자수 몇그루가 볼품없이 서 있고 분재을 만들다만 진백 몇 그루가 꼬부라져 있는데 호텔은 깨끗하고 식사도 좋았다. 세계 어느나라의 호텔이라도 음식은 비슷하여서 사라다와 과일과 약간의 햄을 빵에 싸서 먹는다. 마주 앉은 룸 메이트의 샹냥한 웃음이 한결 돋보이는 아침이었다.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오르니 날씨는 여전히 우중충하게 비를 머금고 있다. 창강을 건너 도시의 중심거리를 통과하는데 여기 저기 상점들과 상가 아파트 건물이 높다. 새 건물이 지어진 신도시와 다닥다닥 구건물이 몰려 있는 골목들이 확연히 구분되고 아파트 창가 베란다에는 빨래감들이 널려 있다. 중국인 특유의 찌들은 듯한 검은색과 회색의 칙칙한 옷들이 거리 전체를 어둡게 하는 것인지 흐린 먹구름의 하늘이 어두워서였는지 잘 기억할 수가 없다. 다만 거리 곳곳에 선 휴지통과 가로등 몸체가 모두 도자기로 만들어진 것이 아름다웠다
지난 해 까지도 길이 좁아 못 올라간 고령산 중턱까지 버스로 가니 넓지 않는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는데 간간이 뿌리던 빗줄기가 더욱 세차게 내려 일부는 차에 남기로 한다.
익숙한 걸음의 윤교수님을 따라 기대 했던 고령산을 오르는데 우산에 가린 산의 몸체를 발로 더듬어 올라 간다. 간간히 내려다 보이는 아찔한 꼴짜기를 보니 지금도 이렇게 험준한 길이라면 몇 백 년 전에 고령토를 나르던 인명들의 피해가 눈앞에 선하다.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 황제가 하늘을 위하여 생각한 색이 흰색이며 그 제례를 위해 흰색의 자기를 만들라 명령한 후 40년을 찾아 헤멘 끝에 찾은 것이 고령토라니 나 역시 이곳을 와보기 전까지는 흰색과 백자에 대한 외경심이 부족 했음을 고백 할 수 밖에 없다.
허술한 물레 방앗간에서 고령토를 빻아 가루를 내고 채를 쳐 자루에 담아 지고 나르던 발길들이 있어 중국 도자사를 빛내는 것처럼 모든 귀하고 아름다운 예술품 뒤에는 무수한 인고의 시간들이 헌신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온전히 고령산을 넘어 고산마을에 도착. 당시에 고령토 채굴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조촐하게 농사를 짓는 들판이 있고 늙은 고목 아래 여염집을 두드려 사람사는 모습을 본다.한쪽 벽면에는 역시 조상을 위한 제단과 향로가 있고 아이를 업은 여인이 인사를 한다.일행이 내놓은 과자를 보자 그녀도 마른 호박씨를 내 놓은다.
작은 고갯길은 넘으며 하얀 벽돌처럼 쌓아 둔 고령토 저장고를 보았다. 밀가루 반죽 처럼 물렁 하고 미끄러운 조각들을 눈꼽만큼 씩 떼어 보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 어떻게 배합되어 회백, 청백.녹백이 될까 싶었다. 하기야 중국 한국을 거쳐 들어간 일본의 노르다케에도 소뼈를 갈아 넣는다는 풍문이 있는데 세상에 다시 없는 비색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하지 않았으랴 싶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는데 주차장 까지도 아득하다. 나는 내려 오던 고개 길에서 일행들과 조금 떨어져 걸으며 우주 속에 교감을 기원하고 있었다. 하늘에 대한 경외심과 흰색을 생각한 황제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공들의 생애와 그 영혼들을 간절히 만나 보고 싶었다. 아쉬어 나뭇잎 몇 장을 줍는데 단풍처럼 고운 붉은색이다.
간신히 주차장에 도착하니 일행들은 모두 비를 맞아 물에서 건진 사람들인데 차 속에 남았던 분들은 말짱하다. 젖은 옷과 양말을 벗어 짜는사람. 뜨거운 커피를 나누는 사람. 사탕을 건네 주는 사람. 우리는 모두 사지를 넘어 온 동맹군이 되었다.
산 아래 강가에 허술한 자연 마을이 보이고 우리는 이 곳도 들러 보게 되었다. 돌로 쌓은 골목길에 찌든 가옥들이 빼꼭히 붙어 있고 일부 강면에 닿는 집들은 마당에서 낚시를 해도 좋을 듯하다.
자세히 보니 고기 건조대와 빨랫대가 있고 욕심없이 몇 천 년을 살아 왔던 중국인의 후손들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살아 가고 있었다.하나 밖에 없는 상점에서 오리알을 먹기도 했지만 경덕진 시내에는 이미 휼륭한 식사가 예약되어 있었다.
호텔에 돌아와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일행들은 만찬장으로 향했다.
중국식 향료를 전혀 배재한 음식이라 먹기에 거북함은 없었다.
B스님이 준비한 곡주가 몇 순배 돌고 여기저기 건배 제의가 다채로웠다.
다시 돌아 온 호텔에서 에프터가 있다는데도 무거운 몸이 꼼짝을 못한다. 재촉 전화가 왔지만 결례를 하고 말았다. 곰살스러운 룸 메이트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꿈나라 속으로.
이튿 날 일정은 주산 어기창과 강사성 박물관이다. 역시 용머리 가마터와 또 다른 형태의 여러 가마를 둘러 보면서 경기도 일대의 가마터와 비교를 해 본다. 중국의 대부호가 살던 옛 성을 돌아 보니 예나 지금이나 누리고 살던자들의 호사가 엿보인다.
넓은 인공 호수에 호화로운 정자를 짓고 선녀 같은 아가씨들의 비파를 듣고 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회주의 이후에는 모두 관광상품화 되어 하루에 몇 번씩 연주 시간이 있다고 한다. 사실 음악 전공자로서 그 연주를 꼭 한번 듣고 싶었는데 다행이 연주단의 연습실을 방문하게 되어 듣는다. 지휘자 외에는 모두 여성 단원들의 모습 자체가 아름다웠다. 지휘자가 요구하는 음색이 안 나오자 단원들은 힘이 빠지고 연습 방해를 하던 일행들이 서둘러 나오자 다시 제대로 된 연주곡 소리가 울려 나온다. 말없이 옮기는 발 걸음 속으로 다시 기회가 된다면 중국의 고유 음악과 현대적인 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우리가 돌아 볼 곳은 넓고 다시 대나무 숲이 있는 오솔길을 걷는데 중국의 유명한 서예가들의 필사체가 도기로 구워져 진열 되어 있다. 짧은 한문으로 해석을 유추하니 대체로 시경에 있은 시들이다. 그래도 자신이 없어 옆에 계신 교수님께 여쭈었더니
칠월에 목화꽃이 서쪽으로 기울면
구월에 옷을 만들어 주리라
봄볕이 따뜻해져 꾀꼬리가 울면
아릿다운 아가씨들 바구니들고
부드러운 뽕잎을 따네
봄해가 길고길어 흰쑥 캐기를 하니
아가씨들 마음에 외로움이여
장차는 귀공자와 함께 돌아가리라.
초등학교를 좋은데 못 나와서 그렇다고 변명을 하니 나도 진땀을 흘리며 하는 해석이라고.
과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양이나 질에 대하여 할말이 없을 정도라 이 곳만 제대로 보려고 해도 만 하루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레를 돌리는 도공의 손길이 우리의 방법과는 달랐으나 힘든 외길을 걸어 온 노인의 얼굴에서 외경심이 인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화려함과 섬세함에 탄성이 흐르고 30 년 전에 내가 구입한 대형자기의 동생들을 만난다. 당시에는 중국과 수교가 없던 때라 굉장한 고가를 치렀지만 갖가지 색갈의 모란꽃이 88 송이가 있다. 중국인의 숫자 호감도와 모란에 대한 무한대의 상징들이 떠오른다. 어머니 처녀시절 자수품에서 유난히 모란이 많았던 것도 일생에 부귀와 안녕을 비는 마음이였으리라.
아무리 카메라로 찍어도 다 담지 못할 자기들 앞에서 마음으로 가슴으로 담아 올 수 밖에 없는데 자기로 만든 글씨 도자판과 그림 병풍 앞에서 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산호로 만든 도화 벽걸이보다 더 아름다운 색과 글씨 형태에 매료된 사이 일행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영상실에서 잠깐. 재촉하는 가이드을 원망하면서 돌아 보고 또 돌아 본다. 다시 입구로 나오니 들어갈 때 보았던 언덕위에 망루에서 피리 소리가 들린다.우리의 대금도 피리도 아닌 특유한 음색에 어울리는 아릿다운 소녀의 연주였다.
또 다른 생산지 *** 에서 커다란 전시장을 둘러 보고 호텔 숖에서 보았던 것들이 모두 이 곳의 생산품임을 알게 된다. 마음에 드는 차사발을 몇개 사고 더 욕심을 내고 싶은 것은 짐스러울만큼 크기에 포기하고 말았다. 도자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실을 들어 가니 대체로 젊은이들이다. 도자에 그리는 붓끝에 집중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진지한지 발걸음 조차 조용해진다. 대량구입을 한 분들의 짐이 버스에 실리고 다음 일정지로.
날씨는 찌는듯이 더운데 다시 강사성 박물관으로. 대체로 발굴 당시의 미숙함으로 금이간 것들이나 연대로 보면 감히 할 말이 없는 보물들이다. 서구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선덕연제의 작은 접시 하나. 노랑바탕에 국화문 작은 접시가 60억원이라니. 견고한 특수유리로 쌓여 있었다. 다시 올 기약이 없는 곳이라 우리 화폐로 44000 짜리 도록을 사며 위로를 받는다.
또 다른 박물관을 찾아서 버스에서 내리니 38도의 더위가 몸을 감는다. 목을 타오르는 갈증에 상점에서 수박을 쪼개어 먹으니 숨이 갈아 앉는다. 거리에 남자들은 대부분 웃통을 벗고 사는데 이 지방에서는 결례가 아닌 듯하다. 좁은 상점거리와 건물들을 지나면서 사람 사는 모습의 비슷함을 느낀다. 마음 같으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도 좀 만나고 싶은데 모두 외지로 공부를 갔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민속박물관 분위기의 소박한 실내에서 이미 경지에 오르신 분들은 사발의 색과 연대를 구별 하신다. 아무리 고미술 사랑 한다고 한들 평생을 이 업계에서 보낸 분들의 안목을 따라 갈 수는 없다. 다만 남은 시간이라도 시간과 정성을 모아 볼 뿐이다.
도시는 대체로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자연이 아름다운 것도 아닌 다만 고령산의 출토와 도자기를 굽는 사람들만이 형성된 공예마을 같은 느낌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진기한 도자품이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 들이고 있다. 좀더 그들의 생활이 나아지고 행복하기를 빈다.
서둘러 상해 비행기 시간을 맞추느라 오후 3시쯤 공항에 도착. 그러나 5시 비행기는 연착이란다. 시골 버스도 아니고 비행기시간을? 그러면서도 아직은 열악한 중국의 교통사정을 알게 되는 것이다. 늦은 비행기 덕택에 자정 가까운 시간에 상해에 도착 다시 솜뭉치처럼 떨어진다.
이튿날 아침 기대 했던 상해박물관. 그 역사와 전시 품목에 놀랐다. 1층 청동기실에서만도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2.3.층의 시대별 자기들을 보기도 벅찼다. 가장 마음이 끌리던 분채 자기를 마음에 담고 4층 가구 박물관까지 올라 간다. 황제의 침상과 왕비들이 쓰던 화류목 가구에 섬세한 문양과 깎음질이 이즈음의 신작이 따라 갈 수가 없다. 오래전 대만에서 수입이 되던 장농과 응접셋드와 비단 방석들이 생각 나고 화류목 자체의 결이나 색감에 매료 되었다.
면세점에서 마음에 드는 분채화병 값이 환산하니 48만원 그래도 들고 나오려는데 마침 윤교수님이 보시고 다른 것을 골라 주신다. 넉넉한 여백에 매화꽃 가지가 휘들어진 것이 중국 특유의 촘촘 무늬와는 다르다. 두고두고 보기에는 우리의 감성에 어울리는 것이라 감사를 드린다.
도시는 웅장하고 화려하다. 거리에 고층 빌딩과 아파트와 예약된 식당도 깨끗하고 화려하다. 8가지의 음식이 계속 나오는데 만족 할 만한 것이었다. 용봉탕에 나오는 자라 머리를 국자로 떳다가 도로 내려놓은 K 선생님의 권유에 국물만 먹어 보니 맑은 도가니탕 같은 느낌이었다.
서둘러 고미술 시장을 돌아 보았지만 북경의 판자위엔이나 유리창은 아니었다. 동대문 시장같은 거리에서 간간히 박혀 있는 미술상을 찾기에는 역부족이라 일찍암치 포기하고 눈길을 돌려 버렸다.
불란서의 몽마르뜨가 가난한 화가들의 작업실 창고에서 시작 되었지만 그곳에서 생산 되는 그림에 상업성이 생기자 자본가들이 모여들고 다시 가난한 화가들은 황폐한 땅으로 쫒겨 가고 미국의 소호거리가 다시 상업주의에 물들어 제대로 된 화가들의 작업실이 없어져 버린 것 처럼 이 시장의 예날과 오늘이 짐작 되었다.
돌아 오는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 돌아 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 하는 마음이 든다. 제 아무리 호화로운 도시의 공항에서도 소박한 가족들의 얼굴이 생각 나는 것은 이미 길들려진 사랑에 익숙함 때문일까? 더불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행시간을 함께 한 동문들에게도 속 깊은 교류가 오고 갈 것이다.
이번 답사 여행을 기획 하신 윤용이 교수님과 손용두 회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개인적인 사정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써 두었던 것이라 올립니다. 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메모지를 찾으면 채워 넣겠습니다.
선생님의 멋진 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간간이 아름다운 표현들은 명품입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글을 올리고 나면 부끄럽습니다. 혹시 실수한 곳은 없는지 불안하기도하구요. 사진을 함께 올려야 할텐데 크기 조절 기능 고장이라 며칠안에 올리겠습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영상들에 푹 빠져 버렸군요 멋진 여행답사 후기글 감사 감사 합니다. 북경을 중심으로 옛 고도와 북경박물관 명승지 유적지 등을 살펴 보는 답사 여행을 윤 용이 교수님과 여행사의 도움을 받아 멋진 여행 프로 그램을 만들어 적당한 시기에 공지 하겠습니다. 중추가절을 맞이하여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너무나 좋은 후기글이라 두고 두고 간직하고 보고 싶습니다. 전문반 방에도 옮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끄러운 글에 과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경덕진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 고령산 물래방아 도자 역사를 말해주는 좋은 그림 이었습니다 이처럼 상세히 정리해 주시니 다시가보는 느낌입니다 ㅎㅎ 항상 좋은글 고마워요~
물레방아나 돌 절구가 우리나라 것과 꼭 같았었지요.
좋은 답사를 다녀오시고 답사기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2008년 경덕진과 상해 답사를 가서 도자기 역사를 배우고 한국도자기의 예술성을 새삼 공부했던 감동이 되살아납니다. 지난해 답사기(본란 155호)와 사진(앨범란)등 당시 자료와 비교해 보시면 또 다른 감상이 될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들이 다녀 온 곳을 후배들이 뒤 따라 가 본 것이지만 대단히 유익한 답사였습니다.
신선생님, 함께 답사하고 있는 듯 생생한 답사 후기 감사합니다.*^^*
가슴에 담아 온 것이지만 이렇게 기록으로라도 남길 수 있어 저도 기쁨니다.^^*
선생님 눈앞에 다시금 펼쳐진 답사였어요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저도 함께 한 시간들이 다시 생각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연은 영겁의 시간을 이어준다지요. 평범한 일상에서라면 전혀 뵐 기회가 없었을 분들과 나흘 동안, 그것도 이국의 시골 구석에 있는 경덕진에서... 정말 멋진 시간+인연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 보면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연은 더욱 소중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