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낚시통신 / 윤대녕(소설가, 1962-)
내가 태어나던 1964년 7월 12일에 아버지는 울진 왕피천에서 은어낚시를 하고 있었다. 여름이 되면 그는 왕피천과 호산 기곡천, 그리고 양양에 있는 남대천으로 계류낚시를 즐기러 가곤 했다. 그리하여 그날 칠월의 무더위 속에서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나를 낳았던 것이다.
그날따라 조황이 좋았던지 아버지는 바구니 가득 은어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강보에 싸인 나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이놈이 크면 함께 은어낚시를 가야지.
나는 그소리에 잠이 깨 마구 울어대기 시작했다.
나는 속성 재배하는 채마처럼 쑥쑥 자라 여름철이 되면 아버지를 따라 은어낚시를 다니곤 했다. 은어들은, 강을 거슬러 오르던 중에 우리의 털바늘 낚시나 놀림낚시 채비에 걸려들었다. 우리는 은어가 산란을 하기 위해 하구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구월 무렵까지 낚시를 계속했다.
은어가 봄이 되면 바다로부터 돌아와 여름내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나 또한 해마다 여름이 되면 그들을 따라 강으로 회유하곤 했다.
그들이 내게 첫 번째 통신을 보내온 것은 수요일의 늦은 밤이었다.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일층 우편함 속에 들어 있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나는 집 앞에 있는 24시간 편의점 로손에서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식빵과 야채주스, 캔맥주,그리고 원드커피를 끓이는 데 필요한 여과지 따위들이었을 것이다. 희미한 외등 불빛을 받아 어쩐지 서글픈 빛으로 길게 늘어나 있는 내 그림자를 밟으며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주황색 우편함 속에 꽂혀 있는 청첩장 크기의 하늘색 봉투를 발견했다.
'은어낚시통신'겉봉 좌상귀에는 컴퓨터 프린트 글씨체로 이같이 씌어 있었다. 그러나 보낸 이의 주소라든가 전화번호는 오른쪽 아래를 보니 역시 같은 글씨체로 내 이름과 주소가 또박하게 인쇄돼 있었다.
현관에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 사이 수위실의 사내가 휴대용 텔레비전에서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다가 뚱한 눈으로 나를 내다보았다.
나는 우선 비에 젖은 옷을 벗어 세탁기에 던져 넣은 다음 커피를 끓이고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때로 누군가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어둑한 거실의 소파에 혼자 앉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과 약물중독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1958년 마흔 네 살의 나이로 자신이 늘 읊조리던 슬픈 노래처럼 죽어간 빌리 홀리데이. 혼자 있게 되는 음울한 저녁나절이면 나는 맥주를 마시며 매양 그녀의 노래를 듣곤 했다. 그녀는 그토록 신비한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살하다시피 죽어버린 것일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멸해간 흑인 가수의 고적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세상의 아주 외진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진저리를 쳤다.
그때 낮게 가라앉아 있는 실내의 공기를 뒤흔들며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흘끗 창가에 몰려와 있는 어둠을 쳐다보며 벨이 다섯 번 울릴 때를 기다려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이렇게 늦은 밤 내게 전화가 걸려오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한데 내가 여보세요, 하고 난 다음에도 상대방은 꽤 긴 사이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잘못 걸려온 전화인가 싶어 수화기를 내려놓으려 할 때서야 아득한 미지의 저쪽에서 저...... 하는 소리가 가늘게 전해져왔다. 퍼뜩 심상찮은 예감이 들어 나는 슬그머니 수화기를 도로 귀에 갖다대고 상대방이 뭐라 말해오기만을 집요하게 기다렸다. 약 십초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웬 낯선 여자의 마른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빌리 홀리데이을 듣고 계시는군요."
"!......."
뇌수에 바늘 끝이 와 닿은 느낌이 듦과 동시에 나는 조심스럽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마치 굳게 잠가놓은 문을 열고 누군가가 슬쩍 방안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대꾸하지 않고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런 돌연한 일이 생기는 경우 나는 온몸의 힘을 다 빼고 가만히 정면을 노려보는 습관이 있다. 절대로 먼저 서두르거나 달려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불의의 역습을 받고 쓰러진 경험이 벌써 여러 번 있는 터였다.
"심야전화라서 놀라신 모양이네요. 용건을 말씀드리자면......."
정말 건조한 목소리였다.
"저희 은어낚시모임에서 보내드린 우편물을 받아보셨는지요."
"은어낚시모임요?"
이렇게 반문하자 이번에는 그녀가 잠시 주춤하며 이쪽 동종을 살피기라도 하듯 소리가 없었다.
내 나이쯤 됐을까. 결혼한 여자의 목소리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혼자 전화를 걸고 있다. 나도 이쯤은 감지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나는 아까 깜빡 잊고 뜯어보지 못한 하늘색 봉투를 집어들며 그녀에게 물었다.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뜯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죠?"
"저희 은어낚시모임에서 선생님께 보내는 초대장입니다."
나는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밤 열한시가 다 된 시간에 낚시회에서 전화를 걸어오다니. 또 지금은 은어낚시철이 지나지 않았는가. 게다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낚시회 따위하고는 아무런 연고가 없을 뿐더러 낚시를 그만둔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된 것이다.
"지난여름에 선생님께서 신문에 쓰신 은어낚시 기사 기억나시죠? 그 기사를 보고 저희는 이번에 간성에 있는 북천과 울진의 왕피천으로 계류낚시를 다녀왔습니다. 우편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무튼 선생님을 저희 모임에 모시고 싶습니다."
"글쎄, 뭐 어쨋든 읽어보기는 하죠."
"안에 지정된 장소와 시간이 적혀 있으니 아무쪼록 그날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어머, 벌써 레코드의 에이면이 다 돌아갔네요."
우체부가 편지를 홱 집어던지고 바삐 사라지듯, 그녀는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이렇게 호들갑을 떨며 냉큼 전화를 끊어버렸다. 사실 밤늦게 이런 전화를 받으면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던 감정의 리듬과 균형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달갑지가 않다. 하지만 오늘은 참겠다. 빌리 홀리데이를 알고 있는 정도의 여자라면 그래, 참을 도리밖에.
아무튼 나는 문제의 그 봉투를 뜯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상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들고 나는 침착하게 봉투의 가장자리를 오려 내고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꺼내보았다.
<저작권 보호와 관련하여 출판사측의 요청에 의해 중략합니다>
홍익대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던가. 그녀가 이제 다 왔어요, 하더니 좌회전 라이트를 켜고 어두운 카페촌의 좁은 골목으로 급히 빠져 들어갔다. 아주 순식간의 일이어서 나는 파랗게 신경이 곧추섰다.
그녀와 나는 광화문에서 떠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카 스테레오를 끄고 헤드라이트를 끄고 그리고 마침내 시동까지 꺼버린 다음 하나 남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커졌다 꺼졌다 했다. 멋진 드라이브였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이제는 농담 따위를 할 계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송 시간이 임박한 포로와도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 전에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볼 말이 있었다. 그러나 좀체 엄두가 나지 않아 꾸무럭거리고 있는 동안에 초조감만 자꾸 더해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다 피운 담배를 비벼 끄고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잠시 긴장하여 숨이 멎었던가. 영화 <일식>의 모니카 비티를 닮은 크고 부드러운 눈이었다. 어디선가 물통 같은 게 굴러가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당신은 지금 천 구백 육십 사 년 칠월로 돌아온 거예요. 타임 머신을 타고 말이죠. 내일 아침까지는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냥 그대로 있는 거예요."
"...... 약속하죠. 하지만, 한 가지 알아야만 할 게 있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물통 굴러가는 소리가 멎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거리의 소음이 끼여들었다. 말하라는 뜻으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여기에 정말 존재하고 있는지 말해봐요.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녀는 존재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보충해서 말하죠. 우리들 최초의 모임은 이 년 전 봄에 시작됐죠. 당시 무명 배우였던 그녀와 동갑내기 친구인 잡지사 기자, 대학강사, 화가 이렇게 몇몇 사람들이 신촌의 한 카페에서 모임을 갖게 된 게 동기가 됐죠. 저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아까도 말했듯 그들은 모두가 삶으로부터 거부된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자주 만나 공통의 것을 찾으며 좀더 은밀한 방식으로 모임을 키워나갔죠. 그후 건축가, 수련의,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던 가수, 시인들이 더 들어왔고 집단의 동일성을 확보하자는 뜻에서 육십 사 년 칠월 생들만으로 모임을 제한했어요. 물론 그들은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요. 하지만 역시 삶에 제대로 뿌리박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아무튼 우리는 한두 달에 한 번쯤 은밀히 모였다가 헤어지곤 해요. 어떻게 보면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 현실적인 삶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는 살아지지 않으니까, 말하자면 지하에다 다른 삶의 부락을 하나 더 세운 거예요. 우리가 은어를 문장으로 한 것도 다른 뜻이 아녜요. 말하자면 우린 여기서 거듭나기 연습을 해요. 어떻게든 우리 방식으로 버티고 사는 법을 배운단 말이죠."
나는 흐릿한 차창을 쳐다보며 내가 방금 떠나온 세상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나 지금 내가 와 있는 곳이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지, 그곳이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인지 전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가죠, 하고 그녀가 내 의식의 잠을 두드리며 안전벨트를 풀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한동안 계속되던 낯선 콘크리트길. 사방으로 낮게 잇대어져 있는 지붕의 처마들. 복도와도 같이 좁고 어두웠던 골목길들. 나를 가로막는 자세로 내 앞을 걸어가고 있던 그녀의 고른 발자국 소리.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가자로 구부러진 지하계단의 희미한 윤곽. 가슴속에선 차가운 피가 소용돌이치고 얼핏 돌아다본 뒷전에 내려앉고 있던 단단한 어둠.
이어 둔중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지하창고의 나무문을 바라보았다. 비에 젖은 몸이 간단없이 떨려왔다. 어둠 한 겹을 사이에 두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도 그렇듯 떨리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거기 그렇게 밤새 서 있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기묘한 흥분을 젖은 옷 속에 감추고 이내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는 다만 입을 다물고 그녀와 함께 언제까지라도 서 있고 싶었다. 그러나 이윽고 문 안쪽 멀리에서 희미하게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닥닥이라고 해도 좋을 아주 짧은 순간에 나는 돌연 그녀를 끌어안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 휩싸여 있었다.
왜였을까. 내가 한순간 그토록 혹독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삶과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차마 꿈꿔본 일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비죽이 그녀 쪽으로 내밀어졌던 내 손이 거기 가 닿기도 전에 나는 그녀가 문을 사이에 두고 안의 누군가와 주고받는 수하(誰何)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돌쩌귀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열렸다.
비가 오는군, 하고 문을 열어준 사내가 목쉰 소리로 말했다. 홀연 한 어둠이라고 말해야 할 그런 이물스런 어둠이 싸여 있던 남자의 얼굴. 저 어딘지 모르는 안쪽으로부터 사내를 뒤따라왔던 단 한 줄기의 푸른 불빛. 그러나 그가 내민 손을 가까스로 거머쥐었을 때 내 손으로 전해져온 돌연한 온기로 인해 나는 또다시 당황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침내 나는 그들을 따라 긴 회랑을 걷기 시작했다. 벽면의 마른나무 향기와 또 저쪽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쾨쾨한 냄새에 취해 순간순간 정신이 흐릿해져갔다. 식초산 같은 시큼한 냄새였다. 초가 타는 냄새겠거니 싶었지만 분명 그 냄새만도 아니었다. 간신히 몸의 균형을 지탱하며 거기까지 가는데,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걷고 또 걷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사람들의 두런거림이 내 귀끝에 와 닿았다. 그리고 가닥이 분명해진 빛줄기가 바닥의 나무결을 드러내면서 풀이 타는 냄새와 함게 술내가 코끝에 진하게 묻어났다. 그리고 뒤미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밤 낚시터의 불빛처럼 실내에 둥글게 원을 형성하고 떠 있는 수십 개의 촛불들이었다. 거기서 내 의식은 도마뱀의 꼬리처럼 문득 잘려 달아나고 있었다. 그 순간엔 내 존재가 촛불 하나의 의미도 지니지 못한 채 그저 옷을 걸친 또 하나의 공간으로 공중에 떠 있을 뿐이었다. 필시 환기창도 없이 사면이 가로막혀 있을 어둑한 실내에서의 소요가, 그러나 내가 나타남과 동시에 일시에 멎었다. 어둠 속에서 가만가만, 따로이 혹은 두셋씩 부유하고 있던 저들의 시선이 내가 서 있는 공간의 둘레로 몰려들었다. 얼핏 눈가늠으로 보기에 십여 명쯤 돼 보였다. 술잔을 들고 누워 있거나, 혹은 벽면 모서리에 반라가 되어 서로 껴안고 있거나, 아까는 미처 듣지 못했지만 기타를 치고있거나, 혹은 촛불 밑에서 책을 읽고 있거나, 또 혹은 책상 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거나 아무튼 제각각 풀어져 있는 그들의 모습이 동공 깊숙이 빨려 들어왔다. 비록 길지 않은 순간이었을망정 나는 홀로 구석자리에 버티고 서서 어떤 태도도 취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들의 팽팽하던 시선이 그 긴장감을 잃고 다시 뒤엉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게 나에 대한 그들의 묵인과 동조의 표시임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저 내가 적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가 나를 향해서, 그러나 쳐다보지 않은 채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세계는 이쪽과 저쪽으로 나누어져 있지. 자넨 지금 저쪽으로 와 버린거야."
나는 엉거주춤 책이 몇 권 꽂혀 있는 장식장 모서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진정코 나는 '저쪽'에 와버린 것인가. 그 잠시 내 눈에서 사라졌던 그녀, 그러니까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던 여자가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초록색 술병을 들고 나타났다. 포도주라고 생각되었지만 제대로 맛을 느꼈을 까닭이 없었다. 나는 따라주는 대로 두 잔을 거푸 받아 마셨다.
"그냥 그대로 있어요. 누군가 부르러 올 때까지."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나를 놔둔 채 부스스 일어나더니 저들 일족편에 가담해버렸다.
그때부터는 누구도 더 이상 나를 눈여겨보거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아까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간간이 술잔을 부딪치며 무슨 얘긴가를 쉼없이 주고받았다. 나는 밑동까지 타들어간 촛불 같은 신세가 되어 다시금 긴박하게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여기 존재하고 있다고 한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언제 나를 부르러 온다는 것인가.
나는 홀린 듯 다시 호피인디언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 바람모지에 서서 영원한 망각을 기다리고 있는 슬픈 종족을. 그와 함께 내 눈에는 오래 전에 나와 헤어진 그녀의 모습이 느릿느릿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참을성이란 말마저 잊은 채. 나에겐 오직 기다리는 일만이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끊임없는 수근거림에 귀를 기울이며 술병 하나를 다 비워갈 때까지 내게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의적이라고 느낄 만큼 그들은 나를 등지고 앉아 그들의 제의(祭儀)에 열중해 있었다. 나는 소외되진 않았으나 그렇게 배제된 채로 앉아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그들은 슬몃슬몃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모여앉고 있었다. 그때엔 그들의 수근거림도 뚝 끊겨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나보다, 하고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토하는 자세로 깊숙이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저마다 피스(peace), 피스 라고 뇌까리면서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한번도 경험한 바 없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풀잎 타는 냄새가 내가 있는 곳까지 수평으로 느리게 떠와서는 코끝에 달라붙었다. 반사적으로 경계하고는 있었지만 나 또한 아득히 온몸의 힘이 빠져 달아나며 피가 아래로 아래로 쏠리고 있다는 느낌이 몰려왔다. 누군가가 바닥에서 나를 집요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뒤를 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내 몸은 그 손을 알고 있었다. 그 크기와 생김새와 어깨에 와 닿는 무게와 느낌까지를. 비로소 나는 그 동안 내가 이 낯익은 손을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했던가를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몽상에 빠져 있기에는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분명한 현실임을 알아야만 했다.
그 손은 슬며서 내 손을 잡아끌더니 장식장 뒤에 나 있는 문을 통해 웬 낯선 장소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부터 나는 회유하고 있었죠.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때'가 언제의 그때인지를 나는 머릿속으로 더듬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앉아 있는 장소는 의자가 세 개뿐인 작은 카페 모양의 음습한 곳이었다. 촛불 하나가 중간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 흐린 빛을 발하고 있었으나 안은 어둡기 짝이 없었고 기이한 냉기마저 감돌았다. 방금 내가 있던 지하창고와 맞닿아 있는, 내가 수년 만에 그녀를 만난 장소는 그렇게 폐업한 술집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구석자리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핏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섬뜩한 얼굴이었다. 마치 도화지 위에다 연필로 쓱쓱 스케치를 해놓은 듯 표정없는 얼굴. 치마 밑으로 비죽이 나와 있는 마른 맨발만이 그녀가 존재하고 있음을 가까스로 느끼게 했다. 그리하여 그녀와 주고받은 말은 어째 비현실적으로만 생각됐다. 나는 그렇게 실재와 비실재 사이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나는 원래 내가 있던 장소로 돌아온 거예요."
스케치북 안에서 다시 그녀의 삭막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 목소리의 집요한 힘에 눌려 나는 괴롭다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그 메마른 표정이 그런 생각을 더없이 부채질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바닥의 차디찬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당신도 돌아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당신은 지금까지 너무 먼 곳에 가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간 돌아오는 길을 영영 잊어버리게 될지도 몰라요.
정말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아주 낯선 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삶의 사막에서, 존재의 외곽에서.
지금부터, 돌아가고 싶다고 나는 간신히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자 촛불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수초처럼 잠깐 흔들렸다. 그 촌음의 순간에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제주 밤바다를 아스라이 떠올리고 있었다. 봄, 유채꽃, 기러기, 은어, 달, 하동.... 이런 것들을. 이런 것들 속에서 만났던 그녀를. 어쨋거나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가 닿아 있었으므로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했다. 허위와 속임수와 껍데기뿐인 욕망과 이 불면의 나이를 벗어버리리라고.
"아녜요, 더 거슬러와야 해요. 원래 당신이 있던 장소까지 와야만 해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면 말할수록 나는 뼈아픈 마음이 되어갔다.
울진 왕피천까지 와 있다고 나는 말했다. 어쨋든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좀, 더, 와야만 해요.
표정 없던 그녀의 얼굴에 격한 감정의 흔들림이 스치고 지나가는게 보였다. 그러한 와중에 나는 그녀가 나를 만나곤 하던 그때의 순간들에 나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었음을 확연히 깨달았다.
그녀는 산란중인 은어처럼 입을 벌리고 무섭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자세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마침내 벽에 모로 기대어 천천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먼 존재의 시원, 말하자면 내가 원래 있어야만 하는 장소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보다 많은 밤과 낮을 필요로 해야 했다.
긴 흐느낌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가까스로 그녀에게 다가가 살아 있는 자의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차디찬 손을 완강하게 거머쥐었다.
아침이 오기까지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내 살아온 서른 해를 가만가만 벗어 던지며, 내가 원래 존재했던 장소로, 지느러미를 끌고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서울에 첫눈이 내린 그날 밤에, 나는 그들이 보낸 두 번째 통신을 수신했다.
* 에드워드 커티스(1868-1962): 미국의 사진작가. 그는 자신의 인류학적 관점에 입각해서 렌즈를 맞췄으며 특히 인디언 기록사진에 평생을 바쳤다. 커티스는 인디언을 '사라져가는 종족'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전통과 풍습, 제도 등을 기록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의 사진들은 1907년부터 1930년까지 20권짜리 시리즈인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져 나왔다.
* 호피인디언: 커티스의 대표작 중 하나. 폐허가 된 건물의 계단 위에서 호피인디언들이 외계동물 같은 복장을 하고 나서 황혼녘의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난쟁이처럼 왜소한 체구에 특이한 머리장식과 복장이 사라져가는 종족의 쓸쓸함을 더해준다.
* 아르누프 라이너(1929- ): 오늘날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오지리 예술가로 [현대미술편람]의 리스트에 의하면 세계 최고 화가 100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미 50년대에 자신의 그림은 물론 다른 화가의 그림에다, 그리고 나중에는 데드 마스크에다 '덧칠'하는 방식을 통해서 전위예술계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는 육체 언어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도 했으며, 또한 마약을 가지고 실험예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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