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곳에서 누리는 삶 / 송경자
비좁은 아파트 거실에 새식구가 들어왔다. 길이 121cm, 폭 37cm의 연밤색 바탕에 두 하얀색 서랍이 전부인 TV 장식장이다. 그가 들어오면서 작은 집은 형광등 불빛보다 눈부신 광채를 빚어낸다.
얼마 전 며느리가 방에 맞을 TV 장식장을 인터넷 주문했다고 했다. 여러 색상의 장식장 사진을 올려놓고 선택하라고 할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오 년 전 주택에서 오랜 세월 함께했던 살림살이를 모두 버리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로부터 앉혔던 속이 빈 낮은 TV 받침대에도 부족함이 없었던 터라 “뭐 하러 그거는 주문하노?” 재미없는 말 한마디 던진 후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런데 타지역에서 오는 가구가 몇 주일을 지나, 잊고 있었던 나를 놀라게 한다. 빈자리에 제격인 임자가 들어와 앉으니 이렇게 집안이 꽉 차고 달라질 수가, 닦고 또 닦으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내 등 뒤에 대고 남편이 한마디 한다. “앗따 가구는 말라고 주문 했노 할 때는 언제고 그래 좋아하요.”
집 꾸미기도, 미적 감각도 없는 내 무지를 탓하며 진즉 적절한 것을 들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아무리 재개발 공사가 끝날 때까지라고는 하나 갖춘 것 없는 좁은 집에서 불편한 기색 없이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간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마저 부끄러운 마음 한 자락 휑하니 스친다.
좁은 공간 활용하는 지혜, 그것은 너른 곳에 부여된 여백의 운치보다 어쩜 오밀조밀 따습고 안정감 넘치는 다락방 풍의 정감 깊은 곳간 주인의 얼굴이라 싶다.
하얀색 두 서랍을 남편과 하나씩 나누어 쓰기로 했다. 내 몫의 서랍은 그날로부터 나의 조촐한 보물 창고가 되었다. 문학 서적, 가계부, 일기장, 습작지와 연필통들이 비좁다 아니 하고 그 안에 안식하고 있다. 너른 집, 많은 것들을 소유하던 젊음도 가고 어차피 다 버리고 떠나야 할 이 시점에 최소한의 가재도구만 지니고 들어온 작은 아파트에서도 해마다 버릴 물건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산다는 것은 결국 버릴 것을 쌓는 일이라 싶다.
이사 오기 전 답사하던 날, 닭장 같은 집에 어떻게 살까 하고 하룻밤 뜬눈으로 지새운 밤의 번민은 기우였다. 우선 여기저기 몸이 아픈 내게 청소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서 나날이 죽음과 맞서 싸우며 혼돈의 날을 보내고 덤으로 여섯 해를 동행하는 남편과 지내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남편이 심고 가꾸어 거두어들인 작물들이 계절 따라 올막졸막 베란다에 도심 속의 전원을 펼쳐 놓는다. 손수 가꾸어 먹는 즐거움에 전원 풍경 또한 한 폭의 그림이다. 흙바람 속 병약한 농부의 땀방울로 영근 진주들이 영롱하다. 좁은 집이 꽉 찬다. 자연 한 모서리 베어다 화폭에 담아내는 노화가의 서툰 그림에도 늘 감동받는 나는 들풀 같은 관객이다.
광활한 초원이 사라져간 젊음이라면 작은 집 창 너머로 낙조를 즐기는 노년의 이 충만함에도 기쁨이 넘쳐난다. 창밖에 몰래 찾아온 달님과 조우하는 감미로운 밤은 단꿈에 빠져든다. 눈 감으면 사위어간 세월 한 자락 가물가물 잡혀 든다.
나 어릴 적 살던 집은 아카시아 군락지인 도랑을 낀 작은 초가였다. 햇살 바른 남향 집 작은 마루는 나의 놀이터였고 할아버지께서 따다 주신 한움큼 콩이 유일한 간식이었다. 할아버지 팔베개에 누워 부채 바람에 잠이 들던 네 살 아가에게 고운 추억이 꽃물처럼 배어 있는 기억 속 최초의 집이었다. 가을이면 작은 곳간이 차도록 작물을 거두어들이며 많은 농토를 늘리어간 그 집을 두고 사람들은 복터라고들 했다.
정침과 사랑채가 두루 ㄷ자형을 이루는 큰 집에 너른 마당, 수십 주의 감나무와 갖가지 유실수, 샘물, 남새밭까지 갖춘, 대나무 숲의 생울타리가 사철 노래하던, 아쉬울 것 덥는 곳에 살 적에도 할머니는 정든 이웃과 작은 초가집을 못내 그리워하셨다. 행복의 척도는 공간의 넓고 좁음이나 가지고들 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만족하고 사랑할 때에 얻을 수 있는 무한한 것이라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