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 마우스, 스피커, 헤드폰…. 컴퓨터 사용이 생활화된 지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들이다. 널리 사용되는 컴퓨터 주변기기 시장은 규모가 매우 크지만, 반대로 누구나 쉽게 뛰어들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우스'를 검색하면 1000여개의 제조사가 검색된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시장에서 컴퓨터 주변기기만으로 23억 달러(약 3조22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스위스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전 세계 컴퓨터 주변기기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로지텍(Logitech)이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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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기기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로지텍은 1981년 스위스의 애플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출발했다. 당시는 컴퓨터 관련 업체들이 소프트웨어 시장에 집중하던 시기였다. 로지텍 역시 처음에는 문서 작성과 출판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업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로지텍 창업자인 다니엘 보렐 현 이사회 의장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커지면, 주변기기 시장도 함께 커질 것이라고 보고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그 생각은 적중해 1982년 처음 선보인 마우스 'P4'가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 ▲ 로지텍이 개발한 ‘ MX 에어 무선마우스’는 책상 위에서뿐 아니라 공중에서도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다.
로지텍은 '대량생산형 고급제품(Mass luxury products)'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당시 일반적인 마우스는 사각형의 투박한 형태에 컴퓨터를 조작하는 기본 기능에 충실했지만, 로지텍은 손에 쥐기 편한 유선형 마우스를 선보였다. 대신 대형 컴퓨터 제조업체에 OEM(주문자생산방식) 방식으로 제품을 대량 공급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췄다. 고급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는 전략이다.
1984년 HP와 연간 2만5000개의 OEM 납품계약을 성사시키면서 로지텍은 본격적으로 마우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로지텍은 늘어나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1986년 대만의 신추 지역에 제조공장을 설립했다. 이어 1987년 애플과 OEM 계약을 맺었고, 1988년에는 아일랜드에도 공장을 설립하며 대량생산 체제를 갖췄다. 그해 직원 400명에 4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 로지텍은 스위스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1989년에는 마침내 세계 최대 컴퓨터 업체 IBM과 OEM 계약을 맺으며 절정기를 구가했다.
1990년대 들어 로지텍은 소매시장에도 진출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OEM 계약을 조율했지만 실패한 것이 계기가 됐다. 로지텍은 전 세계 30여개 국가에 해외지사를 설립하고 100여개 나라에서 판매점을 운영하는 등 소매시장 영역에도 발을 내디뎠다. 지난해에는 소매시장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87%에 이를 정도로 성공적인 사업 전환을 이뤄냈다.
- ▲ 로지텍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한발 먼저 선보이며 경쟁업체를 압도해왔다. 로지텍의 무선 마우스 신제품‘V550 나노 마우스’는 클립을 이용해 노트북 컴퓨터에 부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로지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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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앞선 혁신·다각화로 1위 유지로지텍의 성공에 고무된 업체들이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1990년대 마우스 시장은 춘추전국시대 같은 양상이었다. 로지텍은 늘 한발 먼저 움직이는 방식으로 경쟁사를 앞서 갔다.
로지텍은 1994년
대만과
아일랜드의 공장을 중국 쑤저우로 통합 이전함으로써 제조원가를 대폭 낮추는 데 성공했다. 또 새로운 제품군 개발에도 적극 나섰다.
1988년 업계 최초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휴대형 스캐너(사진 등을 컴퓨터에 입력하는 주변기기)를 출시했고, 1992년에는 컴퓨터용 스피커와 마이크를 선보였다. 1994년 게임을 즐기는 데 필요한 조이스틱 '윙맨', 1995년 컴퓨터로 화상 대화를 할 수 있는 웹카메라 '비디오맨'을 각각 선보이는 등 매년 100개 이상의 새로운 주변기기 제품을 쏟아냈다.
주력 제품인 마우스 분야에서도 혁신을 계속했다. 1991년 업계 최초로 무선 마우스를 선보였고, 1995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트랙볼(장치에 얹힌 공을 굴려서 세밀한 조작을 하는 주변기기)'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2004년에도 레이저 기술을 이용한 고급형 마우스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등 로지텍의 제품에는 항상 '세계 최초'라는 말이 붙었다.
이런 혁신과 사업 다각화로 로지텍은 1986년 이후 매년 25%씩 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팔린 마우스는 총 7억개에 이른다.
로지텍의 또 다른 성공비결은 인수합병이다. 자체 기술로 관련 제품군을 갖췄더라도, 시장에 더 나은 기술이 있으면 이를 사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1998년 인수한 웹카메라 제조사
코넥틱스가 대표적이다. '퀵캠'이라는 제품으로 유명했던 코넥틱스를 인수한 로지텍은 2000년대 인터넷 화상 대화 시장이 열리면서 인수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지금까지 5000만대 이상의 웹카메라를 판매하며 업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01년 인수한 오디오 전문업체
랩택도 컴퓨터 스피커와 무선 헤드폰 시장에서 로지텍의 지위를 크게 올려놨다. 로지텍은 2004년 인수한 가정용 리모트컨트롤업체
인트리그 테크놀로지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우리의 비밀은 끝없는 혁신"
"매출 5%는 연구개발에 투자"
로지텍 CEO 제라드 퀸들렌
"우리는 매출의 5%를 연구개발에 투자해 끊임없이 제품을 혁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컴퓨터 주변기기를 범용제품으로만 판단하는 경쟁업체와 로지텍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로지텍의 최고경영자(CEO) 제라드 퀸들렌(Quindlen·
사진)은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혁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고객의 눈높이'를 들었다. 제품을 개발할 때 이용자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로지텍은 최초의 무선 마우스를 비롯해 자동 발사 기능을 갖춘 비디오게임 컨트롤러(게임을 조작하는 장치) 등 고객의 수요를 한발 앞서 내다보는 미래형 제품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이를 통해 로지텍 제품은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퀸들렌 CEO는 "블루투스(근거리 통신)나 레이저 등 원천기술을 가진 업체들과 제품개발 단계에서부터 협력하면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컴퓨터 주변기기의 미래상은 '자유로움'이다. 퀸들렌 CEO는 "컴퓨터가 진화함에 따라, 이를 이용하는 방식도 바뀌어 가고 있다"며 "책상 위에서뿐 아니라 공중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MX 에어 마우스'를 개발한 것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 맞춰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입력 : 2008.11.18 2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