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살다가도 만남을 약속해 두면 문득 그리움이 사무치곤 한다. 소록도가 그렇다.
특히 겨울이면 얼어버릴 것 같은 바닷바람을 가득히 안고 새벽마다 힘든 몸 일으켜 전동 휠체어에 싣고 교회로 올라가 세계와 나라와 육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소록도 사람들이다. 이 분들을 위해 자오나눔선교회에서는 10년째 겨울 난방비를 마련해 드리고 있다. 올해에도 하나님의 계획대로 1년 전부터 소록도 난방비 보내기 자선음악회 '나눔의노래'를 준비해서 수익금을 마련했다. 10월 31일 밤 11시 출발. 주일 저녁예배까지 마치고 화성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분들이 많이 오셨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어떤 이벤트를 만들어 주실 지 기대가 된다. 얼마 전에 가입한 하욥이라는 젊은 친구, 서울에서 오신 김영곤 목사님, 가깝게는 성도교회의 최대진 장로님과 권사님, 멀리 춘천에서도 도착하셨다.
소록도 방문 차량 13대, 인원 65명, 밤길에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관계로 걱정이 된다. 짐을 실은 차 두 대는 초저녁에 미리 출발했고, 간단한 예배와 기도 후에 모두 출발. 중간 중간에서 합류하실 분들이 있기에 몇 군데의 휴게소에서 쉬어야 한다. 선두 차량에 탑승한 탓인지 아침 일곱시까지 꼬박 깨어 있었다. 김영곤 목사님과 성도교회 장로님, 권사님이 함께 타신 1호 차는 나눔님이 출연했던 '이것이 인생이다' 프로도 다시 보고, '나눔의노래' 동영상도 다시 보면서 작은 예배 시간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새 밤이 걷히고, 마지막 고개를 넘자 녹동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떡을 맞추고 대충 장을 봐서 소록도로 들여보내고 나는 택시를 타고 녹동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막내 동생 녀석이 다리를 다쳐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들러 녀석도 만나고, 병간호에 지치신 엄마도 얼굴도 잠깐 보고, 곧장 나와 소록도 배에 올랐다. 얼마 전까지 아파트 경비를 하시다가 소록도행 배를 타신 지 한 달이 안 되는 아버지를 만났는데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서 가슴이 아리다.
소록도에 들어서니, 도착 예배와 아침 식사가 끝나고 음식 준비가 한참이다. 언제나 가장 바쁜 주방에서는 갖가지 반찬들을 만들어내고, 예배당 안에서는 9가지 반찬, 과일과 음료수 캔, 그리고 밥을 담아 720개 도시락에 싸고 있고, 한 쪽에서는 시흥은행교회에서 함께 모여서 오신 목사님 내외분들이 전 부칠 음식 준비를 하고 계시고, 주방에 붙어 있는 방에선 내일 공연해주실 분들과 통일동산교회 사모님과 집사님들이 전을 부치고 계셨다. 아홉 분이나 되는 목사님들이 손수 음식 준비들을 하고 계시니 사모님들이나 전도사님들, 우리 일반 봉사자들 모두 기쁨으로 동참할 수밖에 없다. 약간 늦은 점심 식사를 끝내고 오후 작업을 들어가기 전에 소록도 견학 시간을 갖게 되었다. 포장길을 따라 작고 아담한 성당, 교회, 우체국, 파출소 등이 있고, 해안길을 따라가면 소록도 병원과, 병원 옆으로 나무들마다 특색 있게 조경을 하여 잘 가꾸어진 중앙공원 내에는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 하나이젠키치 원장의 창덕비, 그리고 “한센병은 낫는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구라탑 등을 구경하고, 일제시대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었던 건물들이 있는데 감금실, 검사실 등이 유물처럼 남아있어 관람을 하고, 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생활자료관에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서,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소록도에 처음 오신 분들은 필수 코스이기에 다들 함께 가시게 하고, 큰샘물님과 나만 남아서 견학가신 분들이 오실 때까지 뒷설거지를 조금 해두었다.
견학가신 분들이 돌아오시면서 소록도 주민 모든 분들에게 돌아갈 도시락 720여 개를 준비하고, 공연장 앞에서 대접해 드릴 음식 500인 분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계획이 변경되었다. 내일 낮에 나눠드리려던 도시락을 따뜻할 때 드리자며 저녁 시간에 맞춰 가정마다 보내드리게 되었다. 소록도에서는 저녁을 일찍 드시기 때문에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더욱 바빠졌다. 일이 대충 마무리가 되면서 시흥에서 오신 목사님 내외분들이 바쁜 일정으로 먼저 소록도를 떠나셨다. 통일동산교회 사모님과 집사님들이 세탁한지 오래된 예배당 강단의 휘장을 깨끗하게 빨아서 다시 설치하신다.
서서히 빗줄기가 시작된다. 봉사자들의 소록도 견학 시간을 앞당기길 잘 했다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걱정이 앞선다. 지금까지 봉사 날짜에 비가 내린 적이 없었는데... 내일도 비가 내리면 실내에서 공연과 식사 대접을 한다고는 하지만, 넓은 자연 속에서의 잔치만 하겠는가. 더구나 비가 내리면 어르신들이 나오시기도 힘들텐데... 걱정한다고 해결 될 일이 아니고, 그저 기도할 수밖에...
도시락 배달이 끝난 후에 이른 저녁을 먹었다. 원래는 마당에 불을 피우고 삼겹살을 굽기로 했는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삼겹살은 맥가이버님의 손에 의해 제육볶음으로 변신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항상 기도회 시간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자유시간이다. 피곤하신 분들이 대부분 일찍 잠자리에 드셨다.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소록도는 기도하는 섬이다. 동성교회 예배당은 기도하는 성전이다. 혼자 방석을 깔고 앉아 잠시 감사와 기도를 드렸다.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최무경 할아버님이 생각났지만, 개인 행동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꾹 눌러 참았다. 밖에는 비가 줄기차게도 많이 내리고 있다. 봉사자들은 대부분 곤한 잠에 들었고, 오간사님과 둘이서 내일 끓일 육개장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잠을 이루지 못한 몇 분들이 함께 거들어 주신다. 늦은 시간이지만 주방에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내일 음식 준비를 마저 하고 있다. 열 시쯤 되어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비가 그쳤다. 김영곤 목사님과 밖에서 마주쳤는데 이런... 지네에 발을 물리셨단다. 초저녁에 조금 주무시고 깨어서 기도하려고 맨발로 성전으로 들어가다가 어두운데서 물리신 것 같다. 소독약을 발라드리고 간사장님을 깨웠더니 괜찮을 거라고 하신다. 시골에서 자란 분이 괜찮을 거라고 하니 다행이다. 예배당에 불을 켜고 목사님과 지네가 숨을만한 곳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있나.
소록도에는 새벽 4시에 예배가 시작된다. 어르신들은 새벽 2시부터 나와서 기도를 드리신다. 새벽 3시 20분, 곤히 잠들어 있는 봉사자들을 깨웠다. 어쩔 수 없는 악역이다. 강대시 장로님의 사회로 강릉에서 오신 김호진 집사님이 기도를 하시고,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동성교회 성가대 조막손 반주자의 피아노에 맞춰 새벽송을 들었다. 남자 봉사자들 모두 나와 찬송가 241장으로 특송을 했다. 남자 분들이 그렇게 노래를 잘 하는지 처음 알았다. 서울에서 오신 김영곤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신다. 쉽게 풀어주시는 말씀이 은혜롭다. 광고시간에 간사장님의 인사가 있었다. 자선음악회를 통해 천만원의 선교비를 모아서 소록도에 700만원, 자오쉼터에 300만원을 나누게 되었다며 난방비와 교회 수리비를 합하여 300만원을 전해 드린다. 감동... 효도잔치를 준비하는데 예상보다 100만원이 더 들었다고 한다. 통일동산교회에서 바자회를 해서 남긴 수익금 중 50만원을 소록도 선교비로 전해주셨고, 은행교회, 김영곤 목사님, 정승훈 목사님을 통해 부족한 돈을 채워주셨다고 하신다. 한숨 잘 시간도 없이 잔치에 쓸 음식 몇 가지와 함께 봉사자들의 아침 식사 준비가 시작된다.
비 그친 후의 소록도의 아침이 상쾌하다. 앞에 보이는 바다도 더욱 아름답다. 첫 배에 맞춰 김호진 집사님과 문성훈 집사님과 함께 녹동에 나가 떡을 찾아 들어오니 식사는 끝난 상태. 물품들과 음식들을 행사장으로 나르는 작업이 한창이었고, 뮤지컬 팀은 아홉시 배로 들어오겠다는 연락이 있었다. 행사 후에 바로 나갈 수 있도록 각자 소지품까지 모두 챙겨서 행사장으로 이동. '소록도 주민 효도 잔치'라고 쓰인 현수막 아래 공연장에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아침에 도착한 뮤지컬 팀이 가져온 음향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한쪽에선 펼쳐진 상마다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진다. 목사님들과 연세 드신 장로님, 권사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의 분주한 손길이, 그 섬김이 소록도를 빛내고 있다. 비 온 후라 먼지 하나 일지 않는 소록도 녹생리 공원 내의 잔디마당에 축복이라도 하는 듯이 햇살이 가득 쏟아지고 있다. 군데군데 익은 유자가 마치 다른 나라 풍경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비롭게 보이고, 연신 피고 지는 동백꽃도 이채롭다.
일찍부터 어르신들이 행사장에 모이기 시작한다. 정승훈 목사님의 사회로 황상도 목사님의 기도와 간사장님의 인사가 끝나고 점심 식사를 드시게 한다. 식사를 하신 분들은 바로 옆에 만들어진 공연장 앞으로 모신다. 공연장 앞으로는 봉사자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따뜻한 커피와 녹차가 배달되고, 무대 위에는 박한결 학생이 먼저 트럼펫으로 오프닝송을 한다. 감미로운 연주가 끝나고 한결이의 형인 세혁 학생이 마술쇼를 보여준다. 함께 올라가 트럼펫에 맞춰 찬양을 드리고 내려오고, 통일동산교회에서 오신 석순녀 집사님이 잠깐 무대에 올라가 찬양을 한 곡 부르고 나서 복음가수들의 찬양이 이어진다. 어제 열심히 일하시던 모습을 봐서 그 분들의 찬양이 더 아름답게 들린다. 이어서 김선희 전도사님이 찬양을 하시고, 뮤지컬 팀을 소개한다. 함께 오신 홍성하 안수집사님의 색소폰이 녹생리에 울려 퍼지자, 구경하시는 분들의 눈시울도 뜨거워진다. 예전에 무당이었다고 하시는 전도사님의 전자기타와 안양시립합창단의 테너가수로 활동하시는 집사님의 열창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이다. 이어서 뮤지컬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뮤지컬이라고 해서 노인들이 좋아하실까 하는 대수롭지 않은 마음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식사를 하시던 분들이 다들 공연장 쪽으로 모여들고 봉사자들의 발걸음까지도 공연장 주변에 머물렀다. 캠코더를 들고 계신 맥가이버님도, 카메라를 들고 계신 장영섭 목사님도 무대 위에서 눈을 거두지 못하신다. 나 또한 감동으로 공연을 지켜봤다. 아멘~을 계속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도 계시고, 코믹하게 연출된 '돌아온 탕자'에서는 온통 웃음바다였다. 식사 자리도 끝나고, 뮤지컬 공연도 끝나가고, 감동 속에서 봉사자들 모두가 무대 앞으로 나와서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며 서로를 축복한다. 어르신들이 한 분씩 자리를 빠져나가시고, 봉사자들과 공연팀들이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행사장 정리를 한 후에 맥가이버님을 비롯해서 몇 분은 다시 동성교회에 올라가서 마지막 정리를 한다. 온전히 이틀도 안 되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한 가족이 되었다. 서로를 격려하며, 헤어지는 시간이 아쉽다. 홈페이지와 카페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각자 배치된 차량으로 이동한다. 선착장까지 소록도 일주를 하며 화장터, 교도소, 납골당 등에서 잠깐씩 차를 멈추고 간사장님이 설명을 해드린다. 선착장에서 다음 배를 기다리는 동안 차에서 내린 봉사자들이 마지막까지 소록도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있다.
22일에는 예배당 천정 공사하는데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몇 분이 내려와서 공사를 해주기로 하셨고, 우리들은 신정 때 내려와 떡국을 끓여 대접하고 신년 예배와 기도를 드리고 가게 된다. 행사를 준비하고 마치는 동안 풍성하신 하나님이 얼마나 넘치게 응원해 주시는지 알 수 있었다.
자오쉼터와 소록도 난방비, 천정 공사, 효도잔치 준비를 위해 선교비 천만 원을 달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넘치게 채워 주셨고, 봉사 인원 30명을 달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65명을 채워주셨고, 잔치 준비에 백만 원이 초과되었다고 하니 그대로 채워주셨고, 전날 오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내리던 비를 행사 날에 멈춰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자연 속에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 내려 주셨다. 자오쉼터 곡간에 쌀과 과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소록도로 가져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돌아오자마자 쌀과 야채들과 온갖 과일들을 채워주셨다.
언제나 선두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첫댓글 좋고요~
용용이 맘 수고 많이 하셨어요.....그 수고가 하늘에 상급되어 돌아올거예요...잉~~ 난 언제나 그렇게 해볼까요...--;;
항상수고가 너무많으십니다. 주님께서 그가정 바라고 원하는 기도 제목 이루어질줄로 믿습니다. 축복합니다.*^^*
장문의 소록도 후기 감멍깊게 읽었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고 가정에 늘 주님의 평안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주님안에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