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부터 돌양지 산악회 후배들 데리고 송곳봉 원정 갑니다. 이틀을 올라가야 하는데 혹서기 이고 데리고 올라 가겠다고 약속한 인원이 많아서 매우 힘들거라는 생각 입니다.
그래도 작년 9월 부터 올7월 까지 꾸준히(?) 암장에서 운동을 해 왔으니 예전 과는 다르리라 생각 합니다. 실제로는 이번 년도 엔 6월 12일 등록 하여 10번정도 운동을 했는데 또 어깨가 아파서 움직이는데 불편 하여 당분간 쉬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래는 내가 친하게 지내는 문성욱 이가 다녀 와서 쓴 산행기 입니다. 돌양지 의 친한 후배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2~3년전 부터 나에게 부탁한 약속이라 올해는 꼭 지키고 싶어서 움직이는데 태풍의 영향을 안 받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다녀 와서 재미 있었던 애기 해 드리겠습니다.
최정열
글쓴이: 알파인
.
타는 목마름으로 마침내 송곳 끝에 올라서다
울릉도 송곳산 북서벽(Ⅲ A2+ 5.9) 총 10마디
신비롭고 경이로운 땅 울릉도에서도 가장 경이로운 곳을 꼽는다면 단연 송곳산이다. 태평양에 발치를 드리운 이 거대한 송곳 기둥은 그 등반길이만도 400미터에 달한다. 그 송곳 끝에 오르려는 설렘으로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바다를 건넜다.(전문)
글|윤대훈 기자 사진|정종원 기자
내려가기만 하면 물부터 2리터쯤 마셔야지…
풀잎을 꺾어 씹어보지만 씁쓸하고 텁텁해 오히려 갈증이 더 심해진다. 드넓은 태평양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밝힌 집어등의 불빛이 환하게 빛나고 저 아래 빨간 지붕을 한 작은 집에도 진작 불이 들어왔다. 한가닥 차디찬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금방 으스스한 한기를 느낀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건 한 모금의 물이다. 어둠 속에서 하강루트를 제대로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고는 있지만 그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바로 물 한모금이다.
우리는 지금 14시간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이곳 송곳산에 매달려 있었고, 지금은 하강루트를 찾지 못해 두시간 째 또 헤매고 있는 중이다. 갈증이 더욱 심해진다.
건너편 바다에 떠 있는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물 한모금만 있었더라면 그냥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면 하강을 할텐데 지금은 이 지독한 갈증을 견딜 수 가 없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하강루트를 찾아 헤매고 있다. 속절없이 담배만 피워댄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갈증이 더욱 심해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 입이 바싹 마른 문성욱씨(32세 안산 바위를 찾는 사람들) 역시 아침 등반 시작할 때 씹기 시작한 껌을 14시간째 계속 씹고 있다. 이제 껌이 자꾸만 입천장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며 푸념을 한다.
울렁대는 울릉도의 바벨탑 송곳산
뱃속과 머리 속이 온통 울렁거린다. 네모난 선실의 창문 밖으로는 아득한 수평선과 오르내리는 파도만이 넘실거린다. 거의 세시간 동안 속절없이 울렁거리는 속과 머리를 참아내야만 울릉도에 갈 수 있다. 울렁거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그래서 울릉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닌지.
선창 밖으로 드디어 울릉도가 보이자 내내 울렁거림에 시달리던 승객들의 환호가 들린다. 이윽고 흔들리지 않는 땅에 내렸다. 울릉도 도동항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비릿한 갯내음과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해풍과 떼지어 나르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였다. 무엇보다도 흔들리지 않는 바닥이 고마웠다. 우리는 곧바로 4륜구동 지프 택시를 불러 두 개의 커다란 홀백과 세 개의 카고백을 싣고 울릉도 북면 추산리의 송곳산(430m)으로 향했다. 일주도로를 따라 거의 울릉도의 반을 돌아 송곳산 아래 코끼리바위(공암)의 코끼리 엉덩이가 빤히 보이는 작은 풀밭에 텐트 2동을 설치했다. 임성묵(오버마운틴 클럽), 문성욱(안산 바위를 찾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정종원 사진기자로 구성된 울릉도 송곳산 원정대의 베이스캠프는 이렇게 마련되었다.
송곳산 등반 계획의 시작은 어디선가 본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희미한 운무에 가려 바닷가에 삐죽하게 우뚝 솟은 이 기묘한 암봉은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절세의 무공을 얻게되는 그런 곳처럼 신비한 기운을 자아내고 있었다.
나는 송곳산을 처음 보는 순간 바벨탑을 떠올렸다. 대홍수를 겪은 노아의 후손들이 야훼의 권위에 도전하는 하늘과 닿는 탑을 세웠다. 경망스런 인간의 불신을 심판하기 위해 야훼는 사람들의 마음과 언어를 혼동시켜 바벨탑의 건축을 방해했다. 그리하여 탑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언어로 혼돈의 세계에 빠졌다. 우리는 이 송곳산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도중 혼돈스런 언어의 소통으로 곤란한 지경에 빠지고 만다.
임성묵씨와 문성욱씨는 이 송곳산을 보고는 파키스탄의 아민브락(Amin Brakk 5,900m)을 닮았다고 얘기한다.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듯 보이는 것이 영락없이 아민브락 같다는 것이다. 이 두사람은 지난 2000년 파키스탄 브락장 원정등반에서 만나 지금껏 친한 등반 친구가 되었다.
서쪽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하루의 고단한 해가 침몰할 때 수평선에는 하나둘씩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텐트 앞에 모여 앉아 아직도 울렁거리는 머리와 뱃속을 소주 한잔으로 달래본다. 이 울렁거림은 반드시 낮에 타고 왔던 울렁거리던 항해 탓만은 아니다. 새로운 벽 밑에서 모여 앉아 이제 오르게 될 아무도 오른 적이 없는 벽을 바라보는 클라이머들이라면 울렁거리지 않을 재간이 따로 없을 것이다.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 불빛이 비추는 송곳산은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난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로 아침을 맞는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두 개의 홀백에 장비를 챙겨 벽 밑으로 향한다. 우리는 송곳산 북서벽을 오를 계획이다. 하단부에 거대한 오버행이 있고, 정상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등반선을 따라 가장 긴 등반루트를 연결할 수 있는 곳이었다.
벽 아래까지 접근하는데는 울창한 밀림 지대를 뚫어야 했다. 이리저리 함부로 자라난 넝쿨들과 빼곡히 들어찬 잡목 숲 사이를 헤치고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흙더미에서 잔뜩 진을 빼고서야 겨우 벽 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러 갈래의 넝쿨들이 벽 하단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징어처럼 파닥이며 오른 둘째 마디 오버행
첫마디 선등에 문성욱씨가 나선다. 물이 흘러 미끄러운 곳을 조심스럽게 올라 거대한 대천정 밑에서 첫마디를 마무리한다. 이어 임성묵씨가 쥬마링으로 오르고 다시 홀백 하나를 끌어올리며 내가 쥬마링으로 첫마디를 올랐다.
밑에서 보던 것보다 오버행의 규모는 훨씬 컸다. 임성묵씨가 두 번째 마디 선등에 나선다. 그의 빨간색 로프가 끊임없이 빠져나간다. 홀링용 로프가 멀리 허공으로 드리운다. 발 아래로는 망망한 태평양이 펼쳐진다. 놀라운 것은 바다 속이 그대로 다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 투명하게 맑은 저 바닷물에 어느덧 뾰족한 삼각형의 송곳산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개를 잔뜩 뒤로 젖혀 확보를 보던 문성욱씨가 뻐근한 목의 통증을 호소할 무렵 임성묵씨가 오버행을 넘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망치소리. 다시 들려오는 완료! 라는 외침. 그러나 철썩대는 파도소리에 그 소리는 희미하기만 하다.
문성욱씨는 허공에 매달려 홀링용 로프를 이용해 쥬마링을 시작하고 나는 빨간색 로프를 따라 장비를 회수하며 두 번째 마디의 등반에 나선다. 경사가 심하고 로프가 이리저리 꺾여 장비를 회수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쿨척에 연결한 로스트애로우 한 개를 낚아채다가 너무 쉽게 빠지는 바람에 그대로 허공으로 튕겼다. 대롱거리며 발아래를 쳐다보니 투명한 파도가 왈칵 달려든다. 바위틈에 짓이겨 넣은 대형 납헤드 하나를 남겨두고 마지막 턱을 넘어섰다. 바위 모서리에는 로프 쓸림을 방지하기 위해 덕테이프를 잔뜩 붙여 놓았다.
두 번째 마디까지 로프를 고정하고 우리는 다시 지상으로 하강을 했다. 이 두 번째 마디 오버행의 하강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발아래 200미터의 고도감은 제동줄을 잡은 오른손을 뻐근하게 했다. 다시 밀림을 뚫고 텐트로 귀환. 벌써부터 내일 다시 뚫고 올라가야 할 이 밀림이 걱정된다. 이날 밤에도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이 송곳산을 밤새 비추었다.
어김없이 파도소리를 자명종 삼아 잠을 깬다. 하늘은 파랗고 시원한 태평양의 해풍이 불어온다. 다시 밀림을 뚫고 벽 밑으로 진출. 두 번째 마디까지 신속하게 고정로프를 따라 쥬마링으로 오른다. 두 번째 마디 오버행 쥬마링은 중노동이었다. 200미터의 허공에서 꼭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오징어처럼 두발을 모아 파닥이며 올라야 하는 이 짓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마디 종료지점에서 우리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바라본다. 바로 발 밑으로는 코끼리바위가 돌아앉았고, 그 코끼리의 엉덩이 부근에는 한무더기 코끼리 똥처럼 수중바위가 있다. 여전히 바다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셋째마디를 문성욱씨가 다시 자유등반으로 선등한다. 잡목 숲을 지나 거대한 디에드르의 왼편 검은벽을 따라 약 45미터 가량 등반한다. 몇 번의 망치질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악을 쓰는 완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분명 소리치는 사람은 악을 쓰고 있을테지만 들리는 소리는 겨우 속삭이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바벨탑에서의 모든 언어 소통은 혼돈을 겪는다. 우리는 지금 바벨탑을 오르는 것 아닌가!
불안하게 얹혀있는 낙석을 조심하며 세 번째 마디를 올라선 후 다시 임성묵씨가 넷째마디 등반에 나선다. 짧은 직벽을 자유등반으로 오른 후 이내 잡목 숲 사이로 사라진다. 오늘 목표는 여기까지다. 이제 이 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총 열마디 중 넷째 마디까지 로프를 고정했다. 내일은 이제 등반을 마쳐야 한다.
다시 무서운 두 번째 마디 오버행을 하강해서 그보다 더 힘겨운 밀림을 헤치고 텐트로 돌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징어잡이 배들이 수평선을 도열하고 있다. 하늘에는 초롱한 별빛이 가득하다. 다시 울렁이는 가슴을 달래며 하얗게 빛나는 송곳산을 바라본다.
낙석과 잡목숲에서 갈증에 시달리다
오늘은 이제 등반을 마쳐야 하는 날이다. 다른 날보다 서둘러 파도의 자명종이 울린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다시 밀림을 뚫고 벽 밑으로 진출. 세 번째의 발길이라 선지 훨씬 수월하다. 벽 밑에서 문성욱씨는 물통을 가져갈지 말지를 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더니 한 2시면 내려 올 수 있겠다며 한번 참아보자고 한다. 결국 이 때문에 그는 14시간 동안 같은 껌을 씹어야 했다.
어제까지 고정한 넷째 마디까지 신속하게 쥬마링을 한다. 세 번째 오르게 되는 둘째 마디 오버행의 쥬마링도 훨씬 수월하다. 네 번째 마디에서 세사람이 모인 시간은 아침 9시 반. 우리는 무척이나 서둘렀고, 계획대로 12시경이면 정상에 설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코끼리바위를 돌아가는 유람선이 몇 번 지나갈 무렵 우리는 7번째 마디 큰 나무에 다시 모였다. 잡목 숲을 헤치고 그 사이의 암벽구간을 지나야 하는 다섯, 여섯, 일곱 번째 마디에서 우리는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키 작은 관목들이 발목을 사정없이 움켜쥐었고, 그 사이사이 불안정하게 쌓여 있는 낙석의 위험은 12시까지 정상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계획을 여지없이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다. 시간은 벌써 오후 1시를 넘고 있었고, 우리는 이미 적지 않은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덟 번째 마디에서는 쉬워 보이는 왼편의 잡목 숲 대신 오른쪽 오버행을 넘어 등반하기로 했다. 잡목 숲을 지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임성묵씨가 나이프 하켄 하나와 캐멀롯 4호를 설치하고 오버행을 넘어섰다. 풍화가 심한 바위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험해 보인다.
아홉번째 마디를 오르다가는 녹슨 앵글하켄 하나를 발견했다. 누군가 이미 이 곳을 오른 것이다. 아마 북벽에 있는 왕골루트를 오르다가 길을 잘못 들었거나 다른 루트를 이용해 올랐던 이들이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열번째 마디를 오를 때는 역시 오래된 로스트애로우 한 개와 앵글하켄 하나를 더 발견했다.
열번째 마디를 올라 커다란 소나무에 확보를 했다. 눈앞으로는 망망한 태평양이 그대로 펼쳐진다. 둥글게 휘감긴 수평선은 비로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일깨운다. 세사람 모두 소나무에 모인 시각이 이미 오후 3시 반. 송곳산의 꼭지점은 숲길을 약 50미터 가량을 더 올라야 한다. 그 꼭지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가 굴러온 낙석 하나가 내 왼쪽 정강이와 오른쪽 발목의 복숭아뼈를 강타하고는 저 끝없는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만 내려가자!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는 금새 타협하고 말았다. 악착같이 정상으로 향하기에는 낙석의 위험이 너무 많았고, 관목 숲을 헤쳐나가기에는 너무 진이 빠졌다. 거기에는 누군가 이미 이곳으로 지나갔었다는 사실과 이제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갈증과 허기가 더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강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로프 회수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행여 빠져나오는 로프로 인해 낙석이 발생하지 않을까 내내 긴장해야 했다. 여섯째 마디를 하강할 무렵 송곳산에는 덮치듯 어둠이 밀려왔고, 그 어둠 속에서 마디 종료지점을 찾질 못해 한참을 헤맸다.
바다에는 언제나 처럼 오징어잡이 배들이 집어등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 불빛이 희미하게 송곳산을 비출 무렵 우리는 하나같이 헤드랜턴을 헬밋에 부착해 밝혔다. 이미 입안은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모양 바싹 말라버려 침조차 고이질 않았다. 아침부터 씹기 시작한 껌을 문성욱씨는 도저히 뱉질 못한다.
겨우 다섯째 마디의 종료지점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제 네 번째 마디의 종료지점을 찾을 수가 없다. 네 번째 마디의 종료지점에서부터는 바로 벽 구간이어서 더 이상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네 번째 마디의 종료지점을 찾기 위해 우리는 지금 두시간 동안 벽에 매달려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섯째 마디 종료지점의 바위틈에 매달린 채 자꾸만 말라가는 입으로 담배만 피워댄다. 조금 아래 가파른 관목 숲에서는 문성욱씨와 임성묵씨가 교대로 하강 지점을 찾기 위해 헤매고 있다. 결국 휴대전화를 이용해 베이스캠프에 있는 정종원 기자에게 하강 루트를 물어보지만 아래에서는 어둠에 휩싸인 벽이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몇 번을 하강했다가 다시 쥬마링으로 오르기를 교대로 반복한다. 나는 저 둘의 필사적인 노력을 바라보다가 우리가 지금 매달린 곳이 신의 권위에 도전한 인간의 가소로운 욕망이었던 바벨탑임을 홀연히 깨닫는다. 그래서 인간의 욕망처럼 휴대전화까지 동원한 언어소통이 혼돈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목마름과 혼돈 속의 하강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이곳에서 밤을 보내자면 아마 적지 않은 고통의 밤이 될 것이다. 추위나 어둠의 공포는 지금 이 지독한 갈증에 비하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닷가에서 보면 수평선에 일렬로 늘어선 것처럼 보이는 오징어잡이 배들이 사실은 바다 한가운데 제멋대로 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아차렸다. 그리고 발 아래 내려다보이는 평리 마을의 어느 집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너무 따스해 보이고 정겹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찾았다!"
희미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조금 전 한번만 더 내려가 보겠다며 잡목 사이로 하강했던 임성묵씨의 목소리다. 그의 어눌하고 더듬거리는 말투가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다. 이제 물을 마실 수 있다.
넷째 마디를 하강하자 임성묵씨는 그새 셋째 마디로 하강해 내려갔다. 이곳부터는 로프를 고정하고 다시 내일 올라와 회수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만큼 목이 말랐다.
셋째마디를 하강하자 임성묵씨가 무언가를 건넨다. 바로 복숭아 캔!
복숭아 한조각에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내 평생 다시 그런 맛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14시간만에 먹게 된 복숭아 1조각. 임성묵씨는 셋째마디에 도착하자마자 매달아 놓았던 홀백을 뒤져 복숭아 캔 1개를 찾아낸 것이다. 이어 내려온 문성욱씨도 복숭아 한조각에 감격하고 만다.
두 번째 마디 오버행 하강도 이제는 겁나지 않는다. 어둠이 고도에 따르는 공포감을 감춘 탓도 있지만 우리는 벌써 복숭아 한조각으로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날려 버린 뒤였다. 바닥에 닿자마자 정종원 기자가 떠 온 물을 2리터쯤 마신 것은 세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이때가 밤 10시 반이었다.
텐트로 돌아와 다시 한번 송곳산을 올려다본다. 송곳산은 여전히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등반 길잡이>
송곳산 북서벽(Ⅲ, A2+, 5.9) - 등반길이 400미터, 총 10마디
2인 1조 등반시 약 1박 2일 정도 걸린다. 중단과 상단 잡목지대 등에서 비박이 가능하다.
두 번째와 여덟 번째 마디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마디는 모두 자유등반이 가능하다. 보통 이 구간에서는 캠 1조, 캐멀롯 4호가 사용되며, 예비용으로 앵글 하켄 2개, 나이프하켄 2개, 로스트애로우 2개 정도를 휴대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 마디에서는 나이프 하켄 5개, 로스트애로우 5개, 앵글하켄 3개, 버드빅 3개, 헤드 1개, 캠 1조(0, 1호)가 필요하며 캠은 에어리언을 사용한다면 훨씬 용이할 것이다. 이 구간에는 대형 헤드 1개와 오버행 턱 너머에 앵글하켄 1개를 회수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여덟 번째 마디는 캠 1조면 등반이 가능하다. 이 구간에도 티타늄앵글 1개를 회수하지 않았다.
루트 전체에 걸쳐 낙석의 위험이 있다. 특히 3, 4, 9, 10째 마디에서 낙석의 가능성이 많으며 하강시 로프 회수에 조심해야 한다. 또 5, 6번째 마디에서 하강 루트를 찾는데 주의해야 한다.
두 번째 마디와 마지막 열번째 마디에서는 로프 끝을 고정해 놓은 후 등반해야 하강시 편하다.
북서벽 중앙의 대천장을 통과한다면 고난도 루트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송곳산 북동벽에는 1978년 8월 왕골산악회에서 개척한 왕골루트가 있으며, 이 루트를 울릉산악회(회장 전경중) 회원들은 매년 수차례 등반하고 있다. 송곳산에는 각 방면으로 다양한 거벽루트의 개척이 가능하다.
첫댓글 힘든 만큼 좋은 추억이 되겠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