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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雪嶽山1707.9m)
<공룡능선과 멀리 설악산 정상 대청봉>
국립공원 설악산은 내설악을 한계산(寒溪山)으로 불렀고 외설악을 설악산(雪嶽山)이라 불렀다. 그러던 것을 내, 외설악을 합쳐 총칭 설악산이라 부른다. 눈이 많아서 희게 보이고 희고 험한 바위산이라 해서 설악산이라 한다. 이 산은 휴전선 이남에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다. 가을과 겨울이 가장 일찍 오고 봄과 여름이 가장 늦다. 산의 규모가 크므로 크게 내설악, 외설악, 남설악 권으로 권역을 나눈다. 내설악은 대청봉에서 발원하여 가야동계곡, 수렴동계곡, 백담계곡으로 이어져 용대리까지 흘러내린다. 외설악은 대청봉에서 발원하여 천당폭포에서 비선대에 이르는 천불동계곡을 지나 설악동계곡으로 이어진다. 남설악은 오색천을 비롯한 한계령 장수대 일대를 말한다. 바위가 많은 큰 산으로 한번 오르면 산행시간이 비교적 많이 걸리므로 안전사고도 잦은 편이다. 외설악 천불동계곡은 한라산 탐라계곡과 지리산 칠선계곡에 이어 3대 계곡으로 알려져 있고, 남북분단으로 금강산을 쉽게 갈수 없을 때 설악산을 찾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 설악산은 대청봉을 중심으로 서북능선, 화채능선, 공룡능선, 용아장성능이 뻗어있고 내, 외설악에는 수다한 담, 소, 폭포 와 비선대(飛仙臺)와 같은 비경을 연출한다. 정상 대청봉 (大靑峰1707.9m)에 올라보면 이름 그대로 크게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동해물도 푸르다. 여기 서면 동쪽으로 속초시가지와 동해가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는 서북능선이 길게 뻗어있다. 남으로는 가까이 점봉산(點峰山1424m)이 건너다보이고 북으로는 멀리 금강산이 아련히 보인다. 설악산은 단풍의 1번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명산 중에 명산이라 계절에 관계없이 어느 때 찾아도 좋은 산이다.
大靑峰 日出과 雪嶽의 秘景
남설악 오색지구 남설악 탐방지원센터(해발 400m)다. 설악산과 점봉산 사이 한계령 동쪽에 위치한 집단시설지구로 오색약수, 오색온천이 있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오늘은 날씨가 맑아 새벽별을 보게 되었다. 청천 하늘에는 잔별도 많고 서늘한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오색하늘의 별들은 유난히 반짝인다. 여기서 정상 대청봉까지 5km 3시간 거리다. 03시 30분 아직 먼동이 트기 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설악산 정상으로 오른다. 일출을 보려면 가을철에는 6시10분 까지는 대청봉정상에 서야 되는데 그러려면 03시 이전에 산행을 시작해야 된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산행을 시작한데다 요즘 단풍철을 맞아 전국에서 운집한 주말 인파로 길이 막혀 마음만 급하다. 걷는 것이 쉬는 것이고 쉬는 것이 곧 걷는 것이다.
<대청봉 일출>
설악산 정상 대청봉(大靑峰1707,9m)이다. 06시25분, 2시간55분 만에 올랐다. 사람이 많아 앞지르기도 쉽지 않았는데 일출을 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오른 덕이다. 태풍에 버금가는 강한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영하의 날씨다. 10월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단풍이 드는 산이 설악산이기도 하지만 겨울 맛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산이 바로 설악산이기도 하다. 이곳에 서면 산정에서 바다 일출을 볼 수 있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수평선에는 해무현상이 있다. 정확히 몇 시에 해가 떴는지 해무가 가려 알 수가 없고 해무를 벗어나면서 해를 볼 수가 있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이 그리 흔치를 않다. 해가 긴 하절기에는 속초방향에서 뜨다가 해가 짧은 동절기에는 해가 남쪽으로 기울어져 양양방향에서 뜬다. 해무를 벗어나면서 수평선 저 멀리 해가 떴다. 영하의 차가운 태풍 같은 바람을 얻어맞으며 산에서 바다 일출을 보는 것이다. 동해 해안선이 그어지고 양양 남대천 물줄기가 아침 해에 반짝인다. 누가 이렇게 그림을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단 말인가?
<대청봉의 일출산행 인파 1>
눈을 들어 바라보면 이름 그대로 산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다. 동쪽으로 속초시가지와 동해가 내려다보이고, 서쪽으로 대청봉에서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 능선이 길게 보이고, 남으로 점봉산이 북으로 금강산이 아련히 보인다. 10월1일이면 단풍이 시작되는 이곳에 단풍산행을 왔어도 바람이 심한 대청봉은 이미 겨울이니 방한복, 방한모, 장갑을 착용해야한다. 등로에 흘린 땀도 순식간에 날아가고 찬 기운은 가슴속까지 파고든다. 10월1일이면 정상부엔 서리가 내리고 바람까지 심해 손이 얼어 카메라도 무용지물이 되는 수가 있다.
<대청봉의 일출산행 인파 2>
노산 이은상 (鷺山 李殷相1903~1982)선생은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편에서, 상청봉 (上靑峰;대청봉)정상에 돌담을 두르고 기와를 덮은 조그마한 제단이 있고, 단상의 위패에는 雪岳上峰國司大王佛神之位 (설악상봉국사대왕불신지위)라 썼고, 왼쪽에 작은 글로 八道山神中道神靈 (팔도산신중도신령) 오른쪽에 雪岳山神靈(설악산신령)이라 썼다 했다. 나는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문득 노산선생이 남긴 “祖國江山” 시를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아름다운 조국강산이 망가지지 않도록 전쟁을 통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祖國江山
겨레여 우리에겐 조국(祖國)이 있다. /내 사랑 바칠 곳은 오직 여기뿐
심장(心腸)의 더운피가 식을 때까지 /즐거이 이 강산(江山)을 노래 부르자!
<대청봉에서 내려다 본 중청봉과 중청대피소>
대청봉 일출을 마치고 중청대피소로 내려왔다. 대피소는 바람과 추위를 피해 들어간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빨리 내려가 희운각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그냥 지나쳤다. 중봉허리를 가로질러 소청봉(小靑峰1550m)갈림길이다. 내설악과 외설악의 분기점으로 이 길은 중청봉에서 소청봉을 지나 내설악 비경지대인 용아장성 능으로 이어진 능선에 있다. 여기서 서쪽 길은 내설악 소청대피소, 봉정암, 오세암, 영시암,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이고, 동쪽 길은 희운각 대피소를 지나 외설악 무너미재, 공룡릉선, 천불동계곡, 비선대,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내설악과 외설악의 갈림길이라 산악회 가이드 들이 안내를 하고 있다. 한 발짝 잘못 내 디디면 결과는 전혀 다르다.
<소청봉에서 내려다 본 천불동 계곡상류와 희운각 대피소>
노산선생은 설악행각에서 그는 일행들과 함께 상청봉(대청봉)에 오르기 위해 봉정암을 거처 이곳 소청봉쯤에 이르렀겠다. 적막(寂寞)에 동화(同化)되어 가던 길도 잊은 채 일행들은 앞서가고 혼자남아 앉아쉬면서 이런 시를 지어 불렀다.
높은 산 이 적막이 내 맘에 이리 좋아/ 가고 오고를 다 잊고 앉았는데/ 남들은 내 뜻을 모르고 소리 질러 부르더라/ 앞서고 뒷 서고를 다투지 말았어라/ 쫒는 이 없는 길을 바삐 간다, 자랑 마라/ 누구나 이를데 이르면 더는 가지 못하리라!
< 무너미재 주변풍경>
소청봉 갈림길에서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다. 눈앞에 공룡능선이 펼쳐지고 무너미 고개 너머로 천불동계곡이 보이고 멀리 속초시가지와 바다가 보인다. 내려서서 숲이 좋은 희운각(喜雲閣)대피소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 마다 희운선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을 수 없다. 대청봉에서 발원하는 천불동계곡이 대청봉에서 공룡능선과 화채능선이 갈라지는, 급경사 협곡 천당폭포 상단부 계곡을 죽음의 계곡이라 한다. 희운각 대피소 인근에 있는 계곡이다. 이곳에서 한국산악회소속 제1기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희말라야 원정을 앞두고 등반훈련 중 1969년 2월14일 막영지에서 눈사태로 10명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 이후 이와 같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경북 청도출신 서예가이며 사업가인 희운 최태묵 (喜雲 崔泰黙1920~1991)선생이 사재를 들여 이 자리에 대피소를 건립했다. 그런 연유로 희운 선생의 호를 따서 지금까지 이곳을 희운각 대피소라 칭한다. 이 대피소를 지나는 모든 등산객은 어디서 어디로 가든지 힘든 장거리 산행이라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름 없는 공룡능선의 봉우리>
희운각 대피소에서 100m 거리에 전망대가 있다. 천불동계곡 상류 비경지대를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내려와 100m 거리에 있는 무너미재다. 이곳은 천불동 계곡 비선대(飛仙臺 5,5km)로 내려가는 길과 공룡능선 마등령(馬登嶺4,9km)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안내판에는 어디로 가든지 4시간 거리니 공룡능선은 길이 험하고 미끄러워 안전사고가 잦아 주의를 요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 일행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배가 아픈 것이 문제다.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면서 계획대로라면 공룡능선을 타야 되고 아니면 단풍이 좋은 천불동계곡 비선대로 직행해야한다. 특별히 잘못 먹은 것이 없는지라 일시적이겠거니 했다. 금년은 비가 적게 내려 수분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단풍은 기대치에 못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계획대로 공룡능선 길을 택하기로 했다. 배가아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내 앞으로 공룡능선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바쁘다. 구봉 송익필 (龜奉 宋翼弼1534~1599)선생의 시가 생각나게 했다.
山行(산행)
山行忘坐坐忘行 (산행망좌좌망행) 걸어 갈 땐 앉기를 잊고 앉으면 가기를 잊어
歇馬松陰聽水聲 (헐마송음청수성) 말을 멈추고 솔 그늘에서 물소리를 듣노라
後我幾人先我去 (후아기인선아거) 내 뒤에 몇 명이나 앞질러 간다만
各歸其止又何爭 (각기기지우하쟁)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니 또 무엇을 다투리요.
<공룡능선 1275봉 풍경, 구조작업 중인 구조헬기>
무너미 재를 떠나 공룡능선 길로 접어들었다. 곧장 가파른 바위를 밧줄을 타고 오른다. 공룡능선은 이름그대로 공룡의 등처럼 험준한 모두 7개의 삐죽삐죽 솟은 첨봉을 오르내려야 비로소 마등령에 닿는다. 지형이 험하여 도중에 천불동으로 하산하는 비상탈출로도 없어 마등령까지 가야한다. 상당한 체력을 요하며 자칫 지치기 쉬워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은 대개 무너미 재에서 천불동으로 하산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말 “공룡능선을 타보지 않고는 설악산을 이야기 하지 말라!”한다. 공룡능선 첫 번째 봉우리를 지나 공룡능선 중간쯤에 해당하는 멋진 1275봉이다. 날씨가 좋아 동서로 어느 쪽을 바라보던지 비경이다. 웬만한 봉우리는 이름도 없다. 1275봉을 내려서니 오가는 사람들로 극심한 정체현상이 빚어졌다. 공룡능선에서 이런 현상은 처음이다. 방금 지나온 1275봉에 구조헬기가 떴다. 구조장면을 다 보도록 서서 기다려야 했다. 배도 아프고 길도 막혀 마음만 바빠졌다.
<공룡능선의 최고봉인 나한봉>
공룡능선에서 가장 높은 나한봉(羅漢峰1298m)이다. 여기서도 아직 두 개의봉우리를 넘어야한다. 넘고 넘어 이윽고 마등령(馬登嶺1249m)이다. 원래 산세가 험하여 손발이 닿도록 기어오른다는 뜻으로 마등령(摩登嶺)이었으나 지금은 말 등처럼 잘록하게 생겼다 해서 마등령(馬登嶺1249m)이라 고처 부르고 있다. 이곳은 내설악 오세암, 영시암, 백담사로 내려가는 고갯길이다. 여기서 다시 300m 를 올라가야 설악동으로 내려가는 마등령 삼거리가 있다. 마등령 동쪽으로 설악동(雪嶽洞) 6,5km, 서쪽으로 백담사(百潭寺) 8,5km, 남쪽으로 희운각(喜雲閣)대피소 5,1km, 북쪽으로 미시령(彌矢嶺767m) 10,7km 거리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바라 본 속초시가지와 앞바다>
마등령 삼거리다. 14시50분, 오늘 따라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이전에 3시간에 주파했던 기록을 깨고 6시간이나 걸렸다. 인파로 길이 막히고 배탈까지 나서 시간이 예정보다 배나 더 걸렸다. 16시에 산행종료이니 지금쯤 비선대까지 가 있어야 한다. 무너미 재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내려갔더라면 이미 산행을 끝냈을 게다. 비선대로 내려가면서 가다말고 배를 움켜쥐고 앉아 생각했다. 누가 남의 사정을 알겠나? 욕을 먹게 생겼다. 도저히 시간 내에 도착을 못하겠으니 차를 출발시켜버릴까? 아니면 욕을 먹더라도 기다리게 할까? 두 시간 거리는 남았는데 종료 시각이 임박하자 산행대장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어디냐고?” 안전사고는 아니니까 안심을 하면서도 난감해하는 목소리다. 저녁식사를 하고 6시간을 차를 타고 가야하니 나로 인하여 자칫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가게 생겼다. 금강굴 앞에 이르자 산그늘은 계곡을 덮었다. 금강암 바위벼랑에 있는 금강굴을 쳐다본다. 금강굴을 못가 본 것은 아니지만 오늘 계획도 금강굴을 다녀갈 생각 이었다. 시간도 부족하고 배탈이 나있어 아쉽게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금강굴(金剛窟)은 비선대 북편 금강암 바위 절벽에 있는 금강굴은 절벽아래 비선대가 내려다보이고 정면으로 천불동계곡이 한눈에 들어오고 설악산 정상 대청봉이 바라다 보인다. 여기서 어찌 먼저 다녀간 옛사람들의 시가 없을 소냐! 내설악 영시암(永矢庵)을 창건한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1653~1722)선생의 시를 오늘 새롭게 음미해 본다.
右飛僊層潭(우비선층담)
瓊臺俯金潭 (경대부금담) 경대에 올라앉아 금담(金潭)을 굽어 볼 제
右扇排靑峰 (우선배청봉) 오른쪽에 부채 살 같이 청봉(靑峰)이 늘어섰네
融時備衆妙 (융시비중묘) 융기되어 솟아올라 온갖 묘함 갖췄거니
豈惟勢奇壯 (기유세기장) 어찌 장하다 기이하다 말로만 그치리요
名山蠟屐遍 (명산랍극편) 명산을 찾아들어 이곳저곳 두루 밟아
始愜丹丘想 (시협단구상) 신선 사는 곳 생각에 비로소 유쾌하네
欲落金剛巖 (욕락금강암) 금강암(金剛岩)에 떨어질까 하다말고
驚吁更柱杖 (경우갱주장) 깜짝 놀라서 지팡이 고쳐 잡네!
<천불동계곡의 명소 비선대>
계곡을 건너 설악산에서 수석이 가장 빼어나 일천 가지 부처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천불동계곡(千佛洞 溪谷)의 명소 비선대(飛仙臺)다. 비선대 아래쪽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와선대(臥仙臺)에서 주변경치를 구경하던 마고선(麻姑仙)이 이곳에 와서 하늘로 올라 갔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곳은 선녀와 나뭇꾼의 전설이 있을 법한 설악산 최고의 명소다. 예부터 수다한 시인묵객들이 찾아들었고 바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여기서부터 와선대, 신흥사를 거쳐 설악동 소공원까지는 평탄한 길이라 대개 관광객들은 여기까지 다녀간다. 비선대 바위위에 새겨놓은 飛仙臺(비선대)는 누구의 글씨인지는 알 수 없으나, 大勝瀑布(대승폭포)에 새겨진 九天銀河(구천은하)의 필치와 동일인으로 보여 진다. 해가진지 오래라 사람들은 많이 남지 않았다.
신선이 주변경치를 구경하며 누웠다가 갔다는 와선대(臥仙臺)다. 비선대에서 걸어오면서도 암반을 타고 흐르는 옥같은 계곡물에 눈길이 갔다. 와선대에 이르니 시간이 있으면 나도 마고선처럼, 넓다란 반석위에 드러누워 주변경치를 감상하고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금강산을 쉽게 갈 수 없는 요즈음 설악산이 그 대역을 맡았다. 저 계곡물에다 세월의 흐름 속에 빛바랜 땀에 젖은 내 백발의 머리카락을 씻어보고 갔으면 좋겠다. 그래, 나는 지금 흐르는 저 물처럼 여기서 오래 머물 수는 없지만, 지나는 길에 흐르는 계곡물 소리로 장단을 맞춰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선생의 시 백발(白髮)을 흥얼거려 본다.
濯髮(탁발)
濯髮淸水落未收 (탁발청수락미수) 맑은 내에 머리감아 떨군 터럭 못 거두니
一莖飄向海東流 (일경표향해동류) 한 터럭 동해 향해 나부껴 흘러가리
蓬萊仙子如上見 (봉래선자여상견) 봉래산 신령이 이를 보게 될작시면
應笑人間有白髮 (응소인간유백발) 인간세상 백발 있음 깔깔 웃으리라!
연신 “지금 어디냐?”고 전화가 걸려 왔다. 일행은 속초시내 식당으로 이동했단다.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가야 한다. 우째 이런 일이!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곰곰이 생각하니 집에서도 잠잘 때 배 단속만은 철저히 해왔는데, 땀에 젖은 배를 잠바 문도 닫질 않고 체감온도 영하의 날씨에 강풍이 몰아치는 대청봉에서 30여분을 그렇게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거기다 예상 밖에 공룡능선에서 정체현상을 빚은 것이 겹쳐 오늘은 상당히 힘든 산행을 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을 다해 걷는다. 저항령(低項嶺) 계곡수를 건너고, 신흥사 일주문을 지나고, 권금성에 오르는 케이블카가 승강장이 있는 소공원을 지나 매표소에 도착하니, 예정보다 1시간 10분이나 늦은 17시10분이더라.
오늘 행로는 오색 남설악 탐방지원센타~대청봉~중청대피소~소청봉 갈림길~ 희운각 대피소~나한봉~마등령 갈림길~금강굴입구~비선대~와선대~신흥사~소공원~매표소. 19km, 13시간20분이다. (종전기록 10시간30분소요.)
2013년 10월 12일 토요일 맑음
첫댓글 멋진 일출과 공용능선의 장엄함 잘 봤습니다.
사진 감사해요.
산행기는 소설을 쓰는 것과 달라 발로 쓰는 것이라 하는데 배탈이 나서 많이 움직이지 못해 조금 부실하네요. 그래도 잘 보아주신 것 감사합니다.
설악산 비경, 잘 담아 올렸네요.
작년 이맘때 오색에서 대청 중청 봉정암 백담사 용대리....
전날밤 부산출발, 아침 4시 오색에서 등산 ~ 오후 4시까지 18km산행
정상에 진눈깨비와 세찬 바람에 추워서...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비교적 내설악 순탄한 길을 밟으셨군요.
대개 설악산행에서 공룡능선을 힘들어 합니다.
힘들고 험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은 그만큼 경치도 좋다는 이야기도 되겠지요.
저도 이번에 차가운 바람을 맞았지만 날씨가 맑아서 法泉님처럼 눈은 오지않았습니다.
내 외설악 어느쪽을 택하든지 장거리라 일기가 불순하면 더 힘들었겠지요.
설악산 산행도 힘든데
산행일기와 사진 잘 감상합니다.
산행 한시는 제맘과 똑같습니다.
가다가보면 앉는걸 잊고
앉아 쉬다가보면 더 쉬고 싶답니다.
제가 좀 느리기는해도 끈기는 많아서
안전만 보장된다면 도전하고 싶은데,
다른분께 피해를 줄까 엄두를 못냅니다.
성지순례로 불교단체에서 봉정암을 갔는데
제가 엄두를 못내서 랑군님 혼자갔으니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그 좋은 곳을 못갔으니 ......예전에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을 가봤어요.
사진과 산행일기 매우 감사합니다.
겨울산행은 장비와 보온에 신경쓰시면 좋겠습니다.
설악산은 산행을 시작했다 하면 장거리 산행이 되지요.
장비는 잘 갖추었으나 혹한기가 아니라서 가볍게 생각한게 화근었지요. 이제부터는 유비무환의 자세로 임할까 합니다.
저는 울산바위가 최고봉이였죠. 잘 감상했습니다.
울산바위는 높지는 않지만 참 아름답습니다.
시간이 없어 못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