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는 유순애, 최옥순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두 분 다 1925년생이니, 올해 91세가 되셨습니다. 최옥순 여사는 지난 월요일 돌아가셔서 수요일에 장례를 치렀고, 유순애 님은 거동이 불편하여 집에서 요양중입니다. 이 사진은 5년전 꽃피는 5월에 경기도 시흥의 물왕리 한 식당 앞에서 최옥순 님의 요청으로 찍었답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이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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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순 할머니는 정말 꽃을 좋아하셨습니다. 봄이 되어 궁동 집에 꽃이 피면, 일요일마다 한 아름씩 꺾어와서 우리들은 꽃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름엔 장미, 가을엔 코스모스를 꺾어왔습니다. 겨울에는 꽃집에서 새빨간 포인세티아를 사오셨습니다. 최근엔 몸이 좋지않아 인천의 따님이 사시는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꽃을 가져올 수 없게된 할머니는 수채화 꽃그림을 가져왔습니다.
최춘자. 이것이 호적에 있는 이름이랍니다. 하지만 '옥순이'라는 이름이 더 예쁩니다. 옥순은 강화에서 태어났는데, 가정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이화고녀를 졸업하여 아리따운 처녀가 되자, 듬직한 송인호 청년과 결혼을 합니다. 덕적에서 시집살이를 하며 살던 새댁은 남편을 따라 서울로 나오게 되었고, 아들 둘에 딸 넷을 둔 교수님의 사모님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박정수 할머니를 통해 송두용 선생님을 알게 되어 무교회인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교회로 가서 장로님이 되었지만, 옥순 부인은 초지일관 무교회 오류동집회를 지켰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큰 아들을 앞세웠고, 막내딸을 잃었습니다. 큰 며느리도 먼저 가고, 마지막에는 외손자도 잃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외손자의 사고는 모른 채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고난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항상 감사, 감사를 연달아 외치는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꽃이 피면 그것이 감사, 나뭇잎이 푸르러지면 또 그것이 감사, 단풍이 들면 아름다워서 감사, 눈이 오면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다고 감사.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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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암송을 하고 있습니다.(2009.12. 성탄예배후)
이 말씀은 최옥순 할머니의 성경말씀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되면, 시편 1편, 23편과 함께 꼭 외웠던 성경구절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어떻게 현재의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손에 아무 것도 잡힌 것이 없을지라도, 오직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 하나만으로 기뻐한다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지금도 이 말씀을 들려주시는 듯 합니다.
최옥순 님은 오류동 모임 식구들에게 정말 큰 의지가 되었던 분입니다. 집회의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다독여주고, 넘치는 사랑을 표현해 주신 분입니다. 집회에 나오는 어린 친구들, 문일이, 대훈이, 예리, 해리, 예훈이를 정말 좋아하셨는데, 80이 넘은 연세임에도 이 친구들을 위해 어린이 성경을 사서 매주 읽어주셔서 아이들 뿐 아니라 저희들도 그 시간을 참 좋아했던 생각이 납니다.
특히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또 하고 또 하고 하셨습니다. 봄이 되면 궁동의 꽃집으로 우리를 초대하여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꽃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셔서, 백일홍, 장미, 국화 등등 틈틈이 그린 수채화를 저희들에게 보여주시고, 선물도 해 주셨습니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며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감사, 감사를 외치시는 모습에 백충현 선생님께서, “그 감사는 일생이 평안해서 나오는 감사가 아니라, 힘든 고난 속에서 나온 감사이기에 값진 것이다.” 하시며,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보내야 했던 고난을 이야기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누구와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지요?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