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전기를 쓸 때에 같은 계통의 인물을 모아서 전기를 썼습니다. 백이와 숙제의 전기를 백이열전에, 관중과 안영의 전기는 관안열전에 실었습니다. 사기열전의 세번째 열전은 노자한비 열전입니다. 노자와 한비의 이름만 나오지만 사실은 노자, 장자, 신불해, 한비의 열전입니다. 그래서 노장신한 열전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 처음 이 노자한비 열전을 읽으면서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도가의 시조는 노자이고, 도가의 중시조 쯤 되는 사람이 장자입니다. 신불해는 법가이론을 정치에 활용해 처음으로 성공한 사람이고, 한비는 법가의 모든 이론을 집대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도가와 법가는 서로 상극의 이론입니다. 도가는 무위자연을 주장하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군왕의 권력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인 작은 나라에 소수의 사람들이 오손도손 사는 원시공동체를 지향하는 사상이지만, 법가는 군왕이 법과 권모술수로 신하와 백성을 엄격하게 지배하고 복종하게 해서 군왕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하게하여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합니다. 법가에서 말하는 법치는 가벼운 죄도 엄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백성들을 무자비하고 가혹한 동원체제에 복속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자한비 열전에서 사상이 전혀 다른 도가와 법가의 인물들을 묶어 소개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도가는 인의와 예의로 나라를 다스리자는 유가도 인위의 정치라고 비판하는데, 하물며 법으로 백성들을 옭아매어 철권통치를 하자는 법가는 말할 필요도 없이 반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마천은 법가의 사상이 노자의 무위자연 도덕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노자와 장자나 신불해와 한비는 모두 도덕이라는 관념에 근원을 두었지만, 노자가 가장 깊이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도가는 인위적인 문명을 거부해서 사람이 학문을 익히면 서로 간에 손익을 따지고 다툴뿐이어서 배움이 없는 것이 무위자연에 합치한다고 주장합니다. 법가는 이 주장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백성들이 쓸데없이 많이 배우면 괜히 정부에 대해 비판하고 반항하므로 우민화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가 시키는 것만 하고 다른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가가 주장한 것은 반문명의 무정부주의 사상인데, 법가는 이를 독재를 위한 우민화정책으로 바꿉니다.
법가에서 이 우민화 정책을 현실정치에서 실천하려고 했었습니다. 이사가 건의하여 실행한 진시황때의 분서정책입니다. 농사, 기술, 법률, 의료서적 등 실용서적만 남기고 비판의식을 키우는 모든 책을 불살라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때 제자백가의 수많은 책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사는 한비와 동문으로 한비가 집대성한 법가의 이론인 권모술수와 철권통치를 실제 정치에 유감없이 적용한 인물입니다.
도가에서 주장하는 무위자연은 인간본연의 성품으로 돌아가서 인위적인 행위를 하지말자는 일종의 자연친화적인 사상이지만, 법가는 군주는 신하만 감시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군주의 감시가 두려운 신하들이 열심히 일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상태를 무위자연이라고 주장합니다.
노자도덕경을 조금만 삐딱하게 읽으면 고단수의 권모술수를 설파하는 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라의 예리한 도구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노자 36장)"는 노자의 발언은 "권세는 남에게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 윗사람이 그 권세의 하나를 잃게 되면 신하는 백배나 그것을 이용한다.(한비자 내제설 하편)"는 한비의 말로 바뀌게 됩니다. "도는 비어 있고 고요하며 고독한 것"이라는 도가학파의 발언은 "인민의 군주도 역시 깊이 감추고 그 모습을 노출시켜서는 안된다."는 법가의 비밀주의로 발전합니다.
가장 평화지향적이고, 자연친화적이며 무정부적인 사상이 부국강병과 언론탄압, 우민정책, 가혹한 독재체제에 백성들을 동원하는 사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아니면 원래 노자의 사상에 그런 면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노자열전의 내용은 노자라고 알려진 사람이 많아서 진짜 노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지만, 무위로써 스스로를 교화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음으로써 스스로를 바르게 하여야 한다고 설파했다는 것입니다.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현실의 부귀나 권력에 관심이 없어 자유롭게 살았다는 내용이고, 신불해는 법가의 이론으로 정치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사마천은 한비의 열전을 가장 길게 기록해서 노장신한열전이 아니라 한비의 단독열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사기에 나오는 우정에 관한 사자성어는 관포지교와 문경지교가 있는데 극진한 우정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배신하는 내용도 여러번 나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한비와 이사의 이야기입니다.
한비와 이사는 순자에게 배웠는데, 이사는 자신이 한비만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비는 말을 더듬어서 말로 남을 설득하는데는 서툴렀지만, 글을 잘 써서 법가의 이론을 집대성한 저서를 남깁니다. 현재 '한비자'로 알려진 책입니다.
이사는 초나라 사람이지만 진시황(당시는 통일 전이므로 진왕 영정)에게 유세하여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전국 7웅 중에서 한나라가 가장 약한 나라였는데, 한비는 한나라의 왕족이어서 어떻게든 한나라를 바로 잡아 부국강병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지만, 한나라 왕과 신하들이 국정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없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이를 슬퍼해서 '고분', '오두', "내외저', '세림', '세난'편 등 10여만자의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진왕 영정이 한비의 책 '고분'과 '오두'를 읽고 감동해서 "과인은 이 사람과 사귈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말합니다. 진나라에서 상앙의 변법이 성공을 거둔 후에는 진나라에서는 법가의 정책이 주로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한비의 책은 법가를 집대성하여 논리가 치밀하고 문장이 기이하고 아름다워 그 예리함이 두려울 정도(중국의 학자 곽말약의 평가)라고 하니 진왕 영정이 반할 만 합니다. 한비를 잘 알고 있던 이사는 "이 책은 한비가 쓴 책"이라고 알려주었고, 진왕 영정은 한비를 진나라에 불러들이기 위해 갑자기 군대를 동원해서 한나라를 침공하니 한나라 왕은 침공을 멈추기 위해 한비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내게 됩니다.
진왕은 한비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직 신임하여 등용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사가 한비를 시기하여 비방하면서 "한비는 한나라 공자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왕께서 제후들을 병합하려 하시는데, 한비는 결국 한나라를 위해 일하고 진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께서 한비를 등용하지도 않으면서 오래 동안 붙잡았다가 돌려보내면 후환을 남기는 것이 되므로, 무리하게 법을 적용해서라도 죽이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하니 진왕은 옳게 생각하여 한비를 옥에 가두게 했는데, 이사는 진왕의 마음이 변할 것을 알고 미리 선수를 쳐서 한비에게 사약을 보내 자살하게 합니다. 진왕이 나중에 후회하고 사면하려 했으나 이미 한비는 죽고 난 뒤였습니다.
이사는 한비와 동문이지만 친구간의 우정은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이사의 인품이 조금 비루한 편입니다. 우정보다는 부귀영화나 권력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아니면 법가의 사상으로는 국가중대사에 우정은 별로 고려할만한 우선 순위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기열전에서 한비는 친구에게 배신당한 첫번째 사례입니다.
사마천은 한비가 유세의 어려움을 알아 일찌기 '세난(說難)'편을 자세하게 썼지만, 결국 진나라에서 죽어 자기 스스로는 '유세의 어려움'을 피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세난'편을 전부 실어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세난'편을 읽어보니, 결국 유세하는 사람은 군주의 마음에 영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군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서 군주의 역린을 건들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간언을 할 때는 군주의 얼굴빛에 개의치 않았으니, 이는 조정에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만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고치는 일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안영의 충성심을 볼 수도 없고, 양혜왕이 "선생이 우리나라에 오셨으니 우리 나라에 어떤 이익이 있을까요?"라고 묻자 "왜 이익을 말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꾸짖는 맹자의 기개도 없습니다. 자기의 사상과 군주의 생각이 맞지 않으면 그나라에서 벼슬을 하지 않으면 그뿐인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항상 군주가 기뻐하는 말만 골라서 하라고 하니 그야말로 노예의 철학 또는 간신들의 처세술이라고 할 만 합니다. 한비의 철학이 겨우 이 정도였으니 진나라에서 이사의 비방을 받아 죽은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