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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9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갈매기살
갈매기살 '가로로 막은 살'의 '갈막이'가 변해 바다의 물새 '갈매기'와는 관계 없어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햇볕은 따갑지만, 바람이 솔솔 부는 게 조금은 초가을 냄새가 난다. 아버지와 함께 백화점 일을 보고 나온 혁이는 배가 출출해서 음식점에 들르자고 했다. 아버지는 서양 음식이나 일본 음식보다는 우리 음식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한식 전문'이라고 간판이 붙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음식 이름들이 적힌 차림표가 붙어 있었다. "혁이야, 뭘 먹을래?" 아버지니가 물으셨다. 차림표에 적힌 음식 이름들은 많은데, 그 중 몇 가지밖에 몰라 망서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갈매기살'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그러지 않아도 처음 보는 음식 이름이어서 그게 어떨까 했던 참에 처음 먹어 보는 고기이고 해서 좋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주문했다. "아빠, 갈매기고기도 먹나요?" "아하, 갈매기살이라니까 바다에 날아다니는 그 가인 줄 아는가보구나." "갈매기살이 '갈매기의 살'이란 뜻이 아닌가요?" "아니지. 돼지고기에서 '갈매기살'이라는 있거든." 아버지는 '갈매기'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를 차근차근 말씀해 주셨다.
요즘에 와선 새로운 음식들도 많이 나오고 그에 따라 이름들도 생소한 것이 많아졌다. '갈매기'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언뜻 들으면 이 이름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로 알아듣기가 아주 쉽다. 그래서, '갈매기고기'를 먹으러 가자 하면 전에는 갈매기(새)의 고기 요리인 줄로 아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갈매기고기를 거의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요즘에 와서는 이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도 꽤 많이 늘어났다. 서울의 마포나 성남시 여수동 일대에 이러한 음식점들이 꽤 많다. '갈매기'의 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갈매기고기'인가? 사람이나 모든 짐승들에겐 몸 속에 횡격막이란 것이 있다. 숨을 쉴 때 허파를 죄었다 풀었다 하면서 숨쉬기운동(호흡작용)을 돕는 얇은 힘살막이다. 이 힘살막을 토박이말로는 '갈막이'라 했다. 허파 아래쪽에 가로지른 막이라 해서 원래 '가로막이'라 했던 이 말은 '갈막이(갈마기)'로 줄고 이것은 다시 '갈매기'로도 옮겨갔다. 일부 지방에선 '간매기'라고도 했는데, 이것은 간을 막았다는 뜻의 '간막이'가 변한 말로 보인다. 20여 년 전까지도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자연과 생물 교과서에 인체의 그림에서 이 얇은 막이 '가로막'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를 '횡격막'이라고 써 놓고 있다. '갈매기'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정착된 말이다. 가로막이(가로마기)>갈마기>갈매기 그 갈매기(횡격막)의 살이 바로 '갈매기살'이고, 갈매기살로 요리한 고기가 바로 '갈매기고기'인데, 문제는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연상케 돼서 이름에 혼동을 안겨 주는 점이다. 사실, 횡격막이란 말도 한자 뜻 그대로 풀면 '가로질러 막은 막'의 뜻이니 '가로막'이란 말은 누가 보아도 그 구실에 잘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가 있다. 알고 보면 '갈매기'라는 것은 어느 짐승들의 몸에나 있게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갈매기살'이라고 하면 대개는 돼지의 가로막(횡격막) 살로 통한다. '갈매기고기'라고 해도 역시 돼지 가로막의 살로 요리한 고기로 통한다. 그만큼 돼지의 가로막 살이 요리로 중요하게 이용되기 때문이다. 전에는 갈매기고기란 것이 없었다. 도살장에서 이 부위는 따로 처리되어 짐승의 먹이 정도로나 씌었다고 한다. 돼지 한 마리에서 이 부위는 400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데다가 그나마 질깃질깃한 껍질로 덮여 있어 요리로 쓰질 않았다. 그런데, 한 여남은 해 전에 누군가에 의해 요리로 개발되고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 갈매기구이는 날로 인기를 더해 갔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가로막'은 '가로'와 '막'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가로'라는 말은 '갈'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의 말에 '갈래', '가락', '갈림길' 등의 말이 모두 이 '갈'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원래 '옆으로 가닥져 나온'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갈'은 그 뿌리말이 '갇'이다. 그래서 '가닥', '가다귀' 같은 말이 나왔다. '가다귀'는 참나무 따위의 잔 가지이다. 지금의 '가지(나뭇가지)'란 말도 원래는 '갇'에 '-이'(접미사)가 붙어서된 '갇이'이다. 갇+이=갇이>가디>가지 횡격막의 순 우리말인 '가로막'도 알고 보면 '갇'이 그 뿌리될 수 있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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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살 -'갈매기고기의 '갈매기'는 '횡격막'의 뜻-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한 여남은 해 전의 일이다. 퇴근을 하고 현관을 막 나섰는데, 누가 어깨를 툭 쳤다. "아, 배선생. 오랜만요." 돌아보니, 옛날의 출판사 있을 때 한 사무실에 있었던 친구가 아니던가? 너무나 반가워서 우리 둘은 우선 근처의 다방엘 들어가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다. 옛 얘기로 조금 시간을 보내다보니 저녁 시간도 늦고 해서 식사나 같이 하자며 밖으로 나왔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마포 거리는 꽤 붐볐다. 어느 것으로 배를 채울까 하다가 내가 제안을 했다. "이 동넨 갈매기고기 유명한데, 그것 괜찮을까?" 이 소리에 친구의 눈이 둥그래졌다. "뭐? 갈매기고기? 갈매기의 고기로 만든 요린가?" 이 친구는 '갈매기고기'라니까 이것을 새 종류의 갈매기로 만든 고기로 알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이 고기를 접해 보지 못했던 사람 중에는 이 친구처럼 생각했던 이가 적지 않았다. □ 갈매기의 고기로 안 사람 많아 요즘에 와서도 새로운 음식들이 많이 나오고, 그에 따라 이름들도 생소한 것이 많아졌다. '갈매기'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언뜻 들으면 이 이름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로 알아듣기가 아주 쉽다. '갈매기고기'는 분명히 갈매기의 고기이고, 그 '갈매기'라면 대개 물새 중의 갈매기를 연상치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갈매기고기를 거의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요즘에 와서는 이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도 꽤 많이 늘어났다. 서울의 마포나 성남시 여수동 일대에 이러한 음식점들이 꽤 많은데, 이들 음식점에는 저마다 자기네가 처음 시작한 것이라는 듯 '갈매기 본토', '갈매기 원조' 등의 이름을 달고 손님들을 끌고 있다. 그런데, '갈매기'의 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갈매기고기'인가? 사람이나 모든 짐승들에겐 몸 속에 횡격막(橫膈膜)이란 것이 있다. 숨을 쉴 때 허파를 죄었다 풀었다 하면서 숨쉬기운동(호흡작용)을 돕는 적당한 두께의 힘살막이다. 이 힘살막을 토박이말로는 '갈막이' 또는 '간마기'라 했다. '갈마기'는 허파 아래쪽에 가로지른 막이라 해서 원래 '가로막이'라고 했던 것이 변한 말이고, '간막이'는 간의 아래쪽을 막고 있다고 해서 된 말이다. 일부 지방에선 '간매기'라고도 했다. '가로마기'는 '갈막이(갈마기)'로 줄고, 이것은 다시 '갈매기'로도 옮겨갔다. □ 원래의 말은 '가로막'이었고 약 20년 전까지도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자연과 생물 교과서에 인체 내부의 그림에서 이 막(횡격막)이 '가로막'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언제부터인지 이 말이 슬그머니 교과서에서 빠지고 '횡격막'으로 옮겨 갔다. '갈매기'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정착된 말이다. 가로막이(가로마기)>갈마기>갈매기 그 갈매기(횡격막)의 살이 바로 '갈매기살'이고, 갈매기살로 요리한 고기가 바로 '갈매기고기'인데, 문제는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연상케 돼서 이름에 혼동을 안겨 주는 점이다. 사실, 횡격막이란 말도 한자 뜻 그대로 풀면 '가로질러 막은 막'의 뜻이니 '가로막'이란 말은 누가 보아도 그 구실에 잘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가 있다. '갈매기살'이라고 하면 대개는 돼지의 가로막(횡격막) 살로 통한다. '갈매기고기'라고 해도 역시 돼지 가로막의 살로 요리한 고기로 안다. 그만큼 돼지의 가로막 살은 요리로 주로 이용된다. 예전에는 갈매기고기란 것이 없었다. 도살장에서 이 부위는 따로 처리되어 짐승의 먹이 정도로나 씌었다고 한다. 돼지 한 마리에서 이 부위는 4k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데다가 그나마 질깃질깃한 껍질로 덮여 있어 요리가 되리라고 생각질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 여남은 해 전에 누군가가 그 힘살막의 얇은 막을 벗겨 양념에 절여 불판에 구워 '갈매기살구이'라는 요리로 개발했는데, 맛이 괜찮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 음식은 날로 인기를 더해 갔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가로막'은 '가로'와 '막'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가로'라는 말은 '갈'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의 말에 '갈래', '가락', '갈림길' 등의 말이 모두 이 '갈'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원래 '옆으로 가닥져 나온'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갈'은 그 조어(祖語)가 '갇'이다. 그래서 '가닥', '가다귀' 같은 말이 나왔다. '가다귀'는 참나무 따위의 잔 가지이다. 지금의 '가지(나뭇가지)'란 말도 원래는 '갇'에 '-이'(접미사)가 붙어서된 '갇이'이다. 갇+이=갇이>가디>가지 따라서, 횡격막의 순 우리말인 '가로막'도 알고 보면 '갇'이 그 뿌리랄 수 있다. (글. 배우리) 이 말은 뒤에 꼭 '떼다'란 말이 따르는 말이다. 따라서, '시치미를 한다'든지,'시치미를 간다'든지 하는 말은 쓸 수가 없다. (글. 배우리)
0001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군밤 `군고구마
군밤과 군고구마 '군'은 '구운'이 줄어서 된 말 '군참새-군만두-군오징어'의 '군'도 마찬가지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정월로 접어드니, 바람도 제법 차가웠다. 역시 겨울의 한고비는 정월인가 싶었다.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은이는 거실에서 오빠가 부르는 소리에 연필을 놓고 나가 보았다. "은이야, 아빠가 회사에서 오시는 길에 동네 입구에서 군밤을 사 오셨단다." "군밤?" "응, 군밤. 아직 뜨끈뜨끈해. 껍질을 까다가 손 델라. 식거든 까 먹으렴." "식기까지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어. 입에 군침이 도는데---." "군밤 앞에서 군침이라? 삶은 밤이었다면 삶은 침이 돌았겠구나. 하하하." 오빠는 군밤을 손에 들고 호호 불며 껍질을 까 나가는 은이를 보고 놀려댔다. "군밤과 군침. 똑같이 '군'자가 들어갔는데, 오빠, 설마 그 '군'이 서로 같은 뜻은 아니겠지." "물론이지." "그러면, '군밤'에서의 '군'은 어떤 뜻이고, '군침'에서의 '군'은 무슨 뜻일까?" "알 것도 같은데, 그 뜻을 설명하라면 내가 자신 있게 할 수는 없지. 우리 군밤 먹으면서 아빠한테 자세하게 이야기 좀 듣자." 은이는 오빠와 함께 아버지가 계신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도 신문지 위에 군밤 몇 톨을 놓고 까서 들고 계셨다. "허허허. 군밤 사다 줬더니 군밤 이야기까지 해 달라? 어떻든 너희들 맛있게 먹는데, 군밤 이야기가 맛있을까 모르겠다. 아무튼 편히들 앉아라. 아는 대로 설명을 해 주마." 아버지는 껍질 깐 군밤을 하나 입에 털어 넣고 나시더니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우리 인간이 불을 발견하기 이전에는 음식을 익히지 못하고 날로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식물의 열매 같은 것은 불에 익혀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불이 모든 음식에 다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의 발견으로 인간의 식생활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이 불을 이용할 줄 알게 된 것은 화산 때문이라는 학자들의 견해가 많다. 화산으로 인해 숲이 불타고 난 자리에 불에 탄 짐승의 시체를 먹고 보니 타지 않은 짐승의 고기에 비해 맛이 훨씬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래 보관할 수 있어서 두고 먹는 데도 편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래서, 인류가 가장 먼저 조리해 먹은 음식은 '구운 음식'이었을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된 이 후부터 음식 조리법들이 하나하나 개발되기 시작했고, 저장 기술도 크게 달라졌다. 음식을 불에 익히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나, 삶는 방법과 굽는 방법이 그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나무 열매 중에는 불에 익혀 먹어야 맛이 나는 것이 있다. 은행, 밤, 도토리 같은 것이 그것이다. 밤을 불에 구웠다면, 그것은 '구운 밤'이 될 것이다. 이 '구운 밤'이란 말이 줄어 '군밤'이 되었다. '군고구마', '군오징어', '군참새'의 '군'도 모두 '구운'이란 말에서 나온 것이다. '구운'의 으뜸꼴(기본형)은 '굽다'인데, 이 말의 뜻은 국어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나와 있다. ·굽다 ① 불에 익히다. ②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들다. ③ 굳히기 위하여 가마에 넣고 불을 때다. ④ 사진의 음화를 감광지에 옮기어 인화하다. 밤이나 고구마, 오징어 같은 것을 불에 굽는 일은 위 ①의 뜻에 해당하고, 불을 이용해 숯을 만드는 것은 위 ②의 뜻에 해당하며, 벽돌, 도자기, 옹기 따위를 불을 이용해 만든다면 위 ③의 뜻에 해당한다. ④는 사진을 인화할 때 쓰는 말이다. 여기서의 '굽다'라는 말은 움직씨(동사)인데, '굽다'가 그림씨(형용사)로 쓰이는 수도 있다. "할머니는 등이 굽다." 위와 같이 한쪽으로 휘어져 있다는 뜻의 '굽다'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움직씨의 '굽다'는 활용을 할 때 '굽고', '굽는', '굽지', '굽던'처럼 '굽'이 그대로 따라 다니는 수도 있지만, '굽'의 'ㅂ'이 떨어져 나가는 수 있다. '구워', '구우니', '구운' 등이 그렇다. 움직씨에서 'ㅂ'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눕다→누워, 누우니, 누운 ·돕다→도와, 도우니, 도운 ·줍다→주워, 주우니, 주운 어떻든 '구운 밤'이 줄어 '군밤'이 되었고, '구운 고구마'가 줄어 '군고구마'가 되었다. 그러나, '군침', '군소리' 등에서의 '군'은 '굽다'라는 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군'이라는 낱말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풀이로 나와 있다. ·군; 쓸데없는. '가외'의 뜻을 나타내는 말. 따라서, '군말'은 '쓸데없는 말'의 뜻이고, '군식구'는 '가외(본래 있어야 할 것이 아닌) 식구'의 뜻이다. '군것질', '군더더기', '군말', '군소리', '군손질', '군일', '군짓', '군침' 등에서의 '군'이 모두 같은 뜻을 안고 있다. 안 써도 좋은 데에 쓰는 돈은 '군돈'이고, 자고 일어나서 윗머리만 대강 빗는 빗질은 '군빗질'인데, 역시 같은 경우이다.
군밤에 대한 일화가 있다. 어느 가을날, 조선의 끝임금인 순종이 홀로 창경궁 뒤 정원인 비원을 거닐고 있었다. 때는 그 아버지 고종 임금이 세상을 뜬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순종 임금은 상복을 입고 있던 터였다. 순종 임금은 밤나무 밑을 지나다가 알밤 한 톨을 주워 들고 손바닥에 받쳐들더니 흐느껴 울었다. 고종 임금이 살았을 때는 고종과 순종은 자주 비원을 거닐었었다. 알밤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고종은 이를 주워다가 화로에 구워 재를 털고 아들 순종에게 먹이곤 했었다. 순종이 자란 후에는 비원에서 주운 밤을 손수 구워다가 임금인 아버지 고종에게 바치길 일삼았는데, 고종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아들 순종이 갖다 주는 '군밤'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순종은 고종이 돌아간 후에는 그 영전에 다른 과일과 함께 군밤을 받쳐 올렸다고 한다. 제사 때 꼭 군밤이 놓이지 않으면 제를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순종이 비원에서 알밤 한 톨을 주워 들고 흐느껴 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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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07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올벼 `올고구마
올벼와 올고구마 '올'은 열매 익은 정도가 빠름을 나타내는 말 올감자, 올오이, 올벼, 올밤 등이 그 보기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 참깨 들깨 거둔 후에 중오려 타작하고, 담뱃줄 녹두 말을 아쉬워 작전하랴? 장 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닛지 마소. 북어쾌 젓조기로 츄셕 명일 쇠어 보세. 신도주 오려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션산에 졔물하고 니웃 집 나눠 먹세. '
이 노래는 〈농가월령가〉8월령에 나오는 대목을 조금 고쳐 옮긴 것이다. 이 노래를 지금의 말로 쉽게 풀어 보면 이러하다.
참깨 들깨 거둔 후에 올벼 일찍 타작하고, 담배 몇 잎, 녹두 몇 말을 아쉽지만 팔아야지? 장 구경도 하려니와 흥정할 것 잊지 마소. 북어 한 쾌 젓조기로 추석 명절 쇠어 보세. 햅쌀 술 올벼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선산에 제물로 바치고 이웃 집이랑 나눠 먹세.
이 노래에서 참깨와 들깨를 거둔 후에 '중오려'를 타작한다고 했다. '중오려'는 벼의 일종으로, '꽤 일찍 익는 벼'를 뜻한다. 여기서의 '중'은 한자의 '중(中)'이고 '오려'는 '올벼'가 변한 말이다. 올벼>올여>오려 이 노래 속엔 또 '오려송편'이란 말도 있다. 이것은 '일찍 익는 올벼로 빚은 송편'을 뜻한다. 역시 '올벼'를 '오려'라 했다. 우리말에 열매 같은 것이 익는 정도가 이르게 됨을 나타내는 말로 '올'이라는 앞가지(접두사)가 있다. 그래서, '올밤'이라고 하면 이르게 익는 밤을 뜻하고, '올콩'이라고 하면 이르게 익는 콩을 뜻하며, '올팥'이라고 하면 '이르게 익은 팥'을 말한다. '올무'라는 말은 '일찍 자란 무'를 뜻한다. 마찬가지로 '올벼'라고 하면 이르게 익는 벼를 뜻한다. 이 '올벼'의 상대되는 말이 '늦벼'로서 늦게 익는 벼를 뜻하고 있다. '올되다'라는 말이 있다. 올되다= ①(열매가) 제철보다 일찍 익다. ②나이에 비하여 철이 일찍 들다. "올해는 날씨가 늘 좋아서였는지 열매들이 올되어 나오고 있어." 열매들이 올되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열매들이 모두 일찍 익어 시중에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의 '올'은 '일찍'이라는 말로 옮겨 풀어도 그렇게 괜찮을 것이다. "그 아이는 올돼서 벌써 부모님께 효도할 줄을 아는구먼." 여기서 '올돼'라는 말은 '일찍 철이 들어'란 듯이 된다. 역시 '올'을 '일찍'이라고 풀어도 그리 큰 무리가 없는 말이다. '올되다'란 말은 '일되다'나 '오되다'란 말로 쓰기도 한다. 즉, '올돼서' 대신 '일돼서'나 '오돼서'로 쓸 수도 있다. '올되다'의 반대되는 말은 '늦되다'이다. "애가 늦돼서(발달 과정이 늦어서) 아직 말을 잘 하지 못해." "올해는 열매들이 모두 늦되서(늦게 익어서) 아직 참외가 시중에 안 나왔네." '올'과 '늦'이 서로 상대적 의미로 쓰이는 예는 많다. ·올감자-늦감자 ·올밤-늦밤 ·올콩-늦콩 ·올벼-늦벼 '올밤'이나 '올벼' 같은 말은 옛날부터 씌어 왔던 말이다. ·'올밤 벙근 가지'(올밤이 벌어진 가지) ·'올벼 고개 속고 열무수 살지거다'(올벼는 고개 수그리고 열무는 살이 쪘다) 그런데, '올'이 '올다'는 말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옛말의 뜻으로는 '올다'가 '오르다'나 '온전하다'의 뜻으로만 나오는데, 이 말은 '이른'의 뜻인 '올'과는 뜻이 사뭇 다르다. '금년'이라는 뜻의 '올해'라는 말에서 이 '올'이라는 말이 '이른'의 뜻인 '올'과 친척말이 되지 않나 싶다. '오라비'란 말은 '오빠'를 높여 부르는 말인데, 이 말은 '올'과 '아비'가 합쳐진 '올아비'에서 나온 것이다. 올+아비=올아비 올아비>오라비(오래비) '압'은 원래 '남자'를 뜻한 말일 듯한데, 이 말에서 '아비'가 나오고 '아버지'가 나왔다. 그렇다면 '오라비(올아비)'는 '아버지가 될 사람'의 뜻이 아닐까? (글. 배우리) | |
9608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웃으며 배워 볼까요 `달걀(닭알)
웃으며 배워 볼까요 삶은 계란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사람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는 철학자가 있었다. '삶은……?' '삶은……?' '삶은……?' 하면서 깊이 생각해 봤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그 답을 얻어 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포장집에서 술을 먹다가 그 곳에 써 붙인 차림표를 보고 '삶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쉽게 얻어 낼 수 있었다. 그 답은 바로 '계란'이었다. '삶은--?' 이것에 대한 답이 '계란'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거기에는 '삶은 계란'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기 때문이다. (글. 배우리)
* 북한에선 '삶은 계란'이 '찐닭알' '계란'이라는 말은 한자로 '닭의 알'이라는 뜻이다. 이를 '겨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말이다. 그리고, '계란'보다는 '달걀'이라는 순 우리말이 더 좋다. '달걀'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줄어 된 말이다. 닭의알>달긔알>달기알>달걀 북한에서는 '달걀'을 '닭알'이라고 한다. 남한 말과 조금 차이가 있으나, 그 말이 나온 바탕은 똑같다. '삶은달걀'은 북한에서 '찐닭알'이라고 한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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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1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우리말 교실 `떡 이름
떡 이름 동짓달 '새알심'에 섣달의 '골무떡' 떡의 중요성 일깨우는 속담도 많고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겨울 방학이면 할머니는 꼭 서울로 올라오셨다. 하얀이는 할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좋았다. 오늘도 하얀이는 아침을 먹자마자 할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가 부르셨다. "하얀아, 할머니 방에 들어가려거든 이것 좀 갖다 드려라. 떡이란다." 할머니는 떡을 퍽 좋아하셨다. 그런데, 할머니께 갖다 드릴 떡을 보니, 하얀이도 보지 못했던 떡이었다. 할머니는 방에서 텔레비젼을 보시고 계셨다. "할머니, 이것 어머니가 갖다 드리래요. 떡 잡수셔요." "오냐, 어서 오너라. 하얀이도 같이 들자꾸나." "예, 할머니, 그런데 이건 무슨 떡이예요?" "어디 보자. 응, 이건 '골무떡'이라는 건데, 옛날부터 음력 섣달에 많이 먹던 떡이지." "할머니, 오늘은 떡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오냐, 그러자꾸나. 그런데, 떡 이야기를 할 때는 떡을 들면서 듣는 게 제격 아니겠니? 떡 좀 들며서 내 이야길 듣거라." 하얀이는 떡 한 조각을 들고 할머니 앞으로 다가앉았다. 할머니도 떡을 드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우리 나라에서 옛날부터 떡, 엿, 과일 등의 군것질을 즐겼다. 그 중에서도 특히 떡을 즐겼다. 떡은 계절에 따라 달랐고, 잔치나 제사 또는 명절 때는 이 떡이 빠지지 않았다. 요즘 어린이들은 케이크나 피자 같은 서양 음식을 좋아하지만, 옛날에는 생일 축하 음식으로도 그저 떡이 최고였다. '떡 들어가는 배 따로 있고, 밥 들어가는 배 따로 있다'는 농담이 나올 만큼 우리 나라 사람들은 떡을 좋아했다. 지금도 잔치집 피로연에 가면, 서양식이든 우리 나라 전통상 차림이든 대개 떡 한 접시가 곁들여 나오는데, 여기서의 떡은 그저 군것질처럼 먹게 돼 있다. 예부터 서울에선 '남촌은 술, 북촌은 떡'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것은 옛날 서울 사람들은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대개 그 북쪽에는 잘 사는 벼슬아치들이, 남쪽(주로 남산 밑)에는 벼슬 없이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북쪽에선 떡을 자주 해 먹고, 남쪽에선 술이나 들면서 세상을 한탄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를 한자말로 할 때는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고 하였다. 지금 서울 종로 낙원동 일대에 떡집들이 많은 것은 그 일대에 양반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떡은 우선 그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팥떡', '콩떡', '호박떡', '무우떡', '밀개떡', '꿀편' 등이 모두 그 재료에 따른 이름이다. 우리 나라엔 여러 가지 떡이 발달했는데, 지방에 따라 이름난 떡이 따로 있었다. 예를 들면, 강원도에선 금강산의 석이(石餌. 돌버섯)를 넣어 만든 떡인 '꿀편'이 이름났고, 황해도 연백 지방에서는 찹쌀이 좋아 이것으로 만든 '인절미'가 이름났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귀리로 만든 떡인 '절편'이 잘 알려져 있었다. 인절미는 지금에 와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너무나 찰기가 있어 서로 끌어당겨 떼어 먹는다고 해서 '끌인(引)'자, '자를절(切))'자의 인절이 들어간 떡 이름이다. 옛날엔 '인절병(引切餠)'이라고도 했는데, 이 떡은 친한 사람끼리 서로의 끈끈한 정을 다짐할 때 많이 먹었다. 떡은 철이나 명절에 따라서도 그 재료나 이름이 달랐는데, 서울 지방에 전래돼 오는 '떡타령'이라는 민요에는 다음과 같은 떡 이름이 나온다.
정월 보름엔 '달떡', 이월 한식엔 '솔떡', 삼월 삼짇날엔 '쑥떡', 사월 초파일엔 '느티떡', 오월 단오날엔 '수리치떡', 유월 유두날엔 '밀전병', 칠월 칠석엔 '수단(水團)', 팔월 한가위엔 '오려송편', 구월 중구일엔 '국화떡', 시월 상달엔 '무시루떡', 동짓달엔 '새알심', 섣달에는 '골무떡'
위에서 '솔떡'이란, 솔잎을 얹어 만든 떡인 송편을 말하는데, 한자로는 '송병(松餠)'이라고 했다. '밀전병'은 밀가루로 만든, 빈대떡처럼 생긴 떡을 말하는데, 식량 사정이 아주 어려운 농촌에서 음력 5.6월쯤 잘 여물지도 않은 밀이삭을 따서 맷돌에 둘둘 갈아 적당히 부쳐 먹던 떡이었다. '오려송편'은 '오리송편', '오례송편'이라고도 이는 새로 거둔 쌀로 만드는 떡이라고 해서 이 이름이 나온 것이다. 여기서, '오려'라는 것은 '올'에서 나온 말로, 이 말은 '일찍'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올벼'라고 하면, '이른 벼'라는 뜻을 갖는데, 이 올벼로 만든 송편이 오려송편이다. '새알심'은 '새알심팥죽'을 말한다. 새알 모양의 작고 둥근 쌀떡을 넣은 팥죽이다. 행사용 떡에는 결혼식이나 회갑용에 쓰이는 '약식', '인절미', '송편', '개피떡', 아기의 백일 잔치상에 놓는 '백설기', 돌 잔치에 내는 '무지개떡', '오색 경단'이 있다. 축하식엔 케크 대신 '등대떡'이 쓰이기도 한다. 가정 평화를 의미할 때는 '갖은떡'이라는 것이, 어른 공경을 의미할 때는 '두텁떡', 갓 결혼한 여자가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시댁에 방문할 때는 '신행떡'이라는 것을 마련하기도 한다. 떡은 나라에 따라서도 주재료가 다르다. 우리 나라는 쌀이 주재료이고, 일본은 찹쌀이 주재료이며, 중국은 밀가루가 주재료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 떡들이 다양하지 않고, '모찌(찹쌀떡)'라는 것이 좀 알려진 정도이다. 중국에서도 우리 나라와 같은 다양한 모양의 떡을 볼 수 없다. 떡은 예부터 우리 나라 사람이 많이 이용해 온 음식이어서 이에 관한 속담도 많다. '개떡도 끼 에워 먹는다'란 속담이 있는데, 이는 떡이라면 어느 것이나 좋다는 뜻이다. '아주머니 떡도 싸야 사 먹는다'는 속담도 떡의 중요성을 나타낸 것이다. 남은 생각도 않는데, 남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한다는 뜻의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떡방아 소리 듣고 김칫국 찾는다'가 있다.
"어디, 떡 이야기 들을 만했냐?" "아녜요, 할머니.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또 해 주셔요." 할머니는 입 안이 마르셨는지 물부터 한 모금 드셨다. 창살 사이로 들어온 겨울 햇살이 가래떡처럼 긴 그림자를 방바닥에 드리우고 있었다. (글. 배우리)
010126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떡국考
설날 시식이 떡국이요 이날 아침 떡국 먹지않은 사람은 드물줄 안다. 떡 사오 떡사려로 시작되는 떡 타령에 정월달에서 섣달까지의 명절 떡이 각기 다르게 나오는데 정월 떡은 달떡으로 나온다. 흰떡을 여러 사람이 떼어먹기 좋게끔 달처럼 큼직하고 만들어놓아서 달떡이다. 일본에서도 흰떡을 모찌라 하는데 미치쓰키(滿月)→모치쓰키(望月)→ 모치(望)→모치(餠)가 됐다했으니 바로 한국과 뿌리가 같은 달떡이다. 왜 여러 사람이 먹게끔 크게 해놓았느냐면 떡이 제사 음식이요 신명에게 바쳤다가 그 신명의 혜택을 입을 많은 사람끼리 더불어 나누어 먹음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지기 위해서다. 고금의 크고 작은 제사에 떡이 오르지 않은 제사가 없음이 그때문이다. 일본에서 각종 제사때 신전에 올리는 떡을 따로 시도기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떡을 시덕(함경도)시더구(평안도)시더기(강원도)라 했음으로 미루어 같은 어원의 제사음식임이 분명하다. 흰떡을 끌어다 잘라 먹는다 해서 인절미(引切米)라 했음도 떡이 공식(共食)음식임을 입증하는 것이된다. 연변지방에 가면 지금도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밥상 복판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떡 한무럭ㅡ 달떡이 놓여나온다. 그럼 각기 이를 끌어 떼어다 떡고물에 묻혀 먹곤 한다. 첫날밤 신랑신부가 한잔술에 입을 같이 대고 합근주를 마시고 한 인절미 갈라먹는 것이며 시집간 딸 친정에 왔다 돌아갈 때면 이바지로 인절미 한 석작 지어보내는 것도 바로 인절미가 이질인간의 동질화를 가져다주는 상징 음식이기 때문이다. 한 집안 식구끼리 한솥밥 먹고 한 직장사람끼리 큰 한 술잔으로 돌려마심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지듯이 끈적 끈적 들러붙은 흰떡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한마음이 돼 친화력을 길렀던 것이다. 이 인절미의 동질화 정신을 살리고 먹기 편하게 만든것이 떡국이다. 달떡을 가래로 길게 빼어 먹음으로써 오복중의 으뜸인 축수(祝壽)를 가중시킨 것이다. 떡가래를 장명루(長命縷)라 불렀음도 그때문이다. 설날 아침 떡국은 그저 먹으면 한살 더먹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이화력을 동화력으로, 이질감을 동질감으로 수렴하는 성숙을 요구하는 정신음식인 것이다. (kyoutaelee@chosun.com)
***************************************************************************** 9710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웃으며 배워 볼까요 `먹기만 하는 사람들
웃으며 배워 볼까요 먹기만 하는 사람들
"밥은 잘 먹었는데, 축구 경기에서는 고울을 많이 먹었다. 감독으로부터 욕을 먹었지만, 다음부터 잘 해야겠다고 결심먹었다." "애를 먹으며 연습을 했으니 우승을 먹어야 하는데, 달리기에선 꼴찌를 먹어 쓴잔을 마셔야(먹어야) 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욕 먹을까 봐 겁을 먹었다." (생략) (글. 배우리) □ '먹다'의 올바른 뜻 '한 방 먹었다', '골탕 먹었다', '애 먹었다', '우승 먹었다',…… '먹다'란 말은 '물건을 입 속으로 넣어 뱃속으로 들여보내다'나 '어떤 물질을 제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하다'의 뜻인데, 왜 그렇게 여러 가지 뜻으로 마구 옮겨 갔을까? 우리말이 사전 따로 말 따로 가고 있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한 예로, '먹었다'는 말 역시 위의 경우처럼 그 원뜻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가고 있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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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10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살 `쌀
살과 쌀 경상도 지방에선 '쌀'을 '살'로 발음 그래서 뜻의 혼동 주는 경우 무척 많아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추수를 마쳤다고 하시면서 햅쌀을 가지고 오셨다. 쌀은 두 가마니나 되었는데, 삼촌이 작은 짐차에 싣고 경상도에서 함께 모시고 오셨다. 은솔이네는 해마다 가을이면 이렇게 시골에서 할머니가 꼭 햅쌀을 가져다 주신다. 그래서, 두어 달 가량은 쌀가게에서 쌀을 사다 먹지 않아도 되었다. 할머니가 햅쌀을 가져오던 날, 은솔이 어머니는 해마다 하시던 대로 이 햅쌀로 밥을 지어 내고, 밥상에 국이나 반찬도 다른 날보다는 좀 푸짐하게 해서 저녁상을 차려 내셨다. 햅쌀로 지은 밥이라 그런지 벌써 밥 냄새부터가 달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속에서 냄새를 구수하게 풍기는 햅쌀밥의 빛깔이 유난히도 하얗고 기름져 보였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서 그런지 농촌에선 가을걷이가 모두 늦었지. 그래서, 지난 한가위 때는 새로 거둔 살로 만든 떡이나 밥을 차린 사람이 없었다지 않니?" 은솔이는 할머니가 하신 말씀 중에 '살로 만든 떡'의 그 '살'이 이상하게 들렸다. 그래서, 할머니께 여쭈어 보았다. "할머니, '살로 만든 떡'이라고 하셨잖아요? '살'이 '쌀'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아, 내가 '쌀'을 '살'이라고 했나? 맞다. 우리 고향에선 '쌀'을 대개 '살'이라고 해서 자꾸 그렇게 소리가 나오는구나." 쌀? 살? 재미있게 느껴진 은솔이는 이것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쌀'을 경상도 지방에서는 대개 '살'이라 한다. 이 말은 '쌀'의 옛말이기도 하니, 그 지방에서는 이름이나마 우리의 옛 '쌀'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쌀'의 옛말은 '살'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원래 '쌀'의 뜻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알맹이' 또는 '(딱딱한 부분에서의) 부드러운 물질' 등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고기에 살이 많이 붙어 있다.' 이 경우는 딱딱한 부분(뼈) 사이의 부드러운 부분을 뜻하고 있다. '보리 두 말을 대꼈더니(껍질을 깎았더니) 보리쌀이 한 말밖에 안 된다.' 단순히 '보리'라고 하면 껍질이 있는 낟알이 되지만, '보리쌀'이라고 하면 보리의 껍질을 벗겨 낸 알갱이를 뜻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단순히 '쌀'이라고 하면 '벼의 껍질을 벗겨 낸 알갱이'의 뜻으로 두루 통하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의 식생활에서 이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쌀'은 달리 '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쌀로 지은 밥을 '이밥'이라 하고, 쌀로 지은 죽을 '이죽'이라고 한다. 이밥의 낟알은 '이알'이라고 한다. 그리고, 찹쌀로 지은 밥을 '이찰밥'이라고 한다. 황해도나 평안도, 함경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밥(쌀밥)'을 '이팝'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수벌(수+벌)'을 '수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거친소리되기(ㅎ첨가) 현상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쌀'의 뜻인 '이'는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가 별로 없고, '이밥'이나 '이죽'과 같이 복합어(합해진 말)로 주로 쓰이고 있다. '쌀'을 '살'로 발음하는 지방은 경상도 외엔 별로 없다. 전라도나 충청도에서는 그대로 '쌀'이다. 그런데, 경상도 지방에서는 다른 말들은 도리어 된소리로 발음하고 있다. "날 쏙일려구(속이려고)?" "돼지가 쌔끼(새끼)를 뱄네." "너무 쌍스런(상스러운) 말을 쓴다.." "남의 쑹(숭=흉)을 그렇게 보문 못 써." "썽깔(성질)도 꽤 사납네." 물론, 그 지방이라고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대체로 다른 지방보다 된소리 현상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쌀'만은 이상하게도 반대 현상이 나타나 '살'로 굳어져 있다. 그래서, '살'을 발음하는 사람을 보면 금방 경상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정도가 됐다. 그러나, 그 지방 사람들도 요즘에 와선 '쌀'로 제대로 발음을 익힌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글. 배우리)
9510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웃으며 배워 볼까요 `살 빛깔 쌀 빛깔
웃으며 배워 볼까요 살 빛깔 쌀 빛깔
시장의 쌀장수 아줌마는 늘 자기 살갗(피부)이 남들보다 거칠고 거무틱틱한 것이 고민이었다. 햅쌀을 처음 받아다 팔던 날, 어느 할머니가 지나가다 이 집의 쌀을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살 빛깔이 참 좋기도 하다." 그런데, 쌀장수 아줌마는 이 소리를 자기의 살(피부) 빛깔이 좋다는 줄 알고 얼른 아저씨를 불러 댔다. "여보여보. 들었수? 내 살 빛깔이 좋다는 소리……. 당신은 늘 내 살 빛깔이 안 좋다고 하지만, 좋다는 사람두 저렇게 있잖우?" (글. 배우리)
* 살과 쌀; '살'은 '살'대로의 뜻이 있고, '쌀'은 '쌀'대로의 뜻이 있는데, 발음을 잘못하거나 사투리 배인 억양으로 말을 하다 보면 '쌀'을 '살'이라 하기 쉽고, '살'을 '쌀'이라 하기 쉽다. 위에서 햅쌀을 본 할머니는 아마도 경상도 사투리가 짙게 밴 말씨를 쓰시는 모양이다. 그래서, 쌀을 '살'이라 한 것인데, 이것을 들은 쌀장수 아줌마는 자기의 살(살갗)을 보고 한 말인 줄 알고 좋아서 아저씨를 불렀던 것이다. "살 빛깔이 좋기도 하다." 이 소리를 "살(피부) 빛깔이 좋기도 하다." 로 알아 들은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 중에는 '쌀'을 '살'로 발음하는 사람이 많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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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8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먹거리
먹거리 원래는 '먹을거리'의 준말처럼 쓰다가 '식량','음식' 등의 뜻으로도 옮겨가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너무도 무더운 여름날 초저녁이다. 진이는 마루로 나와 선풍기를 틀었다. 그러나, 더운 기운은 계속 몸 주위에서 맴돌았다. 텔레비전을 틀어 보았다. 어느 관광지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 관광지 주변에는 먹거리도 풍부합니다." "바닷가는 온통 먹거리의 창고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조금만 움직이면 온갖 수산물을 모아 올 수도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먹거리'란 말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먹거리? 진이는 이 말이 좀 새롭게 느껴졌다. 별로 들어 보지 못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먹을 거리'라는 말일까? 어른들은 이 말은 많이 쓰는 것 같던데……. 진이는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공부방으로 들어가 국어사전을 뒤적여 보았다. 그런데, 진이가 늘 이용하는 사전에는 그 말이 들어 있지 않았다. 조금 이상했다. 그렇다면, 이 말은 표준말이 아닌가? 진이는 안방으로 들어가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 "아빠, '먹거리'란 말이 무슨 뜻이예요?" "먹거리? 어디서 들은 말인데?" "텔레비전에서 그 말이 자주 나오는데, 조금 궁금해요." "옳아. 요즘 이 말이 많이 퍼져 나가고 있지. 보통은 '먹을 거리'라고 써 왔던 말인데, 요즘에 와서는 이 말이 다른 뜻으로도 옮겨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든 내일이라도 큰아빠한테 찾아가 물어 보거라. 큰아빠는 국어 교수시니까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 않겠니?" "그런데, 전 당장 궁금한데요." "하하하. 급하기도 한가 보구나. 그런데, 한 가지를 알아도 정확히 알아야지. 어설피 알면 차라리 모르는 것만 못해. 왜 그런 말 있잖니?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알았어요, 아빠. 내일 알아 볼께요." 진이는 다시 마루로 나왔다. 아직도 텔레비전에서는 그 관광지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먹거리'는 아직은 우리 귀에 그리 익은 낱말이 아니다. 아직은 일상 생활에서도 이런 말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은 우리 어떤 먹거리를 먹을까?'라든가 '북한에는 요즈음에 와서 먹거리가 부족하단다.'……식으로 쓰는 사람은 별로 볼 수 없다. 그런데,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이 낱말이 자주 등장하면서 이 낯선 낱말이 살금살금 자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 말은 '먹다'의 '먹'에 '거리'를 합쳐 만든 말이다. 그래서, '먹을 거리'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이 말이 '먹을 거리'의 준말이라고 하고도 있는데, 국어의 정해진 법칙 안에서 생각해 볼 때 그것은 옳은 이야기가 아니다. '먹거리'가 '먹을 거리'의 준말로 쓸 수가 있다고 하면, '읽을 거리'의 준말은 '읽거리'가 되어야 하고, '입을 거리'의 준말은 '입거리'가 돼야 하는데, 그런 말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이 '먹거리'란 말을 정식으로 올려 놓은 사전도 많아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뜻풀이는 사전마다 조금 다르다. `먹거리; '먹을 것`식량`식품'의 풀어쓴 말 `먹거리; 먹을 거리. 식량이나 식품 `먹거리; 사람이 먹는 온갖 것 `먹거리; 먹을거리(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온갖 것) 옛날에는 이 '먹거리'라는 말을 써 오지 않았다. 이 말이 처음 쓰이게 된 것은 1957년, 당시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 한국협회 사무국장이던 사람이 '식량'에 대신할 우리말을 찾다가 이 '먹거리'란 말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식량'이라고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곡물(곡식)만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우유나 고기, 과일 등 사람이 먹는 것 모두를 가리키는 말을 찾다가 찾아 낸 것이 이 '먹거리'란 말이었다고 한다. 그 뒤, 그는 이 '먹거리'란 말을 모두 쓰게 하기 위해 여러 모로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일부 국어사전에도 오르게 했는가 하면, 이 말이 지금과 같이 자연스럽게 쓰는 시대로 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한 시민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이 말은 이제 아무 거리낌 없이 쓰는 시대로 접어든 것 같다. "파리 벼룩시장은 잡동사니나 파는 곳이 아니라 볼 거리 먹거리도 풍성해 잔치판을 방불케 한다." 이와 같이 신문에서도 이 '먹거리'란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젠 그 말이 그리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만약 위에서 쓰인 '볼 거리 먹거리도 풍부해'에서 '먹거리'를 다른 말로 바꾸어 쓴다고 생각해 보자. 그 어떤 말이 딱 맞을 것인가? 아마 '먹거리' 이상의 다른 좋은 말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골프계의 우리 박세리 선수가 세계 정상에 올랐다. 월드컵 축구에선 졌지만, 우리에게도 이런 '자랑거리'가 있다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다." "실직자가 늘면서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온통 '걱정거리'들이다. 이젠 '밥거리', '찬거리'조차 마련할 수 없단다." '재료' 또는 '자료'라는 뜻을 지닌 '∼거리'라는 말은 대개 위와 같이 앞의 어떤 이름씨(명사) 낱말에 이어 붙는다. 이름씨 외에 움직씨(동사) 뒤에 붙기도 하지만, 이 경우엔 반드시 그 앞의 끝낱내소리(말음)는 ㄹ이다. 먹다; 먹을 거리 입다; 입을 거리 보다; 볼 거리 '거리'라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때는 별로 없지만, 요즘엔 이 말을 '꺼리'로 발음해 쓰는 사람도 늘고 있다. "요즘엔 일할 만한 데가 없다. 어디 마땅한 '꺼리' 좀 없냐?" 그러나, '거리'를 '꺼리'로 쓰는 것은 아주 잘못 된 말버릇이다. 말은 계속 변한다. 또, '먹거리'처럼 새로운 말도 자꾸 등장한다. 그리고, 그 뜻도 변해 가기도 한다. 어떻든 이 어려운 아이엠에프(IMF) 시대에 주위에 '일거리'가 많아져서 모든 이가 '먹을 거리'나 '입을 거리'에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 배우리) | |
9802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설렁탕
설렁탕 선농단에서 임금과 백성이 함께 먹던 음식 '선농탕'이던 말이 '설렁렁'으로 변해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북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제법 살을 에는 듯했다. 바람의 매운 맛으로 보아서는 아직도 봄은 꽤 멀리 있는 듯했다. 썰매장에서 오는 길, 버스를 타기 전에 현이는 삼촌과 함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식당 안에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좀 춥지? 현아, 무얼 주문할래?" "삼촌, 아까 썰매장에서 놀 때는 몰랐는데, 나오니까 더 춥네. 좀 따끈한 음식으로 주문해야겠어." "따끈한 거? 그럼, 뭐가 있을까? 갈비탕? 설렁탕? 너 좋아하는 것 말해 봐라." 현이는 벽에 붙은 차림표를 보았다. 차림표에는 음식 이름들이 가득 있었다. "나 설렁탕 먹을래. 삼촌은?" "설렁탕? 그래, 나도 같은 것으로 하지 뭐." 음식을 시켜 놓고 난 후인데도 현이는 차림표를 계속 보고 있었다. "삼촌, 음식점들의 차림표를 보면, 어떤 것이 진짜 맞는 음식 이름인지 모르겠어. 저기 '김치찌게'라고 쓴 것 좀 봐. 어느 식당엔 '찌개'라고 써 놓았던데……." "응, 넌 음식 이름에 관심이 많구나. 어디 '찌개'뿐이겠니? '삼계탕'이라는 것도 그렇고, '육개장'이라는 것도 그렇지. 우리가 지금 시킨 음식 '설렁탕'도 음식점 이름마다 써 놓은 것이 가지각색야." "설렁탕? 설농탕? 어떤 것이 맞는 거야?" "원래는 '선농탕'이었지. 그런데……" 손님들의 음식 주문이 많이 밀려 있는지, 아직도 음식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음식점 차림표에 적힌 음식 이름들을 보면, 맞춤법에 틀린 것들이 너무도 많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몇 가지 이름 중 특히 많이 틀리게 쓰는 것은 다음과 같다.
·김치찌개(○)-김치찌게(×) ·육개장(○)-육계장(×) ·삼계탕(○)-삼개탕(×) ·설렁탕(○)-설농탕(×) 설롱탕(×) 선농탕(×) ·갈매기살구이(○)-갈메기살구이(×)
또, '○○ 일체'라고 써 놓아야 할 것을 '○○ 일절'이라고 써 놓은 곳도 있다. 가장 많이 틀리게 적어 놓는 음식 이름이 '설렁탕'이다. '설농탕'이라고 써 놓은 음식점도 있고, 더러는 '설롱탕', '설넝탕'이라고 해 놓은 집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음식 이름에 나온 까닭에 관해서도 엉뚱한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음식점 식탁에 마주 앉아 설렁탕을 주문해 놓고 이야기를 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왜 '설렁탕'이라고 하는 줄 알아?" "들은 이야기인데, 밥을 설렁설렁 국물에 말아 먹는다고 '설렁탕'이라던데!" "그게 아니고, 뜨겁게 국을 끓여 내오기 때문에 설렁설렁 식혀 가며 먹어야 하는 음식이래서………" "아니라던데. 설렁탕 국물을 보면 대개 뿌여찮아? 그 국물이 꼭 눈이 녹은 물 같다고 해서 '설농탕(雪濃湯)'이라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러나, '설렁탕'은 '설렁설렁'이라는 말과는 관계가 없고, 또 국물이 눈 녹은 물과 같아서 나왔다는 말도 근거가 없다. 이 음식 이름이 나오게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농사를 주로 지어 살아 왔기에 날씨에 관해 대단히 관심이 높았다. 그래서, 해마다 나라에선 농사가 잘 되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비는 행사를 벌여 왔다. 사람들은 하늘의 신 중에서도 농사를 잘 짓게 해 주는 신은 따로 있다고 믿었다. 그 신을 사람들은 '신농씨'와 '후직씨'라고 믿었다. 조선시대엔 나라에서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 이 신농씨와 후직씨에 해마다 제사지냈다. 경칩 절기가 지난 후에 돼지날을 가려 '선농단'이라고 하는 단을 마련하고 그 농사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임금이 직접 소를 몰아 밭갈이도 했다. 이를 보려고 몰려드는 구경꾼들도 많았다. 그 구경꾼들을 위해 따로 구경할수 있는 터도 마련했다. 선농단은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자리에 마련했다. 그러나, 이 선농 제사는 1908년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가 기울면서 선농단의 신위를 사직단에 합함으로써 중단돼 버렸다. 선농제가 있는 날, 임금은 신하들과 함께 직접 이 곳에 나와 축시(밤 2시경)에 제사를 올리고, 진짜 농사꾼처럼 발을 걷고 들어가 손수 밭을 갈았다. 이처럼 임금이 직접 밭을 가는 것을 '친경'이라 한다. 친경 후엔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과 함께 '노주례'라는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잔치엔 임금을 모시던 귀족, 정승, 판서, 문무백관은 물론이고, 친경을 구경하던 노인, 농민, 노비, 거지들까지 초대되었다. 잔치에 나누어 먹는 음식은 딱 한 가지, 머얼건 고깃국(탕)이었다. 이 고깃국을 마련하기 위해 짐승을 잡았는데, 대개는 소가 이용되었다. 고깃국이라고 하지만, 소의 내장이나 뼈 등을 삶아 낸 머얼건 국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먹어야 했기 때문에 고기살만으로는 모자랐기 때문이다. <성종실록>에 실린 노주례 절차를 보면 임금에게 술을 올린 다음 탕을 올린다고 돼 있다.
'살찐 희생의 소를 탕으로 하여 널리 펴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고 만복이 고루 펼치어……'
선농제 때 바친 시의 이 대목을 보아도 제사의 희생물은 소였음을 알 수 있다. 선농단의 선농 제사 때 나누어 먹었던 그 멀건 국을 '선농단에서 제사지내고 함께 나누어 먹는 탕'이라 하여 사람들은 '선농탕'이라고 불렀다. 내장을 삶아 낸 보잘것없는 국이지만, 맛이 괜찮아 인기가 있었고, 차츰 장안에 널리 알려졌다. 나중에는 민가 식당에서도 이와 비슷한 국을 만들어 팔게 되었는데, 그런 집을 사람들은 '선농탕집'으로 불렀다. '선농탕'은 차츰 '설롱탕'이란 발음으로 옮겨갔고, 지금에 와선 '설렁탕'이란 표준말로 굳어졌다. '설렁탕'이란 이름이 나오기까지는 위의 이야기처럼 임금과 일반 시민이 한 자리에서 오손오손 수저를 들었던, 따스한 정이 풍기는 옛 이야기가 있었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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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4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소년 아름다운 우리말03 `쌀밥 `이밥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서---------------------------------------------------------
쌀밥과 이밥 - 경상도 지방에선 주로 '살'로 발음 -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샘이 할머니는 잡곡밥을 아주 좋아하신다. 그 중에서도 보리밥을 가장 좋아하신다. 샘이 엄마는 할머니의 이런 식성을 생각해서 아침밥은 거의 날마다 보리를 섞어 밥을 지으신다. 이렇게 돼서 샘이도 할머니의 식성을 닮아 갔다. 샘이는 처음엔 보리밥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차츰 맛을 드리고 보니 쌀밥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았다. 할머니와 함께 한 그 날 아침의 밥상 앞. "샘이야, 오늘도 밥이 구수하지? 그런데말이다. 오늘은 보리보다 살이 많이 들어간 것 같지?" "할머니는 또 '살'이라고 그러시네. '쌀'이래두요." "내가 또 그랬냐? 그래. 네 말이 맞다. 쌀. 그런데, 이 할미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버릇이 들어서---" 할머니는 가끔 '쌀'을 말씀하실 때, '살'이라고 잘 그러셨다. 경상도가 고향이시라는 할머니는 왜 이런 발음을 하시는지 샘이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샘이는 아침을 먹고 나서 한 동네에 사는 삼촌댁에 찾아갔다. 학교에서 국어 강의를 하시는 삼촌은 샘이가 우리말에 관해서 물어 올 때는 대답을 잘 해 주시곤 했다. "샘이 오는구나. 오늘도 또 궁금한 게 있나 보구나." "예, 삼촌. '쌀'을 '살'이라고도 하나요?" "하하하. 할머니가 자주 '쌀'을 '살'이라고 그러시지. 그거 네가 언제고 물을 줄 알았다. 이리 가까이 앉아라. 하하하---" 마루에 드는 햇살이 이젠 제법 따스했다. □ 살로 만든 밥이라? 한때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해서 수입 쌀이 많이 들어올 것 같다고 해서 우리의 쌀이 우리 입에서 멀어질 때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고 나라 사람들이 온통 걱정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 쌀이 최고였나 보다. 그런지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 쌀을 많이 찾는다. 쌀, 쌀, 쌀, 진짜로 '쌀쌀한' 우리 농촌이 돼 가나 했더니, 우리 농산물에 대한 사랑이 대단해서 그리 '쌀쌀'하지는 않았다. '쌀'을 경상도 지방에서는 '살'이라 한다. 이 말은 '쌀'의 옛말이기도 하니, 그 지방에서는 이름이나마 우리의 옛 '쌀'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여러 해 전에 한강 탐사대가 한강 줄기를 탐사하며 강원도 삼척에서부터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다가 충북 제천군(지금은 제천시)의 한 강가 마을에 들른 일이 있다. 탐사대 일행 중에 대원들의 식사 준비를 맡은 한 대원이 있었는데, 어찌나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던지 알아 듣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일행은 어둑어둑해서 강가의 한 마을, 이장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했는데, 일행은 가져온 쌀이 다 떨어져 주인집 쌀을 빌어야 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식사 담당 대원이 주인 아주머니에게 부탁을 했다. "아지메 살 있지예?" 순간, 아주머니의 눈이 둥그래졌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대원은 다시 한 마디를 했다. "아지메 살 있으면 그 살로 밥 좀 해 달란 말입니다. 저희가 준비해 온 살이 다 떨어졌지 몹니껴? 한 스무 사람분 준비 좀 해 주이소." 아주머니는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것을 보고 있던 일부 대원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그 웃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대원도 몇 있었다. 저녁 밥이 다 되었다. 밥상이 들어오고 이내 대원들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조금 있다가 아주머니가 찌개를 큰 그릇에 가지고 들어오더니 아까 식사 준비를 부탁했던 식사 담당 대원에게 한 마디 하려는지 불렀다. "총각." 대원이 그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아주머니의 얼굴은 조금 웃는 표정이었다. "총각 어때? 내 '살'로 만든 밥 맛 괜찮아?" 밥상 주위는 한바탕 웃음 바다가 됐다. 웃음들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난 아까 그게 무슨 소린가 했어. '살'이 있느냐고 물으니 세상에 살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단감. 밥 해 달란 소리 땜에 그 말을 알았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문 아마 지나친 농담을 하는 줄 알고 혼났을지도 모르지." 그 날 저녁, 대원들의 화제는 '쌀'과 '살'을 중심으로 한 사투리 관계 이야기였다. □ 쌀밥은 이밥이라고도 '쌀'은 달리 '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쌀로 지은 밥을 '이밥'이라 하고, 쌀로 지은 죽을 '이죽'이라고 한다. 이밥의 낟알은 '이알'이라고 한다. 그리고, 찹쌀로 지은 밥을 '이찰밥'이라고 한다. 황해도나 평안도, 함경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밥(쌀밥)'을 '이팝'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수벌(수+벌)'을 '수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ㅎ덧들어가기 현상에 의한 것이다. '이밥'을 '이팝'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쌀알 모양의 열매가 맺는 식물의 이름을 '이팝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쌀'의 뜻인 '이'는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가 별로 없고, '이밥'이나 '이죽'과 같이 복합어(두 낱말 이상이 합해져서 된 말)로 주로 쓰이고 있다. '쌀'을 '살'로 발음하는 지방은 경상도 외엔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지방에서는 다른 말들은 도리어 된소리로 발음하고 있다. "날 쏙일려구(속이려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쌍사람(상사람. 양반 아니 사람)이지." "남의 쑹(숭=흉)을 그렇게 보문 못 써." "썽깔(성질)도 꽤 사납네." 물론, 그 지방이라고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대체로 다른 지방보다 된소리 현상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쌀'만은 반대로 현상이 나타나 '살'로 굳어져 있다.
이젠 너무 살살 그렇게 '살살'이라 하질 말고, 차라리 그 지방 특유의 억센 말투로, 이것만은 아주 쌀쌀맞을 정도로 '쌀쌀'이라고 발음해야 제대로 표준말로 하는 것이 된다. '쌀'이 아닌 '살'로 밥을 지어서야? (글. 배우리) ******************************************** 980400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소년 아름다운 우리말03 `쌀밥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했는데, 일행은 가져온 쌀이 다 떨어져 주인집 쌀을 빌어야 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식사 담당 대원이 주인 아주머니에게 부탁을 했다. "아지메 살 있지예?" 순간, 아주머니의 눈이 둥그래졌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대원은 다시 한 마디를 했다. "아지메 살 있으면 그 살로 밥 좀 해 달란 말입니다. 저희가 준비해 온 살이 다 떨어졌지 몹니껴? 한 스무 사람분 준비 좀 해 주이소." 아주머니는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이것을 보고 있던 일부 대원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그 웃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대원도 몇 있었다. 저녁 밥이 다 되었다. 밥상이 들어오고 이내 대원들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조금 있다가 아주머니가 찌개를 큰 그릇에 가지고 들어오더니 아까 식사 준비를 부탁했던 식사 담당 대원에게 한 마디 하려는지 불렀다. "총각." 대원이 그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아주머니의 얼굴은 조금 웃는 표정이었다. "총각 어때? 내 '살'로 만든 밥 맛 괜찮아?" 밥상 주위는 한바탕 웃음 바다가 됐다. 웃음들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난 아까 그게 무슨 소린가 했어. '살'이 있느냐고 물으니 세상에 살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단감. 밥 해 달란 소리 땜에 그 말을 알았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문 아마 지나친 농담을 하는 줄 알고 혼났을지도 모르지." 그 날 저녁, 대원들의 화제는 '쌀'과 '살'을 중심으로 한 사투리 관계 이야기였다. □ 쌀밥은 이밥이라고도 '쌀'은 달리 '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쌀로 지은 밥을 '이밥'이라 하고, 쌀로 지은 죽을 '이죽'이라고 한다. 이밥의 낟알은 '이알'이라고 한다. 그리고, 찹쌀로 지은 밥을 '이찰밥'이라고 한다. 황해도나 평안도, 함경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밥(쌀밥)'을 '이팝'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수벌(수+벌)'을 '수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이 ㅎ덧들어가기 현상에 의한 것이다. '이밥'을 '이팝'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쌀알 모양의 열매가 맺는 식물의 이름을 '이팝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쌀'의 뜻인 '이'는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가 별로 없고, '이밥'이나 '이죽'과 같이 복합어(두 낱말 이상이 합해져서 된 말)로 주로 쓰이고 있다. '쌀'을 '살'로 발음하는 지방은 경상도 외엔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지방에서는 다른 말들은 도리어 된소리로 발음하고 있다. "날 쏙일려구(속이려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쌍사람(상사람. 양반 아니 사람)이지." "남의 쑹(숭=흉)을 그렇게 보문 못 써." "썽깔(성질)도 꽤 사납네." 물론, 그 지방이라고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대체로 다른 지방보다 된소리 현상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쌀'만은 반대로 현상이 나타나 '살'로 굳어져 있다.
이젠 너무 살살 그렇게 '살살'이라 하질 말고, 차라리 그 지방 특유의 억센 말투로, 이것만은 아주 쌀쌀맞을 정도로 '쌀쌀'이라고 발음해야 제대로 표준말로 하는 것이 된다. '쌀'이 아닌 '살'로 밥을 지어서야?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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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1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김치 `딤채
김치와 딤채 '딤채'가 '짐채'로 되었다가 '김치'로 겨울철 건강 음식-그 종류도 무척 많고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시골에서 할머니가 모처럼 올라오셨다. 겨울 방학이면 은이는 방학 숙제를 뒤로 제쳐 두고 우선 할머니 댁부터 가 보곤 했는데, 이번 방학엔 할머니가 먼저 서울로 오셔서 우선은 시골을 갈 필요가 없게 됐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할머니가 오셨다고 부엌에서 반찬을 준비하느라고 쉴 틈이 없으시다. 은이는 옆에서 어머니를 도왔다. 이것을 보신 할머니가 부엌쪽을 향해 말씀을 하셨다. "뭘 만드느라고 그리 애를 쓰느냐? 난 짐채 한 가지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데……" 이 말을 듣던 은이는 할머니 말씀 중의 '짐채'란 것이 뭔가 꽤 궁금했다. "엄마, 짐채가 뭐예요? 할머니는 짐채 하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아니, 넌 김치도 모르니?" "김치 아니구요, 할머니는 짐채라구 하셨는데요." "그게 다 그 말씀이란다. 할머니가 이가 빠지셔서 발음을 조금 잘 못하셨는진 몰라도……." "왜 김치를 짐채라고 하죠?" "그야, 낸들 어찌 알겠니? 이따가 아빠 오시면 그 때 한번 물어 보려무나." 저녁에 아버지가 들어오셨을 때, 밥상 앞에서 은이는 '김치'와 '짐채'의 말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고 했다.
우리 나라 사람에게 있어서 김치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식이다. 다른 반찬이 아무리 많아도 김치가 빠지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만큼 김치는 우리 입맛에 깊이 길들여진 중요한 음식이다. 김치. 언제부터 우리 겨레가 만들어 먹어 온 음식인지 그 자세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우리 겨레가 배추나 무우 같은 채소를 가꾸어 온 때부터 이미 이 음식이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치가 처음 나왔을 때는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지금은 김치에 고춧가루, 마늘 등의 양념과 새우젓, 굴 같은 젓갈, 심지어 배나 밤 같은 과일까지 들어가지만, 처음엔 배추를 소금에 절여 놓은 정도의 저장 음식이었다. 지금의 '백김치'와 비슷한 음식이었다. 겨울철에 채소의 생산이 어려웠던 시절에 더할 수 없이 좋은 비타민 공급 음식이라 이나마도 당시로선 대단한 위치를 차지한 부식이었다. 단순히 채소를 소금에 절인 정도에 불과했던 이 음식은 각종 양념이 생산되고 특히 조선 중기에 고추 재배가 본격화되면서 지금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되었다. 김치라는 음식은 원래 채소를 절여 만든 단순한 '염장 음식'이었다. 김치의 원래 이름은 '딤채'인데, 이것을 한자로 적을 때는 '침채(浸菜)'라 했다. 이 한자를 뜻으로 풀면 '채소를 절인 음식'의 뜻이다. 김치가 원래 그런 음식이었음을 이 이름이 잘 말해 주고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짐채'를 한자로 해서 비슷하게 소리를 적다 보니 나온 말이다. 이 '딤채'가 '김치'로 되었다. 즉, '딤채'는 입천장소리로 변해 '짐채'로 되고, 이것이 '짐치'로 되었다가 '김치'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금의 '김장'이란 말은 원래 '침장'이 변해 정착한 말로 보이는데, 이 말은 김치를 된장이나 고추장과 같은 '장'에 비겨서 나타낸 말일 것이다. <훈몽자회>란 책에는 '딤채'가 '짐츼'를 거쳐 '김치'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딤채>짐츼>짐치>김치 우리말은 구개음화(입천장소리되기) 버릇에 의해 '이' 또는 '야-여-요-유-예'와 같은 '이' 홀소리(모음) 앞에서 ' -ㅌ'이 대개 'ㅈ-ㅊ'으로 변하는 버릇이 있지만, 반대로 구개음화의 역작용에 의해 'ㅈ'이 'ㄱ'으로 돌아가는 현상도 더러 나타난다. 이를 문법에서는 어려운 말로 '부정회귀(不正回歸)'라 한다. 그러한 예로는 '짓'이 '깃'으로, '치'가 '키'로, '질삼'이 '길쌈'으로 옮겨간 것을 들 수 있다. '딤채'보다 더 오랜 고유어로는 '디이'가 있었다. <두시언채>란 책에도 보면 '겨울김치'를 '겨슬디히'로 적어 놓았는데, 이 '디히'는 '지'로 구개음화해서 그 자체로 '김치'의 뜻을 담고 있다. '오이지', '짠지' 등의 '지'가 바로 그 예이다. 지금도 호남 지방에서는 김치를 '지'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김치'라는 말은 이 '지'와는 관계가 없고,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딤채'에서 나온 것이 확실하다. 남부 지방이나 북한 일부 지방에서 지금도 '김치'를 '짐채', '짐치'라고 하는 것을 보면, 김치가 '침채'에서 나왔음을 짐작하게 해 주고 있다. '침채'가 서민들 사이에서 '짐채', '짐치' 등으로 소리가 변한 채 통용되었어도 식자층에선 조선 후기까지도 '침채'란 말을 계속 써 왔던 듯싶다. 90년 여름에 추사 김정희 선생이 직접 쓴 편지가 발견됐는데, 거기에도 '침채'라는 말이 몇 군데 나온다. 편지는 추사가 제주 유배지에 있을 때 그 부인에게 보낸 것으로, 거기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다. 그 일부를 오늘의 글로 정리해 본다. "……약식과 인절미가 아깝습니다. 쉽게 (음식이) 온다 하더라도 성히 오기 어려운데 일곱 달 만에도 오고 쉬워야 두어 달 만에 오는 것이 어찌 성히 오기를 바라겠습니까? 서울서 보낸 침채는 워낙 소금을 많이 친 것이라 많이 변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침채에 주린 입이라 참고 먹습니다.……" '침채에 주린 입으로'라는 말로도 이 음식은 늘 먹어 왔던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김치'를 말한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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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배워 볼까요 김치와 짐치
수업 시간이 돼서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니 학생들이 교탁에서 도시락을 먹어서 김치, 소시지, 김 조각 등이 널려 있었다. 그 중에서도 김치가 제일 지저분하게 보였던지 화가 난 선생님이 물었다. "누구랑께? 교탁에서 밥 묵으믄서 반찬을 흘린 놈이? 특히 짐치를 흘린 놈이? 덩달이 니가 흘렸지?" 덩달이가 고백했다. "선생님, 저어…… 전 흘리긴 흘렸어두 '짐치'라는 건 안 흘렸는데요." "그럼 무얼 흘렸다냐?" "전 '김치'만 흘렸거든요." (글. 배우리)
* 전라도에선 '김치'를 '짐치'로
우리말에서 '김치'가 먼저일까? '짐치(짐채)'가 먼저일까? 입천장소리되기 현상으로 따져 보면 '김치'가 먼저일 것 같지만, '짐채'가 먼저이다. 우리말에는 그리 많은 현상은 아니지만, 입천장소리가 먼저가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질삼'이 '길쌈'으로 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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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1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웃으며 배워 볼까요 `흰떡과 신떡 `구개음화
웃으며 배워 볼까요 흰떡과 신떡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고향이 서로 두 할머니가 '흰떡'을 받아다 동네 집집을 찾아다니면서 '떡을 사라'고 외치며 파는 떡장사를 하고 있었다. 한 할머니는 경기도가 고향이고, 다른 할머니는 전라도가 고향이다. 경기도 할머니는 사투리를 쓰지 않았으나, 전라도 할머니는 사투리를 많이 썼다. 그런데, 경기도 할머니의 떡은 날마다 잘 팔려 재미를 보았는데, 전라도 할머니의 떡은 아무리 외쳐도 영 팔리질 않았다. 소리를 칠수록 떡이 더 안 팔렸는데, 왜 그랬을까?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사투리 때문이다. 두 할머니가 외친 말을 보자. 경기도 할머니-"흰떡 사세요." 전라도 할머니-"신떡 사시랑께." 전라도 할머니는 '흰떡'을 사라지 않고, '신떡(시큼한) 떡'을 사라고 하며 외치며 다녔으니, 그 시큼한 떡, 시어 빠진 떡을 누가 사 먹겠다고 하겠는가? 그래서, 전라도 할머니의 떡은 팔리질 않았다. 사투리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 (글. 배우리)
* 남부 지방에선 구개음화가 심해 다음과 같이 소리가 변해 나는 것을 구개음화(입천장소리되기) 현상이라고 한다. ㅎ>ㅅ(힘>심, 형>성) ㄷ>ㅈ(해돋이>해도디>해도지) ㅌ>ㅊ(같이>가티>가치) 이러한 현상은 전라도 등 우리 나라의 남부 지방에서 아주 심한데, 이것은 우리가 발음을 할 때 혀가 입천장으로 잘 올라가 붙는 자연적인 현상 때문에 잘 일어난다. 앞에서 전라도 할머니가 '흰떡'을 '신떡'이라고 발음한 것은 바로 이러한 구개음화의 현상 에 의한 것이다. (글. 배우리) ****************************************************************************************************** 9405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가락-갈비
가락과 갈비 갈래-갈비-갈퀴-가락-가래 갈'에서 나온 말 무척 많아
분식점에 엄마와 함께 들어온 영이는 뭘 먹고 싶으냐는 엄마의 물음에 '우동'이 먹고 싶다고 했다. "영이야, '우동'이 뭐냐? 그 말은 일본식 말인데. 우리말로 '가락국수'라고 해야지." 그러나, 영이는 음식점 벽에 붙여 놓은 차림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저것 봐요. 저기도 '우동'이라고 분명히 썼잖아요?" 벽에는 분명히 '우동'이라고 써 있었다. 엄마는 그것은 잘못 쓴 것이라 하면서 지금은 음식점에서 '가락국수'라고 바르게 쓴 곳이 많다고 하셨다. 우리말에 관심이 있는 영이는 왜 '가락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해서 엄마에게 그것을 물어 봤다. "국어 선생도 아닌 엄마라 그걸 몰라 답을 해 줄 수 없어 어쩌지? 그런데,잘은 모르겠지만,'가락국수'의 '가락'을 '손가락-발가락'의 그 '가락'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니?"
'가락국수'란 말은 '가락'과 '국수'란 말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따라서,이 말이 어떻게 해서 나온 말인가를 알아 보려면 두 낱말을 따로 떼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락'이란 말은 '가늘고 길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지금의 우리말에서 '손가락-발가락-엿가락-젓가락,……' 같은 말이 있는데,여기서의 '가락'이 모두 '가늘고 길다'의 뜻을 지녔다. '가락'에서 그 밑말은 '갈'이 되는데,이 말은 본래 '갇'에서 나온 말로 여겨지고 있다. '갇'은 '갈라짐'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그래서,지금의 '나뭇가지'의 '가지'란 말이 나왔다. *갇+이=갇이>가디>가지 따라서, '가지'란 말 속에는 '갈라짐'의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국어 사전에 보면 '가닥'이란 말이 나오는데,'한 군데 딸린 각각의 줄'의 뜻을 가진 이 말도 '갇'에서 나온 말이다. *갇+악=갇악>가닥 그러니,결국 '가락'과 '가닥'은 한 형제말임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사투리에도 '가닥진'이 있는데, 이 말은 '가락진'의 뜻과 거의 같다. '갇'에서 나온 '갈'이란 말은 우리 몸의 '다리'를 일컬을 때도 씌었다. 몸에서 갈라진 부분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말에서 '가랑이'란 말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쉬워질 것이다. *갈+앙이=갈앙이>가랑이>가랭이 신라 시대의 향가인 <처용가>에도 '가랄'이 나오는데, 역시 '다리'의 뜻으로 씌었다. '드러사 자래 보곤 가랄이 네히어라.' (들어와서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갈'에서 나온 말은 무척 많다. *갈래;갈라진 부분 *갈고리;끝이 뾰족하고 꼬부라진 부분 *갈이질;논밭을 가는 일 *갈퀴;나뭇잎을 긁어 모으는 데 쓰는 대로 만든 기구 *갈피;사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틈).(책갈피) *가랑머리;갈래진 머리 *가루;(떡가루,콩가루,밀가루,……) *가래;흙을 파 헤치는 농기구
'갈기갈기'나 '갈갈이'와 같은 말도 '갈'에서 나온 것이다. 또,'떡가래-엿가래'에서의 '가래'도 '갈'에서 나온 말로,'가늘다'는 뜻이 들어간 말이다. '가루'란 말의 사투리로 '갈구'라는 말이 있는데,이 말은 또 '가루'의 옛말이기도 하다. '가루'가 '갈'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는 좋은 증거이다. '가랑비'의 '가랑'도 '갈'에서 나온 말이다. 갈+앙=갈앙>가랑 '쌍둥이'의 옛말은 '갈오기'이다. 여기서 '갈'자가 들어간 것은 갈라져 나온 아기이기 때문이다. 갈+오기(아기)=갈오기 '갈비뼈'란 말에도 '가느다란' 또는 '갈라짐'의 뜻을 지닌 '갈'이 들어갔다. '갈비뼈'에서 '뼈'는 덧들어간 말이고,'갈비'가 원말이다. 즉,'갈비'란 말만 가지고도 '갈비뼈'와 같은 뜻이 된다. 왜냐 하면 '갈비'에서 '갈'은 '갈라짐'을 의미하고,'비'는 '뼈'를 뜻하는 옛말이니 '갈비'란 말만 가지고도 '갈라진 뼈'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갈비'란 말이 주로 쓰이지만,전에는 '가리'라는 말이 더 많이 씌었다. '가리'는 소의 '가리(갈비)'를 식용으로 일컫는 말이다. 갈비를 토막쳐서 푹 삶아 맑은 장을 친 국을 지금은 '갈비탕'이라고 하지만, 전에는 이를 '가릿국' 또는 '가리탕'이라고 했다. 그 가리의 뼈대(갈빗대)를 구운 것은 '가리구이(갈비구이)'라 했다. '가릿국(갈비국)-가리탕(갈비탕)-가리찜(갈비찜)' 등도 모두 가리로 만든 것이었다. '가리마'도 '갈라짐'의 뜻인 '갈'이 들어간 말이다. 이마에서 정수리까지의 머리털을 양쪽으로 갈라 붙이어 생긴 금이 가리마인데,전에는 이를 '가림' 또는 '가림자'라고도 했다. 고기 잡는 기구의 하나로 '가리'라는 것도 있는데,역시 '갈'에서 나온 말이다. 통발 비슷이 대로 엮어 만든 것으로 사람의 갈비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갈'에서 나온 우리말은 무척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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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배워 볼까요 가랑비와 이슬비
진이가 한슬이네 집에 놀러 왔는데,저녁 늦게까지 가질 않는다. 빨리 가 줬으면 좋겠는데,가 주진 않고…… 밖을 내다 보니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던 한슬이는 좋은 꾀를 생각해 냈다. "어머,가랑비가 오네. 너더러 빨리 가라고 가랑비가 오나 봐." 가기 싫은 진이가 밖에 비가 오는 것을 내다보더니 말했다. "어머,가랑비가 아니라 이슬비가 오네. 나더러 더 있으라고 이슬비가 오나 봐." (글. 배우리)
*'가랑비'; 이 말은 '가늘게 내리는 비'를 뜻한다. '가랑'이 '갈'에서 나온 말인데,여기서의 '갈'이 '가늘다'는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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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 - '꽂아 놓은 감'이란 뜻에서 말 -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슬이네가 사는 지방에선 해마다 찬바람이 불 때쯤 되면 온 마을이 감 꽂는 일로 무척 바쁘다. 오늘도 슬이네 앞마당에서는 감을 깎아 꼬챙이에 꽂는 작업으로 모두 손들이 바쁘다. 슬이도 이른 아침부터 일을 도왔다. 감을 날라 오는 일이며, 꽂은 감을 한 옆에 널어 놓는 일 같은 것이 모두 슬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슬아, 이 감들이 꼬독꼬독 마르면 아주 맛있는 꽃감이 될 거야. 감이 상처 안 나게 잘 다뤄라." 할머니의 말씀이셨다. "전 꽃감을 아주 좋아해요. 이걸 보면 또 시원한 수정과도 생각 나고요." "꽃감이라니? 곶감이지." 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삼촌이 한 마디 하셨다. "곶감이 맞는 말인가요? 감이 꽃처럼 됐다고 해서 전 꽃감인 줄 알고 있는데요." "하하하. 그럴 듯하게도 생각해 왔구나. 그렇지만, 그게 아니란다." "그럼, 곶감은 어떤 뜻에서 나온 말인데요." "곶감 마을의 이 삼촌이 그런 정도 몰라서는 안 되지 않겠냐? 나도 어느 학자분한테서 들은 풍월이 있지. 어디, 곶감에 대해서 설명 좀 해 주랴?" "예, 아저씨." 깎아 놓은 감들이 주황색의 몸매를 저마다 햇볕에 드러내 놓고, 사람들의 일손 아래서 신나게 뒹굴고 있었다.
감은 배나 사과와 같은 과일과는 달라 물렁물렁해서 그대로 저장해 두고 먹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를 말려서 저장을 한다. 감을 말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감을 깎아서 싸릿대로 만든 감꽂이에 꿰어서 말리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꼭지를 따지 않고 깎아서 그 꼭지에 끈을 달아 말리는 방법이다. 원래는 감꽂이에 꿰어서 말린 감만을 '곶감'이라고 해 왔으나, 지금은 뜻이 넓혀져 끈을 달아 말린 감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끈을 달아서 말려 만든 감을 '준시'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한자말이다. 감을 말릴 때는 처음에 볕에 대강 말렸다가 또다시 응달에다 말려 단맛이 더 나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정성들이 덜 들어간 곶감들이 많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단맛이 덜 날 수밖에 없다. 곶감을 한자로 '건시(乾枾)'라고도 하고 '관시(串枾)'라고도 한다. '건시'는 말린 감의 뜻이지만, '관시'는 '꽂은 감'의 뜻이다. 감은 말리면 겉에 흰 가루가 배어나와 하얗게 보여서 '백시(白枾)'라고도 한다. 겉에 배어 나오는 흰 가루를 '시설(枾雪)'이라고 하는데, 이 시설이 많을수록 좋은 감으로 쳐 왔다. '곶감'이란 말은 '꽂은 감'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꽂다'의 옛말은 '곶다' 또는 '곳다'이다. <훈몽자회>나 <신증유합> 같은 옛날 책들을 보면 '고즐(곶을) 공(拱)'이니 '고즐(고즐) 삽(揷)'이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박통사언해>나 <소학언해> 같은 옛책에도 '곳 곳고(꽃 꽂고)', '빈혀 곳고(비녀 꽂고)' 같은 말이 나온다. 지금의 '꽂다'라는 말이 옛날엔 '곶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꽂감'의 옛말 또한 '곶감(곳감)'인데, 이 말이 그대로 살아 나온 것이다. '곶감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한다' 우리 생활 속에 잘 쓰이는 속담이다. 이 속담을 잘 새겨 보면 '꽂다'라는 말이 둘이나 들어가 있다. 그 하나는 '곶감'이고 다른 하나는 '꼬치'이다. '곶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감을 막대기에 꽂았다는 뜻에서 나온 것이고, '꼬치'는 '꽂는 것'의 뜻인 '꽂이'에서 나온 말이다. 즉, '곶감꼬치'의 원말은 곶감곶이(곶감꽂이)'에서 나온 말이다. '중생을 곶에 깨여 굽고' <월인석보>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곶'은 '곶이(꽂이)를 뜻한다. 즉, 앞의 말은 '짐승을 꽂이(꼬창이)에 꿰어 굽는다는 뜻이다. '꼬창이'란 말도 '꽂다'의 말줄기인 '꽂'과 뒷가지 '-앙이'가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꽂+앙이=꽂앙이 꽂앙이>꼬장이>꼬창이(>꼬챙이) '곶'은 원래 불쑥 튀어나간 곳을 뜻했던 말이다. 이 말은 땅이름 속에 살아 있다. 그 예로 '장산곶', '개곶', '달곶(달고지)', '곶밧(꽃밭)', '곶안(고잔)' 등이 있는데, 산등성이나 평지땅이 한 쪽으로 불쑥 튀어나간 곳에 이런 이름들이 많다. 사람 얼굴의 '코'도 '곶'에서 나온 말이다. 튀어나간 부분이기 때문에 이 말이 나온 것이다. 곶>고>코 '곶'이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로 된 '곶다'는 '꽂다'로 경음(된소리)화했다. 지금의 말의 '꼬집다'란 말도 '곶'을 그 뿌리로 한다. '꼬치안주'에서의 '꼬치' 역시 이들의 친척말이다. (글.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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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 '쓴 풀'의 뜻인 '고초(苦草)'에서 나온 말 -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그리 따갑지 않은 가을의 햇살이 마당 안에도 함빡 비치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마당에서 고추 꼭지를 따고 계셨다. "올해도 고초가 풍년이야. 이 고초 열매 좀 봐라. 좀 탐스러우냐." "예, 어머니. 고추가 이만하면 올 김장 담그는 데 충분할 것 같은데요." "아, 충분하다마다. 이번에 시골에서 보내 온 이 고초 알갱이는 모두 큼직큼직하기도 한 데다가 매운 맛도 아주 강한 것 같아서 더 그렇지." 할머니와 엄마는 고추 꼭지를 따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영아는 대화 중에서 할머니는 '고초'라 하고 엄마는 '고추'라 하는 것이 이상했다. 왜 같은 열매를 두고 '고초'라 하기도 하고 '고초'로 하기도 할까? "할머니, '고초'가 맞나요, '고추'가 맞나요?" "아하, 우리 영아가 또 궁금한 게 있나 보구나. 표준말은 '고추'지. 그런데, 그 원래의 말은 '고초'였어." "원래의 말이라는 게 뭔데요?" "처음에는 '고초'라 했다 이 말이지." "그런데, 그게 왜 '고추'가 됐어요." "말은 조금씩 변한게 마련 아니겠니. 그게 궁금하다면 이 할미가 이야기를 좀 해 주마. 이리 곁에 와 앉아라." "할머니, 고추가 너무 매워요. 그냥 여기서 들을께요." "그래라, 그럼." 멍석에 널어 놓은 고추의 빠알간 빛깔이 무척이나 짙어 보였다.
'… 백설같은 면화 송이 산호같은 고추다래.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 볕 명랑하다. …'
<농가 월령가> 8월령(음력 8월분)의 일부이다. 이 노래에서 '고추다래'는 '고추 열매'의 뜻이다. 고추를 처마에 널어 놓은 모양을 보고 '가을 볕이 환하게 밝다'고 했으니, 파란 가을 하늘 아래 고추가 빠알갛게 널린 모습은 예나 오늘이나 가을의 멋진 풍경의 하나로 보였던 듯싶다.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고추이건만 맛은 그 빛깔처럼 아름답지가 못하다. 맛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여튼 고추는 그 좋은 빛깔값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고추는 다른 열매들이 갖지 못한 맛을 혼자 갖고 있다. 매운 맛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어서 이 맛을 필요로 하는 음식인 김치 같은 것에 좋은 양념으로 들어가 주고 있다. 달고 고소한 것만 '맛'이 아니다. 혀를 놀라게 하는 자극적인 맛도 '맛'이다. 자극적인 맛에는 짠 맛, 신 맛, 쓴 맛 등이 있지만 매운 맛은 더없이 자극적인 맛이다. 고추가 이 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우리 조상들은 그 맛을 '맵다'고 하질 않고 '쓰다'고 했다. '맵다'는 말은 원래 '맛'의 한 가지로 쓰인 말이 아니라 '심하다'나 '독하다'는 뜻으로나 썼던 말이었다. 고추가 원래 '고초(苦草)'던 점을 생각하면 고추의 맛을 '쓰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쓸고(苦)자, 풀초(草)자. '쓴 풀'이라는 뜻으로 썼으니 말이다. 즉, 고추가 우리 음식의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심하다'는 뜻의 '맵다'는 말이 '쓰다'는 말 대신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고초당초 맵다 한들 시집살이 비길쏘냐.' 여자들의 시집살이가 심했던 옛날, 고추의 매운 맛을 이처럼 '심한 고생'에 비기기도 했다. '고초당초'에서 '당초(唐椒)' 역시 고추를 가리킨다. 고추가 중국(당나라)으로부터 들어와 이런 이름으로도 불렸던 것이다. 고추의 옛말이 '고쵸'임은 <훈몽자회>라는 옛 책에도 나와 있다. '초(椒)'자를 풀어 '당쵸쵸'라고 했다. 고추는 전부터 '지독함'을 나타내는 데 잘 이용되어 왔다. '고추는 작아도 맵다' '고추바람'(매우 쌀쌀한 바람) 고추처럼 작고 그 모양도 비슷한 것은 모두 '고추'자를 붙였다. '고추자지', '고추상투', '고추감'(작고 끝이 뾰족한 감) 등에서의 '고추'가 바로 그런 보기들이다. 그렇다면 '고초'라는 말이 왜 '고추'라는 말로 되었을까? 그것은 우리말에서 앞의 '오'라는 음이 있을 때 그 뒤에 따르는 홀소리의 '오'음은 곧잘 '우'로 바뀌는 말버릇에 의한 것이다. 즉, '대초'가 '대추'로, '호도'가 '호두'로 변해 온 것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지금도 일부 지방에서는 '고추'를 '고초'라 한다. 이것은 '고추'의 원말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쓰디쓴 풀'의 뜻인 '고초'는 '고추'가 되고, 이제 그 '고추'는 다시 된소리로 '꼬추'로 돼 가고 있다. (글. 배우리) ****************************************************************************************************** 980200 새벗 배우리의 우리말 교실 `소년 아름다운 우리말01 `음식 이름 속의 일본말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서---------------------------------------------------------①
우동 먹고 다꾸앙 먹고 - 음식 이름 속의 일본말 - 글. 배우리(우리말 연구가)
□ 식당에서 은솔이는 엄마와 함께 외갓집에 다녀오는 길에 집 근처에서 버스를 내렸다. 살갗에 닿는 바람이 꽤 차갑게 느껴졌다. 아직도 봄은 멀었나 보다. 은솔이가 엄마를 졸랐다. "엄마, 너무 추워요. 식당에 들어가 따끈한 음식 한 그릇 먹고 가면 안 돼요?" "뭐, 식당? 집에 다 와서 무슨 식당이야. 집에 가면 따끈한 밥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먹고 싶은 게 꼭 하나 있걸랑요." "그게 뭔데?" "우동." "뭐, 우동? 그게 그리도 먹고 싶어?" "예, 엄마." 엄마는 우동이 먹고 싶다는 은솔이를 데리고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기 우동 두 그릇요."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부터 했다. 얼마 안 있어 음식이 왔다. 그런데, 빠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엄마, 다꾸앙도 없고, 다마네기도 없잖아?" "그렇구나. 종업원이 그걸 잊었나 보다. 여봐요. 여기 단무지 하구 양파 안 왔어요." "참, '다꾸앙'이 아니라 '단무지'라고 해야 맞는 거죠? 또 '다마네기'라고 해서도 안 되는데." "그렇지. 그런데, 큰일야. 나도 식당 같은 델 들어오면 자꾸 '다마네기'니 '다꾸앙'이니 하는 말이 나오니---. 참 그리고, 이제 생각해 보니까 '우동'이란 말도 써서는 안 되는 거였어." "우동요? 그건 우리말이 아닌가요?" "그렇지. 일본말이란다." "엄마, 그럼, 음식 이름 중에서 어떤 이름을 써선 안 되는가요?" "그래, 오늘 그걸 좀 한 번 생각해 보자." 식당 안의 여기저기선 수저 소리와 주문받는 소리로 떠들썩했다. 조금 소란한 분위기 속이지만, 엄마의 말소리는 들을 만하게 나왔다. □ 음식 이름에 많은 일본말 우리말 속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외국말이 무척 많다. 그 중에도 일본말이 가장 많다. 음식 이름 중에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어서 어떤 말이 바른 말이고, 어떤 말이 써서는 안 되는 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적지 않다. 우선 '우동'이라는 말을 보자. '우동'은 우리의 전통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예부터 우동과 비슷한 것에 '국수'라는 것이 있었다. 이 국수는 옛날에 '국시'라고도 했다. 일제 때에 이 음식을 사람들이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를 '국시'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의 전통 음식인 국시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를 그냥 '우동'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는 일제가 일본말 쓰기를 장려했던 관계로 이 '우동'이라는 말은 금방 퍼져 갔다. 그러나, 광복 후 우리는 이 일본말의 '우동'이라는 말을 그대로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땅한 말을 지어 냈는데, 그것이 '가락국수'라는 것이었다. 우동은 우리의 국수보다는 그 면발이 굵기 때문에 가락(엿가락)처럼 굵다고 해서 이 말을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벌써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이 '가락국수'라는 말 대신 '우동'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음식점에서 가락국수를 먹을 때 대개 딸려 나오는 노란 무도 아직도 다꾸앙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 일본말 대신 써야 할 말은 '단무지'이다. 이 말 대신에 그냥 그 빛깔을 따서 '노란 무'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같은 음식을 주문할 때 나오는 둥근 파를 '양파'라 하는데, 아직도 이를 '다마네기'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양파라는 말 대신 '옥파' 또는 '둥근파'라고 쓰는 사람도 있다. 음식을 먹고 나면 이빨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빼 내기 위해 쓰는 가늘고 뾰족한 대막대를 '요지'라고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안 될 일이다. 요지는 일본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이쑤시개'라고 해야 한다. 이 말이 좀 거슬리다고 해서 '이막대'라고 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대로 괜찮은 말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별로 많이 쓰는 말은 아니지만, 식당에서 쓰는 물수건을 '시보리'라고 하는 사람이 있있는데, 이것도 안 될 일이다. 그냥 '물수건'이라고 하면 된다. 접시를 일본말로 '사라'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만두 한 접시를 주문한다고 다음과 말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 만두 한 사라." 만두 한 접시 달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일본말을 쓸까? □ 차림표엔 아직도 '우동'이 아직도 식당 안에는 손님들이 꽤 많았다. 은솔이는 문득 벽에 붙은 차림표를 보았다. '우동'이라고 쓴 것도 보였다. "엄마, 이젠 일본식으로 된 음식 이름을 많이 알았어요. 앞으로는 그런 이름은 쓰지 않을께요." "그래. 우리가 그런 데서부터 우리말을 지켜 나가야 할 거야." "예, 엄마. 오늘 우동 잘 먹었어요." "뭐, 우동? '가락국수'라고 안 했니?" "아, 참. 또 실수. 다시 말할께요." 은솔이는 목을 가다듬었다. "엄마, 가락국수 아주 자알 먹었어요." "하하하. 그래, 고맙다." 저쪽에 있는 식당 주인이 이것을 계속 듣고 있었는지 싱그레 웃고 있었다. (글. 배우리) |
"아구찜'은 '아귀찜'이 표준어
우리 주변에 음식점이 많이 있지만, 직장인들이 점심으로 할 수 있는 별식이 드물다. 그런데 요즈음 주변에 '아귀찜·아귀탕' 요리집이 많이 생겨 동료들과 둘러앉아 먹을 만하다. 문제는 이 표현을 제대로 쓰는 곳을 못 보았다. 모두 '아구찜·아구탕'이라고 잘못 쓰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아귀'는 긴 모양이 워낙 흉측하고 못생겨서 재수없다고 여겨, 어부들은 '아귀'가 그물에 잡히면 바로 버리거나 거름으로만 썼다. 그런데 경상도에서 어부가 아귀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선창 가에서 식당을 하는 할머니에게 한번 요리해보라고 주고 갔다. 할머니는 아귀를 그냥 초가지붕에 던져두고 있었다. 20일정도 지나니 꾸들꾸들하게 말라있어, 아깝다는 생각에 콩나물과 고춧가루를 넣고 쪄냈다. 그리고 맛을 보았더니 일품이었다. 이렇게 쓸모 없게 여겨 버렸던 아귀찜은 우연하게 요리가 되어, 이제 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음식이 되었던 것이다. 경상도 지역에서 처음 개발해낸 음식이라 그 지역 사투리를 따라 '아구'라고 부르고 있는데, 제발 '아귀'라는 표준어가 제 자리를 찾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귀찜을 먹고 나면, 후식이라 하여 '누룽지 숭늉'을 준다. 또 이 맛이 제격이라며 식당 주인은 자랑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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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숭늉'이라는 말은 정체 불명의 조어이다. '눌은밥'을 잘못 말한 것이다. 아궁이에 불을 놓거나, 연탄불 위에 솥을 얹어 놓고 밥을 하면 바닥에 밥이 늘어 붙는다. 이것이 누룽지다. 이것은 어린 시절 먹을거리가 없어 과자 대용으로도 즐겨 먹던 것이다. 이와 달리 누룽지를 긁어 내지 않고, 누룽지에 물을 부어 불려서 긁어낸 것이 '눌은밥'이다. 이것을 '누룽밥'이라고 써서도 안 된다. 숭늉도 밥을 푸고 난 솥에 적당히 남은 누룽지를 긁지 않고 끓인 물이다. 따라서 '누룽지 숭늉'이라 하지 말고 그냥 '숭늉'이라고 하면 된다. ************************************* 010110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청국장
청국장
이치가 어긋나거나 모순이 드러나거나 어울리지 않을 때 「되소금 동치미 국물 맛이다」고 한다. 김치는 한국 고추와 한국 소금으로 간을 들여야 제맛이 나듯 동치미 국물 맛도 한국 염전에서 거둔 소금 아닌 되소금(호염)으로 절이면 제맛이 나지 않기에 나온 속담이다. 이처럼 한국 전통음식은 나름대로의 고집이 있으며 그 고집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제맛내기를 거부하는 주체주의자다. 청국장도 그렇다. 띄울 때 양은 그릇이나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띄우면 잘 뜨지도 않을 뿐더러 떠도 전혀 제맛이 아니다. 반드시 짚으로 얽은 오쟁이에 담아 짚으로 덮어 발효시켜야 제맛을 내고 점액질인 실이 많아지며 뜬 다음에도 흙으로 구은 오지 그릇에 보관해야 맛이나 실이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나 사회나 문화가 온통 외래 선망과 사대로 주체가 병들어가고 있는데 음식만이라도 애오라지 옹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대견하기만 하다. 이 청국장의 건강효과는 주로 끈적끈적한 점액질 물질에서 나오는데 호서대학의 생명공학과 김한복 교수가 이 점액질 물질발생을 늘리는 신균질을 발견, 특허출원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청국장균이 혈관 속에 축적된 콜레스테롤을 분해하고 간장의 해독기능을 증진시키는 효소가 들어있으며 연전에 있었던 청국장 국제학술대회에서는 뇌와 심근경색의 요인인 혈전용해 효소를 발견해 보고했었다. 청국장은 한국·중국·일본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인도네시아·미얀마·태국·네팔 등 동남아시아를 비롯, 근간에는 미국·캐나다·서아프리카로 번지고 있고 러시아에서는 우주인의 식단으로 개발하기까지 했다. 7세기 신라의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폐백 품목으로 「시」라는 이름의 청국장이 나오고 고려 유민이 세운 발해에 책성시라는 청국장이 문헌에 나온다. 낫도(납두)를 들어 일본이 종주국임을 내세우나 나라시대에 고려장으로 불렸음을 미루어 건너간 한국문화요 청국장이라는 이름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 장병들의 군량이었기에 얻은 이름이지, 종주국이기에 얻은 이름은 아니다. 고구려 강토와 한반도가 대두문화권의 종주영역이라는 것만으로도 청국장의 종주국은 한국인 것이다. ************************************* 011130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명태
명태와 한국인
명태 없이 제사 못 지낼 것으로 알고있는 한국인이다. 왜 하필 명태만을 고집했을까. 예부터 우리 한국사람이 가장 많이 두루 먹어왔고, 말려두고 연중 먹을 수 있는 보편성 때문만은 아니다. 신명에게 바치는 희생음식은 어느 한 군데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불문율이요, 이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 명태이기 때문이다. 살 말고도 내장으로는 창란젓갈, 알로는 명란젓, 대가리로는 귀세미 김치, 심지어 눈깔은 구워서 술안주로, 껍데기는 말려두었다가 살짝 구워서 쌈 싸먹고, 꼬리와 지느러미는 볶아서 맛국물을 낸다. 곧 명태로 36가지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또한 명태는 이 세상에서 유독 한국사람 만이 먹고 또 가장 많이 먹어온 주체어다.「본초강목」을 바롯, 중국의 본초문헌에 명태가 기재돼있지 않다. 일본에서는 「스케도우 다라」라 하여 대구의 일종으로 보고, 어묵이나 가마보코의 원료로 썼을뿐 별로 먹지는 않았다. 서양에서도 알래스카 대구라 하여 먹는 것과는 거리를 두었다. 명태라는 이름에 대해 설이 많은데,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옛날 함경도 감사가 명천에 갔다가 태씨 성의 한 어부가 바친 생선을 맛있게 먹고 이름을 물었으나 이름이 없다 하자 명천 어부 태씨가 바쳤다 해서 명태로 이름을 지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전설에 불과하다. 전통 생선이름은 상어 민어 하듯이 「어」, 갈치 꽁치 하듯이 「치」, 그리고 서대 횟대 보굴대 낭태 명태 하듯이 대·태로 돼있다. 중종 때 증보한 「동국여지승람」에 명태는 무태어로 나오고 「임원십륙지」에 태어로 나온 것으로 미루어 명태의 태는 고기를 뜻한 것으로 보여진다. 삼수갑산 깊은 산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침침해지는 병이 많았는데 해변에 나와 이 명태 간을 오래 먹고 들어가면 눈이 밝아진다 하여 밝을명자가 붙었거나, 함경도 지방이나 일본 동해안 지방에서는 이 명태 간으로 기름을 짜 등기름을 삼았기로 밝게 해주는 고기라 해서 명태가 됐을 확률이 높다. 북양어장에서 꽁치에 이어 명태잡이가 따돌림당하고 있다. 그것이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고 한국인 만이 먹는 주체어라는 차원에서 꽁치와는 다른 원망이 부가된다. ******************************************************************************** 조선 [만물상] 명태 (2001.11.28)
명태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밤 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헛, 하하하하, 명태라고….』 작년 8월 유명을 달리한 외교관 작곡가 변훈씨의 「명태」는 세상살이의 애환을 시인의 술안주가 된 명태에 빗댄 해학적 노래말과 독특한 화성으로 「한국적 리얼리즘 가곡」의 대표작이라 불린다. 명태는 유난히 동해 바다에서 많이 나고 그만큼 우리 민족과 친해온 생선이다. 이름도 무척이나 많아 외국어로 번역도 잘 안된다. 잡아 얼린 것을 동태, 말린 것을 북어 또는 건태, 겨울 바람에 얼리고 말려 꾸덕꾸덕하게 만든 것을 황태, 투망으로 잡은 것은 망태, 낚시로 낚은 것은 조태라고 한다. 잡은 그대로는 생태, 아가미를 빼내고 코를 꿰어 얼말린 것은 코다리라 한다. 이름만큼이나 먹는 방법도 다양하다. 살은 국과 찌개로 먹고 알로는 명란젓, 내장은 모아서 창란젓을 담근다. 눈알은 구워 술안주로, 고니는 국거리로 쓰고, 내장 자리에 다진 양념과 소를 넣으면 명태순대가 된다. 관혼상제에서 빠질 수 없는 품목이기도 한데, 이는 태조 이성계가 함경도 지방에 있을 때 명태를 매우 즐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옛날 삼수갑산 같은 오지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 동안 명태를 장기간 먹어 이를 「눈밝히」라 했다. 명태 간에 끼인 기름에 대구의 3배에 해당하는 비타민A가 들어 있어 시력에 좋았기 때문이다. 명태살의 주요 성분은 단백질이며 칼슘도 풍부하다. 메티오닌을 비롯한 아미노산이 넉넉해 혹사당하는 간을 보호한다. 몸에 축적된 여러 독성을 풀고 소변이 잘 나오게 하는 작용이 있어 이른바 「술독」을 푸는 데에도 뛰어난 효과가 있다. 예로부터 『맛 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 할 정도로 명태는 흔한 생선이었다. 함흥에서는 『개가 명태를 물어가도 쫓아가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었다. 그러던 것이 81년을 고비로 어획량이 격감했다. 회유코스인 러시아 일본 북한 연안에서 다 잡아버려 강원도 연안에는 거의 내려오지도 않는다. 이런 판에 그저께 열린 한국과 러시아간 명태협상마저 결렬됐다고 하니, 장차 명태 값이 「황금굴비」를 뺨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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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3일 월요일
0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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