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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가요?
날이 점점 더 더워지고 있네요. 이제는 정말로 여름인 모양입니다.
심지어 벌써 모기까지 돌아다니고 있어요. 이미 몇 방 물렸죠.
계절에 맞게 집에서도 피서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하려고요.
도서명: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지옥이 새겨진 소녀
저자: 안드레아스 그루버
* 이 작품들은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의 3번 추리 코너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여름 하면 떠나는 게 있다. 이름하여 피서. 더우위를 피한다는 뜻으로, 산과 바다, 무인도와 해외 등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러나 어디 갈 것도 없이 집에서도 피서를 즐길 수 있다. 스릴러 소설 한 편이면 교통비와 관광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사실.
계절을 맞아 흥미진진한 두 개의 작품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과 ‘지옥이 새겨진 소녀’를 소개한다. 일명 ‘슈나이더 시리즈’로 불리는 스릴러 작품을.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잔혹 동화와 모순으로 가득한 수수께끼 스릴러!
“내가 누굴까? 그리고 왜 그녀를 납치했을까?”
어느 날 독일 뮌헨에서 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평소처럼 현장으로 출동한 여형사 자비네. 그런데 피해자가 다름 아닌 그녀의 어머니라는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한다. 거기다 유력 용의자로 그녀의 아버지가 의심받는 상황. 자비네는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벽에 가로막히고 만다.
비스바덴 범죄수사국은 천재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를 파견하여 사건 해결을 맡긴다. 검은색 정장에 아이폰으로 무장한 민머리의 슈나이더. 그는 손가락 3개를 흔들며 상대를 윽박지르고, 시도 때도 없이 군발두통에 시달리며, 늘 마리화나를 물고 사는 괴팍하고 재수없는 인물이다.
자비네는 독자적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번번히 그와 충돌한다.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 사건 역시 배배 꼬이기만 할 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범인에게 나름의 규칙이 있다는 것. 첫째, 희생자를 납치한 다음 주변 인물에게 전화를 걸어 납치 사실을 알린다는 것. 둘째, 경찰에게 신고하지 말라고 협박하며 그 상태에서 48시간 내에 자신이 왜 피해자를 납치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하면 희생자를 죽이겠다고 통보하는 것. 셋째, 범인이 납치 및 살인 대상으로 삼는 건 전부 여자라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자비네의 끈기로 사건의 돌파구가 생긴다. 잔혹한 연쇄 살인이 동화 ‘더벅머리 페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것을 케치한 것. 그것을 계기로 여형사 자비네 네메즈와 비스바덴 범죄수사국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는 팀을 이루고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는데.....
한편 오스트리아 외곽의 사는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상담사 헬렌은 어느 날 괴이한 소포를 받는다. 전지 가위로 난폭하게 잘린 사람의 것이 분명한 손가락. 곧이어 수수께끼의 인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경찰에 알리지 말고, 자신이 누구며, 왜 납치를 했는지 알아내면 희생자를 풀어주겠다는 내용인데.
헬렌은 혼자 동분서주하며 답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희생자가 같은 정신과 의사이며 남편의 불륜 상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범인의 정체와 납치 이유까지 알아내지만, 답을 말하는 순간 범인은 납치한 여자 대신 그녀가 다음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통보하는데.....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동화를 닮은 연쇄 살인. 불에 타고, 잉크에 익사하고, 개에게 먹히고, 콘크리트에 갇히는 등의 방법으로 살해당하는 여성들.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희생자들과의 관계와 연관성은 어떤 것일까? 괴팍한 천재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와 ‘다람쥐’라는 별명을 가진 매력적인 여형사 자비네. 그리고 현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사려깊은 상담가 헬렌. 그들은 48시간 내에 극악무도한 범죄 뒤에 도사린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모순된 마음, 그 사이에서 태어난 더벅머리 소년!
“까마귀처럼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이 쪼그리고 앉아 있어. 살 만큼 다 살아서 머리는 이미 새하얀 백발이 되어버렸지.”
1844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호프만은 세 살짜리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림책을 주기로 한다. 그러나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마땅한 책이 없었다. 결국 자신이 직접 그림책을 만들어 선물했다. 과장된 삽화와 함께 말썽쟁이 아이들이 무서운 벌을 받는 장면을 통해 몸가짐과 생활태도를 가르치는 교육적인 내용을 담았다. 이렇게 탄생한 고전 그림책이 바로 ‘더벅머리 페터’이다. 이 작품은 출간 1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 번역 출간되어 2,500만 부가 넘게 팔린 독일의 국민 동화가 되었다. 그리고 이 동화를 모티브로 탄생한 추리물이 이번에 독서한 작품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이다.
소설의 주요 모티브가 ‘더벅머리 페터’라는 동화기는 해도 굳이 그 책을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 나도 따로 보지는 않았다. 작품 속에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나 스토리를 좇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사실 ‘더벅머리 페터’라는 동화가 독일 국민 동화가 됐다는 사실조차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내용이 좀 잔인해서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 고전 ‘콩쥐 팥쥐’도 무시무시한 내용이기는 하다. 그래도 원전 말고 동화는 순화가 된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독일은 수정을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여주인공 자비네가 그 동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작품을 읽다 보면 공감이 갈 것이다. 글쎄, 어떤 의미로 작품성보다는 오래됐다는 시간상의 이유로 고전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국민 동화’라는 호칭을 받은 책 치고는 약간 모순적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이라는 작품 자체를 관통하는 것도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제목부터 모순되지 않는가? 새카만 머리인데 금발 소년이라고 하다니. 글속에서 주요 키워드로 나오고, 서문에서부터 등장하는 ‘시’ 역시 모순된 문장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연쇄살인범 ‘더벅머리 페터’ 또한 모순된 인물이다. 인간 내면의 모순을 확 부각시킨 작품이랄까?
그와 함께 오싹한 전율을 동반하는 스릴러의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소설의 도입은 한 여성이 납치되어 콘크리트에 갇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채, 그러니까 의식이 있는 산 채로 말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동화 속의 장면을 본뜬 살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나 범인은 각각의 사건마다 꼭 희생양의 근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를 구하도록 종용한다. 유희를 목적으로 그러는 걸까? 피해자를 대상으로 희망 고문을 하는 건가? 아니면 그저 자기 과시욕일까?
범인의 모순된 행동을 꿰뚫어 본 것은 정신과의사이자 상담가 헬렌이다. 이야기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사건은 ‘하나’지만 각 나라마다 ‘사건’을 풀어가는 인물들이 나온다. 독일은 슈나이더와 자비네, 오스트리아는 헬렌이다. 전자는 사건의 수사관이고, 후자는 심리상담가이다. 헬렌은 자신의 내담자 ‘안나’가 납치되었음을 알고 사건에 뛰어든다. 그리고 상상 못할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안나의 정체가 그녀와 같은 상담가 로즈이며 남편의 내연녀라는 것. ‘범인’은 로즈에게 상담을 받던 내담자였다는 것.
글속에서 주목할 점은 두 상담가가 ‘더벅머리 페터’를 대하는 자세이다. 로즈와 헬렌은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을 만나지만 모순으로 가득한 그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달랐다. 그렇기에 둘의 운명이 갈라진 게 아닐까?
마르틴 S. 슈나이더라는 인물도 꽤나 모순적이다. 수사관이면서 마약을 하고 좀 심하게 막나가는 성격이다. 잘난 척에 오만방자, 불손한데다 재수없다. 그의 단점을 보환하고 감싸주는 게 바로 자비네인 것 같다. 사건 피해자의 유족이자 수사관인 그녀도 퍽이나 매력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작가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여러 도시에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여러 캐릭터들이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엮인다. 허투루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도 없다. 이야기 전개 또한 시점이 왔다갔다 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상담 장면이 나오고 수사 과정이 등장한다. 시공이 스팩터클하게 얽힌 이런 구성이 복잡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조금 어지러운 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각각의 조각이 딱 맞물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인물들이 서로 만나 연합하면서 짜릿한 긴장감을 느꼈다.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잔혹 동화를 주제로 한 소름끼치는 사건, 범인과 추적자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싸움 등 스릴러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모범적인 추리물’이라 할 수 있겠다.
범인 ‘더벅머리 소년’의 행동도 눈여겨 볼만 했다. 어릴 적 당한 학대와 가족의 모순점이 그를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으로 만들었다. 그가 당한 일을 돌아보면 유치원과 학교 선생님들, 고모와 의사 등 여성들을 대상으로 일으킨 범죄 또한 영 납득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물론 행위 자체는 잘못이지만, 한편으로는 동정이 간다. 굳이 깔끔하게 ‘완전범죄’를 꿰하지 않고 ‘협박전화’를 한 것도 누군가 자신을 말려주길 바라는 행동에서 나온 게 아닐까?
애초에 그럴 거면 범죄를 저지르지 말 것이지 하는 태클을 걸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더벅머리 소년’은 모순된 인격이기 때문에 내면의 충동을 억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인간의 모순’이라는 테마는 작품 말미에서 ‘승녀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표면화가 된다. 자비네가 슈나이더에게 들려준 이야기 말이다. 두 명의 승녀가 인간의 마음의 선과 악에 대해 나눈 대화. 먹이를 많이 주는 마음이 강해지고 승리한다는 결말. 모순된 마음과 행동은 어그러진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을 낳았다. 하지만 헬렌처럼 ‘이해하려는 마음’과 자비네와 마르틴 S. 슈나이더처럼 ‘정의를 좇는 마음’이 있다면 그런 피해자이자 가해자는 좀 줄어들지 않을까?
물론 수사관 콤비 중 슈나이더 쪽은 성격 파탄의 정도가 심하지만 말이다. 수사관 프로파일러여서 다행이지, 여차 하면 범죄자로 전직했을 것 같은 성질이라서. 특히 지능적이고 오만불손하고 재수없는 성질을 가진 유형으로.
아무튼 무더위가 스멀스멀 몰려오는 요즘 같은 철에 펼치기 그만인 작품이었다. 다음 권이 연달아 나오길, 아니 빠른 시일 내로 3편이 업로드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여름철 피서를 책임질 테니까. 이쯤에서 후속작 ‘지옥이 새겨진 소녀’로 넘어가겠다.
지옥이 새겨진 소녀, 서사시와 함께 악마가 가득한 세상!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오스트리아의 빈 외곽을 둘러싼 비너발트 숲속, 그곳에서 한 명의 피투성이 소녀가 노부부에 의해 발견된다. 그녀의 등에는 어깨부터 온통 불과 천사와 악마 등의 모양을 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 34 편 서사시 중 8번째 시를 표현한 것. 소녀는 1년 전 비너발트 숲 근처 놀이터에서 실종되었던 클라라. 1년의 실종과 느닷없이 숲에서 발견된 소녀. 그리고 그녀의 등에 새겨진 끔찍한 문신. 하지만 사건은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클라라 사건의 담당 검사인 멜라니 디츠는 소녀 이전에 7명의 희생자가 더 있을 거라 예상한다. 클라라의 등에 새겨진 문신이 신곡 지옥 편의 8번째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감을 증명하듯이 소녀를 발견했던 숲 주변에서 등의 살갗이 벗겨진 소녀들의 시체가 연달아 발견된다. 그리하여 연쇄살인의 증후를 포착한 수사팀은 클라라의 주변을 훑어가기 시작한다. 이미 고인이 된 소녀의 어머니 잉그리드와 절친이었던 멜라니 디츠 검사는 클라라를 납치한 범인을 잡으려 필사적이다. 그녀는 내심 소녀의 양부 루돌프 브라인슈미트를 수상하게 여긴다.
비록 친구 잉그리드와는 배우자 문제로 멀어졌지만, 클라라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남의 집에 불법 침입해서 지하실을 뒤지는 위험까지 무릅쓰는 그녀. 그런 우여곡절 끝에 잉그리드의 컴퓨터를 입수하게 되고, 그 안에서 클라라의 흔적을 발견한다. 소녀의 메일함에서 ‘미셸’과 ‘하이코’라는 ID를 발견하게 된 것. 과연 소녀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누가 클라라를 납치한 것일까? 무슨 목적으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것일까?
그와 함께 컴퓨터에서 잉그리드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도 찾게 된다. 노트북에 ‘강한 마이크로파’를 발생시키는 장치가 되어 있었던 것. 대체 누가 이런 장치를 해놓았단 말인가? 클라라와의 납치와는 연관이 있는 걸까?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사건들의 윤곽이 잡혀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이제 알겠어요.”
자비네는 독일 비스바덴 범죄수사국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그녀는 나중에서야 슈나이더의 입김이 자굥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난번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 사건’ 때 인연이 닿은 프로파일러. 자비네는 이번 아카데미 입학으로 예전 남자 친구 에릭과의 사이가 진전되기를 기대한다. 확실히 꿈과 연애를 다 이룰 기회가 아닌가?
하지만 우연히 에릭 도르퍼가 총상을 당해 혼수 상태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것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정체 모를 인물에 의해서 말이다. 그 당시 그는 슈나이더와 함께 어떤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그녀는 아카데미 연수를 받으며 에릭의 총격 사건을 파헤치려 노력한다. 그러나 연수생 신분으로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교관인 슈나이더 또한 자비네의 행동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결국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물과 기름이 된 둘. 엎친 데 덮쳤다고 아카데미 연수생들과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가 못하다. 마르틴 S. 슈나이더의 추천으로 입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위 ‘왕따’를 당하기 시작한 것. 학업과 텃세와 사랑과 사건에 골머리를 앓는 자비네.
그러는 와중 슈나이더의 수업을 듣다가 묘한 직감을 받게 된다. 수업에서 예시된 세 개의 사건. 베를린에서 일어난 ‘지네 사건’과 바텐메어 ‘바닷가 사건’, 그리고 아이펠에서의 ‘식인 사건’에서 묘한 예감을 느낀 것. 어쩌면 세 가지 사건이 서로 연동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 추측은 대번에 마르틴 S. 슈나이더에 의해 부정당하고 만다. 그도 그럴 게 세 가지 사건은 살해 방법, 살해 도구, 시신 처리 방법, 장소와 시간 등 전혀 일치하는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쇄살인이라면 뭔가 패턴이 존재해야 하는데 공통 분모가 없었던 것. 각 사건에 사용된 흉기는 전동 빵칼, 메스. 피해자를 잠재운 약물은 수면제, 클로로포름. 범행 대상은 부유한 가족, 오스트리아 대사의 딸, tv 방송 사회자. 되짚어 볼수록 같은 범인이 저질렀다는 발상 자체가 쏙 들어갈 만한 현실. 그러나 세 가지 사건에 공통점이 있기는 했다. 첫째, 마치 짜맞춘 듯 완벽하게 한 사람을 지목하는 증거들이 있었다는 점. 둘째, 각각 검거된 용의자들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아직가지도 미결 사건으로 남았다는 점. 셋째, 각각의 사건이 발생한 시차가 1년이라는 것. 과연 이 세 가지 사건의 연결 고리는 있는 것일까? 그리고 에릭 도르퍼의 총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지옥에서 온 사건의 퍼즐과 그 악마를 탄생시킨 판단!
“이런 망할! 내가 상당히 영리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에릭 도르퍼처럼 또다시 그런 덫에 걸려들게 하고 싶지 않단 말이오.”
작가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다양한 사건을 조합해 스캐일이 큰 그림을 만드는 데 선수인 것 같다. 전작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처럼 말이다. 그의 신작이자 후속작인 ‘지옥이 새겨진 소녀’도 이런 퍼즐형 사건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전작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오싹한 사건들을 줄줄이 엮어 놓았다.
일가족을 토막토막 살해한 지네 사건, 피해자를 반쯤 묻어놓고 밀물에 익싸시킨 바텐메어 바닷가 사건, 밀실에서 사람을 말 그대로 먹어치운 식인 사건, 가학성을 즐기다 독이 발라진 체찍에 맞아 죽은 말 가면 사건 등등. 마지막 피해자는 호르스트 에커로 뉘렌베르크에서 살해당했다. 그리고 피해자의 신분은 오스트리아 빈 정치판의 베테랑이었다. 물론 표제이기도 한 등에 지옥을 문신으로 새긴 클라라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전작이 동화가 모티브였다면 이번 ‘지옥이 새겨진 소녀’는 그 유명한 문학 작품 단테의 ‘신곡’이다. 당연히 이번 작품에서도 괴팍한 천재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와 현직 아카데미 연수생 신분인 전직 여형사 자비네 네메즈가 등장한다. 곧잘 티격대고는 하지만 둘의 케미(Chemistry)는 정말 환상적 궁합이다.
마르틴 슈나이더. 아니, 마르틴 S. 슈나이더. S를 빼먹으면 안 된다. 이 점이 무척 중요하다. S를 왜 빼먹으면 안 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마르틴 S. 슈나이더가 그러라고 했다는 것.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틴 S. 슈나이더가 그렇게 말했고, 그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S를 빼먹으면 안 되는 것이다. 즉, 마르틴 S. 슈나이더가 그렇다면,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할 만큼, 그의 성격 역시 말도 안 된다. 거만하고 잘난 척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재수없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발병하는 군발 두통으로 인해 마리화나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건 해결률은 100%에 달한다. 물론 훌륭한 성과가 그의 좋지 못한 인성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독일 연방범죄수사국 아카데미 최고의 프로파일러이기에, 누구도 그의 이러한 성격에 토를 달지 못한다. 그렇다면 자비네 네메즈는 어떤 사람일까?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능력도 마르틴 S. 슈나이더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직관이 탁월하고, 끈질기며, 임기응변 또한 높다. 부록으로 외모도 출중하다. 무엇보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다. 약간 무모하고 감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더 큰 유능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그 변덕스러운 마르틴 S. 슈나이더가 범죄수사국 국장한테 압력을 가해서 입학시킨 걸 테지. 물론 덕분에 사제지간 둘이 나란히 윗선에 미운털을 박고 말았지만 말이다.
슈나이더는 기본적으로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수업에서도 이러한 것을 강조한다. 더불어 자비네와의 협업에서도 그 특성이 유감없이 들어난다. 일명 ‘말리면서 부축이는 작전’ 말이다. 그러나 슈나이더가 걱정하면서도 그녀를 믿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 성격파탄자가 걱정에다가 믿음이라니. 진짜로 그 대목에서 엄청 놀랐다.
확실히 그의 말마따나 ‘사건’이 위험하기는 했다. 슈나이더는 믿었던 친구에게 납치 및 강금당하고, 자비네는 교관에게 툭하면 심리적 취조에 시달린다. 사건 자체도 복잡한데 ‘적(범인)’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는 반전 결론까지. 단서, 모든 사건을 관통하는 고리를 찾아내는 과정은 정말 ‘우연한 발견’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그 그림이 아직도 인터넷에 남아 있어요? 벌써 몇 년 전에 서버가 그 그림을 삭제했어야 했는데.”
천신만고 끝에 발견한 실마리는 10년 전 오스트리아 빈의 법정을 묘사한 스케치였다. 그 그림은 법정 기자 게르하르트 디츠로 연결된다. ‘어라, 낯익은 성인데?’ 생각하다가 클라라 사건에 열을 올리는 멜라니 검사를 떠올렸다. 인물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독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0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한 재판이 있었다. 아이들을 유괴해 폭행하고 살해한 사건. 당시 참여한 8명의 배심원 중 다섯은 범인이 무죄라 판단했고 용의자는 풀려났다. 그리고 범인은 새로운 범죄를 저질렀다. 이 ‘법정의 판단’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1년의 시차를 둔 4건의 살인에 발단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5번째의 살인이 일어날 시점에 도달했다.
자비네와 슈나이더가 조사하는 네 개의 사건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더불어 그 사건에 접근해서 진실을 밝힌 에릭의 총상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나 처음의 세운 각각의 사건의 범인은 ‘동일범’이라는 가정은 빗나갔다. 범인은 혼자가 아닌 2명 이상이라는 사실. 그리고 각각의 범행 뒤에 누군가 도사린 채 악마의 범죄를 짜고 조장하고 부축였다는 것. 이제 남아 있는, 예상된 피해자는 하나, 루돌프 브라인슈미트뿐이다. 아니, 베일의 범인이 노리는 인물은 클라라. 가족을 잃은 상실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삶이 지옥으로 변하도록 만들기 위해, 그리하여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악마의 속사김으로 꼭두각시를 부축인다.
글속의 사건 발단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떠올리게 만든다. 죄를 지었다는 모든 증거를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범죄자들. 돈을 받고 그들을 변호해주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탓해야 할까? 만약 그렇게 빠져나간 사람이 다시 다른 범죄를 저지른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자식을 잃은 부모가 자식을 죽게 만든 사람들을 향해 저지르는 복수극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베슬리와 아우어스베르트의 심경이 영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둘에게 완벽하게 동조할 수는 없었다. 둘은 복수를 하기 위해 범죄적 심리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물색하고 오랫동안 그 범인들의 심리를 이용, 자신들은 살인을 하지 않고, 그들을 조종해 살인을 시킨다. 아이의 복수를 할 거라면 직접 당당하게 나섰어야 옳았다. 자신의 직위를 유지한 채 뒷공작을 버리는 건 어떻게 봐도 치졸한 인상밖에 들지 않는다. 더구나 진범을 무죄 처리하면 훗날 발생할 범죄는 어찌 한다는 말인가?
그런 한편 잘못된 판단이 불러올 수 있는 비극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배심원 제도’가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제도가 합리적인 것일까? 국민이 판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 표어 중에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게 있다. 전문가가 괜히 전문가랴. 배심원의 판단은 존중할지언정 판결의 척도로 삼는 게 옳은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실제로 ‘배심원 제도’하면 떠오르는 미국의 법정은 감정 호소와 쇼맨십의 무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작가가 오스트리아에서 거주하고 있다던데, 어떤 의미에서는 법적 제도의 불합리성을 나타내려고 한 게 아닐까?
누군가의 판단으로 인해 피의자나 그 가족은 ‘지옥’을 겪는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악마’는 태어난다. 이런 생각할 거리 외에도 ‘지옥이 새겨진 소녀’는 스릴러로서의 재미가 넘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의 추론 속에서 더위 따위는 진즉 잊혀지고 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빨리 세 번째 슈나이더 시리즈가 전자도서로 나왔으면 좋겠다.
PS. 슈나이더 시리즈를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상식
1. 군발두통: 마르틴 S. 슈나이더가 시달리는 질환으로 눈물 유출, 코막힘, 결막충혈, 눈꺼풀 내려앉기 등의 교감신경 실조증상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이다. 통증 강도로는 편두통의 수배에 이른다. 자고로 아프면 신경질적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가 성격파탄에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마약중독인 이유가 혹시?
2. 배심원 제도: 일반 국민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이다. 무작위로 차출한 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피의사건에 대한 재판 또는 기소에 참여한다. 미국과 오스트리아 등에서 실행하고 있고, 독일에서는 진즉에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해 왔다.
3. 작가에 대한 추측: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개를 좋아하거나, 아니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과 ‘지옥이 새겨진 소녀’에서 정말 유능하고 귀엽고 충성심 높은 견공님들이 나온다. 그것도 세 마리나. 만약 세 번째 시리즈물에서도 개가 등장한다면 이 가설은 확신으로 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