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온몸으로 거부하던 2003년 11월11일, 참여정부는 향후 10년간 119조 투융자계획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2004년 2월23일에는 이를 포함한 농업농촌종합대책이 발표된다. 그리고 12월24일 성탄 전야. 농림부는 경제장관 간담회 보고라는 형식을 통해 농업·농촌종합대책 세부추진계획을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발표했다. 던져진 주사위. 농민에 대한 선물인가? 남 좋은 일이나 시키는 빛 좋은 개살구인가? 실질적으로 올해부터 본격화될 농업농촌종합대책과 이를 뒷받침한다는 119조 투융자계획, 그러나 그동안처럼 농가부채만 남아서는 안될 일. 제대로 해보자는 의미로 하나 하나 따져 보자.
기존 농림예산과 중복 불구 “돈, 또 쏟아붓나” 오해 ‘국가예산 10% 확충 공약’ 지켰다면 168조 넘어야 균특회계·지방 이양으로 농림사업 축소 우려도 ‘과거 규모화정책 답습·농촌개발 치중’ 지적 높아
●예산을 뜯어보니
119조라고 하면 엄청난 돈이 “또” 농촌에 쏟아부어지는 것 같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전농전북도연맹 류재흠 정책실장은 “119조는 연간 10조원씩 지원되는 것으로 지난 10년동안에도 연 평균 8조4000억원씩 지원돼 왔기 때문에 물가 인상률 등을 반영하면 결코 늘어났다고 볼 수 없다”며 “또 다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농촌에 쏟아 붓는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119조 투융자계획은 기존 농림부문 예산에 연평균 7.3%의 증가율을 반영한 수준이며, 이는 기존 농림예산과 별도로 119조원에 투자되는 것이 아니다. 2005년만 보아도 정부 전체의 예산증가율이 7.5% 수준이므로 119조 계획의 평균 증가율을 웃돈다.
참여정부가 대선 당시 약속한 국가예산 대비 농림예산 10% 이상 확충 공약도 물건너 갔다. 국가 전체 예산대비 농림예산은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당시인 94년 14.1%에서 국민의 정부 시절 10% 아래로 추락, 2002년 6.7%였고 참여정부 들어서도 2003년 6.8%, 2004년 7%에 불과하다. <위 그래프 참조>
특히 2005년부터는 3조원에 달하는 채무상환예산 같이 회계간 중복편성된 예산을 제외한 순수 지출규모로만 예산을 편성하다보니 2005년 농림부문 지출예산은 8조6000억원으로 국가예산대비 5.1% 수준에 불과하다. 2005년 국가 전체 예산이 168조2000억원임을 감안할 때, 그 10%는 16조8000억원 이어야 한다. 국가예산의 10%공약을 지켰다면 10년간 119조원이 아니라 168조가 넘어야 한다. 또 119조원 가운데 참여정부가 2008년까지 국가재정계획으로 책임진다는 51조원을 빼면 2009~2013년까지 5년간 68조원이 차기 정권의 몫이기 때문에, 투융자계획이 법제화되지 않는 한 2009년부터는 지속적인 투자를 보장할 수 없다.
●균특회계와 지방 이양
지방균형발전과 지자체 자율성 향상을 위해 도입된 국가 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과 농림예산의 지방이양도 그 취지와는 다르게 119조 투융자사업 축소의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농업관련 균특회계 사업은 배수개선, 농업생산기반종합정비, 국가관리 방조제, 용수개발, 밭기반정비, 산지유통센타 등 21개로 2004년의 경우 1조1088억원, 2005년 1조1326억원이다. 정부는 2009년까지 9조1947억원의 농업예산을 균특회계로 이관할 방침이다. 그러나 균특회계로 이관된 예산은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총액 범위 내에서 조정이 가능해 최근 각 지자체의 현안인 건설, 교통, 환경분야 등으로 우선 투자될 우려가 높다는게 현장 농정담당자들의 우려다. 또한 농가도우미, 여성농업인센터 등 9개 사업이 지방재정교부금(분권교부세)으로 전환돼 지방으로 이양되면 농림사업 축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시겚봉?사업을 축소겿茶銖?우려가 있는 것.
●42조 실패 반면교사로
119조 대책은 과거 42조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의 내용인 규모화와 경쟁력 제고에 직접지불제를 끼워 넣은 것으로, 똑같은 실패가 거듭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 농업전문가는 “개방을 전제로 한 이런 식의 전업농 위주 규모화 전략은 농산물 가격의 폭락, 생산비의 지속적인 증가, 농가부채 급증이라는 농정실패의 악몽을 되풀이 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각종 수매제도 폐지를 시도하면서 소득보장대책은 미흡하다”며 “특히 우리는 농촌복지에 집중 투자를 요구했는데도 실제 농림예산은 농촌개발에 치우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농림부의 2005년 복지증진과 지역개발 예산은 올해 2445억원에서 내년 4607억원으로 88.4% 증가했으나 이중 농어민 건강보험료 지원, 영유아자녀양육비 지원 등 교육·의료·복지부문 예산은 996억원에서 1017억원으로 겨우 2.1%만 늘었을 뿐이다. 반면 농촌마을 종합개발, 정주기반 확충 및 문화마을 조성 등 지역개발 예산은 1449억원에서 3590억원으로 무려 147.8%나 증액시켰다.
119조 투융자의 내실화와 사업별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론도 많다. 농림재정정책 전문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용택 연구위원은 “정책목표에 상응한 제대로된 그림과 추진시스템이 미흡하다”면서 “정확한 검증을 위해 전문가들에 의한 중간점검 및 평가·수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복지수준과 농가소득을 실질적으로 끌어 올리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10년 뒤인 2013년, 농민 1인당 소득을 도시근로자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실현하겠다는 장밋및 청사진의 119조 농업농촌종합대책. 과연 이대로 가도 좋은 것인가?
쌀 “규모화 한다고 가격 경쟁 될까” 과수 “무작정 폐원, 타작목 넘칠텐데” 화훼 “매년 느는 로열티 걱정 아는지”
●현장의 얘기들
현장 농민들은 119조 대책을 어떻게 볼까? 획기적인 대책이라는 정부 주장과 달리 불만이 많다.
쌀 대책의 경우다. 경북 경주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혁연(현곡면·46)씨는 “쌀 시장 개방에 대한 대응책으로 2010년까지 6ha규모의 쌀 전업농 7만호 육성과 고품질 친환경 쌀 생산지원 등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며 “규모화를 하더라도 단가 면에서 현저한 차이가 나는 중국쌀과 가격경쟁이 될지 또 모든 농가가 고품질 쌀을 생산해 시중에 친환경 쌀이 넘쳐 날 경우 모든 고품질의 쌀이 현재처럼 높은 가격을 유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정부에서는 추곡수매제 폐지에 따른 대책으로 목표가격제를 내놓고 있으나 목표가격제는 땜질식 처방에 불과한 만큼 근본적인 소득안정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과수 대책도 마찬가지. 경산에서 복숭아 과원 폐원신청을 한 뒤 지난해 선정대상에 제외된 이정훈(자인면·45, 2500평)씨는 “지난해 FTA 지원 대책으로 복숭아와 시설포도 등에 과원폐원을 지원하기로 해 경산에서만 500ha 이상이 폐원신청을 한 상태다”며 “차후 복숭아 등을 폐원 신청한 농가에서 사과 등 다른 작목으로 뛰어들 경우 과잉공급으로 과수 산업이 연쇄 붕괴 할 조짐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 잘 나간다는 화훼분야는? 전북 김제시 만경읍소재 유리온실 4000평에서 장미를 재배하는 허덕기(44)씨는 화훼의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조차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정부의 화훼 대책을 꼬집었다. 신품종 육종 개발에 대한 언급이 한 줄도 없었기 때문이다. 97년 장미를 시작으로 국화,카네이션 등 올해부터는 거의 모든 화훼가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고, 수출물류비 지원도 매년 감소하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만일 수출이 중단되면 국내 화훼 재배농가들은 연쇄붕괴된다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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