慵甚(용심)
이첨(李詹:1345(충목왕 1)~ 1405(태종 5).
여말선초의 문신.
본관은 신평(충남 당진). 자는 중숙(中叔), 호는 쌍매당(雙梅堂).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태종 때 벼슬이 의정부사에 이르다.
저서로는 소설『저생전(楮生傳)』 · 『쌍매당협장문집(雙梅堂篋文集)』이 있다.
평생 우물쭈물하다가 할 일도 못하고
平生志願已蹉跎 평생지원이차타
*蹉跎(차타): 우물쭈물로 번역함
늙어서 게으름만 더 늘었네
爭奈衰慵十倍多 쟁내쇠용십배다
잠에서 깨어보니 꽃 그림자 저만치 피어 있고
午枕覺來花影轉 오침각래화영전
잠시 어린아이 데리고서 갓 핀 연꽃을 보네
暫携穉子看新荷 잠휴치자간신하
*
즉흥적 斷想(단상)
세월이 지나도 좋은 시는
通時性(통시성)과 敎訓性(교훈성)을 갖고 있다
이 시를 읽다 보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일랜드의 극작가이며 소설가인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내 언젠가 이 꼴 날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흔히, 우리에게는 의역된 문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각설하고
이 시에는 자책하는 가운데
새로운 희망을 엿볼 수 있다.
평생 바라는 바를 차일피일(此日彼日) 하다 보니
나이만 들어서 게으름만 늘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허송세월을 한탄하고 있다.
그러면서 화자는 범부들이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이루어 놓았다.(엄살)
하기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입이 열 개가 있어도
할 말이 없다.
나이가 들어가니 몸은 예전과 같지 않고
누워 있으면 모든 게 귀찮아진다.
낮잠을 자다가 깨어보니 꽃그림자도 옮겨가고......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삶도
‘흥망성쇠' (興亡盛衰)도 있고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하지 않던가!
화자는 꽃 그림자도 기우는 것을 보고
문득 느낀 바가 있어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연당(蓮塘)에 간다
새로 피어오르는 연꽃을 바라보며
어린 아들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었는지
6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