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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독서클럽♥ 책으로 만나는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예쁜글씨
2009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된 이은식 박사의 신작
『지명이 품은 한국사』
수도를 포용한 국토의 심장부가
품고 있는 천 년 한반도 역사의 기록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이름에는 반드시 그 연유가 있다
사람의 이름에는 명분이 있고 지명의 뒤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들이 부르는 이름에는 뜻이 있다. 깊은 뜻, 재미있고 해학적인 뜻, 슬픈 뜻 등 역사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부모님이 우리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몇날 며칠을 고민하며 좋은 뜻을 지어주듯,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마을의 이름에도 그와 같은 뜻이 들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이름이 갖고 있는 뜻을 알면 내가 발붙이고 사는 곳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지게 된다. 쉽게 쓰여진 『지명이 품은 한국사』를 읽으면서 지명 유래를 알게 되고 우리 지명이 품은 역사에 대한 이해 또한 넓고 깊어지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현재 한반도에 사는 7천 만 국민들은 과연 자신이 사는 지명의 어원을 어떻게 풀이할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특히 이번 책에서 다루게 되는 서울과 경기도는 역사적으로 수도를 포용한 국토의 심장부로서 민족 문화의 찬란한 꽃을 피우며 발전해 온 지역이다. 한양과 경기도는 고려와 조선 두 왕조를 거치는 1천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항상 역사의 현장이 되어 왔기 때문에 도처에 이곳만이 갖는 독특한 고유 지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지명은 소중한 우리 민족문화 유산의 체험적 근거임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산업화 추세에 따른 도시 개발로 인해 고유한 지명과 뜻이 인멸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명이 품은 한국사』를 통해 이제까지 전승되어 온 고유한 지명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지명에 얽힌 선조들의 생활상과 애환을 비롯하여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의 역사를 분리시켜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 소개
“필자가 전국을 찾아다니며 얻은 바에 의하면 지명의 변천사를 꼭 밝혀야 되겠다는 깨달음이었다. 향후 전국을 대상으로 현지를 답사하면서 샅샅이 밝혀 보기로 하고 이번 그 첫 번째로 서울과 경기도의 일부를 책으로 엮어 낸다.”
이은식 박사는 숨겨지고 잊혀져 가는 역사, 왜곡된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품고 반평생 동안 전국을 답사하며 선현들의 묘소와 자취, 사료들을 찾아내고 고증하였다. 그가 선조들의 행적을 찾아 진실된 역사를 발굴해 내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고 있다. 앞으로도 선현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지침서가 될 다양한 역사서들을 지속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문학박사
한국인물사연구원 원장
사)퇴계학연구원 퇴계학진흥협의회 이사
사육신현창회 연구이사
성균관 수석 부관장
서울문화사학회 이사
사)사명당기념사업회 이사
출판사 리뷰
우리가 갖고 있는 이름의 뜻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지명은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고 또한 방언을 포함하여 순수한 우리 말로 지은 이름도 있기는 하지만 그 단어의 어원이 한문에서 시작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자를 풀어나가다 보면 우리 고유의 말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지명에 담긴 이야기는 그대로 설화 문학의 모태가 되며, 또한 설화 자체만으로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정신적 향수가 되고 있다. 또한 지명은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향토적 배경과 강한 보수성으로 인하여 한번 생성되면 보통 새로운 지명으로 바뀌지 않는다. 때문에 그 안에 내제된 고어古語와 각 고장의 독특한 방언이 투영되어 있는 등 실로 고유 지명이 지닌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이 한 나라의 영토가 국민의 생활 무대라면 지명은 그 생활 무대에 붙여진 향토 문화유산의 종합체이며 고유 지명만이 갖고 있는 향취와 멋이라고도 하겠다.
역사적으로 지명은 한 고장의 생활상을 나타내는 특징이나 지리적, 역사적, 민속학적 특성에 의해 명명되어 왔기 때문에 오랜 역사의 흔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지질과 산업, 풍수지리에 이르기까지 지리학적 특성은 물론 유물이나 유적, 제도와 인물 등 지명에 얽힌 전설과 함께 한 시대의 역사가 숨 쉬고 있으며 사라진 풍속이나 생활 습관도 살필 수가 있다. 또한 지명은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향토적 배경과 강한 보수성으로 인하여 한번 생성되면 보통 새로운 지명으로 바뀌지 않는다. 때문에 그 안에 내제된 고어古語와 각 고장의 독특한 방언이 투영되어 있는 등 실로 고유 지명이 지닌 역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내 고장과 우리나라를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내 고장 사랑의 길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쉽고 편안하게 읽힐 수 있도록 집필되었음을 밝힌다.
목차
작가의 말
제1부 서울 지역의 지명 유래
서울이란 이름의 시원
서울의 유래 ‐ 빛의 자손이 사는 곳
ㆍ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변천사
성동구 왕십리와 서대문구 무학재의 유래 ‐ 무학 대사와 도선 대사의 비기
ㆍ무학 대사의 지혜, 돼지상과 부처상
ㆍ서울 성곽의 축조
ㆍ한성부의 행정구역
ㆍ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ㆍ일제 강점기의 서울
ㆍ1945년, 해방을 맞이한 서울
강북구 번동의 유래 ‐ 이씨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리라
ㆍ이성계 어머니 최씨 부인의 신기한 꿈 이야기
강북구 미아동의 유래 - 의정부로 넘어가는 마지막 고개
강북구 수유동의 유래 - 빨래골의 개울이 넘쳐흐르다
강북구 우이동의 유래 - 자신을 낮추는 군자의 기상
성북구 정릉동의 유래 ‐ 신덕 왕후의 복권
성북구 장위동의 유래 - 명신이 살았던 마을
성북구 안암동의 유래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명지
성북구 종암동의 유래 - 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던 마을
성북구 석관동의 유래 - 경종의 의릉이 있어 왕이 행차한 마을
성북구 삼선동의 유래 -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노닐던 곳
성북구 보문동의 유래 - 담진 국사의 혼이 서린 곳
성북구 돈암동의 유래 - 침략자들의 서울 입성 머리
동대문구 신설동의 유래 - 정승 유관의 혼이 머무르는 곳
동대문구 이문동의 유래 - 이문을 설치해 도둑을 지키다
노원구 월계동의 유래 - 녹천이 살던 마을, 사슴이 내려온 동네
노원구 상계동의 유래 - 병조의 직할 역참이 있던 곳
노원구 중계동의 유래 - 중랑천의 중간에 위치했던 마을
노원구 하계동의 유래 - 충절의 징표, 최초의 한글 비석
노원구 공릉동의 유래 - 왕의 능이 있는 능골 마을
중랑구 망우동의 유래 ‐ 이성계가 근심을 잊은 고개
중랑구 묵동의 유래 -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교육촌
은평구 불광동의 유래 ‐ 부처님의 서광이 어린 마을
ㆍ장희빈의 입궁으로 관가 인물들이 왕래한 관터고개
ㆍ인조반정을 모의한 원두표 장군이 거했던 독박골
은평구 녹번동의 유래 ‐ 가난한 이들을 위한 녹봉
은평구 연신내의 유래 ‐ 인조가 친히 마중을 나오다
은평구 갈현동의 유래 - 지맥으로 물이 양쪽으로 흐르는 마을
은평구 응암동의 유래 ‐ 매가 바위에 웅크려 앉은 형상
은평구 대조동의 유래 ‐ 큰 마을 대촌말
은평구 구파발동의 유래 ‐ 벽제관으로 통하는 길목 파발 역참
진관사 사찰의 유래 ‐ 현종을 보호한 진관 대사에 대한 보답
은평구 연신내와 연서의 유래 ‐ 신하를 늦게 만난 개천
철종의 잉태지 마포구 상암동의 유래 ‐ 치마를 두른 여인과 같다
마포구 난지도의 유래 - 난초와 영지가 자라던 아름다운 섬
마포구 성산동의 유래 - 김자점이 반역을 위해 무기를 제조한 곳
마포구 현석동의 유래 - 화산암으로 유달리 돌이 검은 마을
서대문구 연희동의 유래 ‐ 임금이 머물던 궁궐이 있던 곳
중구 남창동과 북창동의 유래 ‐ 국가의 양곡을 관리했던 자리
중구 신당동의 유래 ‐ 시구문 밖 무당들의 터
중구 낙동의 유래 ‐ 남산 깊은 곳 맑은 물이 흐르는 곳
ㆍ남산에 기거한 손순효, 확고한 신념의 일생
중구 구리개의 유래 ‐ 땅이 질펀했던 불편함으로 생긴 지명
ㆍ보은단동과 역관 홍순언
중구 진고개의 유래 ‐ 구리개보다 더한 진흙탕 길
종로구 신문로의 유래 ‐ 권세로 돈의문을 폐쇄하다
ㆍ이인손의 아들 5형제가 등과한 오궁동
종로구 팔판동의 유래 ‐ 강릉 김씨 판서들이 집단으로 살다
도봉구 도봉동의 유래 - 도봉산의 아래 자락
도봉구 방학동의 유래 - 학이 노니는 평화로운 마을
도봉구 쌍문동의 유래 - 지극한 효성을 기리는 마을
도봉구 창동의 유래 - 양곡 창고가 있던 마을
강서구 공암 나루의 유래 ‐ 형제의 우애를 전하는 투금탄
강서구 염창동의 유래 ‐ 소금을 실어나르던 길목
양천구 목동의 유래 - 풍부한 초목으로 생활을 영위한 마을
양천구 신월동의 유래 - 고운 달이 비치는 내가 있는 마을
영등포구의 유래 ‐ 선박이 출연하던 중심 포구, 방아곶이길
동작구 노량진동의 유래 ‐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
동작구 상도동의 유래 ‐ 상여꾼이 집단으로 산 마을
동작구 사당동의 유래 ‐ 고관을 지낸 이들의 사당이 있던 곳
강동구 고덕동의 유래 ‐ 태종이 이양중의 높은 뜻을 알아주다
강동구 길동의 유래 – 나뭇가지처럼 긴 기리울
강동구 둔촌동의 유래 – 둔촌 이집이 살았던 마을
강동구 명일동의 유래 – 여행하는 이들의 편의를 도와주다
강동구 상일동의 유래 – 게가 많았던 게내천의 윗마을
강동구 하일동의 유래 – 게가 많았던 게내촌의 아랫마을
강동구 성내동의 유래 – 풍납리 토성 안쪽에 위치한 마을
강동구 암사동의 유래 – 신라 시대에 자리했던 9개의 절
관악구의 유래 – 근기 오악의 관악산
관악구 봉천동의 유래 ‐ 하늘을 받치고 있는 마을
관악구 신림동의 유래 – 관악산 기슭 숲이 무성한 마을
급격한 개발로 원형을 상실한 서초구
서초구 서초동의 유래 – 서리풀이 무성했던 마을
서초구 반포동의 유래 - 물이 서리어 있던 갯벌 지대
서초구 방배동의 유래 - 왕위를 포기한 양녕과 형제간의 우애
강남구 논현동의 유래 - 논이 많았던 고개
강남구 압구정동의 유래 - 한명회가 노닐던 정자가 있던 곳
강남구 청담동의 유래 - 맑은 물이 많았던 마을
강남구 도곡동의 유래 - 도자기를 구웠던 마을
송파구 잠실동의 유래 - 양잠업의 장려로 잠실도회가 있던 곳
송파구 가락동의 유래 - 가히 살 만한 좋은 땅
송파구 거여동의 유래 - 거여가 살던 마을
송파구 마천동의 유래 - 임경업이 말에게 물을 먹인 곳
송파구 문정동의 유래 - 임경업이 태어난 마을
송파구 방이동의 유래 - 오랑캐를 물리친 마을
송파구 삼전동의 유래 - 청에 항복한 역사적 치욕의 장소
송파구 석촌동의 유래 - 돌이 많았던 마을 돌마리
송파구 송파동의 유래 - 홍수로 잠겨버린 마을
ㆍ도미나루에 전하는 도미와 아랑 이야기
송파구 오금동의 유래 - 오동나무로 가야금을 만들던 동네
송파구 이동의 유래 - 두 마을을 합한 현재는 사라진 마을
송파구 장지동의 유래 - 긴 가지 모양의 마을
송파구 풍납동의 유래 - 바람드리 성이 있는 마을
구로구 고척동의 유래 -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마을
구로구 구로동의 유래 - 9명이 오래도록 장수한 마을
구로구 개봉동에 전하는 유래 - 학산, 느티나무, 가린여울
광진구 광장동의 유래 - 버드나무가 많던 넓은 나루터
제2부 경기도 지역의 지명 유래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의 유래 - 비운의 공양왕 고릉이 있는 곳
ㆍ공양왕이 쫓겨나 지냈던 곳
ㆍ부사문촌과 충신 박순의 부인 열녀 임씨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의 유래 - 홍수에 배로 다리를 만들다
ㆍ영글이와 단산부원군 이무의 묘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의 유래 - 어버이의 사랑으로 세종의 눈이 낫다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의 유래 - 인왕산 호랑이와 효자 김태성 전설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의 유래 - 일본군을 퇴치한 밥 할머니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의 유래 - 고려 충신 김양남이 은거한 곳
ㆍ강릉 김씨의 권세가 드높았던 팔판서 마을
ㆍ김홍주 신도비神道碑 번역문
ㆍ강릉 김씨 김양남의 후손들
연천군 차탄리의 유래 - 이양소를 만나려다 태종이 빠진 여울
연천군 재인폭포의 유래 - 원수를 갚고 자결한 여인의 혼이 서린 곳
한탄강의 유래 - 남북의 경계로 한恨을 담은 강이 되다
포천시 명성산의 유래 - 백성을 향한 궁예의 포악이 미친 산
포천시 왕방산의 유래 - 국왕이 친히 도선을 위해 행차한 곳
포천시 축석령의 유래 - 부모를 위해 바위에서 축원을 드린 곳
파주시의 지명 유래 - 세조의 비 정희 왕후의 고향
여주군 고달사지의 유래 - 아내의 혼을 달래며 불도를 닦은 곳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의 유래 - 일제에 의해 왜곡된 이름
시흥시의 유래 -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만안교를 놓다
ㆍ애절한 눈물에 소나무도 시들다 - 충신 백촌 김문기 후손의 사연
광주시 산성리의 매바위와 쌀섬여울 유래 - 남한산성을 쌓은 이회와 아내가 결백함을 밝힌 곳
여주군 왕대리의 유래 - 세종의 묘 이장과 영릉가백년
책 속으로
이성계李成桂(태조)가 개경 수창궁에서 왕위에 오를 때 자신의 이름을 단旦(아침 해 돋을 무렵)이라 고치고 국호도 조선이라 한 것은 나라 이름도, 태조 자신의 이름도 다같이 ‘아침 해가 솟아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시작’을 뜻하고자 함으로 파악된다. 또한 백제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의 별칭이 ‘소부리’였고, 신라의 ‘서라벌’, 김수로왕의 자손이 일본 규슈(九州구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다는 일본 천손 신화天孫神話의 터전도 ‘소호리’ 이다. 일본의 역사학자 오카 마사오 교수도 일본의 건국 신화는 단군신화와 비슷하고, 소호리는 한국어의 도읍인 ‘서울’과 같은 뜻이라고 했다. 문학박사인 홍윤기 교수는
“‘서울’이란 말의 뿌리는 고대 민족인 부여 시대부터 도읍지를 ‘소부리’라고 했던 것에서 연유한다.”
라고 했다.
결국 서울이란 단어의 의미는 〈하느님 자손, 빛의 자손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의 단어가 소부리→셔부리→셔울→서울로 음운 변화된 것이며, 우리 배달민족이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천손天孫 사상에 근거한 말로서 단군 신앙에서부터 발원한 말인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우리 민족이 단군 이래의 천손 사상의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셈인 것이다.
제1부 서울의 유래 - 빛의 자손이 사는 곳 中
그런데 조선 제21대 영조 시대의 문신으로 유명한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는 이 우이동에 살면서 소에게 있어서 귀보다 중요한 것은 뿔인데 삼각산 아래에 있는 이곳을 우각동이라 하지 않고 왜 뿔보다 중요하지 않은 귀의 뜻을 취하여 우이동이라 이름하였는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대저 뿔은 성질이 강하고 귀는 성질이 순하니, 강한 자는 꺾어지고 유한 자는 오래간다고 해서가 아닌가. 뿔은 형상이 위가 날카롭고 귀는 형상이 아래로 드리우니 위로 간 자는 버티고 아래로 간 자는 순함으로 해서가 아닌가. …(중략)… 동해 위에 산이 있는데 삼각이라 하고 삼각산 아래에 마을이 있으니 우이라고 한다. 산을 각角이라 하고 동을 이耳라 하니, 뿔은 위에 있고 귀는 아래에 있는 것이다. 산은 높이 솟아오르니 뿔 같은 위엄이요, 동은 비어서 수장收藏하니 저 같이 받아들인 위엄으로 먼 곳을 항복시키고 받아들여서 물건을 용납하니 군자의 기상이 아닌가.〉
제1부 강북구 우이동의 유래 - 자신을 낮추는 군자의 기상 中
현재 노원구의 월계동은 예전에는 마을 가운데 연못이 있었는데 이 연못 모양이 마치 연적硯滴과 같아 연촌 또는 벼루말이라고 하였고, 성북역은 이전에는 연촌역이라고 불렀다. 또한 하계동은 필동 또는 붓골이라고 불렀다. 한편 월계동, 하계동, 묵동을 연결하면 삼각형이 되는데 이 삼각형 안에서 훌륭한 인재가 배출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이 삼각형 내 공릉동에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서울대학교 이과대학의 전신)가 세워져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게 되자 일대의 주민들은 이곳 동명을 묵동이라고 정했기 때문에 교육촌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예언을 믿었다고 한다.
제1부 중랑구 묵동의 유래 - 우수한 인재를 배출한 교육촌 中
한편 다른 기록에는 왕과 왕비 그리고 태자의 부처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오늘날 강원도 삼척군 근덕면 궁촌리宮村里로서, 공양왕이 이성계의 신흥 세력에 밀려 원주에 유배되었다가 후일 외진 삼척으로 유배된 후 살해되어 그곳에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궁촌리라는 이름도 왕이 머문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궁촌리 일대를 살해殺害골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곳에 머물던 공양왕 일가가 1394년(태조 3) 4월 한양에서 내려온 정남보鄭南普와 함전림에 의해서 살해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시신을 현재 장소인 식사동에 묻었다고도 하니 아마도 당시 백성들이 이성계의 부당한 개국 혁명에 대한 반대와 고려왕조에 대한 뜨거운 충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상징적인 능을 조성하고 추모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 본다. 때문에 아직까지 삼척 시민들은 커다란 돌무덤이 바로 공양왕의 능이라고 믿고 있다.
제2부 공양시 일산동구 식사동의 유래 - 비운의 공양왕 고릉이 있는 곳 中
파주의 임진강은 남북 교통의 요지로 많은 사람과 문물이 왕래했으나 지금은 분단의 상징인 이별과 눈물의 강이 되어 실향민의 향수와 민족의 비원을 간직한 채 말없이 흐르고 있다.
한편 금촌동에는 ‘고자새말’과 ‘답답 고개’ 그리고 ‘소리치 다리’라는 특이한 땅 이름이 있다. 이는 탐관오리의 횡포에 숨죽이며 살아온 백성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생긴 이름이다. 새말은 조선 시대에 고자(내시)가 집단으로 살던 곳인데 어찌나 권세를 부리며 사람들을 괴롭혔던지 백성들은 그 마을을 고자새말이라 불렀고, 백성들이 그 고개를 넘을 때면 횡포에 가슴이 답답해 오므로 고개를 답답 고개라 불렀으며, 무사히 다리만 건너면 마음 놓고 소리를 질렀다고 하여 소리치 다리(순달교)라 했다 한다.
제2부 백성들의 아우성 답답 고개와 소리치 다리
그 일제의 찌꺼기들이 광복 65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도 남아 있고, 창지개명한 땅 이름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제에 의해 우리 선조들은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당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에서 일제가 강요한 성姓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신도시 개발로 천지개벽이 이루어진 판교板橋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곳에서 오래도록 살았던 토박이들은 절대로 ‘판교’라는 땅 이름을 안 쓴다. 그들은 판교가 아니라 ‘너드리’라고 부르는데, 너드리라고 쓰느냐 판교라고 하느냐에 따라 토박이와 외지에서 들어온 이를 구별할 정도였다.
제2부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의 유래 - 일제에 의해 왜곡된 이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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