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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 문학관
산 아래 잘 지어 놓은 그의 문학관이 있다. 님은 갔는데 님의 문학은 살아서 객을 맞는다. 우리는 문인이기에 남다른 감회로 살펴 보았다. 내일까지 이곳에서 그의 문학을 조명하며 배우고 간다. 넓은 마당과 기와집이 조지훈 시인의 문학을 기리고 있다. 직사각형의 뜨락에는 시화도 전시해 두고, 세미나실도 있고 문학관 내에는 그의 일생을 사진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시로 말하는 것도 큰 충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필을 접었던 그의 아픔도 보았다. 결국 다시 돌아온 문학의 품에서 그는 한국의 문단에 큰 획을 그은 분이다. 님의 훌륭하신 문학정신을 담아가리라 다짐했다. |
*조지훈의 형 조동진 시비
21세에 요절한 조지훈의 형, 조동진 시비가 주곡 숲속에 있다. 조지훈 시비 광장 가는 길 초입에 서 있다. 큰 길을 중심으로 좌우 양편에 두분의 시비가 있다.
시절이 어수선한 일제시대의 암흑을 예견하듯 그의 시 '국화'는 슬픈 운명을 탄식하고 있다. 술로 지새우다가, 뜻대로 디지 않음에 과음으로 그만 스러져 운명한 것이다. 어찌 이런 비극의 그만의 것일까. 한 시대의 슬픔 앞에서 눈시울 시려온다.
*시비 광장 문학강연
주곡 마을 숲 속, 깊은 자연이 에웨싼 곳에 조지훈의 시비 '빛을 찾아 가는 사람들'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는 행사를 할 수 있는 동그란 광장이 있고 나무판 의자가 얕으막 하게 놓여 있다. 하늘과 나무와 시비만이 전부인 시비 광장이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평론가 서익환 교수님으로부터 조지훈 선생님에 대한 문학강연을 들었다. 21세 때 월정사에서 '예지의 돌'. '지혜의 돌'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열정과 저항, 의욕을 배우셨고, 지훈의 시, 지훈의 수필은 '돌의 미학'에서 출발 한다고 했다. '충성은 총칼로만 하느냐'고 하신 말씀은 유명한 어록이다.
시낭송으로 님의 뜻을 기리며 다시 한번 문인의 옷깃을 다듬고 떠나 왔다.
*월록 서당
조지훈 시인이 10살 까지 공부한 서당이다.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다. 방이 2개, 중앙에는 마루가 있다. 지금은 누추하지만 한때는 열렬히 글 읽는 소리가 가득했을 흔적이 남아 있다. 나도 어린 아이처럼 들어가 보았다.
그의 조부께서 한학을 지도하셨다. 훌륭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휼륭하신 그의 선조가 있다. 대쪽 같이 강하게 기르신 조부의 교육으로 한국의 명시인이 탄생되었음을 이곳에 와서야 알 수 있었다.
*지훈 시공원
산자락에 시비들이 줄 서 있다. 나무판 길을 따라 오르니 커다란 동상이 있다. 그의 본명인 '조동탁'으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산언덕 동그란 공원에는 '승무'와 '파초우', '낙화'가 조각상과 함께 아름답게 들어 서 있다.
더 올라가니 깊은 산속까지 조지훈 선생님의 시혼이 조각되어 서 있다. 살아서 걸어 오실 것 같은 환상이다. 돌 속에 님의 생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음에, 오늘 이곳에서 나도 시심에 흠뻑 젖는다.
*조지훈 생가
KBS 찾아가는 음악회 무대가 그 앞에 꾸며져 있다. 조지훈 시인은 이 집에서 탄생하셨다. 정원에는 분재와 시화가 곳곳에 가득 들어 차 있다.
마루에 앉아도 보고, 님이 탄생하신 방문 앞에 서 보기도 하고, 문학의 영혼이 탄생하신 고택에서 교과서에서나 만났던 위대한 문인을 만난다. 거대한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집이다. 그래서 님은 크신 분으로 성장하셨으리라.
*지훈 예술제 공연
축제가 열리는 광장의 중앙 무대에서 진종일 노래도 부르고, 백일장도 열리고, 사생대회도 하고 있다. 나는 한동안 이곳에서 노래도 듣고, 짙푸른 산의 녹음도 감상했다. 백일장 시제가 '너', '연(鳶)'이다. ' 연(鳶)'은 남편인 유기섭 수필가의 등단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행사 진행요원이 친절하게 아이스크림을 갖다 준다. 춤과 노래가 가득한 예술의 공간이다. 1920년부터 1968년까지 48세 동안 살다 가신 님을 그리며 축제를 연다. 승무의 푸른 혼이 일어설 것 같은 열기다.
*지훈 문학 강연
주제:21세기의 한국문학과 지역 문화
강사:신길우
장소:지훈 문학관 세미나실
신길우 선생님은 서초문협 회장이시며 국문학과 교수님이시다. 이곳ㅇ[ 와서 가까운 분의 강연을 들으니 더욱 흐뭇하다. 영양문협에서 진행하는 행사다. 주제에 따라 말씀하시는 강연내용을 적는다.
오늘날은 동시의 시대다. 동시에 전 세계가 동일한 정보를 듣고 있다. 동일 국가로 산다. 홀로는 못 산다. 온 세계가 함께 산다. 문학인은 21세기, 이 동일 시대에서 그 갈등과 고민을 깊이 하여 작품을 써야 한다. 등단한 문인들이 1만 2천명 정도다. 70년대에는 850명이었다. 그 만큼 문인이 증가한 것이다. 또한 작품도 증가한다. 총 발행 중에서 17%인 6700종이 문인들의 책이다. 70년 말에는 시인이 300명으로 총 문인의 12%였다. 2007년 말, 시인은 55%인 4300명이다. 급속히 증가한다.
글쓰기는 기본부터 배워야 한다. 문법부터 배워야 한다. 시, 수필, 소설 모두 마찬가지다. 또한 사람이 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문인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문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자신을 높여야 한다.
중앙 문학과 지역 문학를 보면 지역 문학이 그 전과는 다르게 상당히 활성화 되고 있다. 여건이 중앙과 지역 구분이 없다. 지원이 충분하여서 그렇다. 앞으로 더욱 협조하고 교류하면 더욱 발전할 것이다. 동일 시대에서 한국문학은 중앙과 지역 구분 없이 모두 함께 발전하여 나아가야 할 것이다.
*찾아가는 음악회
지훈 예술제의 밤 행사다. 낮부터 KBS 방송차가 와서 무대를 설치하더니 어둠이 내리자 무대가 열리고 아름다운 불빛 조명 아래 축제가 시작된다. 조지훈 시인의 생가 바로 앞마당에서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문학강연을 듣고 우리도 함께 앉아 관람했다.
이상은 가수가 열광하며 노래를 부른다. 사회는 조수빈 아나운서다. 악기를 모두들 들고 나와 연주하는 팀도 있다. 밤은 짙어가고 이곳 주실마을 사람들과 외객이 하나되어 시와 음악과 춤이 함께 탄다. 모두 조지훈 시인의 사망 40주기 추모 행사이기에 더욱 애잔하고 그의 서정적 시세계에 동화되고 있다.
2008년 5월 18일 일요일 이문열 문학관, 지훈 예술제 문학강좌, 영양 출발, 서울 도착
*영양 청소년 수련원
우리가 지난 밤 유숙한 곳이다. 어둔 밤에 올라와 풍경을 잘 못 보았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니 산중 높고, 깊은 곳에 지은 대단한 수련원이다. 신 좋고, 물 좋고 청정 무공해 지역이다.
언덕을 내려가니 강이 흐른다. 물가도 돌이 구르며 아름다운 정경이다. 아침 해가 높은 산 위로 뜬다. 하늘로 솟는 서광이다. 이곳 지역은 평균 해발 430 미터 고지다. 우리가 올라온 언덕, 한티재도 300 미터 고지다. 이미 산 위에 머문 것이다. 경북에서는 일월산이 가장 높은데 해발 1280 미터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산뿐이다.
아침 식사를 이곳에서 했다. 산채 된장국이 구수하다. 언제 또 오겠는가. 아쉬운 마음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석지
민가의 대표적 연못이다. 연꽃이 깃든 연못에는 수직으로 세운 석벽이 있다. 정자가 연못 위에 있고 맞은 편에는 보호수인 400년생 은행나무가 깊은 연륜을 말하며 서석지를 지키고 있다. 비가 조금씩 내려 더욱 서정적이다.
경북 첩첩산중 영양 땅의 정겨운 연뭇이다. 소쇄원, 정영방, 서석지는 우리나라의 3대 정원으로 고귀한 문화재다. 집 뒤의 자양산은 양이고, 앞의 연못은 음이다. 한국정원의 대표적 조성법에 따라 만든 것이다. 곡강 곁에 있어 그 정경이 더욱 아름답다.
*안동 장씨 부인 기념관
이문열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인이 장씨 부인이다. 후실로 들어와 본처 자식의 교육을 잘 하고 요리에 탁월한 재주가 있어 지금까지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다. 훌륭한 여성상으로 아직까지도 그의 요리책은 유명하다.
그 여인이 바로 이문열의 할머니이고, 그래서인지 이문열 문학관 바로 곁에 지었다. 예절교육관도 커다랗다. 한 여인의 훌륭한 어머니와 아내로서 대대손손 기리는 업적을 보며 같은 여인으로서 본 받아야할 교훈이라 여겨졌고 큰 자부심을 느꼈다.
*이문열 문학관
영양 두들 마을에 소설가 이문열의 문학관이 있다. 넓고,웅장한 기와집, 그의 생가도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다. 경상도는 민가도 대부분 문화재 같은 우람한 집들이다. 자신의 체면을 위해 거의 그렇게 짓는다. 이문열도 역시 자신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다 했는데 실제 집은 저택이다.
문학관은 그의 소설 같은 거대한 주제가 흐른다. 나무 기둥 하나, 기와 한장, 뜨락, 창문 모두 예사롭지 않다. 집 앞에 길이 바짝 나 있어 그의 문학관 글씨를 나오게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서초문협 회원 모두 그 대문 앞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지훈 문학 강좌 주제: 조지훈 시인의 문학적 심연 강사:서익환 교수(고려대, 한양대 대학원 교수) 장소:지훈 문학관 세미나실 서익환 교수님은 우리와 같은 버스로 함께 왔다. 그래서 더욱 친밀한 느낌으로 귀한 말씀을 들게 되었다. 버스에서도 약간 들었지만 이곳에서 조지훈 시인에 대하여 깊은 문학사를 듣는다. 그 말씀을 이곳에 옮겨 오래도록 보관 하고자 한다. 조지훈 시인의 시세계는 초기에는 고전, 중기에는 자연, 후기에는 자기 귀로다. 그 당시 청록파 시인, 박두진과 박목월, 조지훈 시인이 활발한 문학 활동을 했다. 신 비평가들은 작품은 작품으로만 비평하지만, 구 비평가들은 생애와 연관된 비평을 하는데 서교수는 구 비평으로 평론하겠다고 한다. 조지훈의 생애와 문학에서 먼저 여섯 단계로 나누었다. 1. 습작기:자기를 잃어버린 시기다. 서구 편향적 시를 썼다. 2.자아 모색기:문장 추천기다. 정지용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3.자아 발견기:오대산 월정사에서 1년간 강사로 있었다. 스님은 아니면서 지도하며 자신을 찾던 시기다. 4.일제 방랑 갈등 시기:'낙화', '완화삼', '파초' 등 귀한 시을 탄생시켰다. 일제 탄압의 역사적 비극으로 문장지를 빼앗겼다. 지병인 천식으로 이곳 주실마을에 들어와 요양했다. 5.해방 시기:1959년부터 격동 시기다. <청록집>을 발간했고, <풀잎단장>, <조지훈 시선> 개인 시집을 냈다. 6.자아 탐구 시기:1960년대 마지막 시집 <여운>을 내고 48세에 사망했다. 1968년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이다. 죽기 전 서울에 올라와 청록파 3인이 만나서 문학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작고하였는데 <청록집 2>를 출간했다. 문장 폐간 후 익소 주실마을에 왔다. 오대산에서 머물며 많은 깨달음을 얻고 많은 시를 썼다. 발랑기에는 경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다시 이곳 마을에 온 것이다. 그가 살았던 세상의 지평에서 그분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생애와 문학을 7단계로 구분하는 사람도 있는데 서교수는 6단계가 더 중요하다 했다. 1939년, 1940년 <문장>에 '봉화수', '승무' 시로 정지용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정지용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시인은 총 6명이다.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박남수, 김종한, 이한직, 그런데 이름이 남은 시인은 두진, 목월, 지훈 3명 뿐이다. 김종한 시인은 해방 전에 사망했다. 김기림, 김광균, 정지용 시인은 모두 주지주의 이미지즘을 강조한다. 이것을 차단시킨 분이 조지훈이다. 그는 민족적 정서를 드러내는 시를 썼다. 서정주는 예술적 탐미주의다. 지훈은 조부인 조인석으로부터 월록서당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한양 조씨의 가풍을 진하게 전수했다. 그 가문에는 삼불 철학이 있는데 대단했다. 절대로 사람이 없어도 빌리지 않으며, 금전을 빌리지 않으며, 남의 글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1931년 월정사에 들어갔다. 만주 박물관에 취직 되었는데 조부와 부친의 반대로 안 갔다. 회화 전문학교에 들어 갔고, 오대산 월정사 상원암에서 방한 스님과 공부하며 게시를 받았다. 동서남북중으로 오대산이라는 사실도 나는 처음 알았다. 모든 말씀이 신기하여 열심히 적었다. 지훈은 월정사 지하 서고의 책을 다 읽었다. 다량의 독서로 문학을 키운 것이다. 문학을 하려면 철학, 역사,를 알아야 한다.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 그는 또 채근담도 번역하는 등, 한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두보 등 한시 연구 대가다. 오대산은 지훈의 시에 있어 절정기다. 돌에는 피가 돈다, 의자 흐른다, 정신이 담겼다고 외치며 돌에 대하여 강열한 의미를 부여한 시기다. 그의 시, 낙화에서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라고 한 것은 방랑기의 역설이다. 1942년 경주에서 목월과 주고 받은 시, 완화삼과 나그네가 있는데 반드시 완화삼에는 '목월에게'. 나그네에는 '지훈에게' 부제를 달았다. 철저한 가정교육 속에서 시믄학을 습득했다. 서구도 아니고, 닫히지도 않은 시다. 전통, 자연, 불교, 참선의 세계다. 그 뿌리는 무엇일까. 바로 자연이다. 문학적 제재로서의 자연이다. 나를 포함한 역사, 문학, 환경 등의 모든 자연, 그의 시 중심 뿌리는 자연이다. 1940년 일본 경도 묘심사에 가서 스님과 다도를 배우고 선문답을 나눴다. 즉 엉뚱한 질문과 대답이다. 그리고는 월정사에서 스님은 아닌데 스님을가르치는 강사로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모두 바위다'라며 그이 집필실도 '바위산장'이다. 바위를 바라보며 나, 자연, 죽음을 생각했다. 돌의 미학이 탄생했다. 나를 끌고가는 문학을 확고하게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서교수는 마지막으로 강조한다. 시, 수필, 소설 어느 장르든 모두 마찬가지다. 조부 조인석, 부친 조원영에 이어 그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며, 고독한 방황 속에서 시를 썼던 조지훈이다. 봉항수, 승무, 무곡, 고풍의상 등이 그의 대표시인데 모두 전통에서 답을 찾는다. 이것이 그의 생애와 문학에서 내면의 비애가 가득 담긴 시적 심연이라고 아쉬운 마무리를 지었다. 더 많은 것을 전하고 싶다는 서익환 교수님의 열강에 나는 또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문학에 대한 정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문학 앞에서 언제나 그렇게 뜨겁게 달구어지는, 그래서 아름다운 문학이다. 강연이 끝나고 영양 문협 회원이 우리의 참석을 감사하며 귀한 선물을 주었다. 역시 문인들의 아름다운 교류다.
*지훈 예술제 장터 중식
돈가스, 산나물 비빔밥, 추어탕, 산나물전 등 푸짐한 식단이다. 영양에서 우리 서초문협 문인들에게 베풀어준 귀한 대접이다.
산 공기 좋은, 물 향기 좋은 곳에서 아름다운 식사다. 이제 마지막 향연이다.
*지훈 예술제 주곡마을 출발
고추, 사과로 유명한 마을, 밭마다 고추와 담배 재배가 흐드러진 마을이다. 심성고운 사람들의 마을, 우리를 잘 품어준 마을, 이제 이별한 시간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어제 보았던 조지훈 시비와 21세에 요절한 그의 형, 조동진 시비를 다시 보았다. 가로수 우거지고, 고추 비닐 하우스 밭이 산자락에 그윽한 마을을 이제 떠난다.
조지훈 선생님의 문학정신과 아름다운 글제, 아름다운 추억까지 담아가는 소중한 문학기행이다.
*영양 읍내 산나물 축제
조그만 읍내 장터에 들렀다. 푸짐한 프랑카드가 노변에 출렁이고 산골 사람들이 물건을 판다. 엿, 마죽, 산나물, 옷 등 다양하다. 한마당 둘러보며 소박한 민심에 젖는다. 영양 청송 농협도 보이고, 일월산 산나물 책자도 얻고 풍요롭다. |
*안동 댐
안동을 거쳐 서울로 올라 간다. 산길을 돌며, 돌며 댐을 보았다. 그 유명한 안동 댐이다. 서울의 한강 수위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그 장엄한 강, 장엄한 댐이다. 붉게 흙이 보이기도 하고, 수문을 조절하는 장치도 보인다. 조금은 부작용이 있었겠지만 잠잠히 맑은 역사로 물을 다스리고 있다.
안동 시가지도 크다. 구비구비 돌아도 연이어 흐르는 도심이다. 외곽에는 사과 나무 과수원이 즐비하다. 나는 이곳을 처음 지나는 여행이라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느 곳이든 내 조국은 참으로 아름답다.
*아름다운 조국 산천
안동을 지나 풍기를 지나 상경한다. 갈수록 우람한 산들이 장관이다. 명품이다. 외국인들 데려다가 이 깊은 산곡만 보여줘도 감탄하리라.
곱게 이어 흐르는 아름다운 조국 산천이다.
*단양 휴게소 휴식
여기에 내린 것은 처음이다. 아름다운 산이 병풍처럼 둘어처진 곳이다. 오후 5시, 해가 저무는 풍경이 더욱 곱다. 신라시대 북방 요충지였던 적성대도 보인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 마저도 문학의 향기로 행복이 겨운 휴게소다. 광장에서 바라보는 정경은 어느 멋진 나라의 웅장한 모습이다. 이곳이 내 조국임에 나는 흐뭇하여서 산천을 보고, 또 바라보았다. |
*교대역 도착
아침에 출발한 그 자리에 다시 돌아왔다. 비가 많이 오더니 버스에서 내릴 때쯤부터는 잦아들었다. 촉촉한 밤길이다. 보람된 행사에 참가하여 많은 것을 얻고 돌아와서 기쁘고, 무사히 잘 다녀옴에 기쁘고, 여러 문인들과의 만남이 기쁘고, 참으로 행복한 날이다. 밤 9시경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구수한 설렁탕, 김치와 깍두기를 얹어 맛있게 먹었다. 점점 짙어가는 어둠에 모두들 아쉬운 이별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문학과 여행이 접목된, 조지훈 시인님을 많이 알게 된, 가까이서 뵙고 온, 오늘의 기억은 내게 있어 소중한 문학 자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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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거우셨겠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