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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배경
코로나가 다시 유행한다고 합니다.
이 땅에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에 대하여온전한 백신은 없습니다.
일반 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하루 이틀 차이입니다.
▶▶▶ 그런데, 우리들의 질병을 포함하여 인생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확실한 예방적인 백신, 치료적인 백신이 있는데 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봅니다.
그냥 내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성경적입니다. 오늘 그것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 의학적으로도 사랑을 하면 도파민, 엔돌핀과 같은 호로몬이 나와서 건강도 좋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는 곳에 관계도 좋아지고, 분위기도 좋아지고, 그래서 사람이 살 맛 나게 합니다. 어려움이 다가와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이겨낼 수 있고, 세상에 살아야할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① 자살하는 사람 주위에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자살을 안한다고 합니다.
② 반대로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 있으면 아무리 진수성찬이 앞에 놓여도 그 맛을 잃게 되고, 살 소망도 끊어집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자신을 찌르게 되어 자기가 더 아파옵니다.
그러므로
▶▶▶ “사랑하는 것” 자체 만으로도 그 어느 것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의 가치를 최고로 두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다른 것은 다 필요없습니다. 천국은 “사랑의 아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골 1:3)
▶▶▶사랑하는 것으로 인하여 많은 축복이 주어지는데, 무엇보다도 사랑을 하면, “사탄으로부터의 공격을 막습니다” 오늘 말씀의 전체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주 이것을 제게 깨닫게 해 주셨어요
▶ 사랑이 있는 곳에는 사탄이 힘을 못씁니다. 반대로 미움이 있는 곳에는 활개를 칩니다. 그래서 사탄은 할 수만 있는대로 미움을 가져다 주려고 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미움은 사탄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사랑하면 그 가정이 지켜지고 보호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사랑이 있으면 교회가 지켜지고 보호가 될 것입니다.
반대가 된다면 사탄의 공격으로 가정이나 교회가 다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2. 또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그들이 범죄한 것으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들에 주는 교훈이 참으로 많습니다.
지난번 임직식 때에는 ① 사탄이 그들의 피조물된 정체성을 흔들었다고 했고, 지난주에는 죄를 지음으로 그들의 ② 넓게 창조된 마음이 좁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활보하던 에덴동산에서 나무에 숨었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야기에서 오늘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 ③ 사랑의 관계가 깨졌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깨지고 인간에 대한 사랑도 깨진 것입니다.
▶ 계시록 2장에 나오는 에베소교회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에베소교인들에게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 2:4)
※[요한계시록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었다고 봅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다음 기회에 성경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었을 때에, 성령께서 하시는 책망을 받고 그들이 회개하고 처음 행위, 곧 처음 사랑을 가지면 그들에게 주는 상급이 있는 데 그것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잃었던 “생명나무의 열매”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7)
처음 사랑과 생명나무 열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잃었던 생명나무를 처음 사랑을 회복함으로 찾게된다는 말씀인데, 반대로 이야기 하면 생명나무를 잃은 이유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① 그들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깨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②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깨지니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부간의 사랑도 깨지게 됩니다.
※ [창세기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여자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는 고백은 어디 가고 없는 것입니다. 뭔가 사랑의 금이 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③ 부부의 사랑이 깨지니 형제 사랑도 깨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대 내려가지도 않고 바로 그의 자식 대에서 살인이라는 비극이 다가온 것입니다. (창 4:8).
▶ 이렇게 사랑이 깨지니 생명나무 열매와 생명수를 먹지 못하니 영원히 사는 축복이 없어지고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에게 영적인, 육적인 죽음이 다가옵니다.
※[로마서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②
▶▶ ▶ 아담과 하와는 최초의 가정이자 교회이기 때문에 사랑이 깨지면 가정과 교회에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인들이 회개하지 않고 처음 행위를 가지지 아니하면 “네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촛대는 계 1:20을 근거로 본다면 교회이므로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교회와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옮기겠다, 에베소교회를 없애버리겠다, 교회 간판이 있어도 교회가 아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가정도 교회도 다 파괴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사랑을 잃으면 다 잃게 되고, 사랑을 회복하면 얻게 되는 다 얻게되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런 일이 오늘날 우리들과는 관계가 없나요? 아닙니다.
가정이 사랑의 보자기로 싸여 보호하고 있는데, 부모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그 보자기가 찢어지고 빠른 시일 내에 저주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런 저주가 다가온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낙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베소교회를 통하여 가르쳐 주시는 것처럼 회복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시 사랑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 그래서 ”사랑은 모든 문제의 예방하는 백신“이요, ”사랑은 모든 문제를 치료하는 백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랑은 사탄의 권세를 다 불못에 던져버리고, 온 인류와 피조물을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최종적인 회복의 모습이 계 21-22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때가 온전한 사랑의 회복의 때입니다.
모든 피조물들과 하나님과의 사랑, 피조물고 피조물들과의 사랑 말입니다. 미움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미워하는 음녀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고, 미워하는 바벨론이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새 예루살렘이 되고, 그리고 미움이 가득한 멸망하는 옛 하늘과 땅이 아니라 사랑이 가득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주어지는 축복인 것입니다.
종말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적으로는 땅을 육신이라고 보고, 하늘을 영혼이라고 보고 있는데, 새 피조물이 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경험한 자가 천국에서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찬양과 경배를 하는 자가 천국에서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들이 예수님의 보혈로 또는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의 어두움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권세 있는 이유는 ① 겉으로는 ”피의 권세“이지만, ② 그 속은 사랑의 피이기 때문에 ”사랑의 권세“입니다.
축사 때에 십자가와 예수의 피를 들이대는 것은 그곳에 사랑을 선포하는 행위이며, 사랑의 깃발을 꽂는 행위인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은 사랑이 있는 곳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안으면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예, 하이디 베이커)
▶예수님을 상징하는 솔로몬과 신부,교회를 상징하는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장소에는 ”사랑의 깃발“ 걸여 있습니다.
※[아가 2:4]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영적으로 본다면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① 이런 사랑 안에 누구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아가 8:6]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② 이런 사랑 안에 사랑을 방해하기 위하여 흔들거나 깨울 자가 없는 것입니다.
※[아 2: 7]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의 피로 우리를 덮으시고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 죄가 사랑의 보자기를 찢어 버립니다. 그러면 보호의 울타리가 걷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사탄이 공격을 합니다. 미움은 사탄에게 공격의 틈을 만드는 것입니다. 공격의 루트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어둠이 그들속에, 그들 환경속에, 그들의 사업장과 가정속에 들어가서 뒤흔들 것입니다. 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4. 노아의 방주는 안팎으로 역청이 칠해져 있습니다.
[창세기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부식도 방지하고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 틈을 메꾸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역청(영, pitch)은 기름이기 때문에 학자들은 성령으로 해석을합니다. 겉으로는 이 해석이 맞지마는 더 깊게 내용적으로 본다면 역청은 예수님의 사랑의 피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원어를 보면 분명해 집니다.
”역청“은 히브리어 ”코페르“인데, ”몸 값, 속전“이라는 의미의 ”카파르“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들의 죄를 대속한 우리 예수님의 피값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피는 사랑의 피입니다. 결국 사랑으로 그 틈이 메꾸어져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이 방주를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오늘날 방주인 교회와 가정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틈이 메꾸어지니 그 안이 평안한 것입니다.
만약 방주가 썩거나 틈으로 물이 세어 들어온다면 다 죽거나 엉망일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으면 가정이나 교회가 사탄의 공격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직전에 제자들고 함께 있을 때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준다고 하시면서 하신 계명이 바로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새 계명을 예수님을 파는 가룟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 예수님을 팔려고 밤에 나간 직후에 주신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과 다른 동료 제자들도 사랑했다면 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라는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임을 아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팔아버리는 제2, 제3의 가룟유다가 교회공동체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교회공동체 또는 가족공동체 구성원을 안전하게 묶어주고 연결하는 끈인 것입니다.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무리 온전해도 그 연결 부분이 문제가 되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입니다.
아테프 신부의 ”예수님의 보혈“기도책에 ”사랑의 기름 부음 받기 위해 각 관절에 임한 예수님의 보혈“이라고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모든 관계 속에서 제 기능을 하도록 이어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부실하면 사탄이 그곳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연결부분이 항상 취약한 부분입니다.
교회는 각 지체가 서로 연결된 몸입니다. 마치 건물이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에베소서 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연결부분이 약하면 건물 전체가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 연결 부분을 강하게 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너지는 것입니다.
▶ 사도 요한도 그의 서신서를 보면 계속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그가 밧모섬에서 풀려나와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 18번이나 계속해서 동일하게 ”서로 사랑하라“라고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사도요한 당시 초대교회에 다가온 이단들로 인하여 서로사랑하지 않으면 교회가 사탄의 공격으로 무너질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탄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무디게 합니다.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삽겹줄이 되게 합니다.
6. 사랑하라는 계명에 모든 계명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지키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 22:40) 이것이 기준입니다. 사랑하면 죽일 수도, 팔 수도 도둑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베드로는 사랑하면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잠언도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이미 지었던 죄도 덮힘을 받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죄를 짓도록 하는 틈을 주지 않으므로 죄를 짓지 않게도 합니다.
7. 그동안 무너진 곳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대부분 좋지 않는 열매의 원인이 사랑하지 않고 미워했기 때문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식어져 서로 이혼하고, 각방 쓰고, 자식이 빗나간 길을 가고 있고,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많은 저주 가운데 있다면 분명히 그 안에는 사랑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도 많이 사탄에게 눌려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한번 봅시다.
미움이 있는 교회의 결말을 보십시오. 많이 떠나고 갈라지지 않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속으면 안됩니다. 더 이상 미워하면 서로 죽는 길입니다. 서로 무너뜨리는 길입니다. 사랑으로 세워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고 했습니다 (엡 4:16)
▶▶▶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성경은 부부관계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1: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깬 것입니다.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깬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엄청나게 죽었고 살아난 자들은 앗수르에게,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앗수르, 바벨론은 영적으로 사탄을 예표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니 사탄이 치고 들어와서 노략하고 죽이고 포로로 잡아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식들이 굶고 메어침을 당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가 사랑을 잃어버리면 이와 같이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맺는 말>
사탄이 권세를 잡는 말세의 가장 큰 징조는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마 24:12), 대신 미움으로 가득찹니다.
▶ 그래서 구원을 받는 자는 끝까지 사랑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요일 4:7).
그러므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고, 반대로 미워하면 마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기도의 응답도 없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바위에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히 사랑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함으로 다가온 재앙이 무엇입니까? 좋지 못한 열매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제거할 유일한 답도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므로 모든 문제가 예방되고, 다가온 문제는 떠나가고, 기도도 응답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모든 축복을 받는 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