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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12월 20일 월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1220월] 서해 포사격훈련 목표는 북의 도발 억제
우리 군의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이 초읽기에 돌입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2차, 3차 보복타격'에 '전면전'과 '핵전쟁 가능성'까지 온갖 위협을 쏟아냈다. 주변국의 움직임도 긴박하다. 늘 북한 쪽에 서는 중국은 물론, 관망하는 입장이던 러시아까지 개입해 훈련 취소와 안보리 긴급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서해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국민은 전에 없이 불안한 심정으로 이번 주를 맞고 있다.
물론 남북의 군사적 대치가 여기에 이르지 않도록 정부가 대북관계를 용의주도하게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다. 또 적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확실하게 대응했더라면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위기를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책임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다. 적의 추가도발을 강력히 견제하는 길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임을 모두가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사격훈련을 계획대로 강행하면 북한의 예측하기 어려운 도발을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적의 추가 도발을 견제하기 위한 방어훈련을 포기할 경우 어떤 위험이 닥칠지는 명백히 예측 가능하다. 먼저 북한이 노리는 대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주변 해역이 국제 분쟁수역으로 인식될 수 있고, 연평 백령도 등 서해 5도 영토를 수호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한층 심각한 우려는 서울과 수도권 전체가 적의 위협과 도발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취약점을 집중 공략하는 북의 행태에 비춰 볼 때, 수도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인질로 삼을 것이 뻔하다. 여기에 맞서 국가적 위신과 국민 자존심을 지키기 쉽지 않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군인과 국민의 목숨을 담보 삼은 국면전환용 훈련"또는 "대통령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게임"따위의 주장을 하는 것은 위기의 심각성을 외면한 것이다. 지금은 무분별한 말장난을 할 때가 아니다.
정부와 군이 할 일은 분명하다. 계획대로 훈련을 실시하되, 북한의 어떤 망동(妄動)에도 빈틈없는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물러선다면, 남북관계에서 갈수록 값비싼 대가와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다. 국민 모두가 위기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1220월] 학생까지 외면하는 ‘자사고’ 전면 재검토하라
정부가 마구잡이로 늘려놓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파행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내 자사고 26곳 가운데 1차 모집에서 미달을 기록한 13곳이 지난주 추가 접수를 받았지만 10곳은 끝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결원 규모는 전체 모집 정원의 20%에 가까운 858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일부 학교는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해 학교 운영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사고는 시교육청의 재정지원 없이 수업료와 재단 전입금만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시·도 교육감이 자사고 지정을 유예하거나 취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은 애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정원에 크게 미달한 자사고의 경우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재단이 전입금을 애초 예상보다 크게 늘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반고보다 몇배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부실한 교육을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교육청 등 교육당국은 자사고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이른바 ‘엘리트 교육’만 강조하는 교육정책의 전면 재검토가 시급하다. 이명박 정부는 평준화 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사고를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육성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자사고 지정을 시작해 2012년까지 100곳으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자사고는 초기부터 삐걱거렸다. 올해 초에는 일부 자사고의 사회배려대상자 전형에서 부정입학 의혹이 터져나왔다. 운영 과정에서는 ‘입시 위주 귀족학교’가 될 거라는 우려가 현실로 확인됐다. 특성화 교육을 명분으로 부여한 자율성은 입시교육을 마음껏 강화하기 위한 핑곗거리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이니 자사고에서 사교육이 도리어 늘어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이렇게 1년 내내 말썽과 논란만 부른 자사고가 학생들한테 외면당하는 사태까지 왔다. 이제 이른바 ‘비인기’ 자사고들이 학생 유치를 위해 입시 위주 교육에 더 몰두할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자사고 정책은 이미 완전히 실패했다. 비록 늦었지만 정부는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엘리트 교육 강박증’을 버려야 한다. 수요 예측조차 제대로 못한 채 물량공세를 편다고 엘리트 교육이 되는 게 아니다. 점수 우수자가 곧 영재라는 편향된 시각도 함께 버려야 한다. 영재교육은 공교육의 내실을 강화해 모든 학생한테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제공하는 게 전제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20101220월] 海警, 중국 어선 불법조업 단속 능력 강화해야
해경 4명이 지난 18일 전북 군산 앞바다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 중국 선원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와 몽둥이에 맞아 다쳤다. 지난달 29일에는 제주도 앞바다에서 해경 6명이 중국 선원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했다. 2008년에는 전남 흑산도 부근에서 해경 1명이 중국 선원들이 휘두른 삽에 맞아 숨지고, 해경 4명이 중국 선원 20여명에게 붙잡혀 1시간 동안 두들겨 맞았다.
2001년 한·중 어업 협정 체결 이후 해경 대원이 중국 선원에 집단 폭행당하는 일이 매년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중국 어선이 우리 측 경제 수역에서 불법 조업하는 것을 모른 체 해왔다. 우리 해경의 적법한 권한 행사에 집단 폭력으로 맞서다 달아난 중국 선원들을 자체 처벌했다고 우리 측에 알려온 적도 없다.
그렇다면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단속하는 해경의 능력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해경은 불법 조업 중국 어선이 발견되면 경비정에 매달려 있는 1.5t짜리 배 한 척을 바다에 내려 해경 대원 7~8명을 태운 뒤 중국 어선에 접근시킨다. 그러나 이 배는 중국 어선보다 높이가 1m나 낮아 중국 선원들이 쇠파이프와 몽둥이를 휘둘러대면 속수무책이다. 해경의 무기라곤 가스총·삼단봉·전기충격기가 전부다. 그나마 가스총은 바람 방향에 따라 가스가 해경 쪽으로 날아와 함부로 쏠 수도 없다. 1.5t짜리 배를 늘려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중국 어선을 제압할 수 있게 하고, 맞바람이 불어도 가스를 뿌려댈 수 있는 고속 분무기와 고무탄 같은 장비를 확충해야 한다.
해경은 외교 문제로 번질까 봐 중국 선원에 대한 실탄 발사를 꺼리고 있다. 중국 선원들도 이를 알고 해경이 공포탄을 쏴도 겁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해경의 장비와 훈련을 대폭 강화해 우리 바다에서 우리 경찰이 몰매를 맞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
[서울신문 사설-20101220월] 학생이 교사 성희롱하는 학교를 어쩔 건가
중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여교사를 성희롱하는 동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오늘 우리 학교가 처한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려진 1분 37초짜리 이 동영상은 30대 여교사에게 한 남학생이 “선생님, 애 낳으셨어요?”라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어 가세한 학생 서너 명이 번갈아 가며 첫 키스, 첫 경험, 초경을 반말로 조롱하듯 묻는다. 당황한 여교사가 주의를 주려고 다가가자 “가까이 보니 진짜 예쁘네.”라는 당치도 않은 말까지 내뱉는다. 이 학생들은 여교사를 사제지간이 아니라 이성으로 여기는 투다.
교권의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 전국 각급 학교에서 여교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80%에 이르는 상황에서 주로 여교사들이 수난의 대상이다. 점차 도가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한 남학생이 여교사의 어깨에 팔을 올려 충격을 준 동영상은 비할 바 아니다. 저잣거리에서도 보기 어려운 일들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생이 여교사의 머리채나 멱살을 쥐고 흔들거나,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휘둘러 얼굴을 구타하는 행동은 예삿일이 됐다.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폭행이나 폭언을 당한 사건이 지난해 108건이었다. 쉬쉬해 묻어 버린 사건이 몇 곱절 많을 것이다. 피해를 줄이려고 보험에 드는 교사가 늘어났다고 한다. 교총이 운영하는 교원배상책임보험 상품에 교사 7500명이 가입했다는 것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옛말은 거론할 개재가 아니다. 서울과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 학생들의 인권이 강화되고 체벌이 금지된 이후 매 맞는 교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본래 교권이란 교육자의 신념에 따라 정치나 행정 등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를 말한다. 교권 확보를 통해 핍박받는 학생인권을 지켜 주려는 개념이 강했다. 이제 거꾸로 교사들이 학생들로부터 교사의 권리를 지키고자 교권보호법을 제정해 달라고 청원하는 세상이 됐다. 교총이 주도하는 이 법의 입법청원에 교사 20만명이 서명했다. 무너지고, 땅에 떨어진 교사의 권위를 일으켜 세울 방안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1220월] 정부·채권단 대형 M&A처리 이렇게밖에 못하나
우리금융지주 민영화가 중단됐고 현대건설 매각은 이해당사자들 간의 대립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매각 작업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두 회사의 매각작업은 해당 업계에 메가톤급 변화를 가져오는 중대한 거래인데도 결국 좌초 위기를 맞은 데 대해 정부와 채권단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형 인수 · 합병(M&A)을 성사시켜 나갈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금융 민영화와 현대건설 매각은 성격은 다르지만 공직자들의 보신주의가 상황을 꼬이게 만든 측면이 크다. 우리금융의 경우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조기 민영화,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세 가지 원칙 중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에 과도하게 치중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산업자본이 참여할 길은 제도적으로 막혀 있고 그렇다고 유력한 금융자본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유효경쟁을 통한 매각가격 극대화에만 매달린 것은 현실적인 접근이 아니다. 우리금융사주조합 등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경영권 프리미엄의 조건에 부담을 가졌던 탓이다.
매각을 주도한 금융위원회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도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프리미엄을 조건으로 내건 다음 유효 경쟁이 성립되지 않자 매각 작업을 중단한 것은 국회나 감사원의 책임 추궁을 의식한 면피성 행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입찰이 무산된 만큼 이제 매각 목표를 재설정해야 한다. 정부가 우리금융을 지속적으로 지배함으로써 인사나 경영에 간섭할 생각이 아니라면 블록세일이나 프리미엄을 요구하지 않는 재입찰등을 통해 매각 작업을 다시 시작하는 게 옳다.
현대건설 매각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현대그룹의 자금조달에 대한 의혹을 처음부터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해 법적 공방으로 번진 책임은 1차적으로 채권단에 있다. 하지만 주요 채권단 중 외환은행을 뺀 정책금융공사와 우리은행은 정부가 주인이라는 점에서 공직자들의 무소신과 무사안일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직자들이 대우건설 졸속 매각의 교훈을 깊이 새겼더라면 상황을 이렇게까지 악화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채권단이 이런 실력으로 하이닉스와 대우조선해양 매각,산업은행 민영화 등 앞으로 잇따를 대형 M&A를 어떻게 성사시켜 나갈지 걱정스럽다. 공자금 투입기업에 대한 매각 원칙을 다시 세우고 치밀한 관리와 안전 장치로 시장에 더 이상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후속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1220월] 외국인 고용부담금제, 中企 부담이 문제
외국인력을 사용하는 사업주에게 일정액의 비용을 물리는 고용부담금제를 도입하려는 방침에 기업들이 크게 반발하는 등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는 외국인력이 무분별하게 국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이들의 과도한 유입으로 발생할 여러 사회적 비용을 낮추기 위해 고용부담금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제도 적용 대상이 될 중소 영세업체들은 사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부담을 주는 규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뜩이나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는 영세 중소기업 등의 인력난을 더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외국인 고용부담금제 도입과 관련한 구체적 방안을 오는 2012년까지 마련해 국회에 법안을 제출, 처리할 방침이다. 부담금 부과 대상은 건설업과 농축수산 등의 분야를 제외한 근로자 300인 미만의 제조업체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옌볜동포 등 해외교포는 외국인 근로자에서 제외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외국인력을 사용해 혜택을 보는 사업주가 그에 따라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국가 대신 직접 떠안는 수익자부담 원칙을 적용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현재 국내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력은 45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당장의 필요에 급급해 외국인력을 계속 받아들이면 추후 취약계층 등을 위한 복지지출 등 사회적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 이를 사전에 최소화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 유입을 억제하면 국내 근로자의 취업기회가 늘어나 실업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 부담금제도는 싱가포르ㆍ대만 등에서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제도도입에 앞서 영세 중소업체들이 떠안게 될 부담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담금을 내고 외국인을 고용하면 경쟁력이 없어 더 이상 사업할 수 없는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인 근로자 규제가 과연 내국인 취업증가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개 국내 근로자들이 기피하는 저임금의 3D업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고용부담금제가 영세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을 부추기고 연쇄도산을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산업현장의 실태를 충분히 고려해 제도 도입 여부와 범위를 결정하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황호택 칼럼/황호택(논설실장)-20101220월] 동티모르 미래 가꾸는 한국교육의 힘
12월의 동티모르는 우기(雨期)로 접어든다. 싱가포르를 경유해 수도 딜리에 도착한 첫날 오후 세찬 비가 쏟아졌다. 하수시설이 없어 해변도로는 순식간에 흙탕물이 흐르는 개울로 변했다.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바지를 걷고 보트처럼 차를 밀고 갔다.
16세기부터 1975년까지 400여 년 동안 동티모르를 지배한 포르투갈은 이 나라에 가난과 혼혈, 가톨릭을 남겨놓았다. 주민의 91.4%가 가톨릭 신자다. 1989년 동티모르를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바닷가 언덕 성당 옆에 서 있었다. 한국에도 두 차례 왔던 교황이라 반가웠다. 교황의 방문은 동티모르인들의 독립의지를 세계로 전파하는 계기가 됐다.
동티모르는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너무 열악하다. 100만 인구의 절반이 성인 기준 하루 0.88달러(세계은행 통계) 미만으로 생존한다. 산간지역으로 갈수록 영양실조가 심각해 주민의 키가 작고 팔다리가 가늘다. 딜리 시내에도 말라리아와 뎅기열을 옮기는 모기가 설친다. 석회가 섞여 있는 물을 잘못 마셨다간 설사병에 걸린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추진하는 해수담수화 플랜트가 완공되고 나면 딜리의 물 부족이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 ‘맨발의 꿈’ 산간마을에서 상영
1998년 친(親)인도네시아 민병대가 저지른 만행의 상흔이 11년이 흐른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헤라공대는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를 통틀어 세 번째로 좋은 공과대학이었다. 지금은 지붕과 내부가 불타고 벽만 남은 건물들이 잡초가 무성한 교정에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외환위기로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지면서 들어선 하비비 정부는 유엔의 압력으로 동티모르의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투표를 수용했다. 민병대는 독립파가 투표에서 이기면 피로 강을 이룰 것이라고 공공연히 협박했다. 1999년 8월 30일 유엔 주도로 치른 주민투표에서 투표자의 78.5%가 독립을 지지하는 결과가 나오자 민병대는 닥치는 대로 살상 방화 약탈을 자행해 동티모르 주택 건물 학교의 70%를 파괴했다.
딜리를 벗어나면 그때 불탔던 학교 건물이 대부분 방치돼 있다. 새로 지은 교실도 양철지붕에 천장이 없어 태양열이 그대로 교실로 쏟아져 들어온다. 창문은 아예 없고 낡은 칠판이 교실임을 알려준다. 풀이 자란 운동장에서는 돼지 가족이 산보를 했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돼지를 방목한다.
서경석 동티모르 대사는 “한국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전환한 세계 유일의 국가가 된 것은 교육의 힘”이라며 “한국의 원조는 교육 지원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대사는 산간의 작은 마을을 방문해 테툼어(語) 자막이 깔린 영화 ‘맨발의 꿈’을 상영해준다. 동티모르의 히딩크라는 말을 듣는 김신환 감독이 키운 유소년 축구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서 대사는 염소 축사(畜舍) 같은 학교 교실환경을 개선하는 일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동티모르의 비정부기구(NGO) 알롤라 재단이 2011년 청암 봉사상을 받는다. 청암은 포스코 설립자 박태준 명예회장의 아호. 알롤라 재단의 회장 크리스티 구스망 여사는 호주 출신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동티모르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비밀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때 독립 투쟁을 벌이다 20년형을 받고 복역 중이던 남편 샤나나 구스망을 만났다. 그는 초대 대통령을 지내고 지금은 총리다.
동티모르에는 일부다처(一夫多妻)에 매매혼 풍습이 남아 있다. 신랑이 처가에 700달러 정도를 주고 아내를 데려온다. 아내를 돈 주고 산 소유물이라고 인식하는 남편들의 가정폭력과 아내 학대가 심각하다. 알롤라 재단은 여성 교육, 가정폭력 방지, 모성 보호 같은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이 나라의 출산율은 7.8명이지만 영아 사망률이 높다. 여성들이 출산 때 산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출산한 뒤에는 모유 수유를 기피하는 풍습 때문이다. 알롤라 재단은 지역 건강센터를 중심으로 산모의 건강관리와 출산을 지원하고 모유 수유 장려운동을 펼치고 있다.
* 알롤라 재단, 청암봉사상 받는다
동티모르에선 2011년부터 전국 고등학교(77개) 1학년부터 한국어를 외국어 선택과목으로 가르친다. 교사의 봉급은 120달러 정도. 동티모르의 청년들은 숙식을 제공받고 한 달에 1000달러를 벌 수 있는 한국에 근로자로 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다.
일요일 아침 해변을 산책하다 태권도 도복을 입고 한국어 구호를 외치며 맨발로 달리는 200여 명의 남녀 청소년과 만났다. 한국에서 보내준 중고 도복인 듯 ‘부산체육관’ ‘장흥태권도장’ 같은 글씨와 태극마크가 부착돼 있었다. 1999년 유엔 평화유지군 상록수부대를 통해 첫 인연을 맺은 한국은 동티모르 청소년들에게 포르투갈과 인도네시아도 못 해준 ‘맨발의 꿈’을 심어주고 있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신예리(논설위원)-20101220월] 말 놓기
타블로는 한때 MBC ‘꿈꾸는 라디오’의 DJ였다. 이 프로그램의 백미라 할 코너가 바로 ‘어디야 뭐해’. 타블로가 사연을 보낸 청취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반말을 건넸다. “어디야?” “뭐해?” 그럼 받는 쪽도 “집이야” “공부해”라고 대꾸하는 게 규칙이다. 간혹 “공부해…요”라며 ‘반칙’하는 사람 역시 항의에 못 이겨 기어이 ‘요’자를 떼곤 했다. 나이 어린 학생도, 학생의 부모도 반말 공세 앞에 평등했다. 딸 전화를 대신 받은 어머니에게 “엄마야? 나 타블론데 ○○ 좀 바꿔줘” 식이다. “친근하다” “가족 같다”며 열성 팬들의 지지가 대단했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에서 웬 상놈의 방송이냐는 노여움도 분명 있었을 터다.
외국 물 먹은 힙합 전사의 일탈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한국 문단의 거목인 비평가 김현의 반말 예찬은 어떤가. 생전에 그는 어울리는 문인들에게 서로 말을 놓으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말을 높이면 벽이 생겨 관계가 원만해지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출판사 ‘문학과 지성’ 그룹 중 막내뻘인데도 한두 살 많은 김치수·김주연은 물론 대학 3년 선배인 김병익과도 말을 트고 친구처럼 지냈다. “말을 놓지 못하면 벌로 술값을 내라”고 할 만큼 김현의 ‘말 트기 주의’는 집요했다(정규웅,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
그 어느 나라보다 존댓말과 호칭에 민감한 게 한국이다.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뿌리 깊어서다. 흔히 다른 일로 시작된 싸움도 “왜 반말이냐” “주민등록증 꺼내 봐라”로 번지기 일쑤다. 이런 문화에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소통의 흐름을 가로막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반기를 든 것이 김현과 타블로만은 아니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오자마자 거스 히딩크가 뜯어고치려 한 것도 호칭 문제였다. 선후배 간의 엄한 규율 탓에 그라운드에서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않은 점을 간파한 것이다. “무조건 서로 이름을 부르라”는 그의 주문에 당혹한 선수들. 변화의 물꼬를 튼 건 김남일이 최고참 홍명보에게 던진 한마디였다. “명보야, 밥 먹자!”
얼마 전 미국 고교에 다니던 한국인 유학생끼리 주먹다짐을 벌인 끝에 한 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동급생이지만 두 살 차가 나는데 이름을 부른 게 갈등의 원인이었단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나이만 따지는 분위기는 아닌데 본고장인 미국까지 가서도 배우지 못한 게 안타깝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택근(논설위원)-20101220월] 살처분, 땅 속의 야만
성탄절이 다가온다.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 참으로 은혜로운 말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고, 지난 날들을 더듬어 잘못을 씻기에 좋은 시간들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소와 돼지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우리네 땅은 지금 평화롭지 못하다. 안동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경북 지역을 돌더니 이제 수도권 양주, 연천, 파주까지 침투했다. 우리가 눈과 귀를 연평도, 여의도, 다시 연평도를 향해 여닫을 때 소와 돼지는 날마다 살(殺)처분 당했다. 이미 18만마리를 넘어섰다. 살처분은 죽여서 묻거나 소각해야 하는데, 다급하거나 여력이 없어서 생매장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저 동물들의 비명을 그대로 두고 어찌 새해로 넘어갈 것인가.
독립영화 <워낭소리> 주인공 최씨 할아버지가 방역활동에 써 달라고 성금 100만원을 경북 봉화군에 기탁했다. <워낭소리>는 사람과 소의 교감을 그린 수작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 소는 모든 힘을 주인을 위해 바치고 땅 속에 묻혔다. 소가 흘린 마지막 눈물은 아직도 관객들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최 노인은 다시 새 소를 들여 3년째 같이 살고 있단다. 구제역은 최 노인의 마을에서 10㎞ 떨어진 곳까지 왔다가 겨우 멈췄다고 한다. 앞으로 구제역이 빈발한다면 인간과 소의 동행은 어림없을 것이다.
요즘 소들은 워낭 대신 번호표를 달고 있다. 사람의 친구가 아닌, 들녘의 일꾼이 아닌 그저 인간의 먹이로 사육되고 있다. 몇천년을 이어온 우경(牛耕)의 시대도 저물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키운 소와 돼지를 묻는 축산 농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시릴 것인가. 아마도 그 죄의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08년 봄에는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여 수십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을 당했다.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것들은 죽어야 했다. 이 땅에서 날개 달린 짐승은 AI로, 발굽이 둘로 갈라진 가축은 구제역으로 죽어가고 있다.
돌림병에 감염될까봐 씨수소들을 아무도 모르는 외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한우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예방책이겠지만 ‘최후’를 대비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 지금 이 땅에 존재하는 생명들이 실로 위험하다. 우리는 지금 ‘성찰의 연말’까지 살처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최후를 받아들이는 땅, 그 땅에 생명평화가 흘러야 인간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매일경제신문 칼럼-열린마당/함규정(카루소 감성스킬센터장)-20101220월] 올 한 해, 당신은 참 잘했다
시작은 항상 설레고, 끝은 언제나 아쉬운 법이다. "언제 2010년이 다 지나갔지?" 2010년 마지막 달을 맞으며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2010년 비전을 발표하던 것이 엊그제인데, 까마득하게 보이던 그 2010년이 벌써 저물고 있다.
연말이면 사람들은 대개 공통적인 감정을 느낀다. 새해에 결심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아쉬움, 더 열심히 살지 못한 데에 대한 자책감 등. 연초에 세웠던 목표리스트를 꺼내어 보면, 대번에 낯간지러워진다. 술 줄이고, 담배 끊고, 일주일에 2번 이상 운동하고, 가족들과 한 달에 한 번 나들이 간다고 쓰여 있다. 그토록 다짐했건만 실현되지 못한 계획들. `난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한 걸까?` 한번 결심하면 기필코 이루고야 마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그런데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의외로 우리 주변에는 한번 결심하면 완벽하게 이루는 사람이 많지 않다. 더구나 사람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다. 누구는 담배는 독하게 끊는데, 술은 자제하지 못한다. 운동센터에는 꼬박꼬박 가면서, 막상 소중한 가족들에겐 제대로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을 서로 비교하기가 어렵다.
올 한 해, 당신은 잘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큰 갈등 없이 원만하게 지냈고, 주어진 업무를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해냈다. 술자리에서는 힘들어하는 후배들 어깨를 두드려주며 진심어린 위로도 해주었다. 바쁜 와중에도 가정에선 아이들에게 따뜻한 부모가 되어주려고 노력했고, 배우자의 입장을 더 많이 이해하려고 애썼다. 멀리 계신 부모님을 자주 뵙진 못했지만,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안부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당신은 올 초 세웠던 목표들을 모조리 완벽하게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나 당신이 올 초에 세운 목표 외에, 시도하고 달성한 것들은 의외로 많다. 비록 주량은 줄이지 못했더라도, 술자리에서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운동센터를 끊어놓고도 거의 가지 못했지만, 그 대신 일요일마다 가족들과 집 근처 산을 오르며 가족애를 느꼈다. 아이들과 소풍을 자주 가진 못했지만, 주말이면 아이들의 `망가지지 않는 장난감`이 되어 놀아주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당신은 2010년을 잘 살아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열심히 살았던 나 자신을 칭찬해주자. 지금 당신의 손으로 당신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자. "고생 많았어. 한 해 동안 잘해냈어." 칭찬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주말에 회사에 출근해서 업무를 마무리했지만, 막상 상사는 모를 수도 있다.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었지만, 배우자는 모를 수도 있다. 이럴 땐, 내가 나를 칭찬하고 스스로에게 보상해주자. 당신은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당신이 올 한 해 동안 이룬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자. 2010년, 열심을 다해 살아온 당신, 당신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