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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인권포럼 등 12개 장애인단체가 현행 성년후견제도가 피후견인으로 지정된 장애인 등 당사자의 의사결정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폐지 운동에 나설 예정이다.
이들은 26일 오전 10시 이룸센터에서 정책간담회를 열고, 오는 4월 6일 ‘성년후견제도폐지 추진연대’(아래 성폐련)를 공식 출범하기로 결정했다.
성년후견제도는 개정된 민법에 따라 지난 2013년 7월부터 시행됐다. 기존의 금치산자·한정치산자 제도가 의사결정능력에 장애가 있는 사람의 잔존능력을 무시하고 행위능력을 획일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당사자의 잔존능력을 존중해 후견인이 일정행위를 보충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고 재산뿐만 아니라 치료·요양 등 신상에 관한 분야에도 후견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성년후견제도이다.
이와 함께 민법에서는 성년후견제도 외에도 후견 수요자의 상황에 따라 법률행위를 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한정후견’과 일시적으로 또는 특정한 행위에 대해서만 후견을 받도록 하는 ‘특정후견’, 계약에 의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임의후견’ 제도를 신설했다.
하지만 성폐련은 이런 성년후견제가 본질적으로 피후견인의 법률행위능력을 부정하고 사실상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법률적 권한을 ‘대리’하도록 하는 제도라고 파악하고 있다. 즉 이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것이다.
이들은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의 경우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법률행위를 사후에라도 추인하지 않을 경우 그 계약 등을 철회하거나 거절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약혼과 결혼, 출산한 자식의 입적, 입양, 수술 또는 입원 등 개인의 신상과 관련해 중요한 일에 대한 결정을 후견인의 동의 없이는 할 수 없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현행 성년후견제도가 상당한 문제가 있는 일본의 개정민법에 의한 후견, 보좌, 보조제도를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지난해 10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한국정부에 권고한대로, 당사자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는 ‘의사결정 대리’(substituted decision-making)제도가 아닌 ‘의사결정 조력’(supported decision-making)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8일 사단법인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가 주최한 ‘성년후견제도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 반발해 토론회장을 점거해 이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대로 성년후견제를 폐지하기 위한 움직임을 모아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장애인계 내에서 더 깊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성년후견제의 주요한 이해당사자 중 하나인 장애인부모단체의 경우 현행 성년후견제가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는 입장이 다르지 않지만, 폐지보다는 보완 쪽에 힘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진철 조직국장은 “성년후견 판정을 받으면 영구적으로 법적 권한을 상실하게 되는 등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성년후견제 도입 이후 관련 법들이 전혀 개정되지 않아 법원에서 피후견인을 판정할 명확한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이 때문에 사실상 장애 등급에 따라 피후견인 판정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윤 조직국장은 그러나 “기존의 금치산자 제도를 폐지하고 성년후견제로 나아간 것은 진일보라고 보는 것이 맞다”며 “다만 4가지 후견 유형 중 영구적으로 모든 법적 권한을 상실케 하는 ‘성년후견’은 사실상 기존 금치산자제도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니 폐지해야 하고, 이를 한시적 의사조력 제도로 대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년후견제는 주무부처가 법무부로 되어 있는 민법 체계인데, 많은 장애인 부모들이 이를 또 다른 돌봄서비스의 하나로 생각하는 등 오해가 존재한다”며 “때문에 성년후견제가 취지에 맞게 시행되기 위해서는 관련 법과 지원체계의 개편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성폐련은 4월 6일 출범식과 함께 성년후견제를 대체할 새로운 의사결정지원제도 도입을 논의하는 토론회도 연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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