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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마을>오백37호 : 마을기업17-마을의 역사를 되살리는 열린 조사단 '울주 소호마을조사단'
이천십년십일월이십칠일흙날,오래된미래마을,정풀홀씨
고향마을인 소호리로 귀농한 소호산촌유학센터 김수환대표는 숲길, 마을 길 걷기를 유난히 좋아한다. 일찍이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양평 생태산촌환경교육센터 소장을 지낸데다 지금은 울산 생명의 숲 지도위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마을에서 놀던 추억을 좇아 참나무숲과 숲학교를 지나 고헌갤러리, 참새미길에 이르면 마을의 역사를 한바퀴 되돌아 본 감회에 젖곤 한다. 그 소중한 느낌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소호마을조사단을 꾸리고 마을조사사업에 본격 나섰다.
소호리는 영남알프스 자락의 첩첩산중 산골마을이다. 방문객들이 직접 밟아볼 수 있는 마을 길의 갈래와 종류는 골이 깊은 만큼 깊고 다양하다.
오솔길, 농로, 험한 길, 오솔길, 논둑길 등, 저마다의 고유한 질감과 모양을 자랑하는 길들이 파노라마처럼 다채롭게 이어진다.
게다가 산림청 연구림이기도 한 소호 참나무숲과 낙엽송 조림지역에 이르면 숲 공부를 제대로 할 수도 있다. 때가 맞고 운이 좋으면 잣나무 열매를 맛보는 행운도 얻을 수 있다.
오래된 토종뽕나무나 적송 한그루. 비비추나물 군락, 이름을 알 수 없는 낯선 풀들을 만나면 이제 길은 더 이상 단순한 길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 인류의 역사를 새겨놓은 찬란한 유물의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마을 공동체문화를 되살리는 소호마을조사단
소호마을조사단은 울산 지역에서 사회복지, 지역아동교육을 주로 하는 사단법인 아이누리 부설 마을문화연구소에서 운영하는 하나의 사업단이다.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라는 전형적언 농산촌마을의 인문․사회․지리 등을 꼼꼼히 조사해 마을의 공동체문화를 복원하려는 게 사업목적이다.
애초 소호마을조사 사업은 울산시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영남알프스 산악관광 마스터플랜’의 한 부분이다. 마을문화 조사를 토대로 공동체문화를 복원하고 나아가 관광자원을 확충하려는 지자체 울산시의 정책적 실리와 민간단체 아이누리의 사업적 명분이 잘 부합된 산물이다.
조사단에서 조사하는 대상은 주로 사라져가는 옛길과 돌담, 기념이 될만한 건축물과 수목, 사연있는 물길과 숲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의 아기자기한 삶의 흔적 등이다. 조사자들은 주로 현지에 살고있는 주민이나 청년실업자중에서 선발한다. 특별히 동식물과 지리지형, 건축 등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먼 곳에서 달려와 팀원으로 합류하는 경우도 있다.
김씨는 일찍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생태운동, 지역활성화 운동에 매진해왔다. 그러던 중, 이른바 마을만들기 또는 마을가꾸기라고 불리는 농촌지역개발사업의 표면적 성과가 지지부진하거나 표류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산촌유학센터, 지역아동센터를 중심으로 폐교 위기의 마을학교를 살리고 나아가 활기와 희망이 넘치는 마을로 고향을 되살리려는 귀향의 각오를 한시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보면, 세계무역기구(WTO)협정 이후 위기에 처한 농촌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농식품부, 행안부, 문화부, 국토부 등 각 중앙부처마다 경쟁적으로 다종다양한 지역개발정책을 양산했다. 하지만 여전히 농민들은 생활이 어렵고, 도시의 청장년층 인력들 또한 농산어촌을 살리는 지역의 일꾼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김씨는 농촌의 활력과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청년실업 문제, 귀농인의 지역정착 문제 등 도시민, 외지인들의 희망지역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지원책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그 지원책은 일회적, 시혜적이 아니라 당연히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할 필요가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자원조사 연구, 마을계획 등 마을만들기 사업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게 김씨 나름대로의 농촌마을 살리기 방법론이다.
지역자원조사 사업을 비롯해 지역의 공동체 문화 발굴과 복원, 체험마을 등 문화관광 활성화, 농촌형 사회적 일자리 창출, 도․농 간 교류와 직거래 확대, 도시민 유치를 통한 인구유입 등의 방법이다.
또 어린이, 노인, 다문화가정 등 지역의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복지 개발, 마을자원조사를통해 발굴된 마을문화의 자원화, 이를 연계한 지역문화관광 사업 등도 있다.
이같은 다각적 방법을 실천한다면 농산어촌의 마을공동체성은 회복되고, 자립가능하고 지속발전가능한 지역기반도 다져지는 유력한 방법론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개중 마을조사 사업은 사라져사는 마을 옛길을 마을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 가꾸는 작업이다. 잃어버린 마을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되찾고 길을 통해 만남과 소통, 공동체문화를 복원하는 데 기대효과가 크다고 확신했다.
마침 올해 울산시에서 영남알프스 일대의 환경적 현황과 생태적․역사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생태문화탐방로 조성계획이 추진하면서 맞추어 소호마을조사단을 출범시키게 된 것이다.
첫 과제로 두서면 구량리에서 소호마을 덕현리 삽제에 이르는‘소호령 고갯길 코스’를 시범사업지로 설정하고 주민주체형 마을길 만들기 사업의 모델을 창출하고 있다. 주민 주체의 마을길 복원, 문화프로그램 개발․운영사업인‘옛소금장수가 넘나들던 소호령 고갯길’이 그것이다.
이 사업의 목표는 분명하다.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소호마을의 문화자원을 기록하고 발굴하려는 것이다. 소호마을의 문화자원을 통해 새로운 문화 관광 여행 모델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주민이 주체로 나서 스스로 마을길을 복원하고 연관된 문화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모델을 만들자는 것이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 외부의 지원․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홍보하는 것도 주요목표다.
이를 위해 올 한해 동안 마을지도와 마을안내판을 비롯해, 마을과 길, 사람과 길에 얽힌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수집․ 채록․정리한 마을길걷기 안내책자을 제작한다.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개발된 마을길 걷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옛날사진전도 개최할 한다.
한마디로 마을 옛길에서 잠자고 있는 역사와 전설, 사연 등을 찿아내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 바로 ‘소호령고갯길 사업’이야말로 소호마을 조사사업의 핵심과제다.
소호마을 조사단이나 마을주민들이 이 사업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는 크고 다양하다. 우선 각 마을마다 역사와 문화조사의 주민주도형 모델을 창출하려고 한다. 아이들과 주민이 중심이 된 마을 문화를 재창조하려는 것이다. 귀농․귀촌의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마을조사 사업을 통해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지역 인적자원을 양성함은 물론, 지역 안팎으로 다각적 방법과 경로를 통한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활성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2006년 진안 등지에서 처음 시작된 마을조사사업도 농산촌 지역의 활성화와 사회적일자리 창출이라는 목적을 강조하면서 시작된 사업이다.
당시 기업과 NGO의 후원과 지원을 받아 충북 제천시 백운면과 전북 진안군 백운면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생태NGO 전문가, 행정관계자, 지역주민 등으로 구성된 자문그룹의 지원에 귀농인력들의 지식과 경험이 결합된 바 있다.
이때 무엇보다 지역자원 조사사업이라는 사업 자체의 의미도 적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귀농인들이 조사인력으로 대거 참여하면서 새로운 귀농 방식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때의 주요 인력과 경험들은 독립적인 농촌형 사회적기업인 (사)마을리서치공동체로 진화되어 있기도 하다.
한편 사라져 가는 지역역사 문화의 구술․채록을 통한 복원 기록, 새로운 형태의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컨텐츠 개발도 마을조사사업의 중요한 성과로 도출되고 있다.
지금 소호마을조사단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요사업은 조사연구 분야, 기획사업 분야, 네트워크 분야로 나뉜다.
조사연구 분야는 마을조사와 문화자원 연구사업, 마을생태환경 조사사업, 마을미관과 경관 연구사업, 지역문화관광정책 연구․ 개발 등이다
기획사업은 마실길 걷기 사업, 마을조사교육사업, 마을 만들기 컨설팅사업, 마을문화체험사업, 마을문화 및 농산품 디자인․유통 사업, 에코 뮤지엄, 사회적 서비스 제공 등이다.
네트워크 분야로는 마을문화 아카데미, 마을조사연구 토론회와 워크숍, 커뮤니티와 연대 사업, 출판 사업 등이다.
실제적으로도 사업초기 부터 지역자원조사 사업, 마을길 디자인 사업, 지역활성화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지역자원조사 사업은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농산어촌 마을의 문화자원을 기록과 발굴, 농산촌 마을의 공동체성 회복과 활력 증진, 지역 활성화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과 홍보가 목표다.
이를 위해 행정리별로 답사와 전수조사 등을 통한 마을기초조사, 지리․생물․건축․농어업․생애사 등 주제별 조사, 사진전, 문화지도 작성 등 지역홍보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마을길 디자인사업은 지역문화가 축적된 가장 왕성한 공간이자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길을 정립하는 일이다. 걷기는 축적된 지역문화를 알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로서 점(관광포인트)만 찍는 여행에서 길을 따라 걸으며 지역문화를 온 몸으로 호흡하는 걷기(트레킹)로 새로운 여행문화를 활성화시키려는 것이다.
최근 각 지역별로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둘레길, 진안마실길 등 걷기코스 개발이 하나의 유행같은 현상으로 돌출하고 있다. 특히 그 공간이 갖는 문화․자연자원을 길에 접목한 유의미한 코스개발이 성공의 관건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호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영남알프스 자락은 마을마다 천혜의 문화․자연자원이 있고, 그 땅에 기대 살아가는 사람과 마을이 있다. 이러한 요소를 길에 엮어낸다면, 특히 산자락을 타고 시군을 넘나들고 산골 오지마을들을 이어주는 좁지만 깊은 고갯길이야말로 소호마을 길의 특장점이자 경쟁력으로 내세울만하다.
지역 활성화 사업으로는 지역자원조사와 마을길디자인 대상이 되는 지역에 면민의 날 등 주요행사에 맞춰 옛날사진전을 기획하고 있다. 도농교류 직거래장터 등 주요공간에 마을 홍보지를 제작․배포해 지역의 자원을 홍보하고 활성화시키는 효과도 이끌어낼 예정이다.
옛소금 장수가 넘나들던 소호령 고갯길
소호마을조사단이 1차 사업대상지로 삼고 있는 ‘소호령고갯길’은 옛날 마을 사람들과 소금장수들이 소호령 고갯를 넘어 차리마을을 거쳐 언양시장을 다니던 길이다. 지리적으로는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를 출발하여 두서면 은행나무까지의 약 17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이다. 소호마을을 출발하여 차리마을에 이르기까지는 민가 하나, 농사짓는 농부 하나 만날 수 없는 외톨이 길이다.
소호마을문화연구소와 소호마을조사단에서는 ‘옛소금 장수가 넘나들던 소호령 고갯길’ 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지역․주민밀착형으로, 〮도보여행자들을 위한 탐방로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소호마을의 문화조사 작업은 곧, ‘소호령고갯길’을 기본 본령으로 하여, 그 고개를 넘나들며 삶을 꾸려온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살았고,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설정하고 있다.
실무를 책임맡고 있는 조사단의 김연숙팀장은 “고개 하나 넘을 적마다 차고 기우는 나이를 가늠하곤 하던 사람들, 그들이 한국인입니다. 산마루에 걸린 고개를 넘는 힘의 깜냥으로 나이를 재보던 한국인은 그들 삶의 행보 또한 산마루 턱 넘기라고 믿고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라며 마을 길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드러낸다.
“고개에는 샛길이 없습니다. 재에는 지름길도 없습니다. 빠져나갈 수도 없거니와 옆으로 샐 수도 없는 길, 그게 잿길입니다. 그저 마냥 꾸불꾸불 돌아나갈 뿐입니다. 굽이굽이 휘돌아나가는 길.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곱씹으면서 가야하는 길. 그 길이 고갯길이었습니다. 소호령 고갯길 또한 그렇습니다. 마을을 출발하여 다음 마을에 닿을 때까지, 민가 하나 보이지 않는 길. 순식간에 내달리는 신작로 길이 아니라 천천히 삶을 사색하는 사색의 길입니다. 우리가 조성하고자 하는 길은 이런 고개의 은유가 살아있는 도시인의 사색의 길, 지역주민에게는 삶의 길이 되어야 할것”이라며,“그리하여, 길은 아무데나 있지만 길은 아무데도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길에서, 고개 아니면 오가도 못하는 마을. 재로 막히고 고개로 열리던 마을. 마을과 세상 사이를 들고나는 일, 아예 세상살이 그 자체가 고갯길이고 재 넘기였던 한국인의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고갯길에서 길의 사상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불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한다”는 각오를 덧붙인다.
김팀장은 마을조사론은 계속된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여성의 농기구는 단연 ‘호미’였습니다. 청승맞게 쪼그리고 앉아서 일 해야 하는 농기구. 기다시피 밭일을 해야 하고, 걸레로 방안을 훔치고, 아궁이에 불지피고 할 때마다 웅크려야했던 여인네들의 삶. 호미질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삶이 곧 억눌림이었던 여인네들은 일을 할 적에도 기어야했습니다. 기고, 웅크리고, 그저 긁어대고 콩콩 쪼아댈 뿐인 여성들의 삶의 은유로서 호미만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랑을 안고 돌아야 하는 건데 웬걸 밭고랑만 안고 돈 한평생. 해마다 여름이면 호미자루 석 자루씩 녹여댄 삶이라고 푸념하던 사람들의 삶을 이제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찾아내고 복원해야합니다.
이렇게 마을에는 우리의 삶을 은유해 주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느티나무가 있고, 학교가 있고, 우물이 있고, 마을길이 있고, 또 누군가에게서 누군가에게로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 전설이 있고, 마을 이야기가 있고, 마을 놀이가 있었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마을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작고 소소한 것들, 그러나 소중한 것들에 눈길을 돌리고, 담아내고, 기록하고 기억해야합니다.“
김팀장의 마을예찬론의 여운은 한편의 시처럼 끊어질듯 이어졌다.
“소호마을엔 아름다운 학교가 있습니다. 소호마을엔 산촌유학센터가 있습니다. 도회지에서 아이들이 이곳으로 유학을 옵니다. 이제 나가기만 하던 것에서 오고가고 하고 있습니다.
도회에 살던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 마을로 찾아옵니다. 귀농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개는 여전히 그곳에 있고 사람들의 오고감은 잦아졌습니다. 전통을 지키되 자폐적이지 않으며, 열려있으되, 결코 우리의 것들을 놓치지 않는 그런 마을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소호마을문화연구소 이선영사무국장은 “마을문화조사는 각 지역마다 독립적으로 실행할 수 있으며, 조사단 구성이나 방법 지도는 마을문화연구소가 맡을 수 있다”며, “이 조사를 바탕으로 공동체 문화의 발굴과 복원, 문화관광 활성화, 일자리 창출, 도농간 교류와 인구유입 등을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내비친다.
조사단은 소호마을 조사가 마무리 되는대로, 영남알프스 권역에 있는 이천리와 등억리 등 산촌의 특성을 비교적 잘 간직하거나 개발대상지로 급속히 원형을 잃어가는 곳으로 조사대상을 넓혀가려는 계획이다.
소호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길을 찾고, 길 위에서 사람사는 마을을 찾아나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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