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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옛날에 탁발해 봤어요. 탁발 해보면은 안주는 경우가 대다수라. 내가 저 국제시장도 갔었거든요. 어릴 때 여기 저 단체로 범어사 그때 승려의무금이라는 게 있었어. 승려의무금. 그때 그 5.16 일어나던 나기 전 해인가 그래요. 전에 그 대처비구 정화운동이 한창 이제 일어나가지고 아주 종단이 시끄러웠는데
승려들이 뭘 의무금을 뭐할라고 내요? 국민의무금 냅니까? 의무금은 안내죠? 주민세? 아 주민세가 있구나. 승려가 됐으니까 승려의무금이라고 하는 것을 붙여가지고 의무금을 낸대. 학인이 무슨 돈이 있나? 그때는 1년 내내 가봐야 사중에서 돈 한 푼 안 줬어요. 먹고 자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할 때라.
그러니까 그 승적을 가질려면은 의무금을 내야 되는데, 돈이 없으니까 우리가 그럼 국제시장 가서 탁발하자 해가지고 한 20명 학인들이 쭈욱 갔어요. 줄을 딱 서가지고 갔는데, 그때 열여덟 살 때인가 하여튼 뭐 그럴 때 천지도 모르고 열여덟, 열일곱 그럴 땐데, 부끄러워가지고 하 그 어린 마음에 어떻게 부끄럽노? 왜 그래 부끄러운지? 부끄러워가지고 아무 데도 그 눈을 돌릴 수가 없어요.
그 바리때를 딱 들고 지나가기만 했지. 여기다 돈을 갖다 넣는지, 쌀을 갖다 넣는지 전혀 분별을 못 했어요. 겨울이었어. 그때 또. 겨울이었는데 그때 대각사에다가 그 짐을 내려놓고 거기서 이제 국제시장 가깝잖아요. 그 뒤로 한 바뀌 쭈욱 돌아서 대각사 들어와서 그때사 장삼을 벗는데 땀이 온 몸을 다 적셨어. 부끄러워가지고.
그리고 돈이 들어왔는지 어쨌는지 그건 전혀 모르고, 거기에 이제 선배 스님들이 있었어요. 한 뭐 40, 50된 스님들도 이제 같이 갔으니까. 그래 그 스님들이 물론 관리는 했겠지마는 그렇게 부끄러움이 부끄럽더라구요. 부끄러워서 땀을 팍 아주 흘렸어. 두 시간 동안 그래 돌았는데, 아 그거 참 생전 처음 탁발했을 때라. 그 승려의무금 장만한다고, 그래가지고 의무금 모아가지고 이제 올려 보내고 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주는 집도 있고 안주는 집도 있고 그래요. 사(捨), 불사(不捨) 이게 주는 집, 안주는 집이란 뜻이라. 불사인(不捨人), 사인(捨人) 그랬잖아요.
⑨ 若見空鉢인댄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공발(空鉢)이라고 해놨네. 공발. 텅 빈 바루때. 바루때다 담거든요. 돈이고 쌀이고 바루때에 담습니다. 무조건. 공발을 보게 되거든, 빈 바루. 마땅히 중생(衆生)이
其心淸淨하야 空無煩惱하며
기심(其心)이 청정(淸淨)하여. 텅 비었으니까. 청정이란 말은 텅 빈다는 뜻이거든요. 그 마음이 청정해서, 마음이 텅 비어 그래 깨끗해. 텅 빈 게 깨끗한 거죠. 그러니까 텅 비어 가지고 번뇌(煩惱)가 없기를 원(願)하라.
없는 게 좋은 거네. 결국은, 없는 게 좋은 거요.
⑩ 若見滿鉢인댄 當願衆生이
반대로 만발공양(滿鉢供養) 만발 가득히 바루때가 차게 뭘 음식을 얻었든지, 쌀을 얻었든지, 돈을 얻었든지 그렇게 만발을 보게 되면은 마땅히 중생(衆生)이
具足成滿 一切善法하며
모든 선한 법(法)이 가득하기를 원(願)하라. 아 저렇게 바루때가 가득 차듯이, 바루때가 가득 차듯이 선한 법이 저 사람에게 가득 찼으면 얼마나 좋겠나. 또 바루때가 안 찬 것을 볼 때는, 텅 빈 것을 볼 때는 저 사람에게 번뇌가 텅 비었으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마음을 가져라 이거여. 그게 이제 선용기심(善用其心)이라. 그 마음을 착하게 쓰는 거라.
⑪ 若得恭敬인댄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만약 공경(恭敬)을 얻는다면, 다니면 아주 뭐 그런 그 신도들도 있거든요. 당원중생(當願衆生)이
恭敬修行 一切佛法하며
모든 중생이 저렇게 공경(恭敬)하듯이 일체불법(一切佛法)에 대해서 공경하고 수행(修行)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마음을 가져라.
⑫ 不得恭敬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어떤 사람들은 뭐 그냥 욕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뭐 본척만척하고 하기도 하고 뭐 먼지를 끼얹고 가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보면은. 그때는 마땅히 중생(衆生)이
不行一切 不善之法하며
모든 중생이 일체불선(一切不善)한 법(法), 착하지 아니한 법 행(行)하지 않기를 원(願)하라.
그랬습니다. 뭘 해도 이 보살에게는 전부 좋게 해석하고 좋게 말하자면 받아들이고 내 마음의 양식을 삼고, 뭘 많이 주면 많이 주는 것으로써 잘 해석해서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 안 주면 안 주는 대로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 욕하면 욕하는 대로 그걸 가지고 또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 공경하면 공경하는 것을 가지고 마음의 양식으로 삼고, 이렇게 마음 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면서요.
이 정행품이 그래서 좋은 거요. 우리가 세상을 사는데 제일 좋은 품이 이게 정행품이라. 사실은. 마음 쓰는 법을 가르치니까. 어떤 경우든지 내 마음 제대로 쓰면 되는 거지. 내 마음에서 제대로 그 소화하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는게 문제지. 고거 고대로 소화도 못 시키고 해석도 못하고 그대로 받아치면은 어떻게 돼? 그럼 서로 상처만 받는 거죠.
얼마나 좋습니까? 이걸 잘 그 마음 속에 수용을 하면은
⑬ 見慚耻人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참치(慚耻)한, 부끄러워하는 사람을 봄에 마땅히 중생(衆生)이
具慚耻行하야 藏護諸根하며
부끄러워하는 행(行)을 갖춰서 모든 근(根) 안이비설신의 육근을 잘 갈무리해서 보호하기를 원(願)하라 그 말입니다.
내가 아까 부끄러워했다고 하는 이야기 했죠.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냥 땀이 온몸을 다 적셔가지고 다 젖었더라고, 겨울인데. 아~ 그 정말 평생 잊지를 못해요.
그다음에 내가 또 이제 탁발을 또 한 적이 있어요. 그때도 또 2차로 승려의무금을 내기로 했는가 그때 저 시골로 다니면서 쌀을 얻고 곡식을 얻고 그랬어. 그때는 익숙해져 가지고 그런가 아 그렇게 덜 부끄럽더라구요. 역시 부끄럽기도 했는데, 그것도 혼자는 못 다니고, 혼자는 어림도 없고 한 다섯 명, 여섯 명 이렇게 한 집에 들어가도 대여섯 명이 같이 들어가서 『반야심경』을 같이 외우고 하니까 아 서로서로 믿는 거지. 서로서로 믿으니까 아주 덜 부끄러운 거야.
⑭ 見無慚耻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부끄러움이 없음을 볼 때 마땅히 중생(衆生)이
捨離無慚하고 住大慈道하며
무참(無慚) 그 부끄러움이 없음을 떠나 버리고, 부끄러움이 있으면 있는대로 또 좋게
해석하고 없으면 없는 것을 또 좋게 해석하는 거죠. 큰 자비의 도(道)에 머물기를 원(願)하라.
⑮ 若得美食인댄 當願衆生이
아주 좋은 음식을 얻었다 그 말이여. 미식(美食)을 얻었다. 그럴 때는 마땅히 중생(衆生)이
滿足其願하야 心無羨欲하며
그 원(願)을, 원하는 바에 만족(滿足)해서 마음에 선욕(羨欲)없기를, 부러워하거나 하고자 하는 게 더 이상 ‘아 이제 더 이상 뭐 부러워할 게 없다.’하는 그런 마음 갖기를 원(願)하라 그랬습니다.
⑯ 得不美食에 當願衆生이
아주 뭐 먹기 싫은 음식, 아주 거친 음식을, 부처님도 뭐 아주 거친 음식을 그 먹은 적이 있어요. 그 왜냐하면 인도에 흉년이 들어가지고 마침 그 어느 곳에서 사는데 흉년이 들어가지고 아주 거친 보리를 겨우 겨우 그냥 끼니를 때울 정도로 그렇게 그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난존자가 부처님 시봉 했잖아요. 그 아난존자가 내가 이렇게 먹기 힘든데, 저 노인 부처님은 얼마나 먹기 힘들겠는가? 아주 측은해가지고 그 “부처님 참 먹기 힘드시죠? 그 이렇게 거칠고 맛도 없는 보리밥 이거 자시느라고 얼마나 힘드십니까?” 하고, 그래 이제 아난존자가 부처님 동정하면서 그런 말씀을, 그런 말을 하니까.
부처님이 이제 식사를 하다가 보리 그 보리쌀 그게 이제 제대로 이제 보리쌀에 뭐 깍지도 못한 그런 보리라. 껍질 투성인 그런 보리를, 그걸 이제 이빨 사이에서 낀 것을 하나 꺼내가지고 주면서 “아난아 이거 한 번 네가 한 번 맛봐라.” 그러더래요. 맛봐라 하니까, 아난존자가 부처님이 자시던 거니까 그래 이제 받아서 먹어보니까 세상에 향기롭기도 그렇게 향기로울 수도 없고 맛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 거요. 그게 경전에 있어요.
그래가지고 “아니 어떻게 부처님 그 입에 들어갔던 그 보리밥, 이 거친 보리밥은 이렇게 향기가 나고 맛이 좋습니까?” 하니까 “그거는 네가 닦은 공덕하고 내가 닦은 공덕하고 공덕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 그랬어요.
똑같은 음식이라도 서로 그 사람의 어떤 체질, 그다음에 그 사람의 법력, 그다음 공덕의 힘 그것 따라서 그렇게 변할 수가 있습니다.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거 큰 교훈이 담겼잖아요. 큰 교훈이 담겼어. 그 맛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부처님은 그 순간 그렇게 변화시켜서 그렇게 아난존자에게 교훈을 준 거죠.
“이것은 네 복력과 내 복력의 차이다. 똑같은 음식을 받았지마는 네 복력으로는 쓰게 느껴지고 내 복력으로는 달게 느껴진다.” 이 뜻이에요. 근사하잖아요.
불미식(不美食)을 만났다. 아름답지 못한 음식을 만났을 때, 또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마땅히 중생(衆生)이
莫不獲得 諸三昧味하며
모든 삼매(三昧)의 맛 얻지 아니함이 없기를 바란다. 그렇습니다. 모든 삼매의 맛은 전부 이제 모든 사람, 모든 중생들이 다 얻기를 바란다. 막불(莫不)이라고 했으니까. 얻지 아니함이 없기를 바란다. 삼매의 맛을 얻어라. 그런 생각을 이제 하라는 것입니다.
⑰ 得柔軟食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유연식(柔軟食) 아주 부드러운 음식을 만날 수도 있겠죠. 부드러운 음식을 만났을 때 마땅히 중생(衆生)이
大悲所熏으로 心意柔軟하며
크게 어여삐 여기는 마음, 크게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써 훈습해가지고 그것을 훈습한 바로써 심의(心意)가 유연(柔軟)하기를 바라라. 마음이 아주 부드럽게 되기를, 그 유연한 음식을 만났으면은 마음이 유연해져라 이 말입니다. 중생들에게는 그런 생각을 하라 이거야.
하~ 중생들의 마음이 전부 대자비심으로써 좀 훈습이 돼서 마음이 좀 부드럽고 남을 배려하고 남을 사랑하고 남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좀 중생들이 가졌으면은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그 생각을 하라 그 말이요.
⑱ 得麤澁食에 當願衆生이
그다음에 거칠 추(麤), 깔깔할 삽(澁)자입니다. 거칠 추, 깔깔할 삽. 아주 거칠고 깔깔하고, 그 아까 이제 부처님 자시던 보리밥, 아주 그 보리 뭐 그때 뭐 정미가 제대로 됐겠어요? 어쨌겠어요? 그냥 뭐 대충 찧어가지고 그 저기 그 보리 위에 붙은 거 뭐요? 길게 가시 같은 거? 그거나 겨우 떼어 냈겠지 뭐. 그리고 그 껍질 있는 채로 아마 밥이라고 해서 먹었을 거예요. 그때 무슨 정미기술이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죠. 추삽식(麤澁食)이 그런 거친 보리입니다.
내가 행자 때 공양주를 했는 데, 그때 보리밥을 많이 먹었어요. 절에서. 보리밥을 많이 먹고 했는데 보리밥은 두 번 하는 거 알죠? 뭐 밥을 안해봤어요. 아나? 한 번 삶아가지고 그걸 다시 밥을 또 해야 그게 이제 밥이 되는 거라. 그렇게 거칠잖아요. 그 정미를 해도 그렇게 거친 거요. 그런데 정미를 제대로 안 해놓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 그걸 또 관리를 잘 못하면 여름엔 쉬어버리고 또 쥐가 와서 먹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그걸 이제 바구니에다 담아가지고, 공기 잘 통하는 걸로 담아가지고 삼베 수 삼베 천을 가지고 덮고 끈을 해가지고 우물, 우물 위에 집에 그 서까래에다가 딱 걸어놔요. 그러면 밑에는 이제 물이라서 수각이 있어가지고 그 시원한 공기가 자꾸 거기서 올라오잖아. 그럼 쉬지 안 해. 아주 그게 좋은 비결이라. 함부로 부엌에 놔두면 그건 틀림없이 쉬어버려요. 밤 지나면 그냥 쉬어버려. 여름에
반드시 수각 위에다가, 물 이렇게 있으면 수각 위에다가 그 위에다 걸어야 돼. 그럼 거기서 찬 공기가 올라와서 절대 안 쉬어요.
그것도 뭐라고 지나가면서 그 한 주먹 먹는다. 하~ 세상에. 무슨 간식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죠. 어릴 때 그냥 뭐 차돌도 녹이는 그런 시대에 그거 한 주먹 남몰래 그 또 별좌스님, 그 부엌을 관리하는 소임자가 별좌야. 별좌한테 들켰다하면 이건 골로 가는 거야. 그 안 들키게 몰래 또 훔쳐 먹어야 돼. 그 얼마나 맛있는데, 그거 한 주먹 훔쳐먹으면
추삽식이, 거칠 추(麤), 깔깔할 삽(澁) 거칠고 깔깔한 그런 음식을 만났을 때 마땅히 중생(衆生)이
心無染着하야 絶世貪愛하며
그런 음식에 무슨 염착(染着)이 있겠어요? 보리밥은 맛있더라구요. 그래도. 마음에 염착, 애착하는 바가 없어서 세상의 탐애(貪愛), 세상의 탐욕과 애욕 버리기 끊기를 원(願)하라.
좋지 않은 음식 만났을 때, 아 먹기 싫다 그러면은 그다음에 이제 세속적인 그 애착을 이렇게 싫어하듯이 그렇게 좀 싫어하면 좀 좋겠나 그런 마음을 가져라 이런 뜻입니다.
오늘 시간이 됐네요.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하다 보니까.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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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 화엄경🙏🙏🙏
善用其心..._()()()_
🙏🙏🙏
정행품. 마음 쓰는 법. 내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나의 수행의 깊이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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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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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得麤澁食에 當願衆生이 心無染着하야 絶世貪愛하며..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