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코스 : A코스 : 성륜사 - 정상 - 괘일산 -무이봉-과치재 (5시간)
B코스 : 성륜사 - 정상 - 괘일산-설옥관광농원(4시간)
출발시간
비엔날레주차장입구 07:00분
하남80미터도로 신한은행앞 07:15분
상무지구 BYC건너편 국민은행앞 07:25분
롯데월드주차장입구 07:35분
▣ 차량시간 : (40여분) 휴게소 쉬는시간 포함
▣ 산행회비 : 30,000원(뒤풀이 주류포함)
10, 옥과설산소개글
설산은 신비로운 산이다.
멀리서 보면 볼수록 사자가 하늘을 우러러 포효한 듯한 기암괴석이 적막에 쌓여져
그 모습이 더욱 신비롭다. 하루종일 기세좋게 작열하던 태양도 시간은 어쩔수 없는 듯
설산 봉우리에 걸려 오색찬란한 황혼을 펼치노라면 그 광대함에 선뜻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그러다 연못에 잠기듯 석양이 두 바위산 사이에 계곡으로 빠져드는 광경의 아름다움은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하는데 예부터 이러한 낙조의 비경을 두고 우리 선대들이 곡성팔경의 하나로 칭송해 왔다.
그 옛날 모진 시집살이 온종일 김 밭 메던 우리네 어머니들이 허리를 길게 펴고 일감을 마감하며 바라보던 그 눈에도 설산낙조는 퍽이나 신비롭고 반가웠으리라.
설산은 담양 금성산으로부터 맥을 이어와 우뚝 서 용트름을 하다
구불구불 탯줄을 이어 삼기 대명산을 이루고 불노치를 지나 통명산을 솟게 하고는
서북으로 갈라져 나와 묘치를 넘어 동악산을 이어가는 과거 옥과현의 진산이다.
즉, 옥과를 비롯한 오산면, 겸면, 입면, 삼기면 등지에서는 어디에나 해발 522m의 설산의
위용을 바라볼 수 있다.
설산은 담양 무정면과 순창 풍산면의 경계를 이루는데 담양이나 풍산면에서 바라본 설산은
그저 평범하게 보일 뿐으로 옥과쪽에서 바라본 신경과 비할 바가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설산은 옥과만의 산인 것 같다.정감록 비결에 설산동십리허(雪山東十里許)에 피난지처라 전해왔다.
이러한 까닭에 예부터 국란이나 각종 사화 등으로 인한 연좌제의 화를 면하기 위해 은근히 비전되 온 피난 거쳐를 찾아 들어와 정착한 예가 옥과근교 토착 성씨인 심, 박, 허, 강, 김씨 등의 문중사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설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두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불교설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즉, 산중턱에는 신라시대에 창건 했다는 수도암이라는 암자가 자리잡고 있는데 산과 암자를 연계하여 부처님이 수도를 했다는 팔도성지중 하나인 성도를 따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고,
다른 하나는 바위산의 광석질이 유리 원료인 규사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멀리서 보면 눈처럼 하얗게 보인데서 유래하고 있다고 한다.
한 때 모 사기그릇 제조회사에서 여러 차례 규석광산개발을 위해 답사해 갔다고 한다.
설산자락에는 해주오씨 세장산을 비롯한 요소요소에 형성된 수많은 묘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설산과 연관된 풍수설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옛부터 구전으로 내려온 설산과 연관된 대표적인 풍수혈을 살펴보면 사자가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는 사자앙천 혈과 해가 연못으로 떨어진다는 일낙함지의 혈을 들 수 있다.
대 명당 이라는 두 혈은 아직도 그 실체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설산 정상의 분지에 자리 잡은 일명[아묏등]이 복여부로 미루어 사자앙천 혈은 아니라고 풀이한다.옥룡자유산록에서 도전국사는
“설산의 대혈은 정상 부위가 아닌 산 아랫 부분에 있다”고 적고 있다.
즉, 늙은 쥐가 밭으로 내려와 먹이를 찾는 형국이라는 노서하전은 옛부터 이 혈을 찾고자
수 많은 풍수지사들이 설산을 찾아 연구해 왔다고 한다.
이 노서하전 혈에는 밤을 쌓아놓는 적률안의 형상이 있어야 한다는데
특히 마을 형태가 밤알맹이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밤정굴(율사리)마을이 바로
그 명당지가 아닌가 보고 있다.
특히 이 마을은 명당터라 하여 330여년전 옥과향교가 이전해 왔으나 100년 뒤 지금의 옥과리 향교터로 이전했다 한다.
옥과중학교 옆길을 따라 설산으로 가는 계곡에 형성된 전답사이로 농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오른편으로는 나무가 많은 산골마을이라 하여 목동마을이요. 왼편 길은 협소한 산골짜기 마을이라 하여 명명된 지방마을인데 현재는 두마을 합하여 설옥리라고 한다.
목동마을 윗 산이 설산이요. 지방마을 윗 산이 괘일산이다. 예로부터 대체적으로 두산을 합해 설산이라 불러왔으며,
해질녘 해가 걸려있는 모습이 일품인 봉우리라 하여 괘일봉이라 일러 왔다.
두 산은 기암 괴석이 서로 바라보고 있는 형상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 산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을 모아 놓은 저수지가 지방마을 위에 설치되어 있다.
둑에 서서 두 산 아래 모여 쪽빛으로 가지런이 이는 물살을 바라 보노라면 어떤 태고적 신비감을 그대로 맞볼 수 있어 좋다.
또한 이 제방에서 두 산 봉우리 사이로 어깨를 매만지듯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가슴에 안다 보면 피곤한 도시인의 안식처로써 무한한 발전 잠재력을 느낄수 있다.
수년 전 뜻있는 이 지역 출신 몇 분이 설산을 전남도립공원으로 지정하고자 시도한 적이 있다.
즉, 1980년대 초 5.18광주민주화운동 보상차원에서 공원개발 계획이 있었는데
부지 선정에 애로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기회에 이 공원계획을 설산지역으로 유치해 보자는 발상을 갖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중과부적으로 여론형성 과정에서 무산되기는 하였으나 아쉬운 설산개발 계획이 아니었나 싶다.
현재 광주패밀리랜드(우치공원)가 당시 광주대공원 개발계획(안)으로 된 바 있다.수도암(절)을 끼고 왼편으로 등산로를 따라 500m쯤엔 [성금태 시암] 즉,
성금샘터가 있어 정상을 오르는 이의 목을 적셔 준다.
높이 15∼20m에 이르는 커다란 수직의 암벽 틈에서 솟아나는 석간수는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가 있다.
15분쯤 가파른 암벽 통로를 따라 정상에 도달하게 되는데 아랫마을 농부들이 들녘에서 서로 주고 받는 소리들이 선명히 들린다.
상봉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멀리 무등산이 보이며, 곡성군 일대와 담양 무정면, 순창 풍산면 일대가 발아래 펼쳐진다.정상부는 국유림으로 넓이가 약 2만여평 되는 평평한 분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엔 “아 ∼∼∼”하고 소리를 내어 묘 둘레를 도는데 숨이 차서 다돌지 못한다고 했던 묘라고 하나 조금은 과장된 표현으로 보인다.
이 넓직한 산정의 분지는 임진왜란시엔 군사 요충지로써 이용되기도 했다. 임란시 옥과 합강리 출신 유팽로장군이 의병들을 모아 설산 천혜의 암벽을 이용하여
둘레 1,666자의 성을 축성하고 군사를 훈련 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나 약간의 흔적은 남아 있다.
이러한 설산고성은 지형 지물을 최대한 이용한 전략적 산성인 바 군량미의 저장과 공급을 담당한 담양의 금성산성과 연계하여
그 배후 산성으로 비밀군사 훈련기지인 것으로 보인다.설산에는 신비스러움 만큼이나 여기 저기 전설들이 묻어 있다. 산의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 해서
“말바위”라고도 하고 날씨가 좋은날 말바위 머리모양의 바위
(지금은 머리모양의 바위가 없음)에 신선들이 나타나 바둑을 두며 신선주를 마셨다 해서“신선바위”라고도 한다.
자랑스런 우리 고장의 진산인 “설산” 누구나 쉽게 찾아 약 4시간정도의 즐거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