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슬픔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순간에 나는 크나큰 황금빛 능구래이가 되었다. 지리산 속에 깊이 그리고 따뜻이 묻혀있었던. 어쩌면 태고 적부터. . . 그제사 슬슬 기어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토록 서럽던, 그래서 미웠던 그 이름을 다시 불러 보고 싶어서--
옴마.
어무이,
어머니. . .
거대한 능구래이가
지리산에서.
황금빛 몸띠(자태)를 하고서
고대의 어머니
노고단, 오래 된 여자--여신
그 품 속에서 슬슬 기어 다니며 놀고 있었다.
몇 년 전이다. 미국에 산 지 오래된 내게까지 이런 (뜬금없는) 소문이 들려왔다: 남한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여신제를 지냈다는. 우선 기뻤고, 무지하게 알고 싶었다. (굳이 남한이라고 쓰는 이유는 북한의 여성도 생각하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한국이라 하겠다. 이때 한국은 고조선 이전의 한국으로 하고 싶다.) 누가 제주 (祭主), 혹은 여사제인가? 누가 참석했는가? 불러와서 모신 여신(들)은 누구인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제의에 올린 음식은? 술은? 무슨 노래와 춤으로 여신들을 즐겁게 했는가? 누가 접신이라도 되었는가? 그 뒤 어떻게 되었는가? 페미니스트들이 끼어들었다면 페미니스트들에 의한 여신영성, 혹은 여성영성운동이 일어나고 있는가?
왜?
. . . 그리고 지금?
미국이나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여성학이 너무 지쳐 있어서 탈출구가 필요해서인가? 모두 페미니스트 운동하다 지쳐 이젠 어머니 곁에 가서 쉬며 밥을 얻어먹고 싶은 심정인가? 이제 페미니즘은 더 이상 가부장적인 학문체제에 종속되기를 거부하는가? 페미니즘이 나오게 된 깊은 동굴로 들어가고 있는가? 페미니즘이 여신과 만나 그 세계는 더 깊어지고, 확장되고, 비옥해 지고, 심지어 섹시하게 되는가? 여러 가지 추측이 있겠지만 나로서는 기쁘다. 왜냐 하면, 여성학과 여신은 꼭 만나야 하는 모녀, 울고 있는 모녀기타이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의 석사 과정에서 여성학 공부를 할 때는 칼처럼 날카로워진 내 비평적인 눈으로 가부장제, 식민지주의, 인종차별주의, 여성차별주의, 계급주의가 빚어내는 온갖 비리, 폭력들, 그것들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나 거대한 이 괴물들을 ‘죽여버릴 것 같은 분노’ (killing rage)1)에 시달렸다. 홧병에 걸려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서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당시 미국은 극우파가 판을 치면서 신제국주의와 군국주의 깃발을 거침없이 내걸고, 어느 신인지 모르지만, ‘God bless you’ 라는 부시 대통령의 말과 함께 고대 바빌로니아 문명권인 이라크를 사정없이 침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거기에 필요한 돈을 다 긁어 가는 판이라 부국에 사는 빈민인 나의 삶은 더 핍박해졌다. 집세가 내 한 달 수입보다 많아져 버렸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는 백만 이상이 모여 반전 데모를 했는데 나도 그 가운데 끼어있었다. 그래도 전쟁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미치지 않게 지켜준 것은 여성영성학 공부였다. 아, 여신이란 말만 들어도, 페미니즘이란 말을 맨 처음 들었을 때처럼 입속은 달콤새콤하고 속은 몇 천년의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시원하고 몸에서는 힘이 났다. 스타호크(Starhawk)가 말한 대로,
"보세요. 늘 이렇지 않았고. 늘 이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면--우리는 어떤 문화 속에서 살고 싶은가? 그런 문화를 같이 만들어 냅시다.“ ("Hey, it was not always like this. It doesn't always have to be like this! So--what culture do we want to live in? Let's create it!" 2)
그래, 다른 문화, 생활방식, 철학, 종교를 알고 믿고 살아보자. 여성영성학은 내게 이런 위안을 주었고, 결국 나의 ‘거믄 어머니’ 곁으로 데려다 주었다. (‘거믄 어머니’ 이야기는 나중에). 고달프고 미칠 것 같을 때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어딘가 있는 이 어머니가 나를 달래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어머니를 만나고 싶었고, 얼굴을 보고 싶었고, 만지고 싶었고,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고 싶었고, 재롱을 떨어 보고 싶었다.
몇 천년 만에 만나는 어머니는, 여신은 여성영성학에서 쓰는 책 속에 있었고, 고대의, 구석기 신석기 시대의 유적에 있었고, 기성 종교의 숨은 역사, 상징, 기호, 이미지 뒤에 있었다. 그 속에서 나타나는 여신들의 이름은 너무 많아 머리가 팽팽 돌 지경이었다. 여신들은 서구의 신화 속에, 그리고 한국 만신들의 신화 속에 있었고, 제의에, 민중들의 투쟁 속에, 달 속에, 별 속에, 바람 속에, 파도 속에, 천둥 번개에, 빗줄기 속에, 새소리, 아기 울음소리 속에, 여자의 몸 깊숙한 곳에, 남자들이 숨기고 있는 부드러움 속에, 금줄이 쳐진 곳에, 화형대, 정화수 속에, 벌꿀 속에, 봄날의 바람 속에, 휘날리는 연분홍 치마 속에, 페미니스트들의 아우성 속에, 무정부주의자들의 검은 깃발 속에. .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안고서 별똥별과 블랙홀이 가득 찬 우주 속을, 거대한 운석에 부딪치지 않고, 용케도 우주 속을 항해하며 우리를 데리고 가는 거대한 여신 어머니 대지--지구. . . 공부하다 책속에 적혀 있는 여신들의 이름을 크게 읽으면 까닭 없이 눈물이 흘렀다.
Isis,
Hathor,
Ma'at,
Artemis,
Demeter,
Persephone,
Hera,
Corn Mother
Juno,
Hecate,
Lilith,
Oshun,
Sekhmet,
Cybele,
Inanna,
Astarte,
Diana,
santa Lucia,
Asherah,
Sophia
Thought Woman,
Anatha,
Andromeda,
Anka,
Anu,
Beatrice,
Cassandra,
Danu,
Eriskegal,
Esther,
Gaia,
Helena,
Ishtar,
Kali,
Medusa,
Melissa,
Minerva,
Moombi,
Nammu,
Nefertiti,
Nut,
Oba,
Oya,
Parvati,
Pele,
Rhea,
Sappho,
Sati,
Siris,
Suria,
Tanit,
Green Tara,
White Tara,
Amaterasu
Tiamet,
Coatlicue
Watamaraka,
Yemaya,
Ymonja,
Freya
Valkyries
Saga
Dakini,
Durga,
Laxmi,
Saraswati
Our Lady of Guadalupe
서왕모. . .
그리고 (내가 급하면 부르는)
관세음 보살님
나중에 알게 된
마고할미,
설문대 할망,
삼신할미
영등할미,
대신할미,
당금애기
자청비
우리 할무이
(할미라는 말이 여신이란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Dark Mother
거믄 어머니. . .
사랑과 질투의 비극의 승리의 평화의 전쟁의 도자기의 옹기의 곡식의 베틀의 와인의 강물의 바다의 산의 별의 우주의 순간의 영원의 고대의 현대의 동굴의 동물의 화산의 죽음의 삶의 청춘의 늙음의 노래의 춤의 시의 배암의 지혜의 능금의 흙의
아프리카의 아시아의 아메리카의 하와이의 남태평양의 북구의 남극의
마고지나의
모든 신들의 어머니여,
할머니여
여신들이여
이 모든 할머니, 어머니, 여신들을 만나고 싶다. 그런데--이제 곧 만날 수 있다는 신나는 예감이 들고 있다. 이 예감과 기대 속에 수많은 물음이 있다. 순진하고 어리석기도 한 수많은 물음으로 부터 시작하자:
여신은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 관념인가? 정령인가? 이상인가? 종교인가? 극도로 이상화 된 여자의 모습인가? 남신의 적인가? 아내인가? 동반자인가? 싱글인가? 여신의 시대는 모계사회인가? 더 평화롭고 풍요롭고 창조적인가? 여자들에게 정말 좋은가? 남자들을 종속하게 만드는가? 전쟁과 착취를 없앨 수 있을까? 그리고 영성은 무엇인가? 여성영성이 있다면 남성영성도 있는가? 여성만이 여성영성을 가지고 있는가? 남자들도 가질 수 있는가? 여신은 양성인가, 동성인가, 다중성인가? 그냥 혼 (spirit)인가? 현실인가? 비순수파 페미니스트들의 과대망상인가?
세계의 여신들은 누구이며 또 한국 고대와 현대의 여신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우리는 한국 고대, 전통의 여신들만 찾아야 할까? 꼭 한국 여신만이 한국의 여성을 구원 할 수 있는가?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인가? 꼭 구원의 대상으로서의 여신이어야만 하는가? 서구 여신들 속에서 자신을 보는 연습을 하고 있는 현대 한국여성들에게 한국 고유의 여신, 여신 전통 (주로 굿에서 많이 나타나는)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신 혹은 무당이 한국 여신의 전통을 지켜왔다면, 무, 무속, 무교 속에 페미니즘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 페미니즘 속에 무, 무속, 무교가 들어갈 자리가 있는가? (나의 박사논문이 정신대에 희생당한 우리 어머니들을 위한 해원굿이어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페미니스트도 무당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무, 무속, 무교가 아니면 어디에서 한국여성의 영성을 찾아내야 하는가? 다른 종교에서도 한국여성의 영성 또는 여신을 찾아 낼 수 있는가? 여신 혹은 여성영성주의자는 모두 다 페미니스트인가? 페미니즘과 영성주의는 기름과 물인가? 혹은 찰떡궁합일까? 여신을 믿고, 숭배하고, 생활 속에 들여온다고 해서 정말 평화와 정의가 이루어지는가, 무엇보다 여성들을 위해? ‘인도를 봐라! 여신 축제는 많은데 왜 여성 차별은 심한가?’라는 비평도 있지 않나? 알 수 없는 고대의 여신문명에 대한 지나친 그리움, 그 그리움이 지나쳐 망상이 된 것인가?
한국여성이 외국의 여신에게서도 ‘영빨’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나온 한 여성의 자손임이 인류 유전학적으로 밝혀졌으로?3) 그렇다면 또 외국인이 한국여신의 영빨을 받을 수도 있는가? 한국여성이 한국여신의 영험을 경험하는 것이 더 쉬울까? 아니면 상관이 없을까?
미국에 있는 일부 페미니스트들과 신학자, 고고학자, 신화학자, 철학자, 사회활동가, 소설가, 사회비평가, 화가, 음악가, 무용가, 그리고 일반인들이 고대 유럽전통에서 찾아내기 시작한 여신문명과 그 문명권에서 중심이었던 여신의 재발견은 역사적 근거가 희박한 억지주장인가? 아니면 가부장제 종교들이 퍼지면서 폭력적이 된 인류사를 되돌려 영성이 여성적이었던 시절, 폭력적이지 않고 평화롭고, 평등하고, 창조적으로 살았다는 고대인들의 믿음체계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으려는 마지막 히든 카드인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기성 종교, 기성 문화에 지쳐 버린 많은 사람들이 고대 여신문명에서 해답을 찾으며 일기 시작한 여신영성운동을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수용하고 혹은 비평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한국의 페미니즘과 영성운동, 이 두 강이 만나 범람하며, 강물이 바다가 되어 춤출 때 무엇이라 이름 지어야할까?
우리가 공부한 것과, 살아온 것과, 원하는 것과, 투쟁해 온 것과, 아픈 몸과 마음에, 그리고 상상하는 것에 여신영성 혹은 여성영성이 들어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한 번 같이 공부하며, 묻고, 답하고, 고민해 보자. 모든 것을 끝까지, 뿌리까지 들추어 보는 무정부주의자들 처럼(무권위주의라 번역하는 것이 정확한 것인데) 끝까지 물어 보자. 그러는 사이사이에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또 먹고 흐드러지게 웃자. 헐!
무성영화 시절 낡은 필름이 자꾸 끊어지니 관객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 때 변사가 말한다. "그래, 갈 테면 가라. 재미는 이제 부터다!"
페미니스트로 끝까지 남아 있는 여자들에게 (축복 있으라!) 정말 재미는 이제부터다. (나는 물론 그 중 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가 그토록 바라며 투쟁해 왔던, ‘여성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의 변화를 위하여, 우리 자신, 생활, 문화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 힘--만물의 어머니 여신--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아래 덧붙인 유튜브(Youtube) 동영상에서 여신화된 우리 여자들의 황홀하도록 멋진 모습 (한국 여신 모습이 안 보여 좀 서운하지만)을 보라. 배경음악은 한국에서도 점점 알려지기 시작하는 민중가수이자 여신영성 가수인 제니퍼 베레잔 (Jennifer Berezan)의 노래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베일이 가장 엷어지는 섣달 그믐 밤에
크나 큰 액--여성차별 같은--을 물리치는 호랑이.
그리고 그 호랑이를 타고오시는 멋진 여신을 기다리며----
1) Killing Rage: Ending Racism (1995). 저명한 흑인여성작가 벨 훅스(bell hooks)의 책제목. 흑인으로, 특히 흑인여성으로 살아가며, 종족, 계급, 성차별주의에 느끼는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이름을 소문자로 쓰기를 고집한다. 대문자로 쓰서 튀어 나오게 하고 싶지 않고, 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라고 한다.
2) Starhawk, the Spirial Dance, p.4.
3) 현생 일류, 즉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설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왔다는 단일 기원설과 동시 다발 기원설이 있다. 아프리카 기원설은 최근 유전학 연구 결과에 설득력을 얻고 있고, 동시 다발 기원설은 고고학 자료에서 보여진다고 한다. 우리 DNA 속의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에너지 공장과 같은 것인데 어머니로부터 딸에게로만 물려 줄 수 있고, 조상을 추적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라고 한다.
첫댓글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나의 본을 찾는, 우리의 본을 찾는 이 여행에서 가장 깊게 떠오른 이가 보리 이인희다. 그녀와 통화를 나누는데, 그녀가 3절까지 외우고 부르는 노래가 이 노래, 봄날은 간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글에 정말 증명하듯 '연분홍 치마'가 나온다. 그녀와 연결됨을 느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할미, 할미여신 보리님, 그녀와 영상통화라도 하며, 창조성여행자들에게 그녀를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리라....
나의 유년의 꿈속에 꿈속 프레임 가득 천천히 움직이던 그 누런빛 혀, 나는 그것이 살갖치며 혀일 수 있다고 짐작했다. (천녀유혼의 나무뿌리가 혀로 변형되어 괴물이 되어 움직이는 영상을 본 뒤엔 더 그렇게 굳어졌다 ) 그 꿈은 나의 유년의 동반자였다. 다른 기억, 현실에서의 기억은 없고, 그 꿈만이 남아 있다. 이 글을 읽는데, 그것은 혀가 아니라 구렁이었구나! 나는 구렁이의 얼굴을 본 일이 없다. 내 꿈에서 다시 놀러오렴! 나를 지켜준 거대한 구렁이의 몸아 내가 나의 몸을 만날 수 있도록, 내 꿈에 다시 오렴...!
첫댓글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나의 본을 찾는, 우리의 본을 찾는 이 여행에서 가장 깊게 떠오른 이가 보리 이인희다.
그녀와 통화를 나누는데, 그녀가 3절까지 외우고 부르는 노래가 이 노래, 봄날은 간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녀의 글에 정말 증명하듯 '연분홍 치마'가 나온다.
그녀와 연결됨을 느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할미, 할미여신 보리님, 그녀와 영상통화라도 하며, 창조성여행자들에게 그녀를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리라....
나의 유년의 꿈속에 꿈속 프레임 가득 천천히 움직이던 그 누런빛 혀, 나는 그것이 살갖치며 혀일 수 있다고 짐작했다. (천녀유혼의 나무뿌리가 혀로 변형되어 괴물이 되어 움직이는 영상을 본 뒤엔 더 그렇게 굳어졌다 ) 그 꿈은 나의 유년의 동반자였다. 다른 기억, 현실에서의 기억은 없고, 그 꿈만이 남아 있다. 이 글을 읽는데, 그것은 혀가 아니라 구렁이었구나!
나는 구렁이의 얼굴을 본 일이 없다. 내 꿈에서 다시 놀러오렴! 나를 지켜준 거대한 구렁이의 몸아
내가 나의 몸을 만날 수 있도록, 내 꿈에 다시 오렴...!
인희선생님을 여행첫날/하지의례/동지의례 때 영상통화로 모시고 이 음악을 침묵으로 들어며 그녀와 함께 기도한다.
이번 여행의 기록을 영상으로 제작, 훗날 선데스의 꿈과 이어 소중히 모신다.
나는 나 자신의 일부이다
여전히 모험할 나라는 땅
그 일부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일부이다
여전히 모험할 땅 당신이라는 땅
나의 땅과 당신의 땅이 만나
지구의 일부가 된다
일부이며 전체인
그러하니 친구여
자신과 상대를 더 공손히
더 경건히
더 가볍게
더 밝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