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일러스트=강인춘 |
이창호 목사는 1931년부터 평양 남문밖교회에서 시무하였는데, 이 무렵 시각장애인을 위한 선교를 결심하고 거의 혼자의 힘으로 시각장애인 교육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였다. 마펫의 도움을 얻어 우선 마포삼열 기념관에서 15명의 시각장애아(兒)를 수용, 4명의 교사를 채용하여 가르치게 하였다. 운영비는 평양도제직회에서 보조하였으며 그 외에 독지가들의 헌금에 의존하였다.
그는 1936년 남문밖교회를 사임하고 맹아학교에만 전념하여 맹아(盲兒)합창단을 조직해 전국 교회를 순회하며 모금운동을 전개하였고, 1937년에 이르러 맹인부와 농아부를 구별해 각각 다른 교사들에게서 교육을 실시하게 하였다.
당시 교사는 맹인부 5명, 농아부 1명 등 6명으로 구성되었으며, 학생은 맹인부 16명, 농아부 20명 등 모두 36명이었다. 1938년 보통강 언덕에 아담한 교사(校舍)를 마련하였고, 다시 수년 후에는 2000평 대지에 2층 양옥(1000평)을 마련하였다.
한국전쟁 중 월남한 이창호 목사는 제주도에서 특수학교를 운영하다가 1952년 별세하였다. (기독백과)
기독신문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