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찮게 흥미로운 지도를 하나 발견 했다.텍사스 대학교의 온라인 도서관인데 제목이[Taiyuan] T'ai-yuan Fu
1912 From Madrolle's Guide Books: Northern China, The Valley of the Blue River, Korea. Hachette &Company, 1912. 라는
출처를 밝혀 놓았다.
제목대로 이지도는 19세기말~20세기초의 북중국 지도의 한 부분인데 이곳은 지금의 산서성 [태원부太源府]의 지도이다. 태원을 황하의
한 지류인 汾河(FenHo)가 지나고 동남에 燕山(YenShan) 남으로는 태원 舊都(TaiYuan H)가 있고 서남의 해발 4250M 의 [KaoLi Shan-카오리 산],
즉 고려산(高麗山)이 있다.문제의 흥미거리는 바로 이것이었다.필자는 前考 [기자후손인 주 영왕 태자 晉]과 태원, 낭사(낙랑)왕씨의
개연성에 대해서 언급한바 있거니와, 나아가서 기자(마한의 청주 한씨)와 고구려, 백제의 관계를 재조명하고저 태원에 관한 실제 사료와
근거를 찾아내려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런 지도에서 우연찮게 그 흔적을 찾게 될줄 이야..물론 이전, 이후의 이 지역의 지도를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더
이상 [Kaoli Shan]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 제현들께서 다른 곳의 이 [카오리산]을 보았다면 찾아가서 꼭 보고싶다.이 [카오리산]이 이후
어떤 명칭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영문 지도인걸로 봐서 아마도 지명 명칭은 현지인의 언음을 기준으로 표기 한 것임이
자명하다. 즉 中音의 한치 오차없는 [고려산]인것이다.
아래는 윗 사실을 근거로 지명을 지도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
▲ 1917년 제작 중국여도에 기록된 高離山은 高麗山과 발음이 같다.
고리산의 위치를 보면 <관제산> 인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제왕을 막는다>의 뜻으로 보아 고구려 후대에 중국인들이 지명을 바꾼것 이다 (1937년도).
이제는 고려산에 얽힌 내용들인데, 필자도 생소해서 중어 일어 야후사이트에서 무작정 키워드를 넣고검색 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객관성을 두고 본다면 1차적인 것이 금사 지리지 이다.
신교본금사 /지/권25/지 제육 /지리/(산동동로)중에 보면;
/新校本金史/志/卷二十五 志第六/地理中/山東東路 萊州,上,
定海軍節度。宋軍萊郡。戶八萬六千六百一十五。縣五、鎮一:掖倚。有三山、夜居山、掖水。
萊陽有高麗山、七子山。鎮一衡村。舊有海倉、西由、移風三鎮。即墨有牢山、不其山、天室山、沽水、曲裡鹽場。膠水招遠
래주萊州의 래양에 고려산이 있다고 했는데 萊陽有高麗山 멀리 요수가 보인다 膠水 招遠고 했지만 이곳은 산서가 아니라 황해와 연한 산동이다. 게다가 달랑 <고려산이 산동의 래주 래양에 또 하나있다...> 정도만 알수 있었다.또 하나는 우리나라 강화도의 고려산이다.그런데, 강화도 고려산에 얽힌 전설중에 내 이목을 끈 두 구절이 있다.하나는 고려산이 고구려의 영웅 연개소문의 출생지라는것,다른 하나는 마니산,혈구산,진강산, 고려산, 능주산의 다섯 형제가 중국에서 떠내려 왔는데, 마니산이 맏이 이므로 가장 높고,...라는 이야기.-문화재관리국 문화재유적총람에는 연개소문이 고려산에서 탄생하였다고 전한다. 그 산위에는 군마를 달려 훈련을 하던 '치마대'가 있는가하면 말에 물을 마시게 하였다는 5정(井)이 있으며, 살던 집터가 중봉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곳 혈구산 남쪽 언덕 '시리미'라는 곳은 옛날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군사를 훈련시키던 곳이라고도 전한다.ㅡ고려산에 관한 것을 찾다 보니 왼통 [연개소문]의 이야기 이다.하지만 상세한 내용이 없을 뿐 아니라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도 없다.그러나 한결 같이 고려산은 '연개소문'의 탄생으로 유명한 곳 이었다.필자가 조심스레 주목하는 부분이다.연개소문의 탄생설화가 깃든 고려산...당나라 때 소설인 <규염객 전>은 당나라 사람 장열 또는 두광정이 저자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장열은 7세기 후반 사람이며 두광정은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반에 살았던 사람이다. 소설의 내용을 요약한다.[규염객은 부여국 사람이다. 수양제 시절 중국 태원에 와서 이정과 교분을 맺고 이정의 아내인 홍불지와 의남매가 되었다. 규염객은 중원의 제왕이 되고자 도모하였으나 당국공인 이연의 아들 세민을 보고 그 영명한 기운에 눌려 이정에게 중원의 제왕이 되기를 포기하였음을 알리고 부여국으로 돌아와 난을 일으켜 부여국왕이 되었다.
이 소설에는 실존인물인 이세민, 이정, 유문정, 양소 등이 등장하는데 단재 선생은이 규염객을 연개소문이라고 보았다. 규염객전에서는 규염객-연개소문이 처음 등장했던 곳이 다름아닌 바로 <고려산> 아래의 [태원] 이었던 것이다.물론 이 고려산이 강화도까지 떠내려 올리가 없다.연개소문의 탄생설화가 깃든 태원의 고려산을 강화도로 옮긴것이다.
어떻게 옮겨 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