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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 멈춰버린 한국교회 진단
본고는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가 주최한 제1회 한국교회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강의된 내용 중 일부분임을 알려드린다.한국교회 성장 이후 방향에 대한 위기
(1) 준비가 부족했던 신학
1960년대부터 성장 일변도로 나간 한국교회는 끝없이 부흥할 것이라고만 판단했는지 양적 성장이 멈출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한 듯하다. 뿐만 아니라 양적 성장에 고무된 나머지 상대적으로 질적 성장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다. 이것은 장차 한국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데 기초가 부족했다는 의미가 된다.
각 신학교에서는 한국교회의 급성장에 대처하는 목회자 수급에만 급급했는데, 신학적 소양과 인격적 자질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목회자들을 대량 배출하는 일에만 급급하였다. 이런 임시방편적인 수급에 바빠 신학교에서는 7년의 수업 대신 2-3년의 단기수업으로 목회자 후보생을 양성하였으며, 졸업 이후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현장에 투입되었다.
이런 일들은 목회자들의 신학적 소양과 인성적 자질의 부족을 피할 수가 없었던 일로 지적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초신자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확신시키기에 부족했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마치 313년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기독교가 숫자적 부흥의 결과, 믿음 없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하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과잉 생산된 목회자들의 난립은 스스로 질을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생존경쟁과 같은 곳에서 살아남으려는 습성은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되었다. 목회의 방법이 성경적이라기보다 경영학적이 되었고, 경영학적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적 방법을 터득하게 한 것이다. 신학교의 난립과 졸업생의 대량 배출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각 교단의 대형 교단화를 향한 열망이 신학생을 대량 모집하게 하는 인간적인 경쟁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은 신학적 뿌리가 약하여 신학 부재의 상태에서 목회현장으로 나가게 되니 성경이 말하는 것보다 문제 해결의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란 적어도 마태복음 16장의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고, 주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것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또 초대 예루살렘교회나 안디옥교회에 대한 기록에는 외형적인 크기나 구조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주님을 수장으로 하는 신앙고백을 한 성도들의 유기적 공동체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성도의 숫자나 재정의 규모나 건물의 크고 작음으로 판단하여 성경과는 동떨어진 조직적 상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토마스 홉스는 '교회는 건물이나 장소로서 집이라기보다 삶을 유기적으로 공유하는 가족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유기적 인격체이다. 즉 한 명의 주권자 그리스도에 의해 통일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리스도의 명령이 있으면 모이고, 그리스도의 허가가 없으면 모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권자로 하여 그리스도께서 명령, 판결, 사면, 단죄 등의 행위를 하고 기독교인들은 그 주권에 순복하는 정치적 조직체(common wealth)와 동일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은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3직에 대한 안수시 위임받은 이후 각 교회에서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을 장악한다. 담임목사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주권을 휘두르는 계승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한다. 이것은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입법, 사법, 행정과 재정을 장악한 것과 같다. 목회자들은 하나님 행세 그만하고 빨리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교회의 머리 곧 교회의 주권자는 목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경적 뿌리가 약한 신학수업은 교회의 성장을 성경적 성장이 아니라 경영적이며, 사업적인 방법으로 모색하게 했다. 따라서 교회의 성장은 외적성장, 양적성장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경쟁하며, 목적이 분명치 않은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게 하였다. 이에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상식에도 못 미치는 도덕, 윤리의식을 교회 안에 남기게 되었다.
이렇듯 한국교회의 성장 후유증과 바람직하지 못한 신앙생활은 개교회주의를 낳았으며, 교파 분열을 촉진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에 376개가 넘는 교파로 분열하게 되었고, 300여 개 이상의 신학교가 설립되었지만 이 중 87%는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한 신학교들이다. 이것은 형식만 갖추면 성직자 면허를 허락하여 샐러리맨 성직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런 부적격 목회자의 대량 배출은 교회의 성장을 후퇴시켰고, 신앙의 질을 추락시켰으며, 교회를 떠난 일명 '가나안'(뒤집어 읽으면 '안나가'가 됨) 교인들을 증가시켰다. 또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멸시하고 반기독교 색채를 나타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세월이 지나 목회자들의 신학 부재는 목회에 대한 목적 부재에서 나타났고, 목회의 목표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교회의 목표 혹은 표어에서 교회의 크기와 관련된 방면으로 성행하여 숫자적 성장에만 몰두했다는 증거가 되었다. 이렇게 목회자의 삶에서 도덕적 부패, 교회의 재정적 비행, 목회자들의 불법적 세습과 비상식적 교회 운영,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는 목회자들의 빈부격차 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신학생들의 대량 배출과 신학의 부재 그리고 인격 수양의 부족은 목회현장에서 역기능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는데, 개교회주의로 교회 간의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교회 간의 경쟁은 이웃 교회와 성도 유치 전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또한 목회자 간의 빈부의 격차는 심각한 한국교회의 문제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부(富)한 목회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자로만 생각하였고, 반면 가난한 목회자들에 대해서는 사랑의 대상자요, 섬겨야 할 동역자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성경을 들고 진리를 가르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듣지도 못했던 것일까? 불신자들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반목질시가 이웃 교회들 사이에 있게 된 것이다.
(2) 목표를 잃은 목회
목회는 이 땅 위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의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갑작스런 양적 성장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성도들의 구원의 생활보다는 교회의 경영 및 교인 관리에 집중하게 했다. 목회의 관심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 나라에 두고 있으며, 천국이 아니라 지상에 관심이 많고,신앙보다 물질을 앞세우는 듯하다.
기독교 교계 신문에 담임목사 청빙 조건에 신학대학 졸업자보다 일반대학 졸업자를 선호하며, 석사 혹은 박사 학위소지자, 외국에서 공부한 자를 우선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것은 목회의 본질을 추구하기보다는 양적으로 부흥한 교회의 상황에 잘 대처하는 자를 찾은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목회자는 본질적인 사역보다는 현 상황에 대처하는 일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목회의 목적을 수정하게 하는데, 목적지가 분명치 않은 항해는 표류할 수밖에 없듯이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역하기보다 주인의 자리에서 사역을 하는 듯하다. 종은 주인의 결정을 기다리고 그 결정에 순종하는 자이다. 목사는 대행자(minister)로서 주님의 일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자이다. 따라서 목사는 교회의 대행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의 대행자이다. 교회의 결정권은 머리 되신 주님이 가지고 계시는데, 지금은 주님보다 담임목사나 당회가 주님이 가지고 계신 교회의 주권적인 일을 행하고 있는 듯하다.
성도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하며,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인데, 오히려 행정적인 일이나 재정적인 일에 더 심취하게 하였다. 이런 일은 행 6:1-6에 나오는 말씀과 어긋난다.
목회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며, 교회의 이 땅 위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따라서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팔방미인 목회자, 전지전능한 목회자를 요구하였고, 목회자들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보다 눈에 보이는 조직적 교회 운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언제까지 흔들릴 것인가? 이것이 한국교회의 위기라고 생각된다.
(3) 한국교회 목회적 위기
한국교회 양적 성장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는데, 또 하나의 문제점은 신학교에서 준비가 부족한 목회자들을 많이 배출한 것이 그중의 하나이다. 198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기독교의 증가와 개척교회의 폭발적인 증가는 목회자 수급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신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고 동시에 입학생 수도 증가되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전국 교회 목회자 수급은 교회 숫자를 넘어섰으며, 1990년을 교차점으로 하여 기독교인 숫자와 교회 숫자의 증가는 점점 둔화되어 갔으나 신학교 입학생과 졸업생의 숫자는 2010년까지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서 멈추지 않았다.
각 교단 신학교에서는 교단 성도들의 질적인 성장보다 양적 규모를 생각하여 신학교 입학생들을 확대 모집하였으며, 376여개 교단에서는 무인가 신학교를 막무가내로 설립하였다. 여기에서 양산되는 신학생들의 증가 비율은 성도와 교회의 증가의 비율을 또한 능가하였다.
1980년대 성도와 교회의 숫자가 증가할 때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성장이 멈춘 지금 시기에는 수요가 공급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1995년 중반 이후로 신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사역지가 없는 무임목회자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신학교의 난립과 대량의 입학생 확충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목회의 수요와 공급에 균형을 잃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각 신학교의 정원은 줄어들지 않아서 똑같은 숫자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다. 장로교단의 모 신학교에서는 1년에 500여 명의 목회자가 배출되어 나오는데, 교단 내에서 필요한 목회자의 숫자는 대략 300여 명으로 본다. 그러면 한 교단에서만 1년에 200여 명의 목회자가 남아도는 것이다.
또한 대량 배출한 신학교 졸업생들에게 목회할 사역지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영원히 성장할 줄 생각했던 것 같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교회의 성장은 멈추었는데,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적 증가는 멈추지 않았다. 한국교회의 성장의 둔화가 이렇게 빠르게 닥칠거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한 듯하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에 비해 전국에 교회 숫자가 부족하여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이 갈 곳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것은 졸업생과 사역지의 수급불균형을 자아낸 것이다.
이렇게 신학교 입학생의 조절은 성실한 신학교육과 한국교회의 지속적이고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 긴급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신학교 입학생 감축은 입학금 수입으로 인한 학교 운영과 교단의 성장 정체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쉽게 해결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회자들의 사역지 부족은 서울과 지방 간에 다소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목회 초년생들이 수도권이나 대도시의 대형교회에만 기웃거린다. 그것은 개인적인 스펙과 생활의 편리함과 자녀교육 등의 이유에서이다. 반면에 지방은 생활의 불편함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자녀교육 등을 내세워 지방교회에서의 사역을 기피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신학교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감 함양과 인격 교육이 부족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대량으로 모집된 입학생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학생들이 아니며 인격적으로 성숙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왜 신학을 해야 하는지 목적의식도 갖추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수업에 참가한다. 이런 식으로 신학교 과정을 마치는 것은 직업인을 양성하고, 목사라고 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도구밖에 되지 않는다.
목회자가 되는 것이 사명에 충실한 인격을 갖춘 사역자들이 아니라 형식만 갖춘 직업인을 양성하는 셈이 된 것이다. 철저한 신학에 정립되어야 철저한 목회자로 사역해 나갈 것인데, 신학 부재의 사역자가 목회현장에서 어떤 일을 일으키리라는 것과 후일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자립교회 진단 및 지원과 자립 방안
[1] 미자립교회 현황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경제적 발전을 거듭함에 따라 한국교회도 버금가게 발전하였다. 한국사회의 이런 현상은 이농현상을 부추겼고, 도시화를 발생시켰다. 그로 인해 도시와 농촌교회 간의 빈부 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빈인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났다. 똑같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었지만 어디에서 사역을 하는가에 따라 생활비 차이가 심하여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정도로 빈부의 차이가 나타났다.
(1) 미자립교회 경제적 상황
한국의 전체 교회 숫자는 정확한 통계를 알지 못하지만 약 35,000여 개쯤 되며, 이 가운데 70~80%가 미자립교회라고 한다. 미자립교회란 본 교회에서 헌금 또는 기타 연보로 충당되는 재정으로 본 교회의 모든 지출비용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교회를 말한다. 이런 교회는 주로 성도 수가 적은 교회들이며, 농어촌에 위치하여 있거나 도시 빈민가 주변의 개척교회들이다.
최근에는 교단적으로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연구위원회를 결성하고, 지원 방안을 내어 놓았다. 주요 교단 미자립교회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총회장 김종준 목사)은 지난 2018년 교단 소속 8,637개 교회를 설문조사한 결과 3,690개 교회가 연간 예산 3,000만원 이하의 미자립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단의 공식적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자립교회도 있는 만큼 실제 비율은 이보다 높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단 관계자는 '교단 교회 10개 중 6개는 미자립교회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총회장 김태영 목사)은 2018년 교단 소속 교회의 평균 자립률을 65%로 보고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의 경우는 2,236개 교회 중 1,460개 교회가 자립(65%)이었고, 그 절반 정도인 776개 교회는 미자립 상태(35%)였다. 충청권의 경우 931개 교회 중 579개가 자립(62%), 352개가 미자립(38%)이었고, 전라도는 2,254개 교회 중 1,377개가 자립(61%), 877개가 미자립 상태(39%)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수치도 과장된 측면이 있고, 실제 합동측의 경우처럼 미자립교회의 비율이 공식적 통계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직무대행 윤보환 목사)의 경우 2019년 보고에 의하면 미자립교회의 비율은 48%에 달하며 자립교회들 중에서도 많은 교회들이 1년 예산 3,000만원의 자립교회 기준을 간신히 넘긴 상태였다.
지금은 농촌인구의 급감과 고령화로 인하여 미자립교회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러한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의 생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1년 예산 3,000만원 이하의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월 평균소득은 80만원 이하이다. 이 정도의 생활비로는 목회자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고, 자녀들 교육을 염려한다면 턱없이 부족하다. 정말로 목회자로 헌신하였으나 생계비가 부족한 생활고에 허덕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교회의 목회자는 다른 수입원(two jop)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침례교단에서는 목회자의 이중직을 허용하였다. 또 감리교에서는 1년 예산이 3,000만원 이하 되는 교회는 목회자에 한해서 이중 직업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존 교단에서는 목회자 이중직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성실히 목회에만 전념하기를 기대한다. 따라서 그런 가정은 생활비에 대한 고충이 더욱 크다. 이것이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가장 기본을 흔드는 위기이다.
한국교회에 미자립교회가 증가됨에 따라 그에 소속된 목회자 가정의 열악한 환경이 심각한 교계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교회갱신협의회의 2017년 보고에 따르면 60%에 가까운 목회자들이 100만원 이하의 사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실제는 80만원 이하로 생활하는 목회자들이 태반이다. 2019년 4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약 460만원 것을 감안하면 미자립교회 목회자 가정의 생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열악한 목회환경 속에서 각 교단이 목회자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기에 목회자 스스로가 경제활동을 통해 자신의 가정을 돌보는 이중직 목회자의 수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때 이중직이란 자립교회에서 다른 second jop으로서 이중직이 아니라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로서 목회자 생계 유지를 위해서 두 번째 직업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한 미자립교회 목회자는 '밤에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대리운전 하는 목회자를 찾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또한 아파트 청소를 담당하는 목회자도 있으며, 막노동을 하면서 목회사역을 이어가는 미자립교회 목회자도 있다(우측 사진은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최근에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를 하거나 학원의 강사로 활동하는 목회자도 있으며, 구제의류 가게를 운영하는 목회자도 있고, 분식점을 운영하는 목회자도 있다. 시골에서는 목사 사모가 노인돌보미, 방문요양사를 감당하면서 목회자 생계를 유지하고 남편의 목회를 돕기도 한다. 농사를 지으며 목회를 하거나 소를 먹이면서 목회를 감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중직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 목회를 하기 위해서 다른 직업을 가진 tent maker들이다.
하지만 이미 교회 수와 목회자 수급에 실패한 한국교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전문 기술이나 전문 지식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리운전이나 용역 등의 불안정한 직종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적고, 이러한 일마저도 다른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편견으로 인해 이중직을 숨기며 일하고 있는 목회자가 대다수인 현실이다.
최근 한국교회는 이중직을 거부할 수만은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벌써 십수 년 전부터 신학교 졸업생은 한국교회에 과잉 공급되는 현실이다. 한국 전체에 1년에 설립되는 교회는 거의 2,000교회를 넘지 못하지만 신학교 졸업생은 3,000명을 넘는다. 따라서 임지를 찾지 못한 무임목사도 적지 않으며, 이중직으로 목회를 하는 사역자들도 적지 않다.
(2) 미자립교회 지원 현실
최근에는 각 교단에서 교단 소속 미자립교회와 목회자들의 생계를 돕기 위하여 단체들을 설립하고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해 왔다. 합동측은 지난 2015년 100회 총회에서 미자립교회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교회자립개발원'을 신설하였다.
경상북도 지역 J노회는 미자립교회를 샛강으로 규정하고 '샛강을 살립시다.'는 표어를 내걸고 미자립교회 지원 계획을 발표하였다. 가장 먼저 노회 안에 교회자립 지원위원회를 조직하고, 소속노회의 모든 교회를 지원교회 - 자립교회 - 미자립교회로 분류하였다. 위원회에서는 미자립교회에 지원교회를 연결해 주고 관리하는 일만 맡는다. 지원교회와 미자립지원 신청 교회를 3년마다 결정하도록 했다.
또 경북의 K노회는 ① 노회 내 전체 교회에 미자립교회 지원 신청을 안내한다. ② 미자립교회 재정 보고서를 참조하여 지원할 미자립교회를 결정한다. ③ 위원회에서 미자립교회를 실제로 방문한다. ④ 지원을 신청한 교회와 지원을 요청한 미자립교회를 연결한다. ⑤ 자립을 위하여 연합 사업을 안내하고,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을 안내한다. ⑥ 목회자에게 전문 프리랜서 활동을 안내한다.
통합측도 지난 2007년부터 '교회자립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1:1 집중 지원' 방식으로 미자립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감리회도 이제까지 금지되었던 이중직 목회를 허용하고, 목회자 처우 개선을 위해 활발한 토의를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문제에 관해 감리회에서 활발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데 감리회 새 물결은 교단 차원에서 목회자 최저 생계비 보장, 감리회 소속 목회자 전원에 대한 사례비를 교단에서 지급하는 방안 등에 관해 연구 중에 있다고 한다. 또한 교단 차원에서 이중직 목회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적극 지지하여 목회자들의 직업 교육까지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2] 미자립교회 지원 방안
이런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미자립교회 지원은 반드시 해야 할 임무이며, 지원의 범위도 다양하다. 미자립교회 목회자의 생계 지원부터 미자립교회 목회자 자녀 교육비 지원, 미자립교회 자립을 위한 행사 지원, 전도물품 지원 등 다양하다. 그 지원 방법도 다양하지만 자립을 위한 연구는 복잡하다고 멈출 수 없는 실정이다.
(1) 생활비 지원 방안
미자립교회 목회자 생계비 지원은 생계형 지원이다. 이 부분이 미자립교회에서 가장 긴급히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교회 내에 70~80%의 교회가 3,000만원 이하의 예산이며, 목회자 생활비는 월 평균 80만원 정도이다. 이런 상황 속에 자립교회와 지원 가능한 교회들이 미자립교회를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의무이다.
장로교 합동교단은 전국교회의 여망이었던 목회자 최저생계비를 시행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교역자 최저생활비 시행위원회는 미자립교회 자립 지원제도를 결정하고, 형제교회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개교회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자립 지원이 시행되면 교회 공동체 네트워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앞에서 소개했듯이 교단 차원에서, 노회 차원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보고들이 나오고 있다. 여러 교단 여러 노회에서 실시하고 있음이 감사한 일이다. 그 방법도 다양한데, 지원교회와 미자립교회를 직접 연결시켜주는 방법이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미자립교회 교역자 자녀 교육비를 지원하거나 교역자 부부의 병원 치료비를 지원하는 특별한 경우도 있다.
또 지원 은행제로 모든 지원 가능한 교회가 공공의 지원금 창구로 모으고 그것을 미자립교회에 균등히 지원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지원금 평준화 방안으로 그 핵심은 중대형 교회가 자신이 정한 미자립교회를 지원하던 종래의 관행에서 벗어나 소속 노회가 지정해준 교회에 지원금을 보내도록 유도한다.
요컨대 미자립교회의 지원 창구를 각 노회로 단일화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 부부에게는 한 달에 100만원을 지급하고, 자녀 1명당 10만원을 추가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자녀의 학자금을 별도로 지원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지원금을 노리는 허위 미자립교회를 가려내야 하고, 중대형 교회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아직 그리 널리 활용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미자립교회 지원을 위한 대대적인 운동을 벌이며 자금을 축적하고 있는 교단도 있다. 또한 노회별로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라고 본다.
(2) 이중직 활성화 방안
목회자의 자비량 목회 지원이 되는데 목회자가 이중직을 가지되 생활비를 교회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직업 활동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이다. 침례교회와 감리교를 제외한 일부 기성 교단에서는 목회자의 이중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규모가 큰 교회 목사나 박사학위를 가진 목회자가 신학대학교 교수직을 겸임하면서도 두 개 이상의 재정적 수입원을 갖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중직을 금했다.
그러나 미자립교회의 목회자가 생계유지비나 목회경비를 위하여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을 불법이라는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자유를 위해서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미 거의 70%에 가까운 목회자들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런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자들은 이중직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이중직을 공식적으로 활성화하지 않으면 범법자로 떳떳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야간으로, 새벽으로 변명을 하면서 일을 한다. 이런 정도의 교회라면 사모는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서 벌써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목사들의 이중직은 택배, 퀵서비스, 대리운전, 녹즙 및 우유배달, 편의점 파트타임, 택배물류센터 하역작업, 아파트 청소요원 등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한다. 농촌에서는 목사라는 호칭은 숨기면서 농장에 일용직으로도 나간다. 사모들도 학교 보조교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일반 사무원, 식당종업원, 가정부, 파출부, 의류 판매점에서 일을 하고 분식점에서도 일을 한다. 이럴 때는 더욱 사람들의 눈을 피한다.
어떤 목회자는 '지금 현실적으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보면 생계, 아이들 교육비가 교회에서 충당이 안 되면 목회자가 일일이 다른 큰 교회에 가서 손을 벌려야 되는데, 그것도 쉽지 않고, 손을 벌린다고 해서 후원을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회자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된다면 어느 정도는 이중직이 허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고백을 늘어놓는다.
시골의 미자립교회 목회자 사모는 목사님의 사례로서 자녀교육비와 생활비가 부족하여 2~3개월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하여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또 어떤 사모는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 실시하는 숲해설사, 토종식물해설사, 약용식물해설사 등 자격증을 취득하여 약간의 재정 수입으로 생활비에 보탬을 주고 있다. 이런 해설사에는 문학해설사, 관광해설사, 지역환경해설사, 금융해설사 등이 있는데, 주로 3~4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매월 수입은 아르바이트 정도의 수입으로 족하다. 또한 목사는 틈나는 시간을 활용하여 교통안전지도사, 생활지도사, 독서지도사, 역사논술지도사, 산림치유지도사 등 다양한 지도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3~4개월 교육을 받고 자격증 시험을 통하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도 정규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에 문제는 있다.
조성돈 교수는 이런 목회자의 상황을 보면서 가슴 아팠던 것은 가정을 가진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가정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지금은 목회자의 정체성을 물어야 할 때다. 소명 가운데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공급만으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가운데 경제적인 면에서 목사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오늘날 경제적 겸직이 오히려 목회를 유지하는 길이 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 한국교회는 진지하게 목회자의 겸직에 대해 전향적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의 상황은 생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불가피하게 이중직을 하면서 죄책감을 갖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법으로는 금지하는 교단조차도 이중직 목회자들에 대하여 징계나 처벌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하여 이중직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한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며, 목회자의 품위를 손상하지 않고 목회의 의미를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목회 영역의 개발이 오히려 현실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부분 교단들이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이중직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에 그들 가정의 삶의 고충이 커져 가고 있다. 이에 교단 차원에서 미자립교회와 목회자 가정을 위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만들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중직을 활성화 하여 tent maker로 사역에 부담을 줄이고 자긍심을 갖게 한다.
(3) 인적․물적 지원 방안
위와 같이 미자립교회 지원에 경제적 지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골교회이거나 개척교회의 미자립교회가 짧은 기간에 자립교회로 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미자립교회에 자립화 훈련을 시켜서 목회자와 성도들로 하여금 tent maker로 마음에 부담을 줄이고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전도물품을 지원하거나 지역 전체 전도를 위하여 여러 교회에서 합동으로 전도하도록 전도물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역 선교형 지원이다.
개척으로 인하여 미자립교회인 경우의 목회자들은 교회운영에 있어 재정 문제도 시급하지만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활용할 인적 자원을 시급한 문제로 생각한다. 목회자의 숫자도 수도권에는 과잉 공급의 상태이고 시골에는 부족한 상태이다. 서울의 목회자 청빙에는 지원자가 몰려 오지만 시골에는 목회자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 이유와 자녀교육 문제로 시골을 기피하는 현상이다. 미자립교회 교역자 생활비 지원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교단 차원에서는 대책이 없고 교역자 개인의 문제로 두고 있는 실정이다.
작은 개척교회나 미자립교회일수록 교회에 일꾼이 없다. 교회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을 지원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주일학교 교사 지원, 찬송을 가르칠 수 있는 인적 자원 지원, 전도할 수 있는 mission home 전도자와 전도봉사대 등이 있다. 또한 작은 교회에서는 전도물품을 구입하는 것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원교회에서 혹은 전도단체에서 전도지를 제작하여 보내거나 전도물품을 지원하는 방안도 있다.
[3] 미자립교회 자립형 지원 방안
미자립교회의 자립화 방안으로 교단적으로 경제활동과 관련한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자립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미자립교회들이 연합하여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하는 일도 그중에 하나일 것이다.
농어촌 지역교회 연합으로, 목사나 사모 가운데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상담사 등 자격증을 취득한 자들로 하여금 재가복지센터를 설립 운영하게 한다. 사모들의 방문 요양 활동을 통하여 관계 전도를 하여 사역에 지원하게 하고 목회자의 가정 경제에도 도움이 되게 한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식당이나 카페 혹은 도서관을 운영한다. 몇몇 미자립교회 목회자들과 사모들이 독서지도사 자격증 취득, 상담사 자격증 취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학생들을 지도하고 가르치며, 부인들에게 조리 강의를 강의한다. 이런 일은 지역의 발전과 더불어 교회에 전도와 재정에 유익된 일이 될 것이다.
실제로 벌써 이런 지역사회의 복지 일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시골의 미자립교회에서는 성도들에게 협동조합식의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경기도 부천의 서로사랑교회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협동조합식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운영한다.
또한, 전남 광주의 숨-쉼교회 안석 목사는 교회건축을 할 때에 예배당 건물을 짓지 않고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는 북카페를 만들어 지역주민들의 모임을 유치하고 있다. 경남 합천의 초계중앙교회 이진용 목사는 카페와 초콜릿 공방을 운영한다. 카페는 공부방과 도서관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커피 판매수익금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행사도 진행한다.
전북 완주에 있는 석천교회 안재학 목사는 무농약 콩 농사를 짓는 작목반을 통해 콩 수매를 하고 있다. 또한 메주를 만들어 팔고, 고추장과 된장을 만들어 직거래로 도시의 소비자들과 만남을 갖는다. 강화도 일벗교회 서정훈 목사는 일벗 생산 공동체를 결성해 두부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전남 해남에 있는 새롬교회 이호군 목사는 아름다운 나눔장터인 (주)콩세알의 초록가게를 열었다. 중고 가정제품과 헌책은 물론 가구와 신발, 다양한 옷 그리고 스카프까지 취급하여 아울렛 매장과 비슷하다.
도시지역 미자립교회에는 노인주간보호센터 설립으로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게 하고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도시지역의 특성상 인구밀집과 고령화 인구로의 변화 추세에 맞추어 도시지역의 작은 교회들이 연합하여 노인 주야간 보호센터를 설립하여 교회재정 자립을 도모할 수 있다.
또한, 목사나 사모들의 전문직 프리랜서 활동 안내를 도울 수도 있다. 사모들의 피아노 미술 학원, 목사들의 도서지도사, 논술교사, 학습관이나 도서관 운영, 공동으로 식당 운영 혹은 카페 운영도 가능할 것이다.
[4] 목회자의 동역자 의식의 강화
각 교단 신학교에서 과도하게 목회자들을 양산함으로써 얻게 된 부정적인 결과 중에 하나가 목회자들 사이에 존경하고 협력하는 동역자가 아니라 생존경쟁에서 서로 싸워야 할 경쟁자로 보게 한 것이다. 이것이 교회 간에 빈익빈 부익부의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했고, 이러한 격차는 작은 교회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특히, 수도권으로 경제의 집중과 인구가 집중함에 따라 교회도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수도권 교회들이 우선적으로 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정상적인 방법을 넘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의 생존에 매달리게 되었고 심지어 교인 쟁탈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동역자 의식이나, 우리는 다같이 한 하나님의 종들이며 한 아버지의 자녀들이라는 의식이 희미하게 만들고 말았다(사도 바울은 롬 15:20에서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했다). 사실 동역자 의식은 그 누구보다 주의 백성들을 양육하는 사명을 맡은 목회자들 간에 가장 진하게 나타나야 하는데, 나 하나 살기에 바빠 주변의 개척교회나 미자립교회 목회자의 고난에 대해서 책임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란 정말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조선 중기의 320년 동안 경상도 지방을 지배했던 경주 최부자 집의 일화는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최부자집의 6훈 가운데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자가 없게 하라.'는 교훈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교훈은 최부자 집의 정신 이전에 성경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에게 더욱 요청되는 덕목이다. 목회자 세계에서 이런 양보의식, 공동체 의식, 책임의식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동역자 의식은 스포츠 선수들의 경기 중에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승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규모가 큰 국제경기일수록 경기의 농도는 짙어진다. 열기가 과하여 선수들은 경기중에 상대 선수에게 큰 부상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상대 선수의 건강이나 선수생활에 영향을 주는 타격은 거의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상대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배려의 미덕을 보인다. 실수로 상대에 위해를 가했을 때 미안함을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것이 스포츠 선수들의 기본이다. 같은 길을 간다는 의식과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다는 동역자 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상대를 적군으로 생각하고 치열하게 시합하는 스포츠 스타들도 이러한데 목회자들이 서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것은 목회 상황이 그만큼 각박하다는 증거도 되지만 동역자 의식이 부족하다는 증거도 된다.
주의 일을 감당하는 교회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목회자들은 그 일을 감당해 가는 데 있어서 하나 된 동역자 의식이 절실하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회와 시찰회 그리고 노회와 총회 등 교회에 아름다운 조직을 허락하셨다. 달리 말하면 목회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시찰회원들과 나아가 노회와 총회가 동역자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가는 말]
이상으로 한국교회 공동체성의 위기의 원인과 해결을 위한 방안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다시 한 번 요약하면, 심각한 개교회주의로 인하여 무한경쟁에 돌입한 한국교회는 교파 분열과 교회 분열 그리고 목회 현실의 부정적인 면이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목회자들 사이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극심하게 나타나며 그로 인해 목회자들은 큰 아픔을 겪고 있다.
복음의 동역자들이 이웃 동역자들의 고난과 아픔에 동참하고 협력해야 할 책임이 기존 자립교회에 있으며, 특별히 대형교회들은 미자립교회들의 경제적 지원에 책임이 있음을 감지하고 많은 자립교회들과 연합을 통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은 거룩한 하나님 주권에 순종하지만 상대적으로 빈익빈에 허덕이며, 하나님의 공공성에서 희미해지는 상태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미자립에서 자립으로, 고립에서 협동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제안하였다.
낙심하고 하늘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함께 연구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기도하고 아름다운 동참을 기대한다.
박노진 박사(대구온세상교회, 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