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영원으로 이영권 목사
(전1:2-11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서론
-삶의 가치와 목적을 위해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고생하며 살다가 이처럼 가고 마는가. 모든 것이 고생도 기쁨도 내 곁에 다가왔다가 휙휙 지나가고 사라져 버리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지워져 버리고 맙니다. 정말로 전도서 기자의 탄식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것은 세상의 삶속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1. 이생의 삶은 짧고 허무하다.
(욥14:1-2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그림자 같이 신속하여서 머물지 아니하거늘)
욥은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즐기는 지위, 명예 그리고 권세, 부귀, 영화, 젊은 청춘, 업적 중 그 어느 하나도 인간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억만장자였던 하워드 휴즈는 죽을 때 마지막 남긴 말이 “Nothing, Nothing, Nothing”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그렇게 호화찬란하게 살았지만 그가 남긴 말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란 비통한 고백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창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인간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부귀, 영화, 공명을 잔뜩 쌓았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물거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거품이 깨어지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헤밍웨이는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1961년 엽총으로 자살했는데 그가 남겨놓은 유언에 보면 “나는 전지약이 다 떨어지고 코드를 꽂으려 해도 전원이 없는 라디오의 진공관처럼 외로움과 공허함속에 살고 있다. 나는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처럼 공허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40:6-8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2. 영생을 가져오신 예수님
영원을 지상에 가져오신 그분이 예수님이다. 일반철학이나 해탈의 종교는 이와 같은 삶의 절망을 수양과 참선을 통하여 뛰어 넘으려고 애를 씁니다. 인간적인 힘으로 어찌하든지 인간의 허무와 무의미를 극복하고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수양과 참선 이 모든 것을 다 합쳐 봐도 인간의 힘으로 허무와 무의미를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행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지상의 유한한 삶속에 오셔서 그 유한을 극복하시고 영원을 이룩하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유한한 인생이 예수 안에서 극복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는 천천세세 영원 무궁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유한한 인생의 속에 영원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비록 유한해서 70이요, 80을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지만은 그 속에 영생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을 모시고 있으므로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다 유한한 행동으로 이 세상에서 살다가 질그릇이 깨어지면 멸망하고 맙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영생에 접붙여 주셨다.
가을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볼 때 젊은이는 깔깔대고 웃고, 나이든 이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세월은 그 젊은이들도 다 순식간에 다 노년으로 밀쳐 버리고 맙니다. 예수님 밖에 있는 삶이란 종국적으로 헛되고 허무하고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하신 예수님을 모시면 인생종말은 사라지고 오직 영생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 끝없이 펼쳐지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3. 짧은 삶에서 영원한 삶을 확신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이면 유한한 삶이 영생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우리 유한한 삶이 이제는 영원을 품고 살게 되니 기이한 일이 아닙니까?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사는 권세가 있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너희는 공동묘지에서 너희 생애는 끝난다.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서 끝났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영접하러 와서 너희를 나있는 곳에 영원히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흙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는 영원한 집이 우리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하여 유한을 극복하고 영생에 이르는 의식이 바로 세례인 것입니다.
(롬6:4-5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예수와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세례 받을 때 우리 구원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우리는 물 무덤 속에 들어가서 옛날을 장사지내 버립니다. 우리가 물에서 나올 때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영원히 사는 것을 하나님 앞과 사람 앞과 마귀 앞에서 증명하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서 체험한 이 사실은 여러분과 나의 인생에 일어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극적으로 모셔 들여서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그러한 놀라운 동기가 부여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