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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논산 자연재배 INTO THE WILD 원문보기 글쓴이: 孤山吐月
2013년 농사 이야기(2013/10/17~11/02)
눈부신 하늘, 붉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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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닐적이었는지 그 보다 어렸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명화극장이었는지 토요명화였는지... 그 때는 영화가 시작되기전에 영화 평론가가 나와서 영화를 해설하고 영화를 시작했었다.
그 평론가 이름이 김영일인가 그랬다.
그 때 본 영화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가 "혹성 탈출"이었다.
원숭이가 지배하는 세상에 불시착한 인간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탈출해 우주선이 있는 바닷가에 도착해 보니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그 때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
나는 어린 시절 영화를 통해 절망과 마주했었다.
가끔씩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상식과 도덕이 통하지 않는 사회
애써 살아도 언제나 제자리인 사회
노력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는 사회
어쩌나....결국 바닷가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마주해야 하는가?
그만하자 쳐진다.
10월 중순경의 벼다.
이미 베어도 될 만큼 익기도 했지만 아직 좀 서운하게 익어 추수를 미루고 있다.
모내기 한게 엇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다.
세월은 쏜 살같이 간다.
아직 푸른 기운이 남아있긴 하지만 6월 1일에 모내기 한 논은 얼추 다 익었다.
콩밭의 콩도 익어간다.
작년엔 밀 심는 답시고 모내기를 7월에 하는 바람에 쌀 수확량이 확 줄었는데 올 해 논은 좋다.
헌데 콩밭이 문제다.
토마토에 고추까지 심어 놓고, 김매기 안해보려고 보리와 콩을 혼파한 게 잘 안되는 바람에 콩밭이 풀밭이 되버렸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콩은 제 갈 길을 간다.
때 되면 다 익는다.
사람도 때 되도 다 익겠지....
고추밭에 말뚝을 뽑았다.
고추를 지지하던 끈도 모두 걷어 냈다.
여름내 고랑 매주던 고추도 이젠 열매를 내지 않는다.
고생했다. 몹쓸 주인 만나.....
식물들이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다면, 우리 막내 딸아이는 변함없이 항상 오르막으로 달려간다.
요게 세번째 밥을 푸는 중이다.
원래 엄마나 아빠가 퍼 주는데, 밥 양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직접 퍼먹는다.
이 날은 짜장라면까지 4번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콩밭의 메뚜기
암놈이 숫놈보다 월등히 크다.
가끔 영화에 뚱뚱한 아줌마와 홀쭉한 아저씨가 부부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대게 러시아 쪽인가?
왠지 균형잡혀 보이는 앵글이기도 하다.
추수다.
옛날같으면 낫으로 베서, 단으로 묶어서, 말린다음 탈곡기로 털었을 것인데
요즘은 저런 콤바인 한번 지나가면 볏짚까지 썰어서 땅에 깔아주니 얼마나 편한지...
볏가마 나르지 않아도 되고....
편해지긴 참 편해졌는데 여럿이 모여 웅성거리고 막걸리 마시는 재미가 사라져버렸다.
콤바인 기사와 논주인 둘이서 벼 베니 재미는 없다.
종자로 쓸 벼를 따로 베서 말리는 중이다.
해마다 해벼(야생벼)가 생겨, 잘 익고 생육이 고른 논에서 따로 골라 베어 말린다.
요것도 한 3년 정도면 야생벼가 많이 섞여서 재배하기 곤란한 벼가 되 버린다.
왜 그럴까?
슈타이너의 말대로 종자의 원생명력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일까?
아니면 종자 개량의 문제가 있는 것일까?
토종벼 재배를 고려해 보았으나 수량의 문제가 심각하단다.
지금의 개량벼보다 양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말이다.
올해 조금 심어보았던 돼지찰벼는 수량면에서도 강점이 있어보여 내년엔 한 1000평 쯤 심어볼까 생각 중이다.
콩밭의 콩을 베다가 하늘이 환장하게 파래서 사진 한장 찍었다.
중국에서는 피도 오곡 중에 하나다.
옛날엔 피죽도 먹고 했었다.
피는 만년초라는 별칭이 있다.
만년이 지나도 난다는 말이다.
아무리 뽑고 뽑아도 계속 난다는 거다.
피! 생명력 하나는 경의롭다.
농사짓는 동안 영원한 동반자가 피다.
천 5백여평의 콩밭을 낫 한자루로 해치웠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그러다 한 200평 남겨두고 너무 일이 하기가 싫어 지인 둘에게 부탁해 후딱 끝내버렸다.
오늘 오후에 비 온다니 월요일 쯤이나 한데 모아다 말려 털어야겠다.
이것으로 1년 농사 대충 마무리 되어간다.
"인간은 두 번 절망한다.
꿈을 이루었을 때와 이루지 못했을 때"- 톨스토이
인간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
요즘 같은 시절이 계속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어쨋든......
건강과 평화!
첫댓글 참 시골의 가을이란 풍성한거 같아요. 저도 콩수확하고 왔는데 제 고향은 해발이 높아서 그런지 고추가 다 시들었어요. 벌써 서리도 내리고......
논산의 첫 서리는 10월 26일이었습니다.
거창에 비하면 논산이 따뜻하겠네요.^^
일년농사 지으시느라 고생하셨네요.. ^^; 언제 한번 들려 막걸리 맛 보고 싶습니다..
여름에 오시지요.
막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철학이 농익어 있는 멋진글,감사합니다.
따뜻한 겨울나실 준비가 되신 천지무인님이 부럽습니다.^-^
우리민족님도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나락익는 모습이 마음까지 포근해져 옵니다. 사진 잘봤습니다.
저도 가끔씩 논두에 앉아 한참 처다보곤 합니다.
나락은 역시 황금빛일 때 젤루 이쁘지요.
고단한 농사일도 이렇게 표현하시니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로 비춰집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가장 생산적이고, 친환경적인게 농사 맞습니다.
귀농 하시지요.^^
따뜻한 마음이 녹아 들어있는 멋진 사진과 글 잘 읽었습니다 한해 수고 많으셨고 고생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콩 정말 좋네요. 판매 계획은 있으신지요? ^^
네. 콩 팔기도 합니다.
다음주에 털어서 정선하고 손으로 골라 포장해 놓으면 게시판에 올리겠습니다.^^
아기볼이 통통 맛난것 먹어서 그런지...건강하게 자라라...
너무 많이 먹지요.
바지 입으면 배가 볼록 튀어나와 허리끈을 가립니다. 여자아인데...ㅠㅠ
사진도 잘찍으시네요 전문적으로 활동해보신듯^^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일하러 다니다보니 좋은 카메라는 거추장 스럽고 스마트폰 사진기가 최고예요.
정읍도 12일 첫 서리 내리고 오늘은 더 강하게 서리가 왔습니다!!!
제가 사는곳에는 작년 첫서리 기록이 없고요 2011년 첫서리 기록이 된 것이 10월 22일에 왔으니 10일이 빨리 첫 서리가 왔내요!!!
정읍 계시는군요.
논산과 그리 멀지 않네요.
논산도 요 몇칠 계속 된서리가 와서 호박잎이랑 고구마잎이 전부 시들어 버렸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피도 벼처럼 모판에 키워서 이양기로 심는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한번 내려 오세요.^^
저희집은 올해 처음으로 메주콩을 기계로 털어봤는데 사람이 완전히 거지꼴이 되더군요ㅠㅠ 털어보신 분만 알 듯...
ㅎㅎ
그쵸 먼지 뒤집어 쓰고... 거지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