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존의 길이 나의 길이로다
현성 김수호
“약인욕요지 삼세일체불 응관법계성 일체유심조(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는 화엄경에 나오는 사구게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해야 할지니라.
법계의 일체 현상은 오직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 지고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석가세존이 깨닫고저 한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 목적한 바를 성취하셨는가를 살펴본다면 그 해답으로 석존의 말씀들이 확연하게 이해 될 것입니다.
내가 군제대후 나름의 인생 생사 의식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행을 떠난적이 있습니다. 1983년 초겨울 이라하면 여행 시기 기억으로 적당한 때라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일 동안이라는 날짜 선택하고 떠난 여행에서 3일만에 돌아왔지요.
확인하고자 했던 문제가 3일이라는 기간에 확신을 가진 동기 역시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체득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수필 (모든 것 마음 작용일뿐 내용중)
충주댐 건설로 침수 될 지역 모두가 이주를 마친 곳이라 어둠뿐인 초겨울 밤은 쌀쌀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름 잠을 자다가 눈을 뜨니 둥근달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산에 걸린 달이 산을 넘어가는 줄 착각하며 "조금 있으면 날이 밝아오겠네" 하며 다시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차가운 밤 기온으로 쉽게 잠이 오지않아 강가 모래위 풀들을 한움큼 모아서 불이 피워 비날속에 열기를 넣고 잠을 청하니 잠이 온다.
군대시절 3년간 잠드는 과정 꿈과 의식에 대한 관찰을 하며 지내던 학습이 여전히 나를 관찰자가 되도록 이끌었다.
나의 여행 목적이 그동안 확신하던 나의 깨달음에 대한 재확신을 얻기 위한 것 이었기에
그날 밤 역시 잠드는 과정 속 나는 깨어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나의 몸을 짓밟고 지나는 억눌림으로 스스로 생각을 짓되 "큰 산짐승이 내 몸을 밟고 지나가는 구나" 생각하며 산 협곡에서 들려오는 짐승들 소리가 뚜렷하게 귓가에 머무는 것을 확인하였다.
정지된 몸 근육을 풀기위해 손가락에 의식을 두니 손가락이 하나 둘 풀리니 몸 역시 풀리었다.
하늘을 보니 달이 중천에 떠있음을 알았다.
그때서야 "아! 아까 산에 걸린 달은 뜨는 달이였구나" 하며 다시 잠을 청하고 이른 새벽 잠에서 깨고 여명이 밝아 오기를 기디리며 도대체 어떤 짐승이 내 몸을 밟고 지나갔을까? 하며 날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다 아침 햇살에 드러난 발자국에 나는 그만 커다란 충격에 빠져고 그 순간 나는 외마디 "마음을 스스로 짓고 그와같다고 했구나. 오직 마음 하나가 문제로구나," 하며 나의 여행 목적이 성취 되는 순간이었다.
그 발자국은 쥐 발자국이었으니 커다란 산짐승이 내 몸을 밟고 지나간다는 착각으로 억누림의 고통을 확장 시켰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날 아침 찬 기운은 환희로웠다.
마치 원효의 각성을 연상하게 하는 일들을 통하여 15일 여행 목적을 3일만으로 단축하였던 것입니다.
원효스님께서는 서기 600년대에 의상스님과 같이 당나라 유학을 가기 위해 신라 경주를 떠나 충청도 당진에 도착해 밤이 되어 어느 동굴에서 잠을 자야 했다 합니다.
잠자다가 목이 말라 어둠 속에서 물을 찾아 마셨는데,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는 물맛이었답니다.
그러나 다음 날 깨어보니 자신이 마신 물그릇이
시체가 썩어 있는 사람의 해골이었으니,
해골을 보는 순간 전날 그렇게 맛있게 마신 물이 갑자기
속이 뒤틀리고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나는 것을 보면서 원효는 자기 마음을 상태를 살펴 관하면서 전날에 그렇게 맛있었던 물이 왜 갑자기 속이 뒤틀리고 울렁거리고 구역질이 날까?
여기에서, 원효는 큰 깨달음을 얻고 중국 유학길을 포기하고 서라벌 경주로 돌아 갔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석존의 깨달음과 원효의 깨달음이 과연 어떠할지 살펴야할 것입니다.
그 깨달으신 바는 무엇일까?
그 깨달으신 바는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해골바가지 안에 있었던 물이 문제가 아니라 해골바가지를 본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듯이 행복과 불행은 그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본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같은 대상이지만, 내가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원효스님은 이렇게 표현하셨다.
심생고(心生故) 종종법생(種種法生) 심멸고(心滅故) 감분불이(龕墳不二)
마음(분별심)이 일어나니 여러 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고요하니(분별심이 멸하니) 신중단과 무덤이 둘이 아니구나. 라는 게송을 읊고
그 후
삼계유심(三界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 심외무법(心外無法) 호용별구(胡用別求)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에는 오직 마음의 작용이 있을 뿐이고, 만 가지 법(현상)은 오직 의식작용에 의한 것뿐이니, 마음 밖에는 아무런 법(法)도 없다. 마음 밖에서 어찌 무엇을 구하겠는가? (당나라 유학을 포기한 이유를 말씀하셨다. (마음 밖에서 무엇을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라고 그의 깨달음을 정리하셨다.
그러면 여기서 석존의 깨달음을 통하여 석존의 땅으로 들어가 석존의 요지를 살펴보고자합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사구게는 매우 특별한 경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약인욕요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석존이 보리수아래 정좌하여 기쁨중에 머무니 고요가 머무는 때 샛별을 보시는 장면은 내외를 벗어난 경계에서 드러나는 의식의 수순함이니 불현듯 밝은 빛이 석존을 깨움이 되는지라. 후학은 반드시 이때의 석존의 경계를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이 석존이 본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객이 확연하면 또다시 주객이 뒤바뀌어지고 또다시 주객이 하나 됨이나니, 이로써 대상은 사라지고 본각의 이치가 확연하게 드러남이니, 어찌 사물의 대상으로 석존의 길을 보려하는지 수행자는 지극함으로 사유해야 합니다.
삼세 모든 부처님은 법계의 성품, 성품을 깨달아 부처가 되었으니, 부처가 되고 싶으면 법계의 현상, 이 전에부터 있었던 그 법계의 성품을 관(觀)하여 그 진리를 통달할 지어라. 그 현상이 변하는 원리를 관하여 그 현상이 일어나기 이전의 법계 성품을 알아내고 그를 깊이 관하여 법계의 성품을 통달하여 깨닫는 것도, 일체가 마음의 작용입니다. 성불(成佛)하고 못하는 것은 오직 너의 마음에 달려 있다 할 것입니다.
성공 실패, 행복 불행, 기쁨 슬픔 모두가 그 대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작용에 달려있음을 알아야합니다.
모든 마음 작용은 자신의 업(業)에 따라 일어나는 법이니, 육바라밀을 믿고 닦고 또 닦아, 일체 업(業)이 소멸되고, 신심(信心)이 청정(淸淨)해지면, 자연스럽게 선정 지혜바라밀에 들어가 법계성(法界性)인 실상(實相)이 눈앞에 나타 날 것이다. 삼세제불을 만난 것입니다.
착함으로 계를 삼고 착함으로 정이 드러나고 착함 속에 혜가 확연하여지면
청정법계 관자재보살 마하살이 합장하여 맞으리니 다 함께 정진합시다.
현성 성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