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탕은 뜨거워진 몸을 식혀주는 이색 보양식이다. 식초와 겨자가 듬뿍 들어가 코끝이 찡해지는 짜릿한 육수는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시원해 한여름 지친 몸에 활력을 더해준다. 강렬한 맛의 초계탕은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한번 맛을 들인 사람은 땡볕 아래 한시간씩 기다려 먹을 정도로 강한 중독성을 자랑하는 음식이다. 서울 시내에서 초계탕으로 이름을 날리는 <평래옥>과 산골짜기 외진 입지임에도 불구하고 문전성시를 이루는 <초리골초계탕>을 찾아가 맛의 비결을 살펴봤다.
-
삼복더위 물리치는 ‘차가운 보양식’
초계탕은 ‘탕(湯)’이라는 메뉴에서 연상되는 것과 달리 살얼음이 뜬 차가운 육수의 닭요리다. 이름을 풀어보면 식초를 뜻하는 ‘초’와 겨자의 이북식 방언인 ‘계자’에서 온 ‘계’가 합쳐졌다. 초계탕은 더위에 뜨거워진 몸을 시원하게 식혀주면서도 속이 지나치게 냉(冷)해지는 것을 막아줘 ‘차가운 보양식’으로 불린다. 팔팔 끓여 나오는 삼계탕과는 정반대로 차갑게 먹는 보양식인 셈이다. 그래서 평소 몸에 열이 많아 삼계탕이 맞지 않는 사람들은 삼복더위를 물리치기 위해 삼계탕 대신 초계탕을 선택한다.
하지만 초계탕은 전문점을 손에 꼽을 정도로 쉽게 접하기 힘든 메뉴이기도 하다. 이북음식이라는 특성 때문에 실향민 1세대들이 고인이 된 지금은 초계탕의 본래 맛을 아는 사람이 더욱 드물어졌다. 남한에서도 ‘별미’에 속하지만, 이북에서도 초계탕은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팔팔 끓인 그대로 차려내면 되는 삼계탕과 달리 만드는 데에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초계탕은 닭고기를 한번 삶아 결대로 잘게 찢고, 닭육수도 차갑게 식혀 기름을 제거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다. 품이 많이 드는 데다 시고 매운 맛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메뉴라 일반 식당에서는 선뜻 도입하기 어렵다.
정통을 자부하는 평양냉면 집들이 그러하듯, 초계탕 역시 이북 출신의 창업주에서 자손들로 대를 이어 맛을 전수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부여한 강력한 정통성 덕분에 이 집들은 매년 여름이면 문전성시를 이룬다. <초리골초계탕>은 평양의 냉면집 딸이었던 할머니의 손맛을 4대째 이어간다. 창업주가 자녀들에게 맛을 전수해주고, 그들은 경기도 파주, 여주, 양평에 각각 초계탕 전문점을 차려 한 계열을 이루고 있다. 초계탕의 정석으로 꼽히는 <평래옥> 역시 평안도 출신 창업주의 자손이 전통을 잇고 있다.
깔끔한 육수 내기와 쫄깃한 닭고기 식감이 관건
기름진 고깃국물을 차갑게 식혀 먹는 음식이다 보니, 잡내 없이 깔끔하게 조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계탕은 닭을 삶은 육수로 만든다. 닭으로 육수를 내면 감칠맛이 강하지만 초계탕처럼 차갑게 만드는 경우 기름기가 많아 비린맛이 날 수 있다. 닭기름을 잘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동치미 국물을 섞어 개운한 맛이 나도록 해야 한다. 식초와 겨자는 일반적인 냉면 육수에 첨가하는 것보다 듬뿍 풀어서 차갑고 강한 자극이 느껴지게 한다. 겨자는 열을 내는 성질이 있어 차가운 음식에 첨가하면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식초 역시 살균력을 높임으로써 음식이 상하기 쉬운 여름철에 배탈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육수 맛이 강하기 때문에 닭고기는 부드러운 것보다 질길 정도로 식감이 강한 것이 좋다. 그래서 나이 든 씨암탉이나 살이 많은 장닭을 쓰는 것이 적합하다. 닭은 기름이 빠지도록 푹 삶은 다음 채반에 널어 말리는 과정을 거친다. 수분을 날린 반건조 생선이 꼬들꼬들한 식감을 얻듯이, 닭고기도 수분을 날리면서 쫄깃한 식감이 살아난다. 하지만 삶은 후 그대로 실온에서 식히면 닭고기에서 냄새가 나기 쉬우므로 선풍기나 에어컨 등을 이용해 빠른 시간 안에 말리는 것이 좋다. 수분을 날린 닭고기는 살만 발라내 냉장고 등에서 차갑게 식히며 탄력을 더한다.
서울 중구 <평래옥>
평안도에서 내려온 초계탕의 정석
-
평안도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평래옥(平來屋)>이라 이름 붙인 이 집은 3대째 대를 이어온 이북음식 전문점이다. 오래된 이북음식점들은 손님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지만, <평래옥>은 그중에서도 연령대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집이다.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초계탕, 꿩냉면 등 특별한 이북음식을 맛볼 수 있는 집으로 60여년간 명성을 지켜왔다. 재개발 때문에 2007년부터 한동안 문을 닫았고, 2010년에 현재의 자리에서 재오픈했다.
이 집 초계탕은 겉으로 보면 재료도 단출하고 담음새도 수수하다. 투명한 플라스틱 그릇 가득히 뽀얀 육수와 메밀면이 담겨있고 몇 가지 채소만 둥실 떠다닌다. 메밀면을 뒤섞어보면 그제야 결결이 찢어놓은 닭고기가 푸짐하게 드러난다. 예전에는 초계탕에 메밀면이 함께 나오지 않고, 면 사리를 인원수대로 추가로 주문해야 했다. 하지만 초계탕에 메밀면을 말아먹는 것이 손님들 사이에서 세트메뉴처럼 굳어져 재오픈 이후에는 처음부터 메밀면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살얼음을 동동 띄워내는 육수는 시원함과 동시에 짜릿함을 선사한다. 식초와 겨자가 넉넉히 들어가 시고 맵지만, 단맛이 나는 육수가 끝맛을 잡아준다. 강한 육수에 맛이 가려지지 않을 만큼 속재료의 식감도 강한 편이다. 수작업으로 찢은 닭고기는 꼬들꼬들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쫄깃하다.
살이 부드러운 영계가 아닌 다 자란 큰 닭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푹 삶은 닭고기를 건조시킨 뒤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히는 과정을 통해 식감이 더욱 탄탄해진다. 메밀면도 비교적 굵고 탱글해 쫄깃한 닭고기와 잘 어우러진다. 여기에 얼갈이배추, 양상추, 적채 등이 아삭한 식감을 더해준다. 초계탕에 들어가는 닭고기는 다릿살 부위를 주로 사용한다. 껍질이 붙은 닭가슴살 부위는 매콤하게 무쳐 닭무침으로 만드는데, 기본 반찬으로 조금씩 제공되는 이 닭무침은 손님 사이에서 별미로 꼽힌다.
주소 서울시 중구 마른내로 21-1 전화 (02)2267-5892
메뉴 초계탕 1인분 1만2000원 (2인분 이상 주문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