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톨릭 성지(聖地) 순례
10. <스페인> 발렌시아(Valencia) 대성당
발렌시아 대성당 / 성당 내부 / 성배(聖杯) / 카탈리나 수녀원 종탑
스페인의 중동부, 투리아(Turia)강 어귀의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 발렌시아는 인구 260만으로 스페인 제3의 도시이다. 발렌시아는 AD 2세기에는 로마가, 11세기에는 무어족이 발렌시아 왕국 수도로, 13세기에는 아라곤 왕국, 15세기에는 카스티야왕국이 차지하는 등 역사의 도시이며, 가톨릭 건물들도 많은데 특히 ‘100의 종탑도시’로 알려졌을 만큼 문화와 역사의 도시이다.
발렌시아 구도심 가운데에 있는 발렌시아 대성당(Catedral Valencia)은 13세기 중반,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건축했다는데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정문은 18세기 바로크(Baroque)양식, 후문은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 측면의 문은 고딕(Gothic) 양식 하는 식으로.... 암튼 굉장히 고풍스럽고 내부 장식 또한 화려하다. 그런데 이 발렌시아 대성당이 유명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하였던 성배(聖杯) 진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렌시아 대성당은 들어서자마자 옆쪽에 있는 회랑을 따라 들어가면 소박한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는데 지하로 내려가면 옛날 지하묘지로 사용되었던 동굴이 나타나고 실제로 해골도 놓여있다. 여러 개의 방을 지나며 귀중한 성화(聖畫)와 성물(聖物)들을 감상하고 위로 오르면 드디어 성배를 전시한 방이 나타난다. 영화에서도 나왔지만, 저 많은 잔(盞) 중에서 어느 것이 진짜 성배(聖杯)일까?
2000년 전, 예수님이 다락방에서 열두 제자들과 같이 앉아 빵을 나누면서 ‘이 잔은 내 피의 잔이니...’ 하시며 포도주를 담아 제자들 입에 대어 주셨던 바로 그 잔!!
방안에 들어서면 장 속에 수십개의 잔들을 전시해 놓은 모습이 보인다. 큰 잔, 작은 잔, 황금 잔, 은색 잔, 옥색 잔.... 화려한 장식을 한 잔, 소박하게 아무런 장식이 없는 잔...
사진의 나무로 깎은 것처럼 보이는... 저 잔이 진짜 성배가 아닐까? 전시품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어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
<성배(聖杯) 이야기>
성배에 대한 신앙과 성배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은 중세 이후 그치지를 않았는데 논란의 핵심은 도대체 진짜 성배가 어디에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한때는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이 가지고 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발렌시아 성당에 모시고 있는 성배는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져왔고 3세기에 성 로렌조(St. Lorenzo)가 다시 발렌시아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발렌시아 성당에 보관하던 성배는 이베리아반도를 침략한 무어인들의 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인근의 바위 동굴 속 ‘성 요한 수도원(Monastery of San Juan de la Pena)’으로 옮겨져 간직되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이 발렌시아의 성배를 조사해본 결과 1세기 중동지역, 시리아(Syria)의 안디옥(Antioch/현재터키)에서 나는 돌로 만든 것으로 밝혀져서 진짜 성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발렌시아의 성배가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역대 교황님들은 이곳까지 와서 일부러 그 성배를 가지고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아무리 교황이지만 위대한 오리지널 성배를 직접 손에 들고 마치 예수께서 말씀하시듯 ‘이는 내 피의 잔이니 받아 마셔라’고 말하는 것은 꿈을 이루는 일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6년 7월 9일에는 교황 베네딕트 16세(BenedictusⅩⅥ)가 찾아와서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한편, 이탈리아의 제노아(Genova)에도 진짜로 알려진 성배가 있는데 에메랄드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이 성배는 십자군이 유대의 가이사라 마리티마(Caesarea Maritima)에서 많은 돈을 주고 사왔다고 하는데 가이사라 마리티마는 헤롯(Herod) 대왕이 건설한 항구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Tel Aviv)와 하이파(Haifa) 사이에 있던 도시였으나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도시다.
그런데 십자군들이 에메랄드 성배를 가지고 오는데 마차의 바퀴가 부서지는 등 사고가 잇달아서 성배가 마치 고향을 떠나서 타지로 가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십자군들은 신성한 힘이 있는 성배가 그런 하찮은 사고를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파리로 가져왔다고 한다.
파리에 있던 성배는 나폴레옹이 전쟁의 패배로 실각하여 엘바섬으로 귀양을 가자 이탈리아 제노아로 옮겨진다. 그런데 정밀 조사한 결과 에메랄드(Emerald)로 만든 줄 알았던 성배가 초록색 유리로 만든 것이었다고.... 그래도 제노아는 계속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발렌시아 대성당에 모셔진 성배는 10여 가지나 되는데 어느 것이 진짜라는 표시는 없지만 수많은 황금빛 잔(盞) 중에서 유독 소박해 보이는, 사진에서 보이는 잔이 바로 그 안디옥(Antioch)의 돌로 깎은 그 성배(聖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