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대축일 (나해/2024)
지혜의 등불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은 금년 들어 첫 번째 맞는 주일이며 주님 공현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빛이 비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주로 목자들에게 알려졌지만 오늘은 동방에서 큰 별을 보고 찾아온 세 박사들에 의해서 아기예수 그리스도는 경배를 받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탄생이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인류를 위해서 내려진 은총의 선물임을 알게 합니다.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는 하나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만이 하느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특권을 지닌 자들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그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의 모습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이처럼주님 공현대축일은 그리스도께서 세상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확실하게 드러난 날입니다. 유다의 선민사상에서 탈피하여 구원의 보편사상이 펼쳐진 날이 바로 오늘인 것입니다.
제1독서인 제3 이사야서의 말씀은 적막과 폐허 가운데서도 언젠가 하느님의 은혜로 빛나게 될 예루살렘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예루살렘은 강대국들에게 짓밟힌 보잘것없는 죽은 도시에 불과했지만 언젠가 이 예루살렘은 빛날 것이며, 이 예루살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이 예루살렘이 만백성의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예루살렘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룩될 사랑과 평화, 정의의 나라이며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신앙인의 공동체 곧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민사상과 유다의 축복은 혈연과 지연을 넘어 믿음이라는 새로운 기준 속에서 전 인류에게 확산되어 적용됩니다. 그리하여 모든 이가 예수께 몰려오는 것입니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온다.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이사 60,4-5)
바다의 보화가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들어온다는 묘사는 신약의 동방 박사와 아기 예수 경배와 연결해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러 한 놀라운 광경을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에서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오한 계획”이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라고 불리는 사도 바오로는 이런 구원의 보편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을 박해하던 그였지만, 어느 날 다마스쿠스로 가던 노상(路上)에서 회개의 체험을 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은총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급기야는 모든 믿지 않는 이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로 돌아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동방의 세 박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으로 먼 곳에서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사람들은 유다의 지도자들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지 못하던 이교 백성들, 그중에서도 동방의 세 박사들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들의 이름은 멜키올,발다살,가스팔 등 각기 다른 나라 왕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천문학을 연구하던 학자들이기도 했지만, 하늘 큰 별빛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이상한 예감이 들어 오직 별빛만을 따라서 예수 아기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이르게 됩니다. 복음의 이 모든 사실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반성 자료를 제공합니다. 교회 안에,그 어떤 틀과 형식 속에 안주해 있는 교우들보다 오히려 교회 건물 밖에 있더라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진실한 이웃들이 우리보다 더 빨리,더 분명히 구원의 징표와 시대의 표징, 그리고 예수님의 현존을 깨닫고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밤마다 물을 길어 나르는 맹인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낮에도 볼 수 없으니 인적이 드문 밤을 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늘 한 손에 등불을 높이 쳐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동이의 물이 쏟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비아냥거리며 말했습니다.
“병신, 꼴값하네. 저런다고 앞이 보이냐….”
하지만 맹인은 늘 그렇게 등불을 들고 물동이를 날랐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나그네가 그 광경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물었습니다.
“앞도 못 보는 당신이 왜 무거운 물동이를 나르면서 불필요한 등불까지 들고 다니는 겁니까?” 그러자 그 맹인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랍니다. 깊은 밤에 혹시라도 저를 보지 못하고 부딪혀서 다치는 분이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힘들게 나르는 저의 물동이도 엎질러지는 일은 없겠죠.”
맹인을 비웃는 그들처럼 한치 앞도 못 보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선인장처럼 자기 보호만을 위한 가시를 곤두세우고 타인의 삶을 관망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타인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는 지혜의 등불을 마음에 되새겨 봅시다.
[2014년 2월 9일 연중 제5주일 대구주보 5면]
복음의 말씀과 관련,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한 맹인의 삶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별은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가난한 아기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떤 이들은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이 아기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권력의 헤로데, 지식을 파는 학자들은 이 아기의 정체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죽이려고 온갖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온갖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기 예수를 찾아가 자기들이 소중하게 가져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그리스도의 왕직을,유향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몰약은 시체가 썩지 않게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가장 고귀하고 값진 것을 아기 예수께 바쳤고 정성을 다해 무릎 꿇고 경배 하였다는 것입니다. 새해 첫 주일인 오늘, 우리는 모든 희생과 고통을 무릅쓰고라도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그 무엇을 주님께 바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해야겠습니다. 새해의 새로운 결심으로 큰 별인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굳게 마음을 다지며 동방 박사들의 뒤를 잇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