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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허 열 웅
“이런 저런 순간에 다르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고 앉아있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켜 볼 때뿐이다” 2017년 노벨문학상수상 영국작가(일본 태생)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의 주인공 스티븐슨의 넋두리다. 저명한 저택에 사는 귀족의 집사執事로 30 여년을 주인을 위해 맹목에 가깝도록 충직하게 사느라 자기 인생의주인공으로 살지 못하고 스스로 노예로 살다가 후회하는 장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몸 담아온 직장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시간과 몸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내세워 정리해고를 하거나 명예퇴직을 강요당할 때 그 심정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가슴 저미게 아플 때 위안이 되는 것은 누구의 조언도 위로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그래도 조금 동질감을 느낄 뿐이다.
4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기보다는 직장이나 상사에 올인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밤늦게 까지 때로는 휴일이나 국경일에도 출근하여 잔무를 처리를 하느라 가족이나 친구들을 소홀히 하는 경우였다. 법적으로 휴가를 갈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반납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소신껏 행동하기보다는 남의 눈치를 보며 체면치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이런 사례는 같은 직장의 절친한 친구에게서도 일어났다. 승진 시험 때 이야기다. 그는 잎담배 생산과 수매를 담당하는 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가을철이라 전국에서는 잎담배 수매가 시작되고 있었고 승진시험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다. 시험 응시자들은 업무를 동료들에게 잠시 맡기고 밤을 새우며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친구는 하루에도 수백억 원이 넘는 자금을 운용하여 현지에 조달해주는 업무였다. 상사의 신임이 두터웠으므로 자기를 위한 공부보다는 회사와 상사에 충성하느라 사무실에 계속 나와 업무를 처리하였다.
시험 결과는 뻔했다. 그는 업무를 위해 코피를 흘리며 일을 했지만, 다른 응시자들은 공부를 위해 밤을 새웠다. 그는 결국 낙방하였고 지방 근무를 희망하여 오래 버티지 못하고 명예퇴직을 하고 말았다. 우리는 살아감에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를 지켜주는 직장이나 상사에 대한 충성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위한 사랑과 배려가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장하는 ‘워나벨(Work-Life Balance)’ 즉 일과 삶의 균형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생각이다. 내가 있기에 직장이 있고 고유의 삶이 있고 그 뒤에는 세상이 펼쳐져 있으니 말이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방법에서 과거에는 정년도 보장되고, 월급도 걱정 없이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나에게 회사와 상사란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나는 과연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일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변하고 싶은지, 일을 통해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지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 스티븐스가 첫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인의 전성기 시절, 그의 밑에서 총무로 일했던 캔턴양이 편지를 보내온 것이 여행을 떠나는 계기가 된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으나 고지식한 그는 그녀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멀리하자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났다. 혹시 그녀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고 다시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있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는다.
마침내 여행 마지막 날 이제는 어느 남자의 부인이 된 그녀를 만난다. 20년 만의 재회,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지 못하지만 그녀는 딸의 결혼 소식부터 전한다. 그리고 솔직하게 마음을 고백한다.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남편을 사랑한다고, 그 옛날 직장을 떠날 때 단지 우유부단한 스티븐슨에게 약을 올리기 위한 책략쯤으로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고 아이가 커가자 어느 날 문득 남편을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때로는 지난날을 후회도 해보고 당신과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도 해봅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는 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시간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습니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주인에게 충성하느라 젊은 날의 사랑도 가고, 맹목적인 믿음의 허망함만이 밀려올 뿐이다. 지금은 쇠락한 주인 대신에 다른 귀족이 들어왔으니 모든 걸 잃은 셈이다.
그렇다. 후회란 놈은 항상 뒤늦게 찾아와 뒤통수를 치게 마련이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심각한 좌절이나 패배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살아온 삶이 송두리째 부인당하는 위기 속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남아 있는 나날이 아직 있는 한, 인생이란 행복하다고도, 불행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그러니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서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요즘 각 종 매체나 인문학자들이 말하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즉 한번 사는 인생인데 충분히 즐기며 살자“는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이고, 나도 고희古稀가 지났다. 그가 초저녁이라면 나는 늦저녁이므로 인생을 즐길 때이다. 하루의 저녁 시간을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표시해 놓으면 어떨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인생의 황혼녘에 비로소 깨달은 삶의 가치 그리고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허망함과 애잔함을 내밀하게 그려 낸 소설<남아 있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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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내 인생의 저녁 시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어두워진 저녁 시간 향기롭게 보내시옵소서.
감사합니다
저녁이 깊어지면 능내리 하늘에도 별들이 총총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