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 회복
제목 : 회복의 은혜
성경 : 창 33:1~11
찬송 : 310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1013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창 33: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창 33: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창 33: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창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창 33: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창 33: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창 33: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창 33: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창 33: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창 33: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창 33: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전쟁을 일으킨 국가로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패전 이후 독일 서쪽은 민주주의 진영으로 동쪽은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었습니다. 다시는 끔찍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2차 대전에서 승리한 국가들이 독일을 분열시킨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독과 서독은 이념이 부딪히는 대립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후 공산주의 진영인 동독주민들이 국경이 맞닿은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동독 정부에서 여행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 시위는 동독 전체로 퍼져 나갔습니다. 시위가 거세지자 동독 정부에서 여행 제한법을 완화하는 수정안을 내놓았는데, 여기서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정부 대변인이 기자 회견 장에서 수정안을 발표한 후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 이탈리아 기자가 “이 법안은 언제부터 유효한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대변인은 “지금 이 시간 이후 바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어가 서툰 이탈리아 기자가 본국에 “동독, 현 시간부터 국경 전면 개방!”이라고 급보를 전하고 말았습니다. 이 기사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뉴스가 재생산되면서 결국 독일 통일이라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역사의 사건 속에서 사람의 생각이나 계획으로는 풀기 어려웠던 문제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서 풀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서와의 만남(1~3절)
야곱은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얻어냈지만, 결국 분노한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합니다. 도망치듯 하란으로 왔던 야곱이 20년이 지난 후에는 라반의 손에서 도망치듯 밧단 아람을 떠납니다. 떠난 지 7일째 되는 날에야 라반이 야곱 일행을 따라잡은 것을 보면 야곱은 힘을 다해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31:23). 라반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한 야곱의 다급함과 절박함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고향을 향해 가는 야곱 앞에는 형 에서와 얽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빌어 준 장자의 축복은 수확물의 번성, 다른 민족들과 형제들에 대한 지배권, 저주와 축복에 관한 복(27:27~29)입니다. 그런 만큼 형 에서의 노여움이 컸다는 것을 야곱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에서는 장정 400명을 이끌고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벧엘에서 야곱의 꿈에 나타나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28:15), 라반의 꿈에 나타나 야곱을 해치지 못하도록 경고하신 하나님(31:24)이 개입하셔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자식과 소유물을 먼저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하고 홀로 남아 천사와 씨름하였습니다. 그의 허벅지 관절(환도뼈)이 골절되었지만 결국 축복을 받아냅니다. 그래서 그곳을 ‘브니엘’이라 명명합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다 허벅지 관절이 골절되어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얍복 나루에서 씨름 사건 이후, 야곱은 장정 400명을 거느리고 오는 에서에게 어떤 자세로 나아갔습니까? 야곱은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면서 “자기는 그들 앞에 나아가되”,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자세로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나아갔습니다.
운명적인 만남을 앞둔 야곱은 자기에게 속한 무리를 사랑하는 순서에 따라 나눕니다. 혹시 모를 상황이 벌어질 때 피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제일 소중한 사람을 후방에 배치합니다.
√창 33: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창 33: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창 33: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이 같은 야곱의 모습은 얍복 나루 사건 이전에 늘 다른 사람들을 앞서 보냈던 것과는 다른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과 신분을 갖게 된 야곱은 뒤로 숨지 않았습니다. 절뚝거리며 ‘그들 앞에서 나아가며’(3절) 문제를 직면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게다가 형 에서를 맞이하는 야곱의 모습은 철저하게 낮아진 모습입니다.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라는 말씀은 ‘땅을 향해 엎드리다’, ‘몸을 굽히다’, ‘절하다’라는 뜻입니다.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몸을 굽혀 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조선의 역사를 보면 인조 대왕 때 병자호란이 일어났는데 강화도로 피신하려고 했지만 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이어가다가 결국에는 청나라에 항복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때 인조 대왕이 오랑캐 앞에 머리를 땅에 조아려 절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부릅니다. 인조의 이마가 땅에 부딪쳐 피가 흐르는 장면을 드라마를 통해서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야곱은 에서를 맞이하면서 땅에 일곱 번 머리를 굽혀 절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에서가 에돔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존중의 의미일 뿐 아니라, 거짓으로 장자의 축복을 빼앗은 일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고대 근동 지역에서 종속 자가 군주에게 예를 표하듯이 야곱은 낮은 자이며 에서는 높은 자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야말로 용서를 구하는 자와 용서하는 자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여러분!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할 때 여러분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야곱의 모습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다 보면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갈등과 오해를 풀고 화해할 타이밍을 놓치면 꼬인 관계는 더더욱 회복하기 어려워집니다. ‘거짓말쟁이’, ‘기회주의자’, ‘도망자’는 야곱의 인생을 잘 보여 주는 키워드입니다. 야곱은 우리가 생각할 때 도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이제는 과거와 화해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깁니다. 용서가 받아들여질지 아닐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야곱은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나아갑니다.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겨루다’라는 뜻의 이름 ‘이스라엘’로 불린 그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용서를 구할 일이 있을 때 두렵더라도 겸손과 진심 어린 자세로 진정성 있게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야곱에게 은혜를 베푸셨듯이 우리에게도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뜻밖의 환대(4~7절)
√창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야곱은 에서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에서는 야곱에게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에서는 야곱을 칼로 내치려하지 않고, 서로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극적 상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얍복 나루 사건이 야곱과 에서의 화해를 예견했는데, 그 예견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을 용서합니다.
‘부르그만’은 야곱이 에서와 마주하고도 죽지 않는 상황을 브니엘 사건과 연결시킵니다. 지난 20년 간 야곱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염려가 한 순간에 해결된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깨어진 결과입니다. 이로써 야곱은 에서의 감정을 푸는 것과 동시에 속죄를 받게 된 것입니다.
창 32: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20년 동안 쌓였던 형제간의 감정을 푼 후에 에서는 눈을 들어 야곱의 식구들을 보았습니다.
√창 33: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창 33: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창 33: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홀로 밧단 아람으로 떠났던 야곱이 여러 명의 아내와 많은 자녀를 이끌고 돌아온 것을 보고 에서는 그들에 대해 묻습니다. 이에 야곱은 다시 한 번 ‘당신의 종’이라는 용어로 에서와 자신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에서에게 자신의 가족을 소개합니다.
여러분! 야곱이 어떻게 에서를 높이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야곱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결핍을 채워주시는 공급자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사람들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형성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높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남을 나보다 나은 자로 여기고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자녀들이라고 소개하며, 밧단 아람에서 보낸 시간을 신학적으로 정의합니다. ‘하난’은 ‘은혜’를 뜻하는 ‘헨’과 어근이 같습니다. 이 단어는 32:5,6절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야곱은 혈혈단신으로 아무것도 없이 밧단 아람으로 떠났는데(28장), 밧단 아람을 떠나 올 때는 네 명의 아내와 열두 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많은 가축 떼와 무리를 소유하여 큰 무리를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창 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감격적인 상봉 후에 야곱은 안심하고 형에게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이로써 야곱의 공포와 염려가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예물을 언급하며 “형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라고 말합니다.
√창 33: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이것은 에서를 높이려 한 말이지만, 형 에서가 자신을 호의적으로 맞이하자 전날 밤에 뵈었던 하나님이 떠올라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형과의 문제가 해소되었음을 알고 감사드린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때 기대치 못했던 응답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물을 강권함(8~11절)
야곱은 자신을 지키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음에도 에서의 반응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신 것처럼 에서에게도 일하십니다. 두려움 가득한 야곱과 대조적으로 에서는 애정 가득한 모습으로 20년 만에 만난 동생을 맞이합니다. 에서가 질문합니다.
√창 33: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창 33: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창 33: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창 33: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에서는 동생 야곱이 준비한 선물 가축 550마리 받는 것을 사양합니다. 근동 지역의 풍습에 따르면 선물하는 자는 여러 차례 정성 들여 권해야 하고, 받는 자는 몇 차례 사양하다가 못 이기는 척하며 받는 것이 통상적인 것입니다. 에서도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야곱이 거듭 강권하니까 예물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준비한 예물이 11절에서 ‘복’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메라카’로 표현되는데, 이는 에서가 ‘동생이 빼앗아가 버린 복’이라고 말할 때 사용한 단어와 같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훔쳤던 축복의 대가로 에서에게 제시하는 예물(선물)의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나요?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은가요?
용서를 구할 때 과연 상대방이 받아들일지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지만 모든 염려를 뒤로 하고 화해의 자리로 담대히 나아갈 때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됩니다. 꼬여 있는 관계를 풀기 위해 화해를 청하거나 상대방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일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관계를 회복할 때는 ‘서로 용서하라’(엡 4:32)는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용서와 회복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일에 근거를 둡니다. 잘못했을 때는 겸손히 자기 잘못과 실수를 인정해야 하고, 누군가 용서를 구할 때는 너그럽게 사과를 받아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보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로 용납하는 마음을 구해야 합니다. 나의 입장이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서로 끌어안고 회복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번성한 후에 탈출하여 ‘진’(미하네)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야곱 이야기는 출애굽 사건과 연결됩니다.
출 16: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출 19: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년 만에 야곱과 에서가 만납니다. 피의 보복이 일어날지,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긴장 가득한 상황을 선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야곱과 에서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때, 두 사람 사이에 20년 된 깊은 골이 화해로 메워집니다. 용서를 구하는 야곱은 가장 낮은 자세로 나아가, 자신이 장자권을 빼앗은 이후에 하나님께 받은 복을 형에게 돌립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많은 선물 때문도, 마음이 누그러질 만큼 지나버린 시간 때문도 아닙니다. 언약 백성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의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기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쟁심과 욕심은 바른 관계를 가로막고 갈등을 유발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른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주위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회복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브니엘의 축복으로 회복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