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라(半裸)의 천녀(天女)가 함께하는 구미 청량산 문수사
우리나라에는 문수사 또는 문수암으로 이름이 붙은 사찰이 매우 많다. 구미(선산) 도개의 청량산 문수사 외에 삼각산 문수암, 김포 문수암, 평창 문수사, 옥천 문수사, 서산 문수사, 고성 문수암, 울산 문수사, 김제 문수사, 익산 문수사, 고창 문수사 등이 있다.
사찰의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고, 대적광전(大寂光殿)에도 비로자나불 좌측에 문수보살을 봉안하는데 문수 보살은 대승 불교에서 최고의 지혜 (智慧), 즉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화. 인격화한 보살로서문수신앙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사찰 이름을 문수사 또는 문수암으로 붙인 것으로 보인다
대한불교조계종 직지사의 말사인 구미 선산의 청량산 문수사는 고려시대 창건된 사찰로서 창건시에는 납석사(納石寺)라고 칭하였다.
조선 고종2년 을축년에 폐사(廢寺)하고 80년후에 혜봉선사(慧峰禪師)가 중건할 때 꿈에 노승이 말을 타고 내려와 사기를 편람하므로 해몽하기를 노승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화신이며 승마(乘馬)는 사자(獅子)라 하여 산이름을 청량(淸凉)이라 하고 절 이름을 문수사(文殊寺)라 하였다고 한다. 현 사찰은 1948년 재 창건(創建)되었으며 1972년 수덕진을 건립하고 1993년 사자암(獅子岩)을 개축하였다.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구미시 도개면에 위치한 문수사는 당나라에 유학을 갔던 자장율사가 당나라의 청량산과 같은 지형의 이 땅을 보고 굴에 들어가 이레 동안 기도를 올리니 땅 속에서 문수보살이 현신하는 꿈을 꾸었다한다 그 꿈을 ?아 땅을 파 보니 문수보살상이 나와 그곳에 문수전을 지었고, 절 이름도 문수사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부터 이 골짜기에 자연동굴이 있다하여 굴암골이라 불려져 왔으며 문수사에서 170m 가량 떨어진 사자암에는 오래 전부터 자연동굴에 불상이 안치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주지 혜향 스님은 몇 년전 사자암을 짓는데만 5억여원이 들었으나 신도들의 시주 한 푼 없이 오로지 자신의 노동댓가로 얻으진 수입으로 이 사찰과 사자암을 지었다고 한다.
혜향스님은 이 곳 문수사에 들어오기 전 강원도 영월 법흥사에 잠시 머물 때 사하촌에 사는 모 처사에게 양봉하는 법을 배웠으며 이 곳 문수사에서 40 여년간 양봉을 하고 논밭을 일궈 생산된 곡물과 과일을 팔아 불사를 이루었다고 한다 실제로 필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도 분가한 벌들이 정원 앞 바위 틈에 군집하여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근간에는 몇 번에 걸친 TV방송의 영향으로 전국 각지에서 불교신도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분가한 벌들이 바위 틈에 모여 있다 (동그라미 속)
우리가 문수사를 찾은 것은 사찰을 보기 위함이 아니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20호로 지정된 선산 궁기동 석불상을 보기 위함이었지만 뜻밖의 많은 수확을 거둔 곳이다.
(위에서 왼쪽에 보이는 보살상이 궁기동 석불상이고 오른쪽의 파불은 이름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선산 궁기동 석불상
이 보살상은 도개중학교 교정에 있었으나, 학교 증설로 인해 2008.1.10 문수사로 옮겨와 문수사 옆, 잘 정리된 축대 위에 정좌하고 있다. ,
오른손에 쥐고 있는 연꽃 가지
이 입불상은 보살상(菩薩像)으로 불신(佛身)과 대좌(臺座), 광배(光背)가 모두 같은 돌에 조각되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신체에 머리는 파손이 심하여 자세히 살필 수 없으나, 우뚝 솟은 상투처럼 높이 올린 머리카락의 흔적이 엿보인다. 손 모양은 오른손을 가슴 위로 올려 연꽃 봉우리를 쥐고 왼손은 복부에 대고 연꽃 봉우리에서 드리워진 연꽃 가지를 받들고 있다. 이 연봉의 끝은 광배로 이어져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선례가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사방으로 퍼지는 찬란한 빛을 나타낸 것이 광배다. 이 보살상의 광배는 윗 부분이 조금 잘려지기는 했지만 광배는 화려하고 찬란하다.
조각 솜씨가 대단히 뛰어난 불상이다
광배 뒷면에 새겨져 있는 비로자나불
배 모양의 광배 뒷면에는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선으로 조각하여 주목된다. 광배의 모양도 뚜렷하다. 이 불상은 균형미와 조각 수법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하대인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입불상의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이 불상에 대해서는 이름도 없고 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다 얼굴부분이 많이 파손되었으나 남아 있는 부분의 조각 솜씨로 보아 매우 실력있는 장인의 작품으로 보인다. 손의 형태를 보면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여 옆의 보살상과 같은 형태의 보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광배의 뒷면에는 아무 장식이 없다
오래된 사찰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축대 밑에는 석탑의 부재들이 쌓여 있다
사자암으로 오르는 길의 오른쪽에는 탑의 부재들이 쌓여 있다. 파손된 옥개석이 있고 안상이 조각된 기단석도 보인다. 찰주공을 끼울 수 있게 찰주공이 뚫린 상층의 옥개석도 함께 놓여 있다. 옆에는 근래 조성한 화강암의 오층서탑과 석등이 서 있어 바닥에 뒹굴고 있는 이 부재들은 언제쯤 제자리를 막연하다,
차라리 석불상 옆으로 옮겨 석불과 함께 전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자암으로 오른다.
청량산 문수사 사자암
사자암이란 이름 역시 익산 미륵산 사자암, 오대산 중대 사자암 등 전국에 많이 있다.
사자암으로 오르는 좁은 길은 폭이 긴 계단으로 이어진다. (바로 옆에 평지 길도 있으나 평지 길은 사자암 가까이에서 가파르게 올라가야 하므로 계단 길을 택하는 것이 좋다) 울창한 소나무 숲사이로 약15분 정도 오르면 절벽처럼 생긴 암벽에 붙은 사자암에 이른다. 이 사자암 바위에는 자연동굴이 있고 이 동굴 안에는 오래 전부터 불상이 안치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문수사 측이 1993년부터 사자암 건립 공사를 시작해 2000년 완공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계단길을 따라 올라가 입구쪽에서 본 사자암
지붕과 2층 법당의 반쪽이 암벽 앞에 있음. 나머지 부분은 바위에 뚫린 석굴이다
입구의 반대쪽에서 본 모양. 법당으로 오르는 통로이다
뒷쪽 높은 암벽에 붙여 2층 건물로 지어진 사자암은 1층이 참선방, 2층이 삼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앞에서 보면 일반 암자와 별 차이가 없지만 옆에서 보면 일반적인 암자보다 훨씬 길이가 짧다.
밖에서는 3m 정도 돌출된 건축물만 볼 수 있지만 사자암 내부에 들어가 보면 길이가 약 2m인 동굴부분을 포함해 사자암 2층 법당의 전체 길이가 5m 정도로 훨씬 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법당의 절반이 동굴, 나머지 절반이 인공 건물인 셈이어서 생긴 별칭이 '반쪽짜리 법당'이다.
법당 안은 절반이 바위굴이고 그 중앙에 바위와 가장 잘 어울릴 듯싶은 삼존불 불상이 모셔져 있다.
법당(사후전) 옆의 요사체 같은 작은 건물이다
사자암의 법당 명칭이 사후전(獅吼殿)이다. 우렁찬 사자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일컷는 말이다
법당의 안쪽은 자연 바위 동굴이며 근간에 조성된 삼존불이 정좌하고 있다
암벽의 윗쪽 천정을 이루는 부분에는 바위 틈새로 뻗은 식물들의 뿌리가 늘어져 있다
삼존불이 있는 대좌의 한 단 아래에는 일반 사찰에서는 보기드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새긴 목각불이 있다 ≪화엄경≫ 속에서 문수보살은 보현보살과 함께 비로자나불의 양쪽 협시보살(夾侍菩薩:좌우에서 모시는 보살)이 되어 삼존불의 일원을 이루고 있다. 코끼리 위에 정좌한 보현보살이 세상 속에서 실천적 구도자의 모습을 띠고 행동할 때 사자 위에 앉은 문수보살은 사람들의 지혜의 좌표가 되었다. 이 두 보살은 항상 서로의 지혜와 실천행을 주시하고 사랑하면서 스스로의 소임을 다한다고 한다.
코끼리좌에 앉은 보현보살
사자좌에 앉은 문수보살 (불국사에도 석조 코끼리좌대와 사자좌대가 전시되어 있다)
문수보살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인도에서 태어나 반야(般若)의 도리를 선양한 이로서, 항상 반야지혜의 상징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는 ≪반야경≫을 결집, 편찬한 이로 알려져 있고, 또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부모라고 표현되어 왔다. 이는 ≪반야경≫이 지혜를 중심으로 취급한 경전이고, 지혜가 부처를 이루는 근본이 되는 데서 유래된 표현이다.
법당의 천정을 쳐다보면 젓가슴을 활짝 드러낸 반나의 천녀가 공양물을 들고 있는 목조각이 있다. 최근에야 만들어진 목조 공양상이지만 신성한 법당에 이런 상을 새겨 놓은데는 무슨 까닭이 있을텐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하긴 어느 사찰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는 천녀가 그려진 탱화도 있으니.....
사자암 옆에는 지장전이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 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님으로 신앙된다고 한다. 지장보살의 형상은 본래는 보살형으로 보관과 영락으로 장엄한 모습이었지만, 지장십륜경의 기록에 의해 차츰 삭발을 하고 천의 대신 가사를 입고 있으며, 지옥문을 깨뜨린다는 석장인 육환장과 어둠을 밝히는 보석구슬인 장상명주를 들고 있는 사문(沙門)의 모습으로 모셔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곳의 지장전은 특히 유산이 되거나 낙태가 되어 구천에 떠돌고 있는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지장 기도처라고 한다. 옆에는 작은 산신각도 있다.
지장전과 지장보살
사자암 절벽 바위에는 실제 사자와 같이 생긴 형상이 있어 이것 때문에 사자암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주지스님의 말에 의하여 멀리서 보면 바위 전체가 사자의 형태이고 법당이 있는 위치가 사자의 입에 해당된다고 한다.
사자 얼굴을 닮은 바위 아랫쪽의 동자상이 앙징스럽다
아래층 참선방에 있는 바위 벽에는 거북바위가 있는데 소원 성취를 바라는 신도들이 즐겨 찾아 참선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아쉽게 보지 못하였다. 아마 한번 더 다녀가라는 부처님의 뜻인지도 모르겠다.
<찾아 가는 길>
구미(선산)시 도개면 소재지의 도개고등학교를 지나 상주방면으로 약 200m 가다가, [조계종 문수사 사자암제일기도도량] 및 [내고향 신곡리]라는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약 4km 정도 들어가면 신곡리라는 농촌마을이 나오는데, 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중간 중간의 표지판을 따라가면 조그마한 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에서 10시 방향을 바라보면 산 중턱에 암자가 어슴프레하게 보인다. 저수지에서 길을 따라 약 1km 정도가면 문수사가 나온다. 저수지에서 부터 문수사까지 승용차의 통행이 가능하나 1차선으로 조금 좁으며 중간 중간 차를 비켜갈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네비게이션에 '문수사'를 검색하면 된다. (구미시 도개면 신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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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함산솔이파리 원문보기 글쓴이: 솔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