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여름, 뭐가 무서워서인지 제주도로 도망 왔다.
사실 그 상처가 너무 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 일 수도 있다.
그렇게 도망 온 제주도.
나의 첫 집이 되어준 용담동
그때의 기억이 좋아 지금도 제주에 살고 있다.
내가 제주에 살게 만든 이곳
용담동과 도두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지냈던 게스트하우스와 그 앞 공원
게스트하우스 매니저
용담동을 왜 선택했냐고 물어본다면 사실은 선택권이 없었다. 도망은 가고 싶은데 자본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카페를 통해 돈을 안 들이고 지낼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그 유일한 방법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는 것뿐이었다. 대학생 시절 제주살이가 하고 싶어 알아본 기억을 더듬으며 스태프 구하는 곳들을 찾았다. 내 조건은 두 가지였다. 오래 살 수 있고, 돈을 주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 그렇게 몇 번의 클릭으로 딱 맞는 장소를 찾았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이곳에서 유명한 게스트하우스였고, 평도 좋았다. 나는 고민 없이 이곳이 내 운명이기를 바라며 지원 문자를 보냈다. 그 후 하루가 지난 뒤에 전화가 왔다. 여기 게스트하우스인데요. 아주 짧은 인터뷰 형식의 통화였지만 느낌이 좋았다. 이곳이 피난처이자 새로운 시작의 장소가 될 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 지난 뒤 연락이 왔다. '같이 살아 봅시다.'
그 연락이 내가 이 게스트하우스의 매니저가 됨과 동시에 제주에 정착하게 된 이유이자 결과가 되었다.


용담 해안 도로 : 무작정 뛰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주도를 기쁜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오질 못했기에, 내가 도망칠 수 있는 최대의 장소로 도망친 것이기에 제주에서도 그 아픔은 계속되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도망 왔는데, 이 아픈 기억들과 생각들은 내가 도망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따라왔다. 그래서 나도 뛰었다. 정말 매일매일 무작정 달렸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그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선택지 없는 뜀박질이었다. 뜀박질을 하노라면 캄캄한 밤에 파도 소리가, 해가 질 땐 노을이 내 위로가 되어주었다.
+용담 해안 도로
제주 북쪽에 위치한 해안 도로로 용담동의 유명한 관광지 용두암과 이호동의 이호테우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구부러진 해안선을 따라 천천히 천천히 달려보자. 해안 도로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맴돌 게 될 것이다. 또 이곳은 해안선을 따라 떨어지는 선셋이 유명하다. 날 좋은 날 이곳의 선셋은 하루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게 도와줄 것이다.


+ 이호테우 해변
용담해안 도로 끝에 위치한 이호테우 해변은 제주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이곳의 상징은 목마의 모습을 한 등대다. 이곳에 왔다면 위치를 잘 잡아 말과 키스하는 사진을 찍어보자.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또 이호테우 해변은 여름엔 해변 포차로 변모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해변에서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게 만든다.



무뎌진다는 것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다 보니 무뎌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잠시 생각에 잠기면 숨이 안 쉬어지는 고통이 동반하여 따라왔었다. 근데 이것도 시간이 약인지 하루하루, 매일매일 뜀박질하며 바라본 노을이라는 연고에 상처가 아무는 지 매일매일이 괜찮아졌다. 어제의 고통스러운 횟수보다 오늘의 고통스러운 횟수가 적었고, 내일이 좀 더 적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무뎌진다는 것을 인지하니 회복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렇게 고통을 피하려고 뛰던 뜀박질은 습관이 되어 뛰는 행위로 바뀌었고, 후엔 행복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뛰다 보니 이곳 제주가 모든 게 끝나 도망 온 도피처가 아닌 새로운 시작의 장소라는 기분이 들었다.

용담 해안 도로는 위로가 되는 장소였다.
도두동 무지개 해안 도로 : 나의 인생도 무지개빛이겠지
처음 해안 도로를 뛰었을 땐 얼마 가지 못해 숨을 헐떡였다. 군 시절 체력측정 때면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특급을 받았던 내가 저질체력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매일매일 뛰다 보니 한 번에 뛸 수 있는 거리가 점점 늘기 시작했다. 처음엔 500m만 뛰어도 힘들었던 내가 어느 순간 3km는 거뜬히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리가 매일매일 늘어나다 보니 처음엔 만나지 못했던 장소도 이젠 일상처럼 들리는 장소가 되었다. 그 일상이 된 장소가 바로 이곳 무지개 해안 도로였다.



처음엔 만나지 못했던 장소들이 후엔 일상이 되었다.
무지개 해안 도로는 많은 커플들과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오는 장소였다. 단지 무지개로 칠한 이 도로를 위해서 말이다.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후엔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무지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많은 사람이 무지개를 사랑한다. 비가 올 때 그것도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것이 무지개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만나려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해안 도로를 달리면서 기억에 남는 생각이 하나 있다. 나는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 중에 그리 좋아하지 않는 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무지개는 사랑한다. 그 이유가 뭘까? 무지개는 일곱 가지의 색이 모이면서 가치가 있어진 거고 아름다워진 것이다. 마치 내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아픈 이 부분이 무지개에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색이겠지. 하지만 인생의 아픈 부분과 행복한 부분 모든 게 합쳐진다면 무지개처럼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삶이지 않을까. 나의 인생은 무지개 빛일 거야. 이 짧은 생각이 내 인생의 큰 영향으로 다가왔고, 지금은 내 인생을 무지개로 만들기 위해 행복한 부분을 채우고 있다.



+도두동 무지개 해안 도로
도두동 무지개 해안 도로는 SNS 사진 한 장으로 유명해진 장소이다. 일곱 가지 무지개색이 도로를 가득 매운다. 맑은 하늘 사진을 찍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알록달록한 사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도두봉 키세스 존
무지개 해안 도로만 보고 이곳을 가기엔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도두봉의 키세스 존까지 만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해안에 60m 가량 우뚝 솟아 있는 이곳 도두봉 산책로를 따라 정상에 올라간다면 아래 사진과 같은 키세스 존을 만날 수 있다. 나무들이 만든 터널 안에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 평생 간직하게 될 인생 샷을 건지게 될 것이다.


미래를 생각할 겨를 없이 가장 멀리 도망 온 제주는 기회의 장소였다. 남들은 도망자라 손가락질할 지 몰라도, 내겐 큰 용기였다. 이 용기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어 현재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나는 제주에 있다. 그리고 내일 당장 다시 한번 용담동을 다녀올 생각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 도로를 뛰며 한편의 드라마로 남은 그 기억이 경험인지 추억인지 종지부를 찍고 올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