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대상지 1일차: 미륵2009
나의 등반 1일차: 아귀2009
등반대상지 2일차: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의 등반 2일차: 험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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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등이 무슨 걱정이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머리로 암만 알아도, 그걸 온전히 이해하고 과감하게 등반하기에는 체력도 실력도 부족하다. 사자의 심장이라도 가졌으면 좋겠지만 여전히 겁도 많다. 미륵2009에서 마지막 피치를 남겨두고 구토를 했다.
땡볕에 기진해서, 먹으면 힘이 날까 싶어 한입 크기의 에너지바에 소금사탕을 먹은 게 화근이었다. 소금사탕을 두세알쯤 먹고 물을 마시자마자 구역감이 왈칵 몰려왔다. 참으면 될까 싶었는데 전혀. CMV 항바이러스제와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며 비상용 비닐봉지를 들고 다녔던 때가 벼락처럼 머리를 스쳤다. 망했다. 이건 진짜다. 영도 선배님도 보통이 아님을 간파하고 얼른 자일을 가져가셨다. 빌레이어를 교체하고 허겁지겁 옆으로 가 흙더미 위에 노란 물을 쏟았다. 빌레이어가 김도미가 아님을 확인한 용득 선배님도 놀랐다. 거한 이벤트를 마쳤으니, 아마도 내 상태를 고려한 듯 영도 선배님이 하강을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셨다.
하지만 그… 토를 하면 속이 편안해지지 않나.(개비스콘 광고처럼) 게워내고 났더니 한결 나았고, 무엇보다 이대로 내려가면 내내 아쉬울 것 같았다. 위액까지 뱉어냈으니 자일에, 또는 등반하는 용득 선배의 머리 위에 구토를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선등 보랴 천둥벌거숭이같은 신입 컨디션 보랴 고생하셨을 영도 선배님에게 죄송하고 죽을 것 같이 민망했지만 송구한 김에 끝까지 송구하기로. 그렇게 미륵2009의 등반을 마쳤다.
이튿날은 사실 등반에 잘 집중하지 못했다. (내가 판단할 건 아닌 거 같긴 하지만) 대기 시간이 늘어나면서 빨리 마치고 하강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퀵도 잡고 볼트도 밟았다. 물론 등반이 진행되려면 마냥 뭉개고 있을 수 없긴 하지만, 등반이 되지 않는 곳을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게 지금 와서 무척 아쉽다.
그렇다고 내 힘으로 오른 길이 다 쉬웠다는 건 아니다. 내 주제에 어디가 쉽겠나. 내게는 너무 미끄럽고 바짝 선 페이스에 매미처럼 붙어서,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발 끝에 힘을 주고 몸을 옮길 때마다 뜨거운 바위가 뺨을 핥는 것 같았다. 다음, 그 다음 볼트를 만날 때마다 밭은 마음이 더해져 ‘아, 내가 등반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건 착각이었던 거 아닐까’ 하며 의심했다. 그나마 첫날은 설악가를 흥얼거리며 하산했지만, 이튿날에는 농반진반으로 -하지만 진한 진심을 섞어- 말했다.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그곳이 설악산이어서 무조건 좋았다. 동해안과 서울을 오가며 일부러 지나가곤 했던 44번 국도와 계곡을 발 아래에 두고 있었고, 가파른 절벽과 산능선 첩첩이 병풍처럼 펼쳐져서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울산암에서는 십년 전 함께 처음 등반을 배웠던- 그러나 나와 달리 계속 등반을 해왔던- 언니들이 폭염에 익어가며 등반을 하고 있을 거였다. 그리고 나는 설악동 야영장에서 만난 그 등반가가 만든 루트에 붙어있었다. “잘 있거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산노래의 마지막 부분을 결국은 다시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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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도, 이혜영, 김보람, 정찬미, 권용득, 고재필 선배님 모두 감사드립니다:) 동해에서 뵐게요!
첫댓글 그럼에도 사진은 너무 좋네요. 무더위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ㅎㅎ 사진 뒤에 숨은 피땀눈물ㅎㅎ 영조 선배님 (드디어!) 곧 동해에서 뵐게요!😀
후등도 선등도 모두 걱정되는건 마찬가지^^
크랙장갑 단디 준비하고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