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정결한 짐승
본문:레11:1-8
초점:말씀생활론
요 약
구약 시대 구별된 식생활은 하나님 백성들의 구별된 삶을 교훈함이다. 정
결한 짐승은 쪽발 가진 것으로 이는 말씀을 순종함과 악성을 버림이요, 또
새김질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늘 묵상하는 생활을
가리킨다. 그러나 부정한 것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은 것으로
이는 말씀을 듣되 행치 않는 것이요, 또 쪽발이지만 새김질하지 못하는 것
으로 이는 알지 못하면서 행하려 함이요, 새김질도 쪽발도 없는 것은 말씀
묵상도 행함도 없는 이방인과 같은 삶이다.
설 명
☆ 하나님 백성의 생활
<특징 1 = 말씀 생활>
1. 말씀 묵상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3절)
<새김질의 의미>
① 말씀 사모 ② 내게 적용
2. 말씀 순종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레11:2-3)
<쪽발의 의미>
① 말씀 순종 ② 죄에 대해 죽음
3. 다음 사항 경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4-6)
→ 말씀 듣되 행치 않는 것
사이비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7절)
→ 알지 못하면서 행하려는 것
이단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식생활은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못할 음식으
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령한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한
예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 와서는 그 규정이 철폐되었습니다.
그 예로 행 10장을 보면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큰 보자기 같은 한 그
릇이 내려오는데 그 안에는 온갖 부정한 짐승들이 있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있
어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베드로는 이 소리를
듣고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
지 아니 하였삽나이다 거부하지만 하늘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소리가 나기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행10:11-15).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안에서 구
분되지 않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짐승에 관한 율법의 신령한 의미는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변하
지 않습니다. 여기에 담긴 신령한 진리란 바로 하나님 백성들의 구별된 삶에
관한 것입니다. 즉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진리를 교훈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네 발 달린 짐승을 가지고 그 의
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네 발 달린 짐승 중에 먹을 수 있는 짐승은 약 두
가지의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다른 하나
는 새김질하는 것입니다. 이 정결한 짐승의 조건에서 우리는 은혜 받은 성도
참 성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 은혜 받은 성도는 말씀에 순종함에 열심합니다.
레11:2-3 본문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육지 모든 짐승 중 너
희의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그
랬습니다.
쪽발이 무엇입니까? 소나 양처럼 발굽이 두 쪽이 된 그런 발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쪽발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신속하고 멀리 잘 다닐
수 있는 발이라는 점입니다. 대개 초식 동물들은 나면서 바로 걸을 수 있고
몇 시간이 지나면 어미를 따라 달릴 수 있습니다. 그 만큼 다리가 잘 발달되
어 있습니다. 그러나 쪽발이 아닌 짐승들은 대개 그렇지 못합니다. 사자나 개
나 사납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야 겨우 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식
동물들은 하나님께서 생존을 위해서 다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을 보면 초식 동물 특히 사슴에 대해 묘사한 곳이 많습니
다. 사35:6을 보면 저는 자가 사슴같이 뛴다는 말씀도 있고, 합3:19에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
니게 하시리로다"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 믿음도 이런 발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슴이 낳자 말자 걷고 뛰
듯이 우리 성도들이 예수 믿자 말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순종하고 그 말
씀 따라 열심 내어 달려간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정
상입니다. 은혜 받으면 다 이렇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10년 20년이 아니라
할지라도 곧 순종하게 됩니다. 이게 은혜 받은 우리 성도들의 자화상입니다.
2. 은혜 받은 성도는 죄에 대해서 철저히 죽습니다.
이것이 쪽발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즉 쪽발은 남을 해칠 수 있는 발이 아니
라는 점입니다. 그 쪽발 가지고 누구를 할퀴거나 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성도들이 모습입니다. 성도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들로서 원리상 범죄
할 수 없고 남을 해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안의 성도들의 자화상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라는 사실
입니다. 그래서 롬6:10-12에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
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
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
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쪽발이 되었지만 나도 모르게 언제는 할퀴는 발이 되고 이랬다 저랬
다를 반복하는데 그것은 아직 충만한 은혜 안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은혜
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은혜입니다.
3. 은혜 받은 심령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사모합니다.
3절에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초식 동물들이 되새김질하는 것을 보셨지요? 저도 어릴 때 소를 풀
먹여 보고 집에서 길렀기 때문에 잘 압니다. 평소에는 풀을 먹지만 밤이나 낮
에 쉴 때는 먹었던 것을 다시 내어 다시 씹는데 꼭 먹을 만큼 입안으로 보내
어 씹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맛있게 씹습니까? 그
런데 소는 위장이 네 개라고 하지 않습니까? 소처럼 쪽발에 되새김질하는 그
모습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결한 짐승을 보면 어쩌면 시편 1편과 동일한지 모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
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
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러면서 부정한
짐승이 나오듯이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라
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사모하여 되새겨야 합니다. 하나
님의 말씀을 가장 사모한 사람을 들라면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그가 그토록
사모한 이유는 말씀을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
입니다. 얼마나 사모했으면 시19:10에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
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했을까요? 다윗은 말씀만 사모한 것이 아니
라 하나님의 성전도 사모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과 그 성전을 사모했든지 쇠
약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 받은 심령입니다. 동물들의 되새김 누
가 시켜서 합니까? 이처럼 은혜를 받으면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4. 은혜 받은 심령은 말씀에 서서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이것이 새김질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우리는 동일한 말씀일지라도 묵상하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견고히 서고 그 말씀을 내가 경
험하고 그 말씀이 내게 적용되게 해야 합니다. 개인 경험이지만 언제 믿음이
가장 강했는가 보면 성경구절을 암송할 때 가장 믿음이 강한 것 같아요. 매일
같이 성경구절을 적어 가지고 외우고 또 외우고 그 때 바다를 가르고 바위를
가르는 듯한 확신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으면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내 말씀이 되어 다가옵니다.
짐승들이 아무리 꼴을 많이 먹었어도 새김질을 하지 않으면 내 살이 되고 피
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듯 은혜 받은 심령은 늘 말씀을 묵상하여 그 말
씀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유사하지만 먹지 못할 짐승도 있습니다.
먼저 새김질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는 짐승입니다.
4절에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약대와 사반과 토끼를 그 예로 들고 있습니
다. 그러니까 부정한 것은 두 가지 다 못하거나 둘 중 하나를 못하는 짐승입
니다.
가령 약대나 사반이나 토끼와 같이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않았으므로
부정합니다. 흔히 토끼에 대해서는 새김질을 못하는 줄 아는데 1882년에야
독일 Grizimek 박사에 의해 토끼가 베설하는 씨코트로프(carcotroph)라는 비
타민 B가 풍부한 알약을 늦은 밤이나 새벽에 다시 먹어 1차 소화시 소화되지
않는 셀룰로오즈를 소화시킴이 밝혀 졌습니다.
그럼 이것의 신령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되 행
치 않는 믿음입니다. 이 얼마나 영적으로 부정합니까? 이것은 분명 잘못입니
다. 그래서 야고보는 교훈하기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
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
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
에 복을 받으리라"(1:22-25)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것은 죄니라 했습니다. 이것이 새김질은 매일 하지만 행치 않는 삶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쪽발이지만 새김질을 못하는 짐승도 그렇습니다. 7절에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
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말씀을 알지 못하면서 행하려는 사람입니다.
이것 역시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지금 이 지구상의 이단 중에 가장 경계
해야 할 이단이 안식교입니다. 안식교인들이 순진하고 자연도 사랑하는 것 같
지만 세상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이단들이 대부분 안식교에서 분파 되어 나왔습
니다. 지금 서울 등지에는 안식교의 분파인 안상홍교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
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토록 터무니없는 이단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
어 안상홍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알지 못해서입니다. 제가
지난 해에 총신대학에 가서 이 부분을 이수한 적이 있지만 우리 교인들이 다
른 것은 몰라도 이 안식교만큼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
다. 이단이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대단히 부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쪽
발이지만 새김질을 못하는 부정한 짐승의 의미입니다.
그럼 새김질도 쪽발도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세상 죄인의 삶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금수나 다름이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말씀도 묵상하지 않고 행하지도 않는 분이 계시
다면 이 시간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이 세상 불신자와 똑 같은 생활
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영의 음식을 가려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마음이 강건해지고 얼굴에 빛이 납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백성의 생활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말씀에 순종하고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과 그 말씀을 사모하며 그 진리대로 행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아름다운 성도들이 됩시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