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육백예순일곱 번째
군아쟁병群兒爭餠
조선 왕실에서는 오늘날의 사인과 같이 사용할 글자를 압押이라 했고, 이를 도장에 새겨 공문서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영조는 세자가 사용하게 될 압押의 글자를 ‘달達’자로 정했습니다. 영조는 숙종으로부터 ‘통通’자를 받았으니, 영조와 세자의 압을 합하면 ‘통달通達’이 됩니다. 손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겁니다. 현대에서도 대통령과 국민 사이가 불통일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통달은 정치의 핵이며, 거기에는 숨김이 없어야 합니다. 숨김없음은 곧 사私가 없음입니다. 또 하나, 다산은 정치란 분배를 고르게 하여 바로잡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평화입니다. ‘평平’에는 ‘바로잡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화和’는 ‘벼 화禾’에 ‘입 구口’ 자의 조합입니다. 먹는 것이 고르게 나누어질 때를 평화라 합니다. 그러니 양식이 골고루 입으로 들어가도록 바로잡는 게 정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의 유몽인이 광해의 폐정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 자리가 빈 태학사太學士 자리에 그가 추천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즉각 추천한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이들과 콧물 묻은 떡을 다투는 일 같은 것은(如與群兒爭鼻液之餠),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 정치인들이 ‘콧물 묻은 떡’을 놓고 다툰다는 겁니다. 일본의 문학평론가였던 가토 슈이치 加藤周一의 자서전 ‘양의 노래’에 “정치를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정치에서는 참된 뜻이 배반당하고, 이상주의가 이용당하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제의 충성이 오늘의 모반이 되고 만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유몽인은 이를 안 것이지요. 우리 정치판에서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참된 뜻도 아니고 충성도 아닙니다. 자주 ‘국가와 민족’ 운운하는 사람일수록 자세히 살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