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의 사정이다
아직두 이런 일들이 일어나구 있다는 것에 대해
실망을 하지 않을수 없으며, 정부와 경찰에 대해
심히 불쾌한 감정이 든다.
아무런 자살의 근거가 없는 사람이, 여자는 제대로
사귀어 본 적도 없는 장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한
어린 전경이 자신의 복부를 식칼로 5차례나 할복할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래의 글은 청와대 신문고란에 고 최 이경의 형분이
올려 놓으신 글이다
조금 긴 글이지만, 오늘 만난 유가족을 보니 안읽어 볼수가
없었다
한번쯤 시간을 내서 읽어보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수는 없지만
유족들과 고인의 억울함이 있다면 그것을 풀어주는것이
정의가 아닌가 싶다.
새해 벽두부터 이런 글을 올리긴 좀 그렇지만 한번쯤 읽어주는 것도
인덕을 쌓고,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새해 덕 많이들 쌓고 건강해라~~
신청날짜 2002-01-10 오후 8:59:59 접수날짜 2002-01-11 오전 10:06:09
민원인 성명 최용섭
공개 여부 공개 민원번호 A0201-1458
제목 서산경찰서 전경 자살사건
민 원 내 용
저는 서산경찰서 전경 이경 최재혁군에 형인 최용섭입니다.
이경 최재혁은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며 사건경위는 거의 자살로 확인되고
있는 사항입니다. 형으로써 도저히 제 동생이 갑자기 자살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으며 서산 경찰서에 나의 성장기라는 자필로 작성된 글로 보아도 자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이 쓴 나의 성장기의 내용을 올리고자 합니다.
저는 이번 일로 동생을 세번이나 죽여야 했습니다.
병원에서 한번 부검에서 한번 화장터에서 한번...저에게는 생명 같은 동생입니다.
그녀석이 자신의 모든 장기와 뇌 그리고 뼈 속까지 모두 저의 눈에 넣어 주고 형 옆을 떠났습니다.
서산 경찰서에서 발생된 사고 시각은 2002.01.08일 오전12:30분경 취사 당번인 제 동생 최재혁이경이 배식을 끝낸 후 식사를 하고 주방에 칼을 뽑아 자신의 상하복부를 5회 찌르는 사건이 발생 했다고 합니다.
식당또한 오픈구조이라 은폐의혹이 있을수 없다고 경찰은 주장합니다.
연락을받고 서산 의료원에 도착했을시 봉합수술은 완료 되었으나 생존확률이 작다는 말과 함께 얼마 시간이 지난후 구급차로 국립경찰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경찰병원 도착시 최재혁이병은 이미 심폐기능이 멈춘 상태로 소생술을 시도하였으나 최이병은 싸늘은 사체로 남고 말았습니다.
왜 죽을 지도모르는 극박한 상항에서 구급차로 차량지체 시간에 이송하게 했는지 경찰 전용헬기는 고위간부들만의 것이 었는지 아니면 그 어린 생명이 끊게 하려 했던 것인지 정말 불가피한상항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경찰수사에 분노하는 것은 사고 경과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최이경이 여자 문제로 자살했다는 소문을 퍼지게 유도 했다는 것에 울분을 참을수 없습니다.
새벽시간 최이경의 친구집으로 전화연락을 취한 경찰은 최이경의 죽음 여자문제로 삼으려는 의도를 지울수 없습니다.
다방면의 수사가 진행될수 있다 이해는 하지만 이런 식의 수사는더욱 이 수사를믿을수 없게 합니다.
현제 진행 상항이 최이경에게 아무런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은걸로 경찰은 전하고 있습니다.
경찰수사는 전경,의경에 의존하지 말고 서내 모든 인원에 대해 조사를 해야할것입니다.
피어보지도 못한 한 생명이 자신의 몸을 발기발기 찢어 죽을수밖에 없었던 그
원인을 보다 강력히 규명해야 할것입니다.
저의 동생이자 대한민국의 아들로 국가의 부름을 받은 어린 생명을 또 한번 치욕적인 죽음을 맞지 않도록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래는 고 최재혁이경이 중앙경찰학교 이수 후 서산경찰서 교육생으로 입소하여 첫날 쓴 경찰내부 자필기록을 그대로 옮겨 적었습니다.
이글로 최이경의 소생을 위해 힘쓰셨던 분들에게 폐가 끼치더라도 너그러히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나의 성장기
소속 : 서산경찰서
계급 : 이경 성명 : 최 재 혁
* 나의 성장과정 (탄생부터 현재까지)
저는 1981년 4월 16일 경북 풍천면 도양 398/1 에서 태어나서 5살 까지 그 속에서 살다가 아버지께서 제가 5살 되던 해에 농약중독으로 사망하셔서 어머니께서
혼자 서울에 올라 오셔서 2~3년 동안 식당일을 하시면서 돈을 모으셨습니다. 그래서 형제들과 서울로 올라 와서 형과 저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누나는 엄마을 도와 직장에 나갔습니다. 그후 5년 정도가 흐른뒤 주공아파트(영세민)를 분양
받아 1991년에 입주하여 저는 그곳에서 계속 커 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닐적에 빵이 좋아 고2때 제과점 아르바이트를 시작 했습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정식 직원에 되어 설것이,오븐,반죽에 걸쳐 중간 책임자 까지 직책을 맡고 있다가 2001년 10월에 영장을 받아 제과점에서의 일을 그만 두고 쉬다가 2001년10월25일에 증평37사단으로 입소 한후에 6주 신병 훈령기간을 마친뒤 전투 경찰로 착출 되어 중앙 경찰 학교 에서 2주 교육을 2001년10월21일에 수료한뒤 2001년 10월 21일 서산 경찰서로 근무를 명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앙 경찰학교에서 있는
동안 친형의 결혼식으로 인하여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결혼회관으로 1일 특별휴가를 받아 참석 하고 왔습니다.
현재의 꿈은 제대후에 제과 제빵 공장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완전한 기술자를 하고 오려다가 군대에 갔다 오면 많은 것을 잊어 먹을것 같아서 케잌류 제조만 빼놓고 현재는 모든 빵과 과자류는 완전히 만들수 있는 단계 까지 배우고
왔습니다. 집에서도 제가 빵을 하는 것을 많이 좋아 하십니다. 어떤때는 힘들어
서 뿌리치고 나왔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버리고 딴 일을 한다는 것이 내키지로
않고 손에 잡혀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다시 제과.제빵일을 시작했고 군에
놀때까지 중간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빵을 저 곁에서 떨러 놓는 다는 것이
상당히 불안하며 휴가중에도 제가 있던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올 생각
입니다.
* 성장 과정중 정신적 지주 또는 영향을 준 사람 (주소 및 연락처 기재)
지금껏 저의 정신적 지주는 저의 형이 였습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형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저의 모든 것을 챙켜 주고 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었습
니다. 질책을 받을 때는 형이 뭔데 나한데 그려느냐는 식이 였는데 막상 시간
이 흐르고 어느 정도 철이 들어서 부터는 형한데 정말 고마웠습나다. 지금까지
제 옆에 형이 없었더라면 저란 존재가 이자리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형한테 상당히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011-701-6225)
그리고 또 한분은 저를 제과점에서 처음 인정해 주시고 아껴주시던 김상천
사장민이셨습니다. 그 분께서 저에게 해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남자는 자고로 큰물에서 놀아야 된다는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 집안 유력인사(직업등 자세하게)
어머니 (김순자) 기아 자동차에 소속하여 있는 식당에서 조리원으로 15년
동안 근무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근무하고 계십니다.
형 (최용섭) 안양(경기도) 소재해 있는 안양월드라는 백화점식으로 되어
있는 곳에서 관리실에서 보일러를 주담당으로 맡고 있는
기사입니다. 현재는 공조 냉동 기계 기술사를
준비 중입니다.
매형(김준기) 건설업체 현장에서 현재 목수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차후로는 사촌 매형의 샷시기술을 배워서 샷시
기술자를 하실 것 같습니다.
누나(최미연) 개인 요리집에서 반찬을 담당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촌형(최주섭) 아파트 보일러실에서 보일러를 담당하는 기술자로 일
하고 있습니다.
* 초,중,고,대 학력 및 학교생활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워낙 못하여 초등학교 2학년 생활을 특수반으로
보낼정도였습니다. 이때는 저도 자존심이란 것이 있었는지 3학년때 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형한테 엄청나게 맞아가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후 4학년때전학을 하게 되어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에 소재하고 있는 하안남 초등학교에 가서 졸업을하였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하안 중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처음 1학년때는 수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학년때는 매일 벌받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2학년에 접어들면서 국사과목에 관심이 생겨 열심히하다 보니 다른 암기과목들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학년때는 변성범이라는 중학교때 둘도엊ㅅ는 친구를 만낫습니다.
그 친구는 공부에 관심이 많던 친구이라 졸업하기 전에어청난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부하는 법이라든가 사람 사귀는 요령등을 말입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처음에는 안양공업고등학교 중장비과에 지원하려고 하였스나 내신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 산본공업고등학교화공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처음 1학년때는 공고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안한다는 소리를 듣고 기회는 이때다해서 열심히 공부 했습니다.
그래서학년 초기에는전교 8등정도를하였으나 2학년진급 후 어느날 학교에서 마치고 걸어오는데 제과점에서 빵굽는 냄새와 기술자들이 보였습니다.
그것을 보자말자 내가 할일은 빵이다 하여 바로 그날 제과점에서 면접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처음면접을 본 제과점은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저를 고용해 주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절망을 많이했지만 다시한번 자신을 가지고 맞은 편에있는 제과점에 들어가 비록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방과 후에 와서 배우고 싶다고 햇습니다.
그말을 꺼내자 사장님께서는 정말 배우고 싶으면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에 바로 다음날 부터 설것이를 했습니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학교 수업보다 빵에 관심이있어 수업시간에도 제과제빵 필기책을 숨켜 놓고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께 벌도 많이 받고 성적응 2학년 말 부터 거의 꼴지 수준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3학년때는 선생님께서 저를 다아셔서 책좀 그만 보고 빵이나 가지고 오라고 구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우들과의 관계는 거의 하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02월에 졸업하게되었습니다.
대학응원서를 넣어 보려고 했으나 실전에서는 강했지만 내신 성적이 너무 안좋아 원서 제출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 자신의 건강상태 및 병력
- 현제가지고 있는 병은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불안 한것은 무릎 관절이 안좋은 것이 집안 유전이라서 병원 치료를받아 왔습니다.
날씨가 흐리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무릎에 많은 통증을 느낌니다.
그리고 별다른 병력은 없습니다.
그리고 병력특례업체를 잠깐다닌 일이 있습니다.
근데 그곳에서 화학수지 드럼유를 데우게 해서 가열하다가 드럼 폭발로얼굴에 2도 가슴에 3도 화상을입어 시화 종합병원에서 15일 정도입원한적이 있습니다.
현제는 상처는 경미하게 팔과 가슴에 남아있는 정도이고 후유증은 없는 상태입니다. 훈련소에서 생활할때 혈변을 많이 보앗습니다.
근데 요즘은 많이 없는 편인데 좀 불안합니다.
몸도 건강하니 군생활에 좀더 활기를 불어 넣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참님 말씀 잘 듣고 따르는 그런사람이 되겠습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 친우관계 (사귀게된동기,결별이유,주소 및 연락처 기재)
김00: 제과점에 다니던 중 제가 자격증이 없어서 2달 동안 학원에 다니게 되었는데 동갑내기 친구가 하나있었습니다.
그후에 학원에서 하는 고등학생 CA활동 할때마다 이 친구와 같이 일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군데오기 며칠 앞두고 이 친구를 제가 일하던 제과점에 입사시켜 주었습니다.
근데 이 친구가 몸이 안좋아 항상 약을 먹어야하기 때문에 좀 걱정이 됩니다.
결별한 이유는 제가 군입대 관계로 결별하엿습니다(연락처는 적어 오지 못했습니다.)
조00: 초등학교 4학년 때 부터 6학년까지 쭈욱 같은 반이었습니다.
티격태격 싸우기도많이하고 가정형편이 많이 비슷하여 속에 있는 비밀까지 숨김없이 말할수 있는 친구였습니다.
지금 헤어진 동기는 저 보더 먼저 공군에 입대하엿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인천백령도에서 보급병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여자관계 (그간 접했던 여자들의 신상 및 주소, 연락처등 모두 기재)
여자들은 장난 삼아 친구처럼 만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삼람을 좀
무뚝뚝하고 재미가 없어 애인으로는 진정으로 한번도 만나 보지 못앴습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여자가 있다면 친구가 소개 시켜준 여자친구였습니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남습니다. 이름이 저의 동네쪽에 살고 있었는데 사귀자고
몇번 만나면서 말을 건냈으나 거절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후에도 몇번 연락을
했으나 끝내 거철을 해 어쩔수 없이 포기 했습니다. 제 사전에는 포기란 없었
는에 여자 문제에대해서는 어쩔수 없이 무너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뒤에 또 한명에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여자애는 저와 가정 형편이 비슷한것이 상당히 많이 아팠습니다.
만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고 선물도 주고 받으며 깊은 사이에 접근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여자 답지 않은 말투와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여태껏 가정형편을 숨기고 왔던 것에 화가 나서 헤어졌습니다.
그 뒤로 연락도 오고 찾아 오기도 했지만 제가 거절을 했습니다.
어느날은 생일이라는 말에 안 나가기는 미안해서 평소에 밖에 잘 안 입고
나가던 반바지와 지저분한 옷을 입고 나갔더니 많이 실망 했는지 그 다음 부터
는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다은 사람은 학원에서 만난 사람이었는데
1살 많은 누나였습니다. 처음에는 끌리지도 않고 별로 맘에 들지도 않았으나
계속 6개월이 넘게 만나다보니깐 착하고 사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큰 맘먹고 사귀자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못보던 사이에 남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말은 엄두도 못내었습니다. 그후 2달 정도가 지나고 하는 말이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그말을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친동생 누나처럼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말을 꺼내지 못했으나 휴가나 제대후에 자리를 잡고 있을때는
그 말을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사랑한다고 사귀자는 말을 말입니다.
휴가때 나가서 꼭 만나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 바로 이 누나일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 가정환경(가족의 우환 및 질병등 자세히)
제가 어렷을때 아버지가 농약 중독으로 쓰러진후 저희 집안 환경은 극히 가난에서벗어나기 힘들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많은 충격을 받으셨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으시고 저희 2남1녀를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누나도하고 싶은 공부와 많은 일들을 포기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누나는 방직 공장과 (주)농심을 다니면서 큰 힘을주었습니다.
그후 누나는 25에 충청도 사시는매형과 만나서 결혼을 했고 어머니,형,제가 남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 중 형은 군데에 갔고 어머니는 고혈압과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고생하시며 저를 키우시기 위해 돈을 버셨습니다.
그리고 형이 제대한 후에도 저희 가정 형편은 어려웠으나 5년이라는시간이 흐른 뒤형이 누나의 빈자리를 이어 어머니를 도와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도 몸이 많이 안좋으셨지만 형이 도운 후로는 그래도 좀 편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회에 나가서 이젠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제가 버는 것이 비록얼마되진않았지만 생활비 정도는 되었습니다.
때로는 제가 버는 것은 내것인데한번 내가관리를 다해보고 싶은생각도들었지만
바보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군대 오기 전에까지 제가 번돈은 어머니께 갔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고혈압과 아프신데 걱정이 많이 됩니다.
어서 빨리 제대해서 어머니의 건강을 되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거 저희형이 몸이 요즘 급속도로 안좋아져서 걱정입니다. 얼마전에 가정도 차렷으니 건강관리 좀 잘해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집안유전으로무릎관절염이 있는데 어서 나아졌으면합니다.
저희형도 무릎관절이 안좋아 수술을 받은적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저희 형수님께서도 얼마 전만해도 몸에 안 좋응병이 있었는데 하루빨리 병이 없어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희 삼촌이 몸이 상당히 안 좋으십니다.
알콜 중독이 한때있으셔서 걱정을 많이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 되신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술을 좀 끊으셨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큰 아버지 께서도 연세가 많으셔서 걱정이 많이 되는데 몸 생각 하셔서 일을 좀 쉬셨으면 합니다.
큰 어머님도몸이 안좋으신데 병원에서 진찰 검사 좀 받으셨으면 합니다.
* 학교 및 사회 생활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
중학교 시절에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착한 친구를 사귄적이 잇습니다.
어떻게 이런 녀석이 저란녀석에게 접근을 해왔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않습니다만 이 친구를만나서 공부를하게 되어습니다.
물론저도 이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않아 제가 할수 있는것은 모두 열심히 공부 했습니다.
덕분에 성적도 많이 올랐고공부란데 취미를 많이 붙인적도 있습니다.
사회활동 주에는 처음제과점을 나갔을때 만난 김상천 사장님 이십니다.
그분은 항상하시는말씀이 남자는 꿈을 크게 갖고 어디서 일하등 큰물에서 놀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말을 듣고 상당히 깨달은 것이 많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것은 학원에 계시는 강사형이 저만 데리고 화과자를 만들 때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중에 저엿다는 것이 상당히 고마웠고 배우기 힘든 화과자 제작과정을 보고 메모제가 직접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기술이 이렇게 배우기 어렵고 힘이 든것인지 느꼈습니다.
또 다른 것이 생각 나는 것은 설연휴때 약수터를 간적이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할아버지가 혼자 불편하신 몸으로 혼자 오신걸 보았습니다.
사장을 들어보니 큰 아들은 명절인데도일이 바빠서 못오고 작은 아들은 군대에 가서 아무도 없다는것이 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풍에 걸리셔서 걸음도 상당히 불편하셨던 터라 할아버지를 댁에 까지 모시고 갔습니다.
할아버지 댁은 정말 엉망이었고 먹을것이라고는 빵 한덩어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할아버지 밥한끼 사드시라고 몇만원 드리고 왔는데 계속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 후에 시간이 흐르고 회사에서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마음은 할아버지를 아는 척하려고 했으나 몸은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냔 온 후로 계속 마음에걸리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 한가지는 병력특례업체에 잠깐 있는 동안 할일이 별로 없었던날 이었습니다.
화학류 수지가 좀 남아있는 드럼을 데우라고 햇습니다, 하긴싫었지만 특례이기때문에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데웠습니다.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펑"하는 소리와 함께드럼이 폭발햇습니다.
그후 저는 병원에 실려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후 완쾌가 어는정도 된후 회사에 찾아갓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회사를 그만 두라는 투로말을 건네셨습니다.
정말 특례에 대한 생각이 그때는 정말 못할 일이라고 생각 햇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그만두고 군대를 왔습니다.
* 전역 후 자신의 진로
전역을 하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바로 앞입니다.
제과점은 크리스마스가 최고의 명절입니다.
그래서 전역을하면바로 생활 터전으로 나가다시 기술자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시다 부터 다시 일하면서 2년 안에 인정받는 기술자가 되는 것이 급선무고 그것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학원 강사를 1년 정도하면서 아이들도 가르치며 제가 대학에 진학할수 잇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현제 제과점은 주식히사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국가가 인정하는 공인기관에서 1에서 2년의 경력을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해서 졸업후에 제과점 리치몬드나 이름있는 제과점에서 기술자 생활을하다가 30대 중반에는 일본에 있는 동경제과학교에서 선진기술을 배워와서 한국과 세계적으로 기술을 선보일수 있는 기술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형수님과 약속한 까페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케익을 만들어서 형수님이 경영하시는 까페에 케익을 공급해 드리고 형수님께서는 제가 만든 빵을 시사회를 걸쳐 선전을 도와 주는 식의 사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 후 정말 밤낮 없이 일할 것입니다.
* 근무지에서의 불만이나 개선을 요하는 사항
처음엔 훈련소에 입소할때는 전경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는데 전경으로 이번에 착출 되었습니다.
경찰로 들어온 이상 어떤 근무를 배치받던지 최선을 다하는 전경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고참님말씀 잘듣고 잘따르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전경을 마치고 몸 건강히 집으로 가서 열심히 군생활 했냐고 누군가 물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전경생활을 했다고 하고 싶습니다.
불만은 없습니다.
고참님도 잘해 주시고 잘해 주시는 만큼 제가 열심히 한다면 개선과 요하는 사항은 없을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전경에 대해서는 아직하는 일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서 저의 직책에 대한것을 빨리 습득하고배워나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에게 밝은 인상을 심어 줄수 잇는 경찰이 되고 싶습니다.
어떤 임무든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직은 어제 첨 들어와서 2주 동안 이곳 경찰서 생활에 적응은 잘 안되지만 2주만 지나고 이곳 생활에 적응이 되고 하면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공기도 좋고 고참님들도 잘해 주시기 때문에 적응하지도 더빨라 질것 같습니다.
이제 처음 시작이니깐오로지 열심히 하겠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이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