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유율은 이제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적 요소
1872년 11명의 퀸스 파크(스코틀랜드 클럽) 선수들은 스코틀랜드 대표 자격으로 잉글랜드 팀과 역사상 최초의 국제 경기를 치렀다. 경기 이전부터 스코틀랜드 선수들을 압도하는 잉글랜드 선수들의 육중한 체격에 잉글랜드에 우세를 점치는 전망이 많았다. 체격 조건의 우위는 분명히 큰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코틀랜드가 선택한 전략은 잉글랜드에게 공을 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공을 잡지 못해야 자신들이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렇게 점유율과 패스라는 개념이 생겼고 본래 이들은 수비적인 전략을 펼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140년이 지난 이후,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이 이끄는 스페인은 유로 2012에서 패스로 경기를 지배했다. 그런데 스페인을 상대하는 팀들도 스페인처럼 경기를 펼쳐서 스페인이 주도권을 잡는걸 막고자 했다. 그들도 공이 자신들 소유에 있어야 찬스가 생긴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딱히 재밌는 축구가 선보여지지 못했지만, 스페인을 상대하는 방법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몇몇은 델 보스케 감독이 굉장히 지루한 축구를 펼쳤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델 보스케 감독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경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이 이길 수 있는 경기를 펼치는데 우선 순위를 둔 것이다. 사실 스페인 대표팀의 경기를 재미없게 만든 것은 스페인 대표팀이 아니라 수비적인 마인드로 스페인 대표팀을 상대하는 팀이었다. 공격하러 나오라 말해도 그렇게 하질 않는단 말이다. 델 보스케 감독은 상대팀이 웅크릴수록 스페인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상대의 실수가 발생하는 그 순간 스페인은 그 실수를 득점으로 연결시킨다. 이탈리아가 결승전에서 그랬고 스페인은 이탈리아를 4-0으로 완파했다.
유로 2012에서 스페인 대표팀이 거둔 성공은 세대와 패스 능력의 절정기에 다다랐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랫동안 드리블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가치에 얽매여 있었고 속도와 신체적 강점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제 축구에서 가장 최고의 가치를 지닌 능력은 패스가 되었다. 패스는 상대 선수들이 태클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공간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만들었다. 첼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같은 예외적인 사항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어떠한 전술이 유행하든 끈질긴 플레이, 철저한 약속이 이루어진 플레이, 강한 동기 부여가 되는 팀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공을 가장 잘 다룰 줄 아는 클럽들이 대다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는 시대가 도래했다.
스트라이커는 이제 꼭 필요하지 않다
전술적인 혁신도 공 점유율로부터 만들어졌다. 스페인 대표팀을 이끄는 델 보스케 감독은 종종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중앙 공격수로 기용했다. 다수는 이를 가짜 9번이라 말하지만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가짜 9번 역할은 리오넬 메시의 그 것과는 다르다. 리오넬 메시는 상대 수비수들의 혼란을 야기시키면서 동료 선수들이 침투할 공간을 만든다. 반면 파브레가스는 마치 공격수처럼 메시보다 비교적 앞에 위치한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미드필더다. 파브레가스의 역할은 공을 잡고 동료 미드필더들에게 공을 넘겨주는 것이다.
따라서 구식의 타깃맨 같은 역할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다. 발밑으로 오는 짧은 패스는 미드필더에게 넘겨줄 수 있지만, 상대 수비수와 공중전을 펼쳐야하는 상황에서는 공을 넘겨주지 못하는 타깃맨이라 볼 수 있다.
아마 그 어떤 누구도 스페인의 이런 전략을 비웃지 못할 것이다. 이들에게는 유로 2012 골든 부츠(득점왕)를 수상한 페르난도 토레스가 있기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것만큼 웃긴 수상이지만...
코린치안스가 이번 여름에 파올로 게레로를 데려와 4-2-3-1 포메이션으로 전술적 변화를 시도했지만, 이들은 코파 리베르타도라스 우승을 호르헤 엔리케, 에메르손 투톱으로 이뤄냈다. 코린치안스는 4-2-2-2 포메이션을 활용하지만 이 두 선수의 움직임은 코린치안스가 4-2-4-0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표현하게 만들었다. 이는 상대팀이 코린치안스 선수를 마킹하는데 어려움을 줬을 뿐만 아니라 상대 풀백을 포위시켜 궁극적으로는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이젠 스트라이커 없이도 우승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패스와 압박은 리그 상위권 클럽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지난 시즌 조세 무리뉴 감독이 펩 과르디올라를 상대로 끝내 심리전에서 승리했을지 몰라도 전술적인 면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자신에게 흠뻑 빠져있는 개인들이 모일 경우 한 번의 우승은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런 성향들은 결국 팀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도록 만든다. 레알이 내부 인물들이 입씨름을 하는 사이, 바르셀로나는 감독 교체를 아주 순조롭게 이뤄냈다. 빌라노바가 과르디올라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았다는 평도 있지만, 어찌되었건 바르셀로나의 스타일은 유지하고 있고 바르셀로나 스타일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축구는 비엘사(Bielsa)화 되어가고 있다. 드리블보다는 압박, 점유, 패스가 중심적인 가치를 가져가고 있다. 이제는 압박도 전방부터 시작하는게 유행을 타고 있다.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이 이끄는 아슬레틱 빌바오는 지난 3~4월에 이러한 전략을 극대화한 모습을 보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뭉개버렸던 아슬레틱 빌바오의 경기력은 그런 전술의 정점에 해당하는 모습이었다.
독일에서는 점유율을 기본으로 깔고가는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리그를 지배하고 있다. 맨체스터 시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의도적으로 점유율 게임을 하려한다. 지난시즌 미드필드진의 역동성을 잃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점유율 우위를 통해 수비진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도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인 니겔 데 용을 팔았고 스리백 사용 빈도를 늘리면서 레스콧을 사실상 전력 외 자원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변화는 아마도 공 점유율을 더 높이고자 시도한 변화라 생각한다.
이탈리아는 공격력을 강화시키면서 미드필더에서 힘을 잃지않는 방식을 추구한 결과 선택한 3-5-2가 유행을 타고 있다. 프랑스에선 미드필드 싸움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으나 현재 다른 국가에서는 패스가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추앙받고 있다.
롱볼 전략을 주로 사용해오던 영국에서는 패스를 위주로하는 축구가 공격적인 색깔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바르셀로나가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패싱 축구가 섬세하고 재밌고 공격적인 토탈 축구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2012년 여름의 스페인은 우리에게 이런 관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만들었다. 패스는 수비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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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압박,점유,패스...
중요한것은 위 단어들을 실현해낼수 있는 선수들의
기량이 우선되어야 될듯 합니다
선수들 기량의 문제는 프로니까 선수 각자의 몫이라고
할수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기대되는건 과연 이전술 깨는 전술이 나올수 있을까 입니다
세계축구의 흐름에 대해 다시 개념정리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카페에서 새로운 전술을 세상에 내놓는건 어떻습니까?
꿈꾸는자가 미래를 만들어 간다고 하니까요!
그건 우리같은 아마추어가 할일이 아니죠 우리는 감독들이 사용하는 전술에 대해서 장단점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고 봐요
전 1000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비록 지금은 실현하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발상으로 충분히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누군가했던 것을 카피하기 보단 새로운 전술을 내놓아보는 것도 재미있을거라 생각합니다ㅎㅎ
물론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혹시 관심있으시면 쪽지보내주세요^ ^
벌레물린사과님 항상 번역글 감사합니다.